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67화 (167/200)

§ 167화. 크루즈의 실체 (3)

“끄윽…… 끅!”

나에게 염력으로 몸이 묶인 헌터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발악 중이었으나, 난 그럴수록 더 강한 힘으로 그의 몸을 꼼짝도 못하게 했다.

그 결과.

헌터의 몸은 단 1mm도 움직이지 못한 채, 동상처럼 굳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그대로 또르르 흘러 그의 턱선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뭘 하겠다고.”

크루즈와의 전쟁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

따라서 크루즈와의 전쟁은 불가피한 상황.

피할 수 없으면 맞서서 극복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여태까지 겪은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

나 역시도 여유란 게 없는 일이기에 지키면서 싸우는 방법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상황을 몰라서 그러겠지만.”

물론, 헌터의 눈에도 내 행동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갑자기 협회장의 호출을 받고 불려 나왔으며, 영문도 모른 채로 일단 레이드를 진행하란 지시를 받고, 진행하고 나온 뒤에 약하니 어쨌니 하는 소리를 들으니 당연히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하지만 다가올 상황의 심각성을 나만이 제대로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

“돌아가는 대로 세계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해 봐. 특히 미국.”

“무슨 소리야…….”

“그 상황 속에서 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는 거야. 내 눈엔 아무것도 못 할 거 같거든.”

지키면서 싸우는 방법은 포기하고, 오직 이겨야만 하는 싸움으로 전환됐다.

인류사의 전쟁과 똑같다.

전쟁에서 아군의 사상 단 한 명도 없이 승리하는 게 중요하던가?

아니다.

사상은 불가피한 일이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필수적인 일이다.

따라서 전쟁 속 명장의 기준은 최대한 적은 사상을 내고, 얼마나 값진 승리를 거뒀느냐다.

나도 졸지에 명장이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선 상태다.

이미 나는 사상을 막지 못했다.

크루즈가 인간계로 침략한 정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그러했으며.

미국의 라이브 뉴스 속보만 보더라도 이미 상당히 많은 수의 헌터와 일반인이 희생됐다는 게 확실하니까.

그 희생을 최대한 줄이며, 크루즈를 완벽히 몰아내야만 했다.

“다들 명심해. 우린 이제 목숨 걸어도 될까 말까한 판이야.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면. 돌아가는 즉시 알아봐.”

그 말을 남기며 난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곧장 장길수가 있는 협회로 향했다.

***

윤도원이 떠난 뒤.

모인 헌터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아니,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말야.”

그들이 투덜대며 반신반의한 반응으로 휴대폰을 슬쩍 들었다.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온통 미국의 속보 소식으로 가득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헌터들은 그렇게 의문의 기사들을 살폈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제야 확인하게 되었다.

“야…… 뭐야, 진짜 장난 아닌데……?”

메테오가 다발로 쏟아지며 폐허가 된 미국의 본토.

천조국, 세계의 리더라 불리는 찬란한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 대국의 본토가.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윤도원이 한 말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몬스터가 벌인 일이라는 거 아냐? 우리가 없애야 할 몬스터의 정체.”

헌터들은 돌아가지 않고, 발이 그 자리에 굳은 채로 휴대폰 하나에 3~4명씩 달라붙어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 전부를 찾아 보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일이 끝난 게 아닌, 현재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런 괴물들을 우리가 상대해야 한다고?”

드문드문, 화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의 모습도 보였다.

지옥을 관장하는 괴물과 같은 생김새.

피부는 온통 까맸으며 피부에 용암이 흐르는 것과 같은 기괴한 생김새였다.

그들은 방금 겪은 몬스터들과는 생김새부터 달랐으며, 기괴한 생김새에서 나오는 혐오감과 공포감은 배 이상이었다.

“……난 못해.”

그저 흉측하게 생긴 것만이 아닌, 메테오가 떨어진다는 것 때문이다.

일정한 형식도 아니고,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메테오.

메테오는 피아식별 없이 모두를 강타한다.

그런데 화면 속 몬스터들은 메테오에 맞아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메테오에 맞으면 몸이 더 단단하거나 거대하게 변하는 등,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몬스터 종류였다.

“윤도원. 그 사람은 이런 몬스터라는 걸…… 미리 알았던