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그을린 대지와 하늘 (3)
“오늘 중으로는 끝날 겁니다.”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끝나겠죠?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이 있는 반면, 낮은 지역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죠.”
“이주 작전이 먼저 끝난 워프 능력자 헌터들. 전부 베르겐으로 집결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워프 능력의 헌터들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미리 물어도 될까요?”
“간단합니다. 징검다리 형식으로 이어서 페로 제도는 물론, 아이슬란드까지 침입한 뒤, 구조할 수 있는 사람 전부를 구조할 생각입니다.”
“징검다리 형식이라면…….”
워프 능력자들마다 워프를 할 수 있는 거리가 다르단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게다가 워프를 하기 위해선 제약이 있는 헌터도 더러 있기 마련.
그런 헌터들을 전부 모아, 자신이 워프로 연결할 수 있는 최대거리까지 연결한 뒤.
또 다른 헌터가 그 길을 안전한 곳까지 연결하는 방식을 할 생각이다.
그런 방식을 설명하자, 페르 협회장은 완벽히 이해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군요.”
“어떤 문제죠?”
“가까운 페로 제도까지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노르웨이가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무리도 아니다.
바로 코앞에 있는 페로 제도도 크루즈의 영역에 들어간 상황.
언제건 노르웨이에도 메테오가 떨어질 수 있는 불안함이 있기에 영원히 안전할 수 없단 생각이 든 모양이다.
“협회장님, 제가 노르웨이로 왔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예? 갑자기 조금은 어려운 질문인 것 같군요.”
“노르웨이 하늘에 메테오가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한은요.”
“…….”
너무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서일까.
페르 협회장은 오히려 더욱 궁금해하는 눈초리다.
“제 능력 중에는 염력이라는 게 있어요. 저에게만 있는 유일한 헌터의 능력이죠.”
“염력……. 물체를 들어 올리는 걸 말하는 겁니까?”
“뭐, 비슷합니다. 단순히 들어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멈추게 하거나 부수는 것도 가능하죠. 염력은 보이지 않는 힘을 이용한 거니까요.”
“그것과 노르웨이로 온 것이 연관이 있다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군요. 어떤 의미인지.”
“크루즈가 나타나게 되면 다발로 떨어지는 메테오가 가장 걸림돌이죠. 헌터들에겐.”
“그렇습니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어도, 상상해 보면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제 염력이 바로 그 메테오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더라고요. 시오스들 말로는.”
그제야 페르 협회장의 표정이 변했다.
메테오를 무력화시킬 수 있단 뜻은.
아무런 제약 없이 크루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 것과 마찬가지며.
나아가 나와 함께 있는 한, 최소한 메테오로부터의 안전은 보장이 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런 능력을 가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헌터라고만 알려졌으니…….”
“굳이 알릴 필요 없으니까요. 그럼, 그렇게 조치해 주시죠. 전 저희끼리 작전 좀 짜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전 협회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저도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내가 조치해달란 것 이외에, 협회에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휴대폰 하나를 내게 건넸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로 연락하십시오.”
노르웨이 전용 휴대폰이었다.
“네. 그러죠.”
그렇게 페르 협회장이 다시 협회장으로 돌아간 뒤였다.
“자, 우린 우리끼리 머리 좀 굴려볼까?”
난 이제 로버트 윤과 히로시.
그리고 오문성을 불러 모았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바로 오문성의 능력.
그가 크루즈와 같은 유형의 능력을 가졌단 이유로 노르웨이까지 함께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였다.
“오문성 길드장님. 길드장님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데요.”
“내 능력은 이미 보여줬잖아?”
“능력의 정체 말고.”
“아~ 위력?”
역시, 이런 분야에선 말이 빨리 통해서 좋다.
“그렇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해 봐라, 이건가? 꼭 길드 가입 면접 보는 기분이군.”
“불쾌해도 어쩔 수 없어요. 상대는 헌터가 아니라 크루즈니까요.”
“그냥 해본 소리야. 자, 간만에 실력 좀 뽐내볼까? 안 그래도 정식 던전 사라진 뒤엔 몸이 근질거렸는데.”
의욕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며 그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바다를 마주 보며 선 상태.
그 상태로 내게 물었다.
“나 때문에 물고기들 죽는다고 해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
베르겐과 밀접한 바다를 향해 그의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겠단 뜻이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죽어 나갈 정도라고 한다면, 정말 무리를 해서라도 최대치로 능력을 꺼내겠다는 생각이다.
“별걱정을 다 하시네.”
“농담이지 뭘. 자, 꺼내 보자고!”
오문성의 기합과 함께.
슈우우우웅-!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난 곳은 바로 우리가 선 곳의 바로 위 하늘.
하늘에는 보랏빛의 유성 한줄기가 갑자기 나타났다.
“오호, 유성이라.”
메테오와 생김새만 다를 뿐.
그것이 낙하하는 과정은 정말 크루즈들의 메테오와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출몰한 유성 한줄기가 그대로 바다로 낙하한 순간.
콰아앙-!
작은 지진과 함께 고막이 아플 정도의 폭음이 일렁였다.
유성의 크기는 제법 크기까지 했다. 그 거대한 유성이 바다를 강타하자.
