§ 180화. 베이스캠프 (2)
미리 열어둔 워프 포털을 통해 히로시, 로버트 윤, 오문성까지 무사히 아이슬란드로 입성한 뒤였다.
“……처참하군, 아이슬란드에서 이런 열기를 다 느끼다니.”
로버트 윤이 말한 열기란, 축제와 같은 환호의 분위기가 아니다.
협회 건물이 위치한 곳은 이미 메테오가 휩쓸고 지나간 곳.
아직도 불에 타고 있으며, 저 멀리 선 누군가가 대항하는 중인 듯이 메테오가 여전히 떨어지는 중이다.
그 메테오가 발생시킨 불쾌한 열기를 뜻하는 말이었다.
아이슬란드는 본래 추운 나라.
그런 나라에서 이런 열기를 풍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질적이란 뜻이었다.
우린 협회 건물을 눈으로 살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그 안에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확실했다.
“저쪽으로 가죠.”
난 이제 메테오가 떨어지는 방향을 가리켰다.
과연 메테오가 떨어지는 저곳에선 누가 있을 것인가.
화상 회의를 하다가 “다들, 무운을 빕니다.”라는 유언과 같은 말을 남긴 협회장도 그곳에 있을지.
아니면 협회장 없이 살고자 하는 헌터들과 일반인이 모인 것인지.
모든 것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했다.
“서두릅시다.”
우린 아이슬란드로 왔다.
이곳을 이제 베이스캠프로 삼고, 크루즈에 반격하기 위해서.
그 반격의 과정에는 아이슬란드에 있는 살릴 수 있는 사람들부터 살리는 게 시작이다.
그렇게 내가 먼저 메테오가 떨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함께 온 셋도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더했다.
펄럭-!
시간을 아껴야 하지 않던가.
곧장 드래곤에게 받은, 날개의 가호를 꺼냈다.
“다들 꽉 잡아. 처음 해 보는 거라 편안한 승차감은 장담 못 하니까.”
“편안한…… 뭐?”
그들이 불안해하는 순간.
“우왁! 뭐야, 갑자기!”
오문성이 가장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날개의 가호로 사용해 나도 드래곤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동행한 셋을 염력으로 띄워 함께 공중으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대로 메테오가 쏟아지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협회장님……! 이제 더는 도망칠 곳도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에요! 뭐라고 말 좀 해 보세요!”
아이슬란드의 협회장 하들도르에게 희망적인 답을 기대하며 소리쳤지만.
“…….”
정작 하들도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협회장님!”
노르웨이 협회장 하들도르가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
콰앙-!
가까운 곳에서 메테오가 낙하했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죽은 그가 헌터인지, 일반인인지.
그것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 혼란의 상황이었다.
“협회장님!! 지금 뭐하는 겁니까!”
답답함에 헌터는 감히 협회장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공포로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온 절박한 행동이다.
“지원 요청은 했다면서요! 러시아랑 협상 중이라면서요!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그 지원이 온다는 말입니까!”
헌터는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 이유 역시, 하들도르 협회장이 사실대로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너무 늦었다, 아이슬란드를 포기하고 러시아로 대규모 이전을 하려 했으나, 그 협상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크루즈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따라서 우린 모든 걸 포기하고 이 자리에서 죽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으랴.
“협회장님!!”
헌터는 꽉 잡은 협회장의 멱살을 흔들었다.
그가 잡은 멱살은 한 줄기 희망의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 기댈 수 있는 것은 협회장의 대답 한마디.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안…… 하네…….”
겨우 뗀 입에선 절망적인 답이 나왔다.
“미안하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여긴 셀포스라고요! 지금…… 여기까지 도망쳐 왔는데 어디까지 또 도망쳐야 한단 말입니까! 도망칠 곳이라곤 이제 셀포스 폭포밖에 없어요! 메테오에 맞아 죽거나 셀포스 폭포로 뛰어내려 죽거나! 어느 쪽이건 죽는다고요!”
“…….”
셀포스 도시에 있는 셀포스 폭포.
그들이 현재 위치한 곳이다.
이 크루즈 사태가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아이슬란드의 셀포스 폭포는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폭포’라는 이름으로 아이슬란드의 자랑 관광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메테오가 그 폭포를 망가트리고 있으며, 일반인들 다수는 폭포로 떨어져 죽는, 피의 폭포가 되고 말았다.
아름다움 따위는 없다.
저승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문이 되고 만 폭포였다.
협회장 자신 역시도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서 온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시작된 크루즈의 공격.
그리고 그 포화의 중심에 있던 자신이.
목숨을 건진 것도 천운이라고 여길 수 있었는데, 그것을 넘어 레이캬비크와 약 50km가 떨어진 이곳 셀포스까지 도망친 것도 기적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이제 끝인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죽음을 반기는 듯한 셀포스 폭포.
이제 정말 도망칠 곳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정면을 돌파하려면 포위한 크루즈들을 헤치고 나가야 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다시 후방으로 도망치기엔, 셀포스 폭포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상황이었다.
“미안하네…….”
모든 게 다 끝이 났다고 여긴 하들도르 협회장.
자신의 멱살을 부여잡은 헌터의 손을 토닥이며 답했다.
“무능한 협회장 밑에서…… 고생 많았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말이 고작 한마디 정도인데, 어떤 말이 좋을까.
그것을 고민하던 중에 나온 말이었다.
“지금…… 모든 걸 포기하겠단 말입니까……?! 지원은…….”
“지원이 시작되기 전에 공격받고 말았어. 지원은…… 올 수 없을 걸세……. 너무 늦었어.”
“그럼 그 뜻은…….”
그제야 헌터도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고, 협회장의 멱살을 부여잡았던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왜 이제야 말을 하는 겁니까 그런 중요한 사실을.”
