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74화 (174/200)

§ 174화. 그을린 대지와 하늘 (2)

[넌 우리의 주적과 연결되어 있다.]

[넌 우리를 위해서 움직여야만 할 것이다.]

[넌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오직 우리를 위해서만 움직여야 한다.]

미국과 가까운 캐나다로 망명 온 매튜 협회장의 뇌리에 세뇌하듯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중앙 협회 별관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 상당히 유사했다.

지하실에 있던 게이트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린 뒤.

51구역 연구진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공격을 받았고, 사태를 막기 위해 급하게 호출한 중앙 협회의 헌터들까지 그대로 죽어 나갔다.

어디 그뿐이랴.

의문의 공격이 개시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미국 본토 2/3이 소실된 대참사로 이어진 공격이었다.

인간이 발명한 최악이자 최강의 무기인 핵폭탄을 다발로 폭격받아야만 가능한 수준으로 초토화된 후였다.

그런 지옥 속에서 매튜 협회장이 살아남았던 이유도.

바로 이 의문의 목소리였다.

크루즈의 목소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저들은 연신 자신에게 ‘주적과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을 하는 중이니.

그 주적이 정확히 누구를 칭하는지 몰랐다.

[넌 우리의 주적과 연결되어 있다.]

반복 재생을 틀어놓은 것처럼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목소리.

이에 정신이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도대체 주적 누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냐!”

답답함에 소리를 버럭 지른 직후.

[큭큭, 네 몸에서 시오스의 대정령과 접촉한 흔적을 발견했거든. 그 정령만 없애면. 우리는 시오스를 완벽하게 정복할 수 있어.]

그간 답변이라곤 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말했다.

“시오스의 대정령……?”

그리고 주적의 정체도 정확하게 파악한 순간이기도 했다.

시오스의 대정령이라 하면.

윤도원과 함께 있는 그 정령을 뜻하는 말.

즉, 자신은 윤도원과 접촉한 적이 있기에 크루즈가 일부러 그런 생지옥에서 목숨을 살려준 뜻이었다.

“하지만…… 연구진들도 윤도원과 접촉한 적이 있는데……?”

이미 죽어 버린 연구진들.

그들도 자신과 똑같이 윤도원과 접촉했다.

아마 단순 접촉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연구진 쪽이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윤도원과 접촉했다.

그런데도 그런 연구진은 죽고 자신만 살아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질 때.

[그 인간들과 달리 넌 정령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데?]

목소리가 비수를 찔렀다.

숨기고 싶었던 치부를 들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령에게 적대감을 가졌다.

그 말은 곧, 자신이 크루즈와 똑같이 정령을 화합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봤단 것이었다.

매튜 협회장은 이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냉정하게 놓고 판단하면, 지금 크루즈가 한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윤도원이 만들어 놓은 게이트를 한국에 있는 로버트 윤을 시켜 전부 정복하게 지시한 것 역시.

겉으로는 51구역에서 개발한 프로젝트 네이션만 제대로 가동되면 앞으로 게이트 걱정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는 미국인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업적을 세워 앞으로 중앙 협회 내에서 부동의 군림자로 자리 잡기 위한 사리사욕이었으니까.

그저 크루즈가 어떻게 이 마음을 읽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그걸…….”

[시오스에게 적대를 가진 인간의 몸은 특유의 기운을 뿜어내지. 그 기운과 우리의 힘이 만나면. 너 역시 우리의 힘 일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크루즈의 힘 일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직접 확인해 보던가.]

크루즈의 답이 끝난 직후.

매튜 협회장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벽에 걸린 작은 거울.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봤던 크루즈의 피부와 똑같이.

자신의 얼굴 일부분은 검게 그을린 상태로, 핏줄을 따라 흐르는 용암들.

정말 인간과 크루즈가 합쳐진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착각하지 마. 우리의 힘을 빌려준 건 어디까지나 시오스의 대정령, 린느와 가까이 접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 너를 살려주는 게 아니야. 우리의 힘을 받은 이상, 네 목숨은 우리가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거든.]

“그게 무슨…….”

[궁금한 듯하니 미리 살짝 보여주지. 이렇게 말이야.]

핏.

크루즈의 피부처럼 변한 자신의 얼굴에서, 아주 옅은 용암 줄기가 흘렀다.

“끄윽……! 끅!”

화끈함을 넘어 피부가 녹아내릴 것 같은 고통.

그와 동시에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한 것처럼 저릿저릿한 느낌까지 함께 들었다.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이란 고통은 전부 모아 놓은 듯했다.

이 고통에 매튜 협회장의 무릎은 자동적으로 꿇렸고, 크루즈의 피부처럼 변한 한쪽 얼굴을 감싸 쥐며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크흐윽……!”

[그러니 우리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어. 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해. 죽음을 벗어나게 해준 은혜에 그 정도로 보답해야지?]

이것이 크루즈가 매튜 협회장을 살려준 궁극적인 이유였다.

크루즈의 힘을 받은 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크루즈가 강제적으로 넣은 힘.

그리고 그 힘을 받은 탓에 자신의 목숨은 크루즈에게 있다는 사실에서 온 반항심.

그 반항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크루즈……. 사람 다루는 법을 모르는군……. 이렇게 목숨 가지고 협박한다고 능사가 아니야.”

[크큭, 그래? 이런 상황에서도 반항심을 보인다라? 뭐, 좋아. 괘씸하긴 하지만 재밌네. 인간들 사이의 먹이 사슬에서 나름 상류층에 속한 녀석답다고 할까?]

