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크루즈와의 전쟁 (1)
양산부로 돌아온 나는 곧장 로버트 윤과 히로시를 찾았다.
“우리가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다.
애초에 로버트 윤이나 히로시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은.
포화 속으로 우리가 먼저 몸을 던져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로버트 윤은 심정을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뭔가 비장하기도 하면서 겁을 먹은 것 같은 반응이다.
히로시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가야 하는 이유는 역시…….”
로버트 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목소리다.
하지만 먼저 가야 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크루즈에 대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셋밖에 없잖아.”
이제 난 그들의 정령들을 보며 말했다.
오리가미와 오르문.
두 정령은 흑염룡과 똑같이 크루즈와 싸운 적이 있는 정령들.
그렇기에 우리가 앞으로 마주칠 크루즈에 대해서 적어도 어떤 능력을 가졌거나 특징을 가졌는지 금방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헌터의 경우엔?
격투 게임엔 이런 말이 있다.
“모르면 맞아야지.”
하지만 이 말을 우리 상황으로 변환하면, 맞는다는 뜻은 곧 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크루즈에 대한 정보 아무것도 없이 그저 몸으로 무식하게 배우는 방식은 감수하지 않아도 될 희생을 괜히 발생하게 만드는 멍청한 짓.
그렇기에 우리 셋이 먼저 가서 최소한의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했다.
순차적으로 올 후발대를 위해서라도.
“회의 진행 중에 아이슬란드까지 공격을 받았어.”
“아이슬란드라면…….”
중앙 협회에 있던 경력 덕분일까.
세계 지리에 능통한 로버트 윤은 곧장 알아들었다.
“네, 대서양 위에 떠 있는 섬나라.”
“미국과 가깝기도 하지.”
“그 아이슬란드가 회의 중에 공격을 받았어요.”
“이런…….”
“그럼 아이슬란드는……?”
히로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크루즈에게 갑자기 공격받았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냐는 질문이었지만.
“…….”
난 그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미처 대응할 방법도 없었으니까.
“따라서 우린 곧장 노르웨이로 갈 거야. 노르웨이 협회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는 항공편 하나를 확보했거든.”
“우리가 정확히 할 일은? 생각했어?”
로버트 윤의 질문이다.
“뻔하지. 상황 보면서 구할 수 있는 사람 구하기. 그리고 크루즈를 상대하기. 중앙 의회에서 연합대를 곧장 조직해서 노르웨이로 파견 보낼 거야.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는 게 우리의 첫 번째 목표.”
“연합대라…….”
세계 역사적으로 헌터 연합대라는 것이 생겨난 적이 있던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던 그 일을.
크루즈의 등장 때문에 최초로 일어났다.
이는 인류에 마지막으로 존재하던 남극에 있던 정식 던전을 정복하기 위해 팀을 꾸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애초에 팀 개념과 연합대 개념은 스케일은 물론 질적으로 다르니 사상 초유의 일이다.
“연합대라,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인데.”
그러던 중,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했는지 불청객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시선을 목소리가 났던 쪽으로 돌리니, 나와 친분이 두텁진 않지만 안면은 알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무성 길드의 오문성 길드장.
내가 강만식의 SF 길드 일반 직원인 시절에도 저 길드장의 명성이야 익히 잘 알았다.
레이드 능력이 가히 국내 최고 수준이었으니까.
인류에 정식 던전이 사라진 뒤로는 그의 위엄이 드러날 일이 없어 이름을 들을 기회도 사라졌지만, 모처럼 그의 특기인 레이드를 진행했기 때문일까.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고 자신감도 잔뜩 붙은 모습이다.
“윤도원……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하지? 씨라고 하기엔 너무 그렇고. 그렇다고 양산부는 최현민 시절에 만들어진 비공식 부서였고.”
“편하신 대로 부르시죠. 어차피 호칭 같은 거 신경 안 썼거든요.”
