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72화 (172/200)

§ 172화. 크루즈와의 전쟁 (4)

“벨로스는…… 아니지?”

정말 설마 싶었다.

다른 크루즈도 아니고 크루즈의 대장이라 불리는 벨로스의 몸에 직접 들어가는 강수를 놨을 리가…….

[그러니 내가 벨로스만큼은 잘 알고 있지 않겠어?]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흑염룡의 어머니.

도로시가 직접 희생하며 크루즈의 몸에 들어가기 적합한 크루즈는 벨로스밖에 없다.

아주 중요하고 강한 크루즈에게 들어가야 했으니까.

하지만 하필이면 그게 벨로스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아무튼, 우리 엄마가 벨로스 몸에 들어간 뒤로 크루즈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거든.]

“그 변화라 하면…….”

[응, 그때부터 더스티가 생겨났어. 우리 엄마와 닮은 능력을 가진.]

아무래도 그래서 흑염룡의 어머니, 도로시는 이미 죽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실제로 시체를 직접 본 게 아닌, 벨로스의 몸에 들어간 직후 아예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죽었다고 정한 것이었다.

“그럼 혹시 말야.”

[뭐? 우리 엄마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냐고?]

흑염룡은 내가 예상하는 것을 꿰뚫어 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졌지만, 우리 엄마가 사라진 기간이 너무 길어서 말야. 그래서 헛된 희망 안 품기로 했어.]

시오스가 있는 이세계와 내가 사는 인간계는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단 말도 있었다.

시오스들이 있던 이세계에서 10년이 지나도.

인간계로 넘어오면 1년밖에 지나지 않을 정도의 차이다.

따라서 내 입장에선 흑염룡의 어머니 도로시가 사라진 것이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시오스 세계에 있던 흑염룡의 입장에선 몇 주가 넘는 시간이었으니.

어머니의 죽음을 확신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도 당연한 듯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엄마가 벨로스 몸에 들어간 뒤로 더스티가 생겨났잖아. 엄마의 능력이 빼앗겼다는 확실한 증거고.]

“그렇지…….”

전황을 역전하기 위해 선택했던 최후의 보루였을 터인데.

그것이 하필이면 시오스들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그래도 벨로스를 다시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어.]

“뭐라고?”

[우리 엄마…… 어떻게 죽였는지.]

이제 흑염룡은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어머니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알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잘해야겠군.”

그리고 이제 상황은 시오스와 크루즈 사이엔 인간계까지 끼어있는 상태.

단순히 내가 잘해야겠단 뜻은, 흑염룡의 복수를 돕는 일이 아닌.

애초에 우리의 목숨줄도 달려있는 일이니, 완벽하게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좀 쉬어 둬. 크루즈 본대까지 넘어온 상태니까 정말 도착하면 잠을 잘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그제야 흑염룡도 내게 휴식을 권했다.

크루즈와의 전쟁을 직접 겪은 흑염룡.

그것도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의 경험이 있으니 얼마나 처참한 싸움이 될지 미리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내 컨디션을 유지시키려는 말이었다.

“그래.”

내가 먼저 안대를 착용하자, 히로시도 따라서 안대를 쓰는 소리가 들렸다.

***

10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하늘에서 보낸 뒤.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했다.

본래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오려면 최소 13시간 이상의 이동 시간을 잡았어야 하지만.

노르웨이 협회가 마련한 전용기이기에 일반적인 소요 시간과 비교하면 상당히 빨랐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

51구역을 처음 갔을 때처럼, 공항으로 잇는 게이트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닌, 활주로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날씨를 확인했다.

비가 한창 내리는 날씨처럼, 회색빛이다.

낮에서 초저녁으로 넘어가는 하늘의 색깔과 비슷했다.

“이상하군, 노르웨이는 한창 아침 시간대일 텐데. 왜 밤이 되어가는 것 같지.”

로버트 윤 역시 이 상황을 수상하게 받아들였다.

우리가 한국에서 출발한 시간과 하늘에서 시간을 보낸 시간.

그리고 도착 기준으로 시차를 적용해서 계산해 봐도, 노르웨이는 현재 한창 아침이 활기차게 열리는 화창한 날씨여야만 하지만.

하늘이 어둑어둑한 게 문제다.

[크루즈가…… 이쪽으로도 영역을 넓히려는 것 같은데요?]

오르문이 자신의 주인인 로버트 윤에게 답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가…….”

[네, 크루즈가 나타나면 기본적으로 주위가 어둡게 변하니까요.]

노르웨이의 옆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슬란드는 이미 공격받은 상황.

게다가 우리가 한국에서 이곳으로 도착하기까지 소요된 시간도 상당하다.

크루즈들의 영역이 점점 넓어진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노르웨이는 아직 평화로워 보였다.

단지 날씨만 조금 칙칙할 뿐, 크루즈의 모습은 보이지 않다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형이 걱정하던 상황은 안 나온 것 같네요.”

히로시도 내가 비행기에서 했던 말을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내게 저런 안심을 심어주는 한마디를 건네니, 유독 기특해 보였다.

“그러네. 다행이네. 아직까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도할 수 있으랴.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그저 시작점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최악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했다.

“화면 속에서나 보던 분을 이렇게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때, 외국어가 불쑥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문성을 제외하곤 우리 셋은 정령의 주인이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을 보니, 나 역시도 화면을 통해 아주 익숙해진 인물.

노르웨이의 협회장이었다.

그는 통역사와 동행한 모습이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노르웨이 협회장 페르 노딘입니다.”

화면 속에서 봤던 것처럼, 나이가 상당히 지긋한 협회장.

내 기억 속에 노르웨이 협회장은 중앙 의회 회원국 중에서 최연장자로 기억했다.

장길수처럼 백발을 가졌지만, 장길수와는 이미지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장길수는 전장을 누볐던 특수부대의 팀장을 아주 오랫동안 한 인상이라면.

페르 협회장은 뉴스에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교황과 상당히 유사한 인상이었다.

“반갑습니다, 윤도원입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무슨, 크루즈는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에 빨리 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페르 협회장은 나를 시작으로 로버트 윤, 히로시까지 전부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바로 옆 나라 아이슬란드가 크루즈의 침략을 받았는데도 좀 느긋한 느낌인데.]

흑염룡은 페르 협회장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저 사람 성격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노르웨이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나도 페르 협회장의 태도를 보며 추측했다.

보통은 당장 발등에 불똥 떨어질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면.

이런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우리를 어딘가로 안내하기 마련.

하지만 페르 협회장에겐 그런 조급함이 보이지 않았기에 노르웨이는 안전하단 뜻이 확실하다.

그렇게 페르 협회장이 오문성의 앞에 선 순간.

“음.”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시선은 잠시 오문성을 훑은 뒤에, 내게 물었다.

“못 보던 사람인데, 혹시 이분도 새로운 정령의 주인인가요?”

“아니요. 이번 사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기에 함께 온 것뿐입니다. 정령의 주인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정령의 주인이 아니라면 대화에도 불편함이 있겠군요.”

페르 협회장이 동행한 통역사에게 넌지시 눈치를 줬다.

오문성을 향해 자신이 하는 말을 전부 통역하라는 작은 배려였다.

그렇게 오문성과의 인사까지도 마친 뒤.

페르 협회장이 우리를 이끌었다.

“오시는 과정에서 문제가 조금 생겼기에 그것을 당장 알려드림이 마땅하지만…… 지금은 조금 서둘러야겠군요. 베르겐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단순히 평화로워서 느긋한 태도라고 생각했더니.

사실은 내 예상과 달리 성격이 느긋한 편인 것 같았다.

아니면 과하게 사무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오는 시간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인사 정도는 생략해도 그만인데 그것을 집착하듯이 하려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요? 어떤 문제죠? 심각한 건가요?”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심각한 것이라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이미 예상한 정도인지…….”

페르 협회장은 유독 우유부단한 답을 내놨다.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답하니, 나 역시도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일단은. 베르겐으로 가야 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문제가 생겼단 것과 연관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가면서 설명해주시죠. 함께 가실 거 아닙니까?”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어차피 함께하는 시간이 상당히 기니까요.”

페르 협회장은 그렇게 답하곤 앞장을 서며 우리를 안내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다……. 서양식 속담과 같은 건가요?”

난 그가 알려준 답에 집중했다.

어떤 의미를 담은 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노르웨이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여러분들이 도착한 이 공항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입니다. 그리고 베르겐이란 도시는 노르웨이에서 수도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지요.”

갑자기 페르 협회장이 여행 가이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살짝 들었지만, 이 역시 전부 필요한 설명이니 한 것이라 짐작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슬로와 베르겐은 400km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동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리지요.”

“사……백……?”

아, 잠시 잊고 있었다.

한국과 노르웨이의 면적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단 것을.

도시를 이동하는데 400km나 이동할 정도로 큰 나라란 것을 잠시 망각했다.

하지만 거리가 우리에게 큰 문제가 있을까?

게다가 페르 협회장은 400km나 되는 거리를 차로 움직일 생각처럼 보였다는 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다.

워프 능력을 가진 헌터가 노르웨이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런 헌터들을 총동원하면 되는 일인데, 왜 굳이 차로 이동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설마, 400km나 되는 거리를 차로 움직이려는 건……?”

“아쉽게도 당장은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라서요.”

“이유는요?”

그의 답을 기다리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공항을 완전히 빠져나오게 됐다.

400km나 되는 장거리를 최대한 빠르게 이동할 생각이었던 건가.

영화에서나 보던 휘황찬란한 고급 스포츠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히 4대.

탑승 인원이 제한적인 스포츠카의 특성상, 여러 대로 나누어서 우리를 데리고 갈 생각으로 보였다.

페르 협회장은 가장 앞에 있는 스포츠카의 문을 열며 말했다.

“페로 제도가 공격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노르웨이의 헌터 중, 워프 능력을 가진 자들은 전부 해상과 가까운 외곽 도시로 파견을 보낸 상태고, 일반인들을 대피시키는 중이거든요.”

“페로 제도……?”

“잘 모르시는군요. 페로 제도는 아이슬란드, 영국, 그리고 이곳 노르웨이를 잇는 삼각 지대에서 정확히 가운데에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영국이 삼각형의 각 꼭짓점 개념이고.

그 중앙에 페로 제도가 있단 뜻이었다.

“그런 페로 제도에서 메테오가 관측되었단 것은…….”

“아이슬란드를 넘어 슬금슬금 영국와 우리 노르웨이까지 크루즈의 영역에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일반인들을 최대한 멀리 대피하고자, 워프 헌터들은 전부 그쪽에 투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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