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베이스캠프 (1)
나와 히로시.
로버트 윤, 그리고 오문성.
우리 넷은 베르겐의 항구 앞에 섰다.
“어떡할 거야?”
로버트 윤이 물었다.
반격하기 위해 다 같이 결의를 다지며 호기롭게 나왔으나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것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페로 제도를 거친 다음 아이슬란드로 입성하는 게 좋아 보이는데.”
로버트 윤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바로 공격 방향이다.
로버트 윤이 말한 것처럼, 공격 받고 있는 페로 제도를 정리하고 갈 것이냐, 어쩔 것이냐.
이것을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 이상하게 왜 나는 이번에 생각이 다를까.”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로버트 윤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닌, 조금 다른 생각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래? 네 생각은 뭔데?”
“아이슬란드로 직행.”
“……너무 위험하지 않나? 가는 길에 요격이라도 당하면.”
“그럴 걱정 없잖아? 이게 있는데.”
펄럭-!
걱정스러운 로버트 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곧장 날개의 가호를 꺼냈다.
물론, 그 표면은 단단함의 상징인 비늘의 가호를 덮은 채다.
“그건 너만 단단해지는 거잖아?”
하지만 로버트 윤은 냉정하게 답했다.
약간은 불신의 성향을 띄는 답이기도 했다.
“아닌데.”
드래곤이 보여준 기억을 제대로 보질 못했으니, 저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난 날개를 활짝 펴서 남은 세 명의 몸을 감쌌다.
“이런 식으로. 1차 방어 능력은 염력, 그리고 2차 방어 능력은 날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차피 나랑 붙어 있어야 하는데.”
게다가 오문성의 능력까지도 있다.
떨어지는 메테오들은 내 염력과 오문성의 메테오로 어느 정도의 방어가 가능한 상태.
혹시 놓친다고 하더라도 날개의 가호와 비늘의 가호까지 있으니 아군이 메테오에 당할 위험성은 상당히 줄어든다.
“어때? 난 이런 거 믿고 그냥 아이슬란드로 곧장 가고 싶은데.”
페로 제도까지 거칠 이유는 없다.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둘 다 크기가 상당히 좁은 나라.
그리고 페로 제도를 거치면서 크루즈들에게 드래곤의 가호를 받은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보다.
아이슬란드로 직행한 뒤에 보여주는 편이 훨씬 앞으로의 상황에서도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슬란드로 정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말해 줄 수 있나?”
로버트 윤은 내가 단순히 아이슬란드로 정한 이유가.
그곳에 있는 협회장이나 다른 헌터, 일반인을 구하려는 목적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듯했다.
페로 제도에도 구해야 할 일반인은 있는데 굳이 페로 제도를 제치고 아이슬란드로 직행한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다른 궁극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당연하지. 아이슬란드에다가 정화석을 만든다.”
“정화석……이라.”
정화석이 만드는 프리즘.
정화석만 제대로 만들어두면 아이슬란드에 군림하는 크루즈들은 무력화하거나 아예 소멸시킬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정화석이 아이슬란드에 있다면.
미국까지 퍼진 크루즈들을 다시 아이슬란드로 불러 모을 수 있다.
따라서 정화석만 아이슬란드에 제대로 꽂아 넣었다면, 이제 우리가 세계 곳곳을 움직이지 않고, 다가올 파상 공세를 막을 준비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좋은 선택이야. 그리고 내가 정화석이 되어 프리즘을 발생시켰을 때, 프리즘에 닿은 크루즈의 게이트가 있다면. 그 게이트도 정화가 되어 우리의 게이트가 된다.]
드래곤이 설명을 덧붙였다.
“오호?”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정화석의 프리즘에 닿으면 말 그대로 정화가 되어, 우리의 게이트가 된다.
물론, 그 게이트는 안에 초월석도 몬스터도 없는 정말 텅 빈 게이트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게이트가 필요한 이유.
바로 활류 때문이다.
이제 아이슬란드에 정화석을 박아 넣게 되면 우린 정화석이 된 드래곤을 지키기 위해 아이슬란드에 발이 묶이는 상황.
정화석이 내뿜는 프리즘의 영역 안에 있는 게이트이기에, 다시 크루즈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시작되는 프리즘의 영역을 전 세계적으로 넓히기 위해선 세계 곳곳으로 퍼진 효력을 다 한 초월석도 필요한 상태.
그 초월석을 아이슬란드로 공수하기 위해서라도.
활류 전용 게이트가 필요한 참이었다.
아이슬란드가 우리의 베이스 캠프가 되고.
그 아이슬란드를 시작으로 점차, 영역을 넓히면 됐다.
나아가 미국까지 탈환한다면.
미국이 가지고 있던 초월석까지 전부 회수하여 프리즘의 영역을 넓힐 수 있으니, 아마 그 정도로의 초월석을 사용하게 되면 정말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의 프리즘이 생성될 수도 있다.
“들었지?”
로버트 윤에게 말한 것이다.
드래곤의 말 덕분에 우린 더더욱 아이슬란드에 가야 할 이유가 생긴 참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라면. 아이슬란드 직행이 정답이지.”
로버트 윤도 이제 걱정하지 않고, 내 의견에 전적으로 따랐다.
다른 사람의 반응도 함께 살폈다.
히로시, 오문성.
둘 다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아이슬란드로 가자고.”
“그런데 형. 어떻게 갈 거예요? 평범하게 배 타고 갈 건가……?”
히로시가 물었다.
이젠 아이슬란드로 가는 방법이 문제였다.
“아니지. 배 타고 갈 순 없지.”