“뭐, 내가 원래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보통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권위적이긴 하던데.”
나도 농담조로 말한 것이다.
그에게 시비를 걸기 위한 게 아니다.
우리 셋이 모여 연합대, 크루즈 등등.
심각한 얘기를 한창 하던 중인데 자신감 충분한 모습으로 그가 불쑥 찾아와 우리 이야기에 흥미를 보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경계하는 것보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것처럼.
이런 농담으로 시작하면 그와의 대화가 수월할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하하하, 그런가? 그럼 그냥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역시나, 오문성은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아니다.
시원하게 웃어넘기며 대화를 이었다.
“그나저나 연합대가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라니. 무슨 뜻이시죠?”
말문이 트인 김에 나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안 그래도 내가 중앙 의회에 건의하고 싶었던 거거든. 그런데 연합대가 벌써 조직되었다는 게 신기하네.”
“건……의?”
연합대를 건의할 생각을 했다라?
왜?
“이유는요?”
“뭐긴. 자네가 협회로 간 뒤에. 휴대폰을 통해서 상황 알아봤어. 자네가 비실비실한 헌터 하나 붙잡고 경고했었잖아? 지금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중인지 알아보라고.”
“아, 그랬죠.”
“알아보니까 상태가 엄청 심각하더군. 무엇보다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 아니, 몬스터라고 부를 수가 있나 싶던데. 꼭 신화 속에서 나오는 종말의 괴수, 이런 느낌이라서.”
종말의 괴수라.
어감 참 좋다.
크루즈에게 그만큼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오문성과 대화를 할수록, 나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영상이 전하는 크루즈의 위력은 본래 크루즈의 위력 절반도 나오지 않은 상태.
그래도 중앙 의회 회의를 상기해 보면, 미국에서 일어난 일 영상 하나만 보고도.
많은 협회는 지레 겁먹은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상하게 오문성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적이 어떤 유형인지 알아서 기쁘다고 해야 할까?
전쟁 속 명장들이 가진 자세가 오문성에게도 있는 듯했다.
“그래서 연합대를 건의하려고 했단 겁니까?”
“그렇지! 그런 괴물들은 이미 미국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미국에서 끝나겠어?”
“…….”
이에 대해선 아니라고 답할 수 없었다.
크루즈들에게 땅덩이는 의미가 하나도 없다.
애초에 그들은 모두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것이 목표니까.
미국은 그저 시작일 뿐, 그 미국을 교두보로 삼아 인류 전체로 뻗어나가며 인간계에 있는 시오스.
그중에서도 대정령인 흑염룡이 목표인 건 분명하다.
“혹시, 자네 그놈 기억하나?”
뜬금없이 오문성은 갑자기 질문을 건넸다.
“그놈이라니, 누구요?”
“자네에게 옴짝달싹 못하고 몸이 그대로 굳은 녀석 말이야.”
“얼마나 지났다고. 그 사람을 기억 못하겠어요?”
“말고, 얼굴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냐고.”
“그건…….”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본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양산부에는 헌터들이 갑자기 떼로 몰려왔으니,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아무리 내가 능력을 직접 사용해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한 적이 있다고 해도, 너무 잠깐 봤기에 얼굴이 생생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자네가 사람은 제대로 봤던 것 같군.”
“사람을 제대로 보다니요?”
“자네가 그 녀석에게 말했잖아. 약한 놈은 필요 없다고.”
“그랬죠?”
“그때 그거 진심이었나?”
“물론이죠.”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정말 숨길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나도 처음엔 자네의 행동이 조금 과한 건 아닌가 싶었는데, 자네가 협회로 간 뒤에 녀석이 보인 행동을 보니 아주 잘한 행동이라고 여겨지더군.”
“뭘 했길래요?”
“휴대폰으로 곧장 미국에서 일어난 일 확인하자마자 헌터란 놈이 자기가 살 궁리부터 하잖아.”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
오문성도 내 눈치를 알았는지, 곧장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녀석같이 멍청한 생각을 하는 병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게 더 문제지.”
