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68화 (168/200)

§ 168화. 크루즈의 실체 (4)

도착한 협회.

중앙 의회를 처음 결성했을 때처럼, 화상 회의를 진행했던 그곳에 다들 모여있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오늘은 일본 협회장 야마다 헤이로가 자국 협회에 있었기에, 모니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단 점이다.

그리고 분위기는 완전히 초상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미국에 있는 중앙 협회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들,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저들도 전부 아는 것이다.

미국은 시작일 뿐, 미국이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면.

미국과 가까운 나라까지 크루즈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것이란 걸.

특히 유럽 쪽 협회들이 유독 안절부절못하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유럽 사이에 대서양이 있고, 그 대서양은 크루즈들의 전용 게이트가 완전히 점령한 상태이니.

슬슬 유럽으로 피해가 뻗칠 우려 때문이었다.

-러시아 협회장에게 한 가지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화면 속 협회장, 아이슬란드의 협회장이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하필이면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는 상태.

우리나라의 독도처럼, 홀로 똑 떨어진 외딴 섬나라다.

-말씀하시지요.

-아이슬란드를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고작 40만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

헌터의 총원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다.

그런 불리한 조건으로는 크루즈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기에, 아이슬란드를 버리겠단 뜻으로 보였다.

-그러니…… 러시아에 우리 아이슬란드 국민들을 대피시킬 장소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까?

현실적인 선택이다.

누가 보더라도 현재 아이슬란드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지금 바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요.

러시아 협회장 역시 난감한 반응이었다.

이는 헌터 협회장으로서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자국 정부와의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란 것을 여기 모인 모두가 안다.

이런 경우는 세계사에서도 거의 처음이다.

다른 나라의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자국의 땅을 내어주는 일.

듣기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란 것을 알기에, 러시아 협회의 부정적인 답에 대해선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최대한 빠르게…… 결정해 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아이슬란드 협회장 역시 믿을 수 있는 거라곤 러시아 협회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애원하듯이 간곡히 부탁했다.

-일단, 곧장 연락을 취해 보겠…….

그 순간.

-콰아아앙-!

모니터 어딘가에서 폭음이 들려 왔다.

-뭡니까?!

-갑자기 이게 무슨……!

한국 협회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 역시도 느닷없는 폭음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설마, 벌써 시작인가.’

그와 동시에 모니터 전부를 살폈다.

만일 미국처럼 크루즈의 침략이 시작됐다면 모니터에서부터 이상한 상황이 포착될 것.

아니나 다를까, 아이슬란드 협회장 화면이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이는 충격으로 인해 그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리면서 생긴 일이었다.

-참…… 빠르군요.

그리고 무언가를 체념한 듯한 아이슬란드 협회장의 목소리.

-다들, 무운을 빕니다.

아이슬란드는 그 말을 남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인지, 우리로선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카메라는 꺼졌다.

-이렇게 보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당장 중앙 의회 회원국들은 헌터들을 파견하여 아이슬란드에서 항전을 펼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가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역시 같은 유럽의 국가, 노르웨이 협회장이었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두 나라는 직선거리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아이슬란드에 이미 크루즈 침략이 시작된 상태.

이제 아이슬란드를 넘어, 자신의 나라인 노르웨이까지 퍼질 것이란 걸 직감한 모습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파견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던 중, 한 남자의 냉정한 목소리.

독일 협회장이었다.

-이봐요! 독일 협회장! 지금 남의 일이라고 그러는 겁니까!

파견 제안에 반대한 독일 협회장을 노르웨이 협회장이 질타했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의 답은 현실적이었다.

-남의 일이요? 아이슬란드가 무너지고, 노르웨이까지 무너지면 유럽 대륙 전체가 무너집니다. 우리도 유럽 대륙에 속했는데,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중이겠어요?

-…….

-그리고 유럽은 모든 대륙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럽과 딱 붙어 있는 러시아.

그 러시아 밑으로는 우리 한국까지 있다.

즉, 그의 말대로 유럽이 완전히 뚫리는 순간, 대륙 전체에 크루즈 상륙까지 이루어지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도대체 왜 망설이는 겁니까! 독일도 같은 처지라면서!

-망설일 수밖에 없죠. 우리는 크루즈의 존재만 알 뿐, 크루즈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떤 종류의 크루즈가 있고,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등등.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이런 기본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의회 회원국 헌터들을 전부 파견한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냔 말입니다.

독일 협회장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는 완벽한 승리라는 목적을 가졌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크루즈의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크루즈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기에 헌터들을 투입시킨다고 해도, 희생만 늘리는 투입이라는 뜻이었다.

-윤도원. 우리에겐 윤도원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내 이름이 나오고 말았다.

크루즈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도 나.

따라서 중앙 의회 회원국들은 나라면 크루즈의 자세한 정보를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동시에 모니터 속에 있는 협회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화살처럼 내게 꽂혔다.

“흠, 흠.”

난 목을 가다듬으며 답했다.

“아쉽게 됐습니다만…… 저 역시도 크루즈에 대한 정보 전부를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크루즈는 더스티라 불리는, 크루즈의 말단 병기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정령의 주인이라면서 어떻게 정령의 주적이었던 크루즈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른단 말입니까!

남들이 보기엔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이겠지만은…….

