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정화석 (2)
즉시 시작된 드래곤의 가호 전수.
비늘, 날개, 발톱, 정신.
비늘은 이미 내 몸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남은 3개의 가호인 날개, 발톱, 정신이 순차적으로 전수되기 시작했다.
펄럭-!
날개의 가호가 무사히 전수됐는지, 내 등에는 드래곤의 날개가 펼쳐졌다.
“오호……?”
날개가 펼쳐진 순간, 곧장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날개가 생겼다는 이유만이 아닌,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부력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발톱의 가호가 전수되기 시작했는지, 손가락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인간 손가락에 달린 손톱이, 정말 드래곤의 손톱처럼 날카롭고 두껍게 변했다.
“이건 조금 징그러운데……?”
인간의 몸이 일부분 드래곤처럼 변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발톱의 가호는 마치 게임에서나 나오는 어떤 보스 몬스터처럼 변하는 것 같았다.
더는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기분.
그다지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이윽고, 드래곤의 정신이 전수되기 시작했을 땐.
삐잉-!
이명이 나를 덮쳐오며 지끈지끈한 두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끄윽……!”
순식간에 난 이마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형, 괜찮아요?!”
갑작스레 내가 이상증세를 보이자, 히로시가 놀라며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그의 정령 오리가미가 그를 막아섰다.
[놔둬. 전수 중에 건들면 안 돼. 그리고 버텨야 하는 거고.]
오리가미도 드래곤의 마지막 가호인 정신의 가호를 전수한다는 게 어떤 고통을 동반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직접 전수를 받아본 적은 없어도, 정령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현상이기에 저런 침착한 모습을 보이겠지.
그렇게 고통에 신음하길 약 10분가량.
내게 있어선 정말 지옥의 10분과 다름이 없었다.
[3개의 가호를 한 번에 전수한 일은 여태껏 없었는데, 용케도 버텼구나. 수행자여.]
드디어 가호의 전수는 끝이 났다.
드래곤은 기특한 목소리로 나를 격려했지만, 문제는 내 상태다.
“끄윽…….”
테이블에 그대로 엎어진 채,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내 상태는 몸이 극도로 힘든 게 아니다.
눈을 뜨고 있고, 사물을 보고 있지만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귀를 통해 소리가 들리지만, 정확히 어떤 소리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잠시 상실되었다고 할까?
아주 비슷한 느낌으로는.
전날 엄청난 과음을 한 뒤에 약 1시간 정도만 자고 강제로 일어나 일을 하는 느낌이다.
그 상태로 일을 한다고 하면, 제정신을 유지한 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이 움직이고는 있으나 정확히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의 몸이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생각 없이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그런 상태.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그렇게 당분간은 테이블에 엎어진 채로 회복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 내 몸을 괴롭힌 이질적인 느낌이 사라졌을 때, 그제야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윤도원, 괜찮아?]
가장 먼저 물은 것은 흑염룡.
상당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다.
“일단은?”
[일단은이 뭐야. 괜찮으면 괜찮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러니까 일단은 괜찮다고. 그런데…… 제대로 전수된 거 맞나?”
전수 과정에서, 날개도 생기고 드래곤의 발톱으로도 변한 것을 봤기에 적어도 2개의 가호는 확실히 내게 들어왔단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가호라는 정신의 가호.
이것이 제대로 전수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변화가 없기에 의아할 때.
[무사히 된 거다. 그 증거로.]
드래곤이 답한 뒤였다.
무언가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환영? 주마등? 그런 비슷한 것이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내 눈에만 보이는 것으로 보였다.
“드래곤…… 이거 네가 보여주는 건가?”
[그렇다.]
드래곤이 보여준 장면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을 가진 푸르른 초원이 불에 타며, 환경을 파괴시킬 작정이라도 하는 듯이 메테오가 다발로 떨어지는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메테오를 피하는 데 급급한 정령들의 모습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정령들 중.
내가 익히 아는 얼굴이 있었다.
바로 흑염룡.
지금의 흑염룡과 비교하면 조금 더 어린 듯한 모습을 가진 흑염룡이었다.
“이건…….”
[최초로 크루즈가 우리를 침략했을 때의 일이다. 나도 직접 봤던 것이기에 너에게 내 기억을 공유했을 뿐이야.]
“그럼 정신의 가호라는 게……?”
[내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기본적인 효과.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정신의 가호가 마지막 가호인 건 아니다.]
“정확히 설명 좀 해 봐.”
나도 이참에 정신의 가호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날개, 발톱의 가호의 경우엔 비늘의 가호와 똑같이 그저 내 몸을 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전부로 보였지만.
외관상으로 뚜렷한 변화가 나오지 않는 정신의 가호 같은 경우엔 그 활용법을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내 기억을 조금 더 살펴라.]
드래곤은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자신이 간직한 기억을 더 보여줬다.
메테오가 시오스의 세상을 덮칠 때.
메테오에 맞아 그대로 형체도 없이 산화한 정령들이 나오자, 드래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는 정령들이 죽지 않게 특단의 대책을 세우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드래곤이 취한 움직임은 바로.
거대한 자신의 날개로 둥지를 트듯, 정령들을 자신의 몸 안으로 대피시킨 뒤, 날개로 감싸 메테오로부터 보호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드래곤의 날개 표면은 내가 비늘의 가호를 사용한 것처럼, 단단하게 변한 뒤였다.
“날개의 가호는…… 저렇게 아군을 지키는 용도로 사용하란 건가?”
[나는 그렇게 활용했다. 그렇다고 너도 그렇게 사용하라는 건 아니야. 다시 말하지만, 저 당시는 우리도 크루즈에게 최초로 공격을 받은 날. 크루즈에 대해 파악한 것이 부족했기에 저런 식으로 한 것이지.]