출렁-!
바닷물이 마치 장벽의 해일로 변하면서 우리를 덮치려 했다.
“꽤 요란하군.”
바닷물이 우리 몸을 덮치기 직전.
로버트 윤이 나서서 자신의 능력으로 바닷물을 완전히 제거한 뒤였다.
촤아아아-!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충격에 의해 해일처럼 변한 바닷물은 도시 일부를 적셨다.
팔딱-! 팔딱-!
바닷물에 있던 물고기가 어느 지붕 위로 올라간 채로 살고자 꼬리를 팔딱이는 것까지 보였다.
이것이 오문성이 레이드 한정, 국내 최강이란 명성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능력.
크루즈와 같은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레이드 한정 최고의 능력은 맞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부족했다.
오문성은 거대한 유성 하나만 떨어트렸지만, 상대는 오문성이 만든 거대한 유성을 눈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만드는 크루즈이기 때문이다.
“흐음…….”
내가 조금은 아쉬운 목소리를 낸 그때.
“이건 맛보기고. 진짜는 이거지.”
오문성은 기다렸단 듯이 자신의 능력을 전부 쏟아부었다.
“세상에…….”
히로시는 하늘을 보며 입이 떡 벌어졌고.
“인간의 탈을 쓴 크루즈라고 해도 믿겠군.”
로버트 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이제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봤을 때.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말이 필요 없다.
하늘이 보라색 물감으로 전부 칠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보라색은 전부 오문성이 만든 유성들.
영상에서 봤던, 미국이 공격받았을 때 떨어지던 메테오.
그것이 색깔만 보라색으로 바뀌어 노르웨이의 항구 도시 베르겐에 다발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콰과과과과광!
촤아아아-! 촤아-!
오문성이 만든 유성이 바다를 강타했을 때.
과장을 조금 보태면, 바다의 밑바닥이 잠시 보일 정도로 바닷물이 튀어 올랐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고요……?”
“조금 무리를 하긴 했지만, 할 수 있지!”
이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오문성의 몸에는 무리가 조금 간 듯하다.
능력을 잠시 선보였을 뿐인데,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그렇다는 뜻은 이 능력을 장기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충분히 내게 도움이 되는 수준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 하시죠. 이 정도면 충분해요.”
“후우~”
그제야 오문성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어때? 마음에 들었어?”
“훌륭해요.”
오문성의 입증은 이것으로 끝.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어떻게 크루즈에게 대응할 수 있는가를 논해야 했다.
***
우린 항구와 가까운 건물로 왔다.
이곳은 이제부터 임시 베이스 캠프와 같이 운용할 곳.
페르 협회장에게 연락하니, 항구와 최대한 가까운 건물을 지정해 줬고, 그곳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배려가 있었다.
본래 노르웨이 협회의 베르겐 지부로 사용한 건물이라고 했다.
아이슬란드가 공격받고, 페로 제도까지 그 공격 범위에 들어가면서 일부러 비워둔 곳이니, 작전 본부로 사용하기엔 딱 맞을 거라는 말과 함께였다.
실제로 회의 시설이나 기타 시설 등등.
본래 협회의 한 지부로 사용했던 곳이니, 필요한 것들은 전부 그대로 있었다.
우리 넷은 그렇게 회의실에 동그랗게 둘러앉은 뒤에 회의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회의보다는…… 바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오문성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크루즈와 맞설 순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아이슬란드, 미국, 그리고 페로 제도.
페로 제도와 가까운 영국도 곧 공격받을 위험이 있지만.
이렇게 조급한 상황이라고 해서 서두를 수도 없는 노릇.
아주 중요한 것 하나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와 오문성이 크루즈의 메테오에 대해선 내성이 생겼다고 한들, 크루즈와의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난 오문성을 바라보며 한마디만 남겼다.
“이제부터 저희는 정령들과 얘기를 해 봐야 합니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으니, 눈치껏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하긴, 난 정령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 편하게들 해.”
오문성에겐 양해를 구한 뒤.
곧장 흑염룡에게 물었다.
“흑염룡, 단순히 크루즈를 죽여서 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확실하게 크루즈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 뭐 없어?”
[무슨…… 뜻이야?]
“크루즈 때문에 우린 가지고 있던 게이트 전부를 없앴어. 크루즈가 그 게이트를 이용해 넘어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일로 인해서 우린 노르웨이에 발이 묶인 상황인데.”
우린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지만, 반대로 크루즈는 전용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크루즈가 이미 점령한 세 곳.
미국,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미국은 몰라도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우리가 다시 탈환한다고 해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크루즈의 전용 게이트는 이미 대서양 전체에 암세포처럼 퍼져있고, 그것을 이용해 다시 반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크루즈의 공격은 특정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닌,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내 몸은 하나.
내게 분신술이 있어 모든 나라에 내 분신을 배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곳 노르웨이에서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를 탈환한다고 해도.
우리가 미국으로 가는 사이에 크루즈들은 전용 게이트를 타고 아이슬란드를 다시 뺏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확실히 있어야 반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난 이런 상황들을 설명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그런데 답을 한 것은 흑염룡이 아닌, 드래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