“미안……하네.”
절망적인 답에 헌터 역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멱살을 잡은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향해 떨어지는 메테오.
메테오는 점점 더 큰 크기로 변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가, 자신과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메테오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그들의 피부를 따갑게 만들었다.
하들도르 협회장은 눈을 겸허히 감았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질 않길…….’
비록 아이슬란드는 여기에서 끝이지만, 다른 국가들은 힘을 합쳐 크루즈를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는 순간.
“음……?”
이상했다.
메테오가 떨어지는 속도는 분명 눈으로 직접 봤기에, 가늠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가 점점 더 크게 변했을 때.
그 상태라면 자신들의 몸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기엔 몇 초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미 몇 초가 지났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메테오의 열기로 피부가 따가운 느낌만 고스란히 살아 있을 때.
휘이이잉-!
어디선가 강풍이 불어왔다.
강풍이 피부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기분이었다.
메테오의 열기 때문에 화상 직전으로 변한 피부를 식히는 것처럼.
그런 따스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었다.
“협회장님!! 저기 보세요!! 저거 뭡니까?!”
그러던 중, 들린 목소리.
자신의 멱살을 한껏 부여잡았던 그 헌터의 목소리가 변했다.
이전까지는 자신을 정말 죽일 듯, 원망하던 목소리를 내던 그 헌터가.
지금은 무엇을 봤는지 상당히 격양된 목소리였다.
그제야 협회장은 눈을 떴다.
자신과 상당히 가까이 있는 메테오.
메테오는 이미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휘이이잉-!
그리고 강풍이 다시 불었을 때.
퍼석-!
그 거대한 메테오가 두 동강이 나면서 소멸했다.
동그란 메테오가 두 동강이 나며, 소멸하자 그사이에 모습을 드러낸 날개가 달린 무언가.
마치 알에서 부화한 한 마리의 새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정체와 두 눈을 똑똑히 마주쳤다.
한국의 윤도원.
그가 메테오 사이에서 태어난 것처럼, 자신과 마주하던 중이었다.
알 수 없는 날개를 간직한 채로.
그리고 한 손에는 요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검 한 자루를 든 채다.
전설 속에서나 전해지는 어떤 기사를 보는 듯했다.
“어떻게……?”
협회장은 살았다는 안도보다, 믿을 수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온 것도 그러하며.
지금 윤도원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저 현실감이 아직 들지 않아 믿기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윤도원은 뭐라 말을 하며 자신에게 손을 건넸다.
하지만 한국어이기에, 협회장은 그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협회장님.”
[휴우…….]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메테오 하나가 무언가를 노리듯이 낙하하는 걸 목격했고, 그 아래 모니터 화면에서나 보던 아이슬란드 협회장이 있는 걸 확인한 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가까스로, 협회장과 그의 바로 앞에 있던 헌터 한 명을 살릴 수 있었다.
[휴우……]
흑염룡 역시, 자신의 일인 것처럼, 협회장을 가까스로 살렸다는 것에 안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 협회장, 하들도르의 반응이 이상했다.
입만 멍하니 벌리고, 내 손을 잡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어떤 답을 하지도 않는 중이었다.
“협회장님? 왜 그러세요?”
마치, 시간이 멈춰 그대로 굳은 사람만 같았다.
“아…….”
하지만 난 그 이유를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일단 죽다 살아났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한국어를 모른다.
“로버트 형?”
“알아, 내가 나서지.”
정령이 없는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선 로버트 윤의 유창한 외국어가 필요했다.
“협회장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아…… 어, 어떻게…….”
로버트 윤이 영어로 말하자, 그제야 하들도르 협회장은 입을 어렵게 뗐다.
하들도르 협회장은 영어도 가능한 사람이었으니까.
“저희가 구하러 왔습니다. 안심하세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단 말이죠?”
“윤도원. 저 친구의 능력 덕분이죠.”
로버트 윤이 나를 슬쩍 눈빛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하들도르 협회장은 물론, 그와 함께 있는 헌터 한 명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확정적으로 살았다는 확신이 든 눈빛이다.
난 그들에게 말했다.
“일단 할 얘기가 조금 있지만,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진 않네요.”
우린 이제 크루즈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검게 탄 피부에 용암이 흐르는 듯한 숯검댕이들.
그 크루즈와 실제로 마주하게 된 순간이다.
“이것들부터 처리하고 얘기 나누시죠.”
이제 난 오문성에게 말했다.
“자, 오문성 길드장님. 그 실력 제대로 한 번 보여주시죠. 진짜 저희들의 적이니까.”
“간만에 땀 좀 내겠구먼.”
오문성은 의기양양하게 답하며, 몇 발자국을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꺼냈다.
피유우우웅-!
피유우웅-!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를 요격하듯 쏟아지는 보랏빛의 혜성.
오문성의 능력은 시작되었다.
“로버트 형, 이참에 형은 아이슬란드 헌터들 지휘해서. 일반인들과 헌터들 한곳에 모으시죠. 그래야 우리가 집중하기 편하니까.”
이미 많은 자의 희생이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희생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끝까지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히로시, 너도 로버트 형 도와. 아무래도 사람들 살리기엔 네 능력이 제격이잖아?”
히로시의 능력, 신속.
크루즈를 상대할 수 없는 능력이라 해도, 인명 구조에는 탁월한 능력이다.
“옙!”
“그리고 네 능력 좀 빌리마, 히로시.”
“네? 빌린다뇨? 제가 뭘 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
나 역시 히로시의 능력 신속을 만물을 이용해, 그대로 따라 하며 내 몸에 적용했다.
후웅-! 후웅-!
검을 풍차처럼 돌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