뭘까.
뭐 때문에 갑자기 병신이라느니, 욕설과 함께 하소연하듯 말하는 걸까.
“멍청한 건지, 멍청한 척을 하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니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요?”
“생각해 봐. 미국에서 시작된 크루즈 침략. 그게 끝이 아니잖아? 미국이 무너지면 주변 국가로 번질 거고,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미 그 일은 진행되고 있고, 미국 다음에 아이슬란드가 바로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그 영상을 보자마자 세계가 하나로 똘똘 뭉치는 연합대를 생각했는데 어떻게 젊은것들은 다 자신들 살 생각만 하는지 몰라, 결국 살겠다는 것은 이 땅이 온전해야 가능한 일인데.”
그렇구나.
오문성이 왜 연합대를 건의하려고 한 건지 알았다.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크루즈 침략.
그는 그 영상을 보고, 그것이 한국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이미 확신했던 것이다.
꽤 선견지명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크루즈의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지 않게 세계가 하나로 뭉치는 연합대를 조직하여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헌터로서의 자긍심, 신념 등등.
상당한 수준으로 무장한 진정한 헌터였다.
“네, 협회장님 말뜻을 알겠네요. 그리고 왜 연합대란 이름을 반가워하는 것인지도요.”
“오호, 자네랑 나랑은 같은 생각이구나? 듣자 하니 셋만 먼저 어디로 가겠다는 거 같은데, 그게 미국이지?”
정말 의욕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었다.
우린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전쟁터로 향하는 것인데, 그는 죽는다는 생각을 아예 배제한 걸까.
아니면 죽어도 헌터로서 싸우다 죽는 것은 개의치 않다는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아뇨, 노르웨이로 갑니다.”
“엥? 노르웨이? 미국이 아니라?”
“미국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슬란드가 곧장 공격받았어요.”
“그러면 아이슬란드로 가야지, 왜 노르웨이야?”
“영상 못 보셨어요? 크루즈가 등장하게 되면 메테오가 다발로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미 크루즈가 등장한 미국, 아이슬란드로 직접 가는 건 무리죠.”
“아~ 그게 크루즈의 능력이었어?! 뭐야, 난 어느 헌터의 능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런데 오문성의 반응이 이상하다.
“무슨 소립니까? 헌터의 능력인 줄 알았다니요?”
하늘에서 낙하는 메테오들을 보고 헌터의 능력인 줄 알았다.
이 뜻은…… 적어도 오문성은 그런 비슷한 능력을 가진 헌터를 본 적이 있다는 게 아닌가?
난 슬쩍 흑염룡을 쳐다봤다.
그런 능력을 가진 헌터가 존재할 수 있냐는 질문을 담은 눈빛이었으나.
[그런 능력 없는데……? 말이 안 되지.]
흑염룡도 부정하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은 전부 시오스에게서 온 것.
즉, 능력의 본래 주인이 시오스였으니 그런 시오스가 모르는 능력이 존재할 리가…….
“없는데……. 왜…….”
“봐, 봐. 나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인 줄 알았지. 크루즈와 맞서 싸우던 중인 누군가.”
오문성은 자신의 능력을 작게 보여줬다.
그의 주변에는 혜성과 같은 별똥별이 낙하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실내이기에 일부러 작은 형태로 살짝 보여준 듯했다.
[뭐…… 뭐야?! 저런 능력이 왜 있어?!]
흑염룡은 물론.
[분명히…… 크루즈들 능력이랑 상당히 흡사한데요, 린느 님?!]
오르문까지.
[이게…… 가능한가? 저건 우리의 능력이 아닌데……?]
오리가미까지 의문을 자아냈다.
“오, 오문성 길드장님…… 다, 당신…… 이 능력 어떻게 얻은 겁니까?”
나도 순간 깜짝 놀라 말을 더듬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