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크루즈와의 전쟁 (2)
“뭐야?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까지 가진 윤도원 자네가 왜 그렇게 놀라?”
오히려 당사자인 오문성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진귀한 발견이라도 한 듯한 내 반응을 보곤 호들갑 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흑염룡을 비롯한 다른 정령들의 반응까지 종합한 결과.
분명히 오문성의 능력은 정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왜냐, 본래 헌터들 능력의 주인인 시오스 정령들조차도 이게 가능하냐고 말했으니, 딱 하나는 확실하다.
오문성의 능력은 애초에 초월석에 없던 능력.
어떤 경로로 인해 초월석에 없는 능력이 헌터에게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 역시도 이번에 오문성의 능력을 처음 본 것이.
그동안 오문성의 능력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유명한 것은 명성이지, 능력에 대한 게 아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내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초월석이 효력을 잃었고, 돌멩이로 전락해 인류 생활이 불편함을 넘어 지옥으로 떨어진 수준이었지만, 내 능력 덕분에 그런 지옥에서 탈출한 거니까.
즉, 세상이 그런 지옥으로 떨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내 능력이 각광을 받는 일도 없었다는 것.
오문성의 경우도 비슷하다.
레이드 능력이 출중하다는 명성만 익히 알려져 있을 뿐.
그가 어떤 능력을 지녔고, 어떤 식으로 레이드를 진행했는지의 노하우 등등.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내부자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레이드라는 게 일반적으로는 길드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마련이다.
내가 SF 길드의 일반인 직원 시절에도 협회로부터 레이드 명령이 떨어지면, 부랴부랴 그때 적합한 인원을 배치하는 등, 전부 길드원으로만 해결했으니까.
따라서 어떤 능력을 사용하여 어떤 식으로 레이드를 진행했는지, 외부에서 알려질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오문성이 거둔 레이드 성과.
레이드 성공률 120%, 부상률 3%라는 기이한 업적을 가진 인물이니.
그 업적이 뿜어내는 후광에 의해 오문성이 가진 능력이 자연스럽게 가려진 거나 다름이 없다.
생각해 보면 이게 이상한 현상도 아니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로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국가대표가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을 두고서.
어떤 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는지, 경기 운영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
이런 세세한 것들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저 금메달을 땄다면, 금메달을 딴 게 중요하지 어떤 능력을 이용하여 땄는지는 별로 관심에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러한 이유에 오문성의 능력을 이제야 처음 본 것이다.
“허허, 쑥스럽게들 왜 이러시나? 내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야?”
“네.”
난 가감 없이 답했다.
“응? 대단한 능력이라고?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을 가진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오문성 길드장님, 그 능력을 얻게 된 경로가 어떻게 됩니까?”
“뭐야? 갑자기 왜 취조 분위기지. 평생을 사용해 온 내 능력이 뭔가 문제라도 있는 듯이.”
우리의 호들갑스러운 반응 때문이었을까.
연신 적극적인 태도였던 오문성이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취조를 하는 듯이 느껴진 모양이다.
“문제는 아니지만…… 아, 문제라고 해야 하나?”
“뭔데 그래?”
“오문성 길드장님, 당신이 사용하는 능력. 크루즈들과 같은 유형의 능력이더군요.”
“으응?”
진실을 알려주자, 오문성 역시 크게 놀랐다.
“허허, 30년도 넘게 나를 든든하게 지켜준 능력이 크루즈와 같은 유형이라니. 아니,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우리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은 전부 시오스 정령들이 가지고 있던 초월석에서 온 거니까요.”
중앙 의회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시오스와 크루즈의 관계 역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일반인은 몰라도 적어도 헌터들은 아는 정보다.
“아, 그렇지……. 우리의 능력은 본래 시오스의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
그제야 오문성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네를 비롯해 옆에 있는 두 명…… 전부 정령의 주인이었지?”
로버트 윤과 히로시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지금 오문성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정령들이 자신의 능력을 본 순간.
본래 시오스의 능력이 아니란 걸 깨달았단 뜻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해……?”
이젠 오문성이 직접 그 질문을 건넸다.
아쉽지만, 우리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능력을 얻은 경로. 어떻게 되시죠? 특별한 사연 같은 게 있었나요?”
나처럼 흑염룡과 같은 정령.
어쩌면 크루즈에게도 정령의 존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물었지만.
“똑같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능력이란 게 있단 걸 깨달았고, 그렇게 헌터가 됐지.”
오문성이 능력을 얻게 된 경로에는 특별함이 없었다.
아쉽게도 어떠한 추적의 단서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다.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오문성도 모르는 과거를 파헤칠 수는 없다.
여느 헌터와 똑같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 안에 능력이 자리 잡은 것이었으니까.
“대기하세요. 조만간 호출이 있을 겁니다.”
이제 그를 두고 노르웨이로 떠나려는 찰나.
“저기 말야.”
어떤 미련이 남은 듯이 나를 붙잡았다.
“뭐죠?”
“나도 함께 가면 안 될까? 선발대로.”
“안 돼요. 위험합니다.”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우린 지금 놀러 가는 게 아니다.
미국을 시작으로, 아이슬란드가 곧장 공격을 받았고, 아이슬란드와 가까운 노르웨이로 간 뒤.