어쨌든, 확실한 건 날개의 가호와 비늘의 가호를 조합하게 되면 아군도 함께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래곤의 머리로 향해 메테오 하나가 날아왔다.
지금 내 시점은 드래곤의 1인칭 시점처럼, 드래곤과 시점까지도 공유한 상태.
눈으로 보이는 메테오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는 것은,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고속낙하하는 메테오가 나타났단 것이었다.
드래곤은 날아오는 메테오를 그대로 자신의 발톱을 이용해 두 동강을 냈다.
[이 당시엔 우리가 염력이란 능력을 만들지 않은 상태다. 그렇기에 쏟아지는 메테오는 내가 직접 막아주거나 저렇게 중간에서 요격했지.]
드래곤의 설명이다.
염력이 없던 당시였기에 드래곤이 정령 전부를 위해 움직여야 했던, 힘든 싸움이었다.
그리고 드래곤의 기억 공유는 잠시 끊겼다.
“뭐야……? 갑자기 왜 끊겨?”
혹시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이 드래곤에게도 무리가 되는 일은 아닐까?
그래서 잘 보고 있던 드래곤의 기억이 갑자기 끊어지는 불상사가 나오는 게 아닐까?
이런 걱정으로 다급하게 물었지만.
[아니다. 다른 기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드래곤이 내게 보여줬던 기억은 크루즈와 최초로 맞닥뜨린 때.
그리고 기억은 다시 시작됐다.
여전히 푸르른 초원에 메테오가 떨어지는 중이었지만, 적어도 직전에 봤던 기억과는 완벽한 차별점이 있었다.
바로 정령들.
정령들은 메테오를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지 않고, 이젠 능숙하게 자신들이 가진 날개를 이용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피했다.
“크루즈와…… 전쟁이 어느 정도 지속된 이후의 기억인가?”
[그렇다.]
정령의 움직임만 봐도 메테오를 더는 겁내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피하는 것이 그랬다.
이것이 나타내는 뜻은 단 하나.
시오스의 정령들은 이제 메테오에 익숙해졌다는 것.
그것만 놓고 봐도 이미 정들은 메테오가 익숙해질 정도로 꽤 긴 시간이 지났다고 봐야 했다.
그러던 중.
드래곤의 시야에 검은색으로 된 거대한 검이 보였다.
검날이 상당히 특이했다.
까칠까칠한 멧돼지의 가죽?
아니면 밤송이? 혹은 해산물인 성게?
그런 특이한 칼날을 가진 검.
일반적으로 검이라고 한다면, 단면 혹은 양면이 날카로운 검날이 있기 마련인데, 저 검은 뾰족하며 길게 뻗은 송곳들이 뭉쳤다고 보는 게 맞았다.
게다가 검은 누군가가 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크루즈들의 메테오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며, 정령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검이…… 날아다녀……?”
마치 우리 인간들의 드론처럼.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듯한 검이었다.
절대 기계처럼 둔탁한 움직임이 아니다.
마치 검 자체가 살아있는 듯이, 허공을 날다가 갑자기 멈추곤 하고.
때론 곡예라도 부리듯, 허공에서 이리저리 원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그러던 중.
-뭐지……?
드래곤의 기억 속에 있는 어느 정령의 이마에 알 수 없는 표식이 새겨졌다.
정령이 직접 자신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을 본 게 아니다.
표식이 생기면서 이마가 가렵거나 하는 느낌이 든 모양이다.
연신 자신의 이마를 긁으며.
-이상하네, 이마에 뭐가 있는 것 같아.
그런 말을 중얼거렸을 때.
허공에서 날아다니던 정체 불명의 검이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 검날 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표식이 새겨진 정령을 향해 겨눴을 때.
-아……?
정령은 무언가 불안함을 감지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검은 그대로 표식이 새겨진 정령을 향해 낙하한 뒤.
푸욱!
-끄아아악!!
정령을 꼬치로 만들 듯, 정령의 몸을 관통하며 그대로 땅에 박혔다.
드래곤의 기억 속에 있는 정령의 죽음이었다.
[더 봐야 해.]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닌 듯했다.
정령의 몸이 검에 의해 땅에 눕혀졌을 때.
콰아아앙-!
검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며, 찔린 정령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뭐야?”
[저것이 바로 크루즈의 대장, 벨로스가 가진 검이다. 네가 상대해야 할 녀석.]
벨로스의 무기였다.
그리고 기억 속 드래곤은 이제 서서히 다가오는 지옥의 군단처럼 보이는 크루즈 무리를 쳐다봤다.
불에 타 죽은 시체와 같이 생긴 크루즈들.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지만, 다리와 팔의 길이가 비율적으로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길게 늘어진 팔로 인해서 그들의 손가락이 땅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키는 전부 제각각이었다.
평균적인 사람처럼 170cm 정도의 키를 가진 크루즈가 있는가 하면, 3m가 넘는 키를 가진 크루즈도 있었다.
하지만 생긴 게 전부 똑같다.
전부 피부 표면은 숯덩이와 같았으며, 그 사이에 용암이 흐르는 듯한 모습을 간직한 채다.
그러던 중, 폭발을 일으킨 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유히 허공에 떴고, 천천히 날아 특정 크루즈 앞에 섰다.
[저 녀석이 바로 벨로스다.]
드래곤이 알려줬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벨로스를 구분하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거야?”
그렇다, 벨로스까지 다른 크루즈와 똑같이 생겼다.
따라서 벨로스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검이 누군가에 향하느냐.
오직 그것만이 구별법으로 보였다.
[우리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 그리고 정신의 가호를 준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겠다. 나로서는 벨로스를 상대할 수 없는 이유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