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크루즈와의 전쟁 (3)
도착한 공항.
곧바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치 훈련이 잘된 군인처럼, 혹은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처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장길수가 우리를 안내했고, 노르웨이로 향하는 비행기와 연결된 공항 게이트에 도달했다.
복잡한 출국 절차 없이 곧장 게이트를 통해 비행기에 탑승하고, 탑승하자마자 승무원들은 안전 점검을 한 뒤에.
곧장 이륙을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이제 우리는 노르웨이로 향하는 하늘에 있다.
“다들 잠이라도 푹 자 둬. 본래 전쟁에선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휴식만큼 중요한 게 없거든.”
로버트 윤은 아주 익숙하게 안대를 하며 말했다.
하긴, 중앙 협회 시절에도 이런 장거리 이동이 익숙하던 그였으니,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눈부터 감는 습관이 생긴 듯하다.
“음, 이 분야에선 저 총각이 전문가니까 따라야겠지?”
반면, 헌터 신분으로 해외에 나가본 적이 거의 처음인 듯한 오문성은 로버트 윤을 따라 했다.
안대를 착용하고, 의자를 눕히며 편한 자세를 잡았다.
“비행기 타는 거. 오랜만이면서도 익숙한 것 같은 이 묘한 느낌은 뭘까요.”
내 옆 좌석에 앉은 히로시가 말했다.
“이제 타는 일 없도록 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자.”
“오오~ 뭔가 의미 깊은 말인데?”
히로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
우리가 언제 여행 개념으로 비행기를 탄 적이 있나?
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동하기 위해 타던 비행기가 전부다.
즉, 그런 상황 속에서 함께 지내 온 우리에겐.
비행기라는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러 가기 위한 전자제품의 A/S 센터 개념.
그리고 문제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크루즈가 인간계에 당도했다.
그런 크루즈를 완전히 몰아내고.
문제가 생겨 비행기를 타는 일이 아예 없도록 하잔 뜻이 제대로 전해졌다.
앞으로 우리가 탈 비행기는 문제 해결을 위한 비행기가 아닌,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의 비행기만이 있길 바라며.
“형도 조금 자 둬요. 피곤한 상태로 임하는 것보다. 컨디션을 챙기는 게 좋잖아요.”
“그러고야 싶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아요, 왜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지.”
“왜 편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가 노르웨이에 도착하기까지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잖아요. 혹시 그사이에 또 다른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하는 거 아니에요”
정확하다.
크루즈의 활동이 생각 외로 너무 빠르다.
미국이 최초로 공격받기 시작한 게 얼마나 지났다고, 아이슬란드까지.
이 속도라면 우리의 목적지인 노르웨이에 도착하기도 전에.
노르웨이가 공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상황은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나 역시도 어떻게 대처하기 시작해야 할지, 머리가 완전히 꼬여 뇌가 그대로 정지할 것만 같아서다.
“형이 하는 걱정.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너무 최악만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왜 세상에 있는 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해요?”
“……그런가.”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한다.
이상하게 지금 이 순간 이 말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히로시의 말대로.
언제부터였지?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고, 나만이 할 수 있단 생각을 가진 거.
아무래도 그건 최현민, 강만식과 대립할 때부터 생겨난 듯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긴 했어도 일을 해결하기 위해 큰 힘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이지은, 정다혜, 신보미 등등.
그들이 나를 위해 한 일이 정작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큰 힘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무력의 기준이었으니까.
그들의 능력으로 당시 강만식을 제압할 수 없었던 수준이고, 결국 강만식은 내 손으로 직접 제압해야만 했던 상황.
최현민, 강만식과의 대립이 끝난 뒤로도.
소위 말하는 ‘막 타’를 때리는 일은 전부 내가 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강박증이 생긴 듯하다.
“하지만 이제 혼자 아니잖아요. 너무 마지막만 생각하지 마세요. 형이 여태 한국에서 겪었던 일,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적으로 전 알잖아요? 형은 너무 마지막만 생각해요. 분명히 마지막으로 향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중간 과정들이 있었을 건데요.”
“생각해 보면…….”
그러네.
히로시의 말이 맞다.
내가 소위 말하는 ‘막 타’만 직접 쳐서 마지막을 기억하게 되는 거지.
돌이켜 조목조목 냉정하게 따져 본다면.
특히 최현민과 강만식의 대립에서.
그들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도록 가장 큰 힘이 된 사람.
신동원이다.
그리고 그런 신동원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역시 당시의 이지은, 정다혜, 신보미였다.
히로시가 하고 싶은 말은.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으나, 무조건 최악의 상황만을 우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고 한들.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탤 사람이 어느덧 내 주변에는 많게 되었단 뜻이니까.
“드릴까요?”
히로시가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안대였다.
“그래, 고맙다.”
그렇게 나와 히로시도 안대를 쓰고 몸을 편하게 눕혔다.