상황을 파악하며 후발대들이 정착할 수 있는 땅을 확보하는 귀중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이다.
상대는 헌터도 아니고, 시오스들도 어찌하지 못한 크루즈들.
그런 크루즈들의 본거지와 아주 가까운 곳으로 향하는 것이기에 흔쾌히 수락할 수 없다.
“안 되는 이유는?”
“당연히…….”
“위험해서? 못 지켜줄 거니까?”
내가 하려는 말을 오문성이 직접 뱉었다.
“잘 아시네요.”
“내가 나이 먹고 젊은 친구한테 짐이나 되려고 가는 건 아닌데 말야.”
“오문성 길드장님, 당신이 영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입니다. 여기 있는 셋 중에서 크루즈를 직접 겪은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요.”
히로시와 로버트 윤도 크루즈의 존재.
그리고 크루즈에 대한 정보를 정령을 통해 조금 알고 있었을 뿐이지, 나처럼 직접 겪은 건 아니다.
그것도 내가 겪은 크루즈는 말단 중 말단인 더스티다.
그 더스티 하나를 몰아내기 위해 당시엔 시오스의 수호신 드래곤의 힘까지 빌려야 했던 상황.
하지만 이제 내가 마주할 크루즈는 본대기 때문에 더스티보다도 훨씬 강한 크루즈들이 우글대는 곳이다.
“심각하고 위험한 거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가? 자네가 직접 말했잖아. 내 능력. 크루즈와 같은 유형이라고. 그 말은 나도 크루즈에게 제대로 된 저항이나 반격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거 아닌가?”
“…….”
오문성의 똑 부러진 답이었다.
“이왕이면 셋보다 넷이 나을 것 같은데.”
[윤도원, 저 헌터 말도 일리는 있어. 그렇게 억지스러운 말은 아니야.]
흑염룡도 오문성의 의견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의 합류를 재촉하는 듯한 말이었다.
[맞아요. 분명히 크루즈와 같은 능력이라고요. 저 사람이 함께 있으면, 적어도 저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수행자님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아요?]
이젠 오르문이 말했다.
오르문의 말뜻은, 내가 가진 능력인 염력.
시오스가 크루즈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능력을 굳이 저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체를 들어 올리는 염력이 난 왜 크루즈 대항용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크루즈 본대가 인간계로 완전히 넘어온 지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낙하하는 메테오들.
그 메테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루즈의 그런 메테오와 같은 능력을 지닌 오문성이라면?
내가 일일이 헌터 무리 중앙에 있으면서 낙하하는 메테오들을 멈추게 할 필요가 없단 뜻이다.
즉, 우리는 본대를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메테오를 떨어지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내가 속한 본대와.
떨어지는 메테오를 자신의 능력으로 전부 격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오문성의 본대.
이렇게 두 개의 본대를 나누면 크루즈를 대항하는 일도 생각보다 성공적일 거란 뜻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이야. 확실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해도, 불안한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다.
일단 크루즈를 경험한 나조차도 본대의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
아무리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실전은 늘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의 상황이 나왔을 경우, 오문성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저 헌터의 능력을 믿으면 되는 거 아닐까? 저 헌터가 새내기 헌터도 아니고. 레이드 능력이 이미 한국 내에서 유명하며, 길드장까지 하고 있는 베테랑 헌터인데. 위기 변수 정도는 수월하게 대처할 능력이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말야.]
한창 설명하던 흑염룡은 갑자기 오문성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사리와 같은 흑염룡의 손은 오문성의 이마로 향했다.
하지만.
파직-!
흑염룡의 손이 오문성의 이마에 닿자마자 작은 스파크가 튄 듯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흑염룡의 손도 오문성의 이마로부터 멀어졌다.
[이거 봐. 내가 헌터의 능력을 보기 위해 이 행동을 했을 때. 이런 적 있었어?]
흑염룡이 보인 행동은 헌터의 능력 현황을 보여주기 위한 것.
하지만 흑염룡의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기도 전에.
오문성이 마치 흑염룡을 거부하듯이 스파크를 내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저지한 현상이다.
[이거면 확실하지 않을까? 오문성이 가진 능력. 크루즈의 것이야. 나도 어떤 경로로 크루즈의 능력이 인간의 몸에 적용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고, 딱 하나 확실한 건…….”
[그래, 오문성. 우리 셋을 제외하고도 크루즈에게 유의미한 반격을 줄 수 있는 헌터란 거지.]
그게 아니고선 흑염룡이 능력 현황을 보지 못하는 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문성이 가진 비밀.
언제 풀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금 당장 그 비밀을 푸는 것보다.
크루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우리의 완벽한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이 당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리고 방금 보인 현상으로 인해 나도 확신을 가졌다.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오문성이 가진 능력이라면.
우리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건 분명했으니까.
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좋구먼. 내가 선발대에 서다니.”
그는 자신이 선발대가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다.
“당장 노르웨이로 향해야 합니다.”
“딱히 챙길 짐도 없어. 허허벌판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아, 여권은 챙겨 와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도 소소한 농담을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어차피 전용기입니다.”
“그거 편하고 좋구먼. 내 인생에서 전용기를 타는 날이 다 오다니.”
그렇게 우리 넷은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