사실인 걸 어떡하나.

내가 크루즈에 집중하기도 전에 연이어 일이 터지면서 크루즈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도 크고.

무엇보다 크루즈와 만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이유도 크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고, 인간계로 넘어온 크루즈를 필수적으로 없애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젠 인간과 시오스 연합이 크루즈와의 전쟁을 맞이하게 된 순간이다.

난 노르웨이 협회장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기 위한 답을 주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보면 어떤 형태의 크루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협회장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이다.

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또 직접 보면 어떤 형태의 크루즈인지 알 수 있단 그 말.

하지만 난 흑염룡을 쳐다봤다.

‘흑염룡, 넌 다 알잖아. 저런 크루즈와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해 왔으니까.’

[당연하지.]

나는 모르지만 크루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정령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전 정령의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령은 그들의 세상에서 오랜 기간 크루즈와 전쟁을 이어왔습니다. 따라서 제가 직접 가서 본다면. 어떤 크루즈인지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있단 뜻이죠.”

-왜 꼭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겁니까? 영상 자료 등을 통해 설명해 줄 순…….

어느 협회장이 물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영상 자료요? 있던가요? 미국의 경우에도 취재하던 헬기가 추락하면서 취재원이 전부 죽고. 애초에 영상 자료란 건, 누군가가 인터넷을 통해 퍼트려 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다들 희생되었기에 우린 영상 자료가 하나도 없죠.”

그렇기에 크루즈를 상대하는 게 더욱 까다로웠다.

나 역시도 미리 브리핑이라도 할 수 있으면 수월하겠지만…… 그런 걸 바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니다.

일단 시급한 것은 크루즈가 점점 더 퍼지지 않도록 막는 방법밖엔 없다.

“세계에 존재하는 정령의 주인 3명. 저희 셋이라도 먼저 노르웨이로 향하겠습니다. 노르웨이 협회장님?”

-네.

“지금 당장 항공편 준비해 줄 수 있습니까? 최대한 빠르게요.”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왜 노르웨이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던 중, 독일 협회장이 물었다.

지금 공격을 받기 시작한 건 아이슬란드.

따라서 아이슬란드로 가는 게 올바른 선택이 아니냔 질문이었다.

독일 협회장은 아직 중요한 것을 몰라서 그렇다.

“미국이 처음 공격받을 때. 영상 보셨죠? 메테오가 다발로 떨어지는 영상이요.”

-그렇습니다.

“그게 크루즈의 대표 능력이라고 하더라고요. 등장만으로 그런 메테오들이 다발로 떨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슬란드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을까요?”

-……그렇군요.

그제야 왜 노르웨이를 선택했는지 잘 알겠단 반응을 보였다.

“일단 아이슬란드와 가까운 노르웨이에 도착한 뒤, 상황을 봐야 합니다. 저도 살리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현실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회원국들에게 또 하나 알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한국에서 보유하던 400개가 넘는 게이트를 전부 없앴습니다.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아마 각 국가에 지급된 초월석 역시 효능을 잃어 돌멩이로 전락했을 겁니다.”

초월석이 사라졌단 말에 역시나 협회장들은 동요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왜 없앴냐고 따지진 않았다.

오히려 없앤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눈초리들이었다.

“크루즈는 게이트를 통해 대륙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란 것을 알려드리죠.”

-크루즈들에게도 그런 능력이…….

게이트를 통한 대륙 이동.

이 능력까지 지녔단 말에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본래 그 능력은 정령들, 시오스의 능력이었지만. 아까 제가 말했죠? 더스티란 놈이 있다고요.”

-크루즈의 말단 병기…….

“그 더스티는 헌터나 정령을 집어삼키고, 가지고 있던 능력을 크루즈에 받게 변형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먼 과거의 전쟁 중, 희생당한 시오스의 정령이 있고. 크루즈들이 그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거군요.

눈치 빠른 독일 협회장이 곧장 답했다.

“그렇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상대군요. 생각보다.

헌터를 투입한다고 해도, 희생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헌터가 가진 능력까지 크루즈들에게 전이되니, 강한 능력을 가진 든든한 아군 헌터가.

죽게 되어 크루즈들에게 그 능력을 제공하는 적군이 되는 상황까지 놓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정령의 주인인 저와 히로시, 로버트 윤만이라도 먼저 노르웨이로 가겠습니다. 나머지 협회들은 연합대를 조직하고 실력이 출중한 헌터들을 파견할 준비를 해 주세요. 그 헌터들은 제가 책임지고 살리겠습니다.”

일단 내가 조치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크루즈와의 전쟁.

피할 수 없기에 이제 극복할 일만 남았다.

단,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나 혼자만의 전쟁이 아니란 점.

세계가 나를 돕는 중이다.

-저희 독일은 곧장 준비하겠습니다.

독일 협회장의 답을 시작으로.

회의에 참석한 모든 국가가 연합대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그럼 노르웨이 협회장님, 항공편 준비는 언제면 가능합니까?”

-마침 한국 공항에 있는 저희 항공편 하나가 있습니다. 그 비행기 타고 바로 오실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나부터 먼저 가서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했다.

“이따 뵙겠습니다.”

난 그들에게 희망을 품어주며, 먼저 협회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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