나 역시도 그 방법은 절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이미 이 바다는 크루즈의 전용 게이트로 깔려 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지뢰밭 위를 걷는 심정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너무 위험하다.
“워프 능력 같은 게 있으면 참 좋겠지만……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워프가 가능한 사람…… 없겠죠?”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오는 히로시의 한마디.
그 순간, 내 생각이 번뜩였다.
“여기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아이슬란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아이슬란드 외곽 기준이라면 대략 1,000km 정도. 그리고 중앙이라면 1,200km 정도 돼.”
세계 지리에 해박한 로버트 윤이 답했다.
“그거밖에 안 된다니.”
고작 1,000km.
물론, 1,000km가 절대 짧은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의 경우엔 무려 9,600km.
그때를 생각하면 상당히 만만하고 짧은 거리다.
“혹시, 아이슬란드 협회가 있는 위치가 어디죠?”
“당연히 수도에 있지. 보통 협회는 전부 수도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수도 이름이 뭐냐고요.”
그 순간 로버트 윤은 나를 조금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어떻게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였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로버트 윤이야 평소 세계를 왕래했으니, 웬만한 나라의 수도는 다 알고 있겠지만.
난 다르다.
소위 말하는 유명한 나라의 수도 정도만 알지, 아이슬란드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의 중앙에 있던가?”
“아니, 아이슬란드 국토 기준, 좌측 외곽.”
“여기 베르겐을 기준으로 거기까지의 거리는요? 그것까지 알아요?”
“차이 크게 없어. 대략 1,400km 정도?”
처음 로버트 윤이 말했던 외곽이란 건 베르겐에서 가장 가까운 외곽.
즉, 아이슬란드의 우측 외곽이다.
우측 외곽과 좌측 외각까지 가는데 고작 400km.
대략 강원도에서 부산 가는 거리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한데?”
난 이제 자신감이 붙었다.
최대 거리 1,400km.
이 정도면 워프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볼 만하다니 뭐가?”
로버트 윤은 내 자신감의 근원이 궁금한 듯하다.
“고작 1,400km면 충분히 워프 시도할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 중인데요.”
“저기…… 고작이 아닌데? 혹시 정다훈이라도 데리고 올 생각인 건가?”
우리가 아는 워프 최고 실력자는 정다훈.
워프 능력자 중 가장 먼 거리를 워프할 수 있으며, 정다혜처럼 제약도 없다.
정다혜의 경우엔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는 곳만 워프가 가능했지만, 정다훈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으로 본 곳도 워프할 수 있었다는 특별한 점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은 다르다.
“아니요. 어느 세월에 다훈이까지 데리고 올까요. 거기에만 며칠 소요되고, 그 사이 아이슬란드는 탈환 불가능한 수준까지 될 텐데.”
“그럼 도대체……?”
“제가 직접 합니다. 제가 가진 능력 만물. 그걸 이용해서 정다훈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한 채로 따라 할 생각입니다. 혹시 아이슬란드 협회 사진 같은 거 없어요?”
이미 워프 능력은 따라 한 적이 있다.
그때보다 난이도가 조금은 더 높겠지만,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정다훈이 가진 워프.
그리고 시오스의 정령들이 대륙 이동으로 사용했던 활류.
이 두 가지 능력이 가진 성격을 적당히 운용해서, 아이슬란드로 곧장 날아갈 생각이다.
여전히 로버트 윤은 이게 정말 가능한 걸까, 하는 반응이었다.
“빨리요. 가지고 있어요, 없어요?”
“있기야 하지…….”
그렇게 그는 반신반의하면서 아이슬란드 협회 건물의 사진을 보여줬다.
난 곧장 아이슬란드의 협회 건물은 물론.
주변 풍경을 전부 입력하듯 눈에 담았다.
이제 이곳으로 워프할 거다.
내 만류를 이용해.
만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으니, 못 만들 건 절대 없다는 생각으로.
“좋아.”
그렇게 로버트 윤이 보여준 사진을 전부 눈에 담은 뒤.
곧장 만류를 이용해 워프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로버트 윤이 보여준 사진을 계속 기억하며, 그곳으로 가는 길을 만든다.
이 생각으로 계속 집중하던 때.
우리 앞에 포털이 열렸다.
“뭐야, 된 건가?!”
히로시가 가장 격한 반응을 보였다.
“말도 안 돼. 1,000km나 떨어진 곳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이게 가능할 수가 있나…….”
로버트 윤은 부정했다.
일단 포털을 만들긴 했으나, 나 역시도 이게 제대로 된 포털인지는 모른다.
혹시 이상한 곳으로 떨어질 위험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확인해 보고 옵니다.”
난 그 말만 남기며 먼저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상한 곳에 떨어진다고 하면 바다 한복판일 것.
게다가 그 바다는 크루즈의 게이트가 득실거리는 지뢰밭이다.
그런 곳에서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나밖에 없다.
그렇게 난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꿀꺽.
연신 자신감을 보였어도, 긴장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
포털을 통과한 직후.
“…….”
[…….]
[생각 외로 처참하군.]
나와 흑염룡은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고, 드래곤은 짧은 한마디만 남겼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로의 워프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레이캬비크의 협회 건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난 상태이며, 건물을 휘감은 불길은 여전히 타오르는 중.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협회 건물을 괴롭히던 중이었다.
피이이이잉-!
그리고 저 멀리서 메테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슬란드의 헌터들이 아직까지도 크루즈와 대항하는 표시라고 여겼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겠어.”
난 다시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로버트 윤, 히로시, 오문성.
이 셋을 데리고 아이슬란드부터의 탈환.
그 발걸음이 시작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