하지만 매튜 협회장의 반항심은 크루즈에게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않았다.

그저 하찮은 오락거리 정도로 취급되고 말았다.

“생각해 봐, 네가 목숨 잡고 휘어잡는다면. 결국, 너희가 원하는 일을 해도 어차피 난 죽을 목숨이라는 건데. 내가 어떻게 너희들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매튜 협회장이 반항심이 든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크루즈에게 목숨을 담보 잡혔다는 사실보단.

크루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도 어차피 죽을 것이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크하하하! 뭐야, 진짜 재밌는 인간이네?]

그 의도를 알아차린 크루즈 역시 폭소를 터트렸다.

마치 악마의 음흉한 미소로 들렸지만, 그런 건 매튜 협회장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지금 매튜 협회장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 수 있느냐 없느냐.

오직 이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크루즈가 한 말을 조목조목 따져 보면, 목숨을 겨우 건진 이유도 크루즈에게 아직 필요해서였을 뿐이다.

사냥개는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기 마련.

그것이 매튜 협회장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란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즉, 크루즈가 원하는 것을 얻은 순간.

자신도 이미 죽은 많은 사람처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난 너를 이용만 하다가 죽일 생각이란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목숨을 쥐고 협박한 거지?”

[아, 그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야? 난 또 뭐라고. 목숨 쥐고 협박해야 네가 말을 잘 들을 거 아냐?]

“…….”

크루즈가 적어도 인간을 다룰 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매튜 협회장의 오산이었다.

크루즈의 생각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목숨 쥐고 협박해야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것은, 생존 본능을 가진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럼…… 내게 크루즈의 힘을 일부분 주었다고 했는데, 정확히 무슨 힘을 준 거지?”

[우리의 아주 기본적인 힘. 이미 네가 있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봐서 이해하기 쉬울 거 같은데.]

“그러니까 뭐.”

[메테오. 너도 떨어트릴 수 있어. 시오스들은 그런 메테오에 약하더라고. 그러니까 그 능력을 이용해 시오스의 대정령, 린느를 만나라. 그것이 너에게 주어진 임무다.]

“메테……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까지 무기력하게 당한 이유.

하늘에서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메테오의 영향이 가장 컸다.

여태껏 그들이 겪었던 몬스터 종류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고, 전투 방식 역시 아무리 레이드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떨어지는 메테오를 피하면서 싸워야 했기에 속수무책이었다.

헌터들에게 재앙과 같았던 그 능력이.

오히려 크루즈에겐 아주 기본적인 능력이라니.

그리고 매튜 협회장도 자발적으로 떨어트릴 수 있단 사실에, 마치 자신이 신인류가 된 느낌이었다.

전형적으로 황홀한 힘에 취해 자신이 정녕 누구인지, 잊은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똑, 똑.

한창 크루즈에게 많은 정보를 얻었을 때.

매튜 협회장이 있는 방문에서 노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매튜 협회장은 등골이 서늘했다.

지금 자신의 얼굴 일부분은 크루즈처럼 변한 상태.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틀림없이 피곤한 의혹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벌떡 일어나 거울을 확인했을 때.

“……낙인은 아닌 모양이군.”

크루즈의 피부처럼 변했던 자신의 얼굴이.

말끔한 인간의 얼굴로 돌아왔다.

크루즈의 힘을 받으며 절대 지울 수 없는 낙인이라고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거라면. 가능하지.”

그리고 그는 크루즈에게 수긍했다.

크루즈와 협력하겠노라고.

일각에선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비난하겠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

어차피 지금 자신의 목숨은 크루즈 손에 쥐어진 상태.

자신의 목숨을 되찾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최면했다.

표정이 싹 바뀐 매튜 협회장은 이제 방문을 향해 물었다.

“누구지?”

“매튜 중앙 협회장, 캐나다 협회장입니다.”

캐나다 협회장이 친히 그를 찾아온 것이다.

“답변을 들을 시간인가 보군.”

미국을 도와달라고 요청을 한 상태.

그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중앙 의회 회원국인 캐나다 협회장이 직접 찾아왔단 사실을 쉽게 유추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크루즈의 생각을 알았으니, 내 목적은. 한국에서 윤도원을 다시 만나는 것.’

그는 즉석에서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

노르웨이의 페르 협회장 능력과.

성난 황소처럼 달린 스포츠카 덕분에.

400km가 넘는 거리를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완전히 주행한 뒤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베르겐의 한 항구.

항구도시 베르겐의 풍경은 어떤 명화 속의 배경처럼 아름다웠지만, 계단식으로 세워진 건물들에서는 초라함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본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집이었겠지만.

노르웨이와 가까운 페로 제도가 공격을 받으며, 노르웨이 외곽 도시들.

즉, 바다와 밀접한 항구도시의 거주자들을 전부 대피시켰으니, 순식간에 도시엔 쓸쓸함이 남은 것이다.

“저 멀리 보시면. 이상하죠?”

페르 협회장이 지평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가니.

확실히 정상적인 하늘로 보이지 않았다.

검게 그을린 하늘. 그 속에 있는 용암 줄기와 같이 보이는 얇은 선.

하늘조차도 크루즈의 피부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그을린 하늘은 아주 천천히, 이곳 베르겐으로 넘어오는 중이란 게 눈에 보였다.

하늘을 너머 대지까지 그을리게 할 작정으로.

“노르웨이 일반인의 이주 작전. 얼마나 더 걸립니까?”

나도 본격적으로 크루즈에게 대항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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