[쟤들은 자게 놔두고. 우린 오문성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보자.]
내가 눕자마자 흑염룡은 오리가미, 오르문과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오문성이 가진 크루즈에게서 온 능력의 존재 때문이다.
[그런데 있잖아요, 린느 님. 제가 하나 걸리는 게 있는데.]
그러던 중.
오리가미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말했다.
[뭔데.]
[그…… 린느 님 직전의 원로님 있으셨잖아요.]
[우리 엄마는 왜?]
흑염룡이 지금 원로라 불리는 대정령이긴 하지만.
그 직전엔 흑염룡의 어머니가 대정령이었다.
하지만 크루즈와의 전쟁에서 희생되고 말았고, 그 공백을 흑염룡이 대신하게 된 것 역시.
나는 알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며 정령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마 히로시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일 터이다.
억지로라도 자기 위해 몸을 편하게 눕혔지만, 정령들의 비상 회의와 같은 대화 주제에 저도 모르게 귀가 정령들에게 향했을 거다.
[도로시 원로님의 능력 때문에 오문성 헌터에게 크루즈의 능력이 들어간 게 아닐까요?]
흑염룡의 어머니 이름이 도로시인 듯하다.
그런데 도로시의 능력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다.
역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크루즈의 능력이 오문성에게 들어간 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도로시 원로님이 희생…….]
오리가미는 ‘희생’이란 단어를 말하려다 황급히 말을 멈췄다.
아무래도 현재의 원로.
즉, 대정령인 흑염룡에겐 가슴 아픈 개인사이니,그 괴로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으니까.
[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말해 봐. 왜 우리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흑염룡은 오히려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미 슬픔은 아주 오래전에 묻어뒀고,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 상기하기 싫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도로시 원로님은 사실상, 크루즈에게 희생당한 건 아니었잖아요? 오히려 직접 희생을 감수하신 거지.]
[그랬긴 한데…….]
이래 가지곤…….
안대를 쓴 채로 엿들을 순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안대를 벗은 순간.
“그게 무슨 소리야?”
역시나, 내가 예상한대로 히로시도 안대를 쓴 채로 정령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나와 똑같이 안대를 벗으며 본격적으로 물었다.
“자세히 얘기해 봐. 흑염룡의 어머니, 도로시 원로가 직접 희생을 감수하신 이유가 뭔지.”
[에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흑염룡이 나섰다.
흑염룡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윤도원, 너도 어차피 히로시와 같은 걸 물으려고 했던 거지?]
“응.”
[좋아,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 우리 엄마의 능력은 변환 능력이었어.]
“변……환?”
변환이란 능력 자체가 우리에게 생소한 건 아니다.
크루즈의 경우에도.
말단 병기인 더스티가 있었으니까.
정령들의 몸을 삼킨 뒤, 정령이 가진 능력만 빼내서 크루즈의 몸에 맞게 변형시킨다고 했으니.
크루즈의 더스티와 비슷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웠다.
“더스티가 가진 능력. 그런 비슷한 걸 말하는 거야?”
[정확히는. 그 더스티가 생겨난 게 우리 엄마가 희생되고 나서였거든.]
“그럼 더스티라는 게…… 처음부터 크루즈가 가진 게 아니란 뜻이 되는데.”
[맞아. 더스티는 분열 능력이 주력이야.]
“분열……이라…….”
[한 놈을 죽이면 두 놈이 되고, 그 두 놈을 또 죽이면 네 놈이 되고…….]
이거 완전 바퀴벌레를 닮은 종족들이었다.
흔히들, 바퀴벌레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고 하지 않던가?
단순히 바퀴벌레도 생명이니까?
아니다.
재수 없으면 알을 밴 바퀴벌레를 죽일 경우, 그 자리에 알을 퍼트려 무수히 많은 바퀴벌레로 증식시킨다는 이유였다.
크루즈가 그런 바퀴벌레와 딱 닮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우리가 열세로 접어들었던 이유도, 처음엔 소수였던 크루즈가 점점 분열을 거듭하며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서였거든. 그러던 중. 결국, 우리 엄마가 특단의 대책을 세웠어.]
“무슨 대책?”
[엄마가 직접 자신을 희생해서, 크루즈의 몸속으로 들어가, 놈들의 능력 중 어떤 약점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지.]
어떤 형태로 들어간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염룡의 어머니 도로시에게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 건 확실하다.
애초에 변환 능력에 타고난 정령이었으니.
크루즈들이 가진 능력을 시오스에게 맞는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약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해석됐다.
“잠깐, 궁금한 게 생겼는데.”
[뭐든지 물어.]
“네 어머니 도로시 정령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꼭 크루즈의 몸에 들어가야 했던 건가?”
[그게 아니면 들어갈 이유 자체가 없지?]
성공할지, 어떨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희생을 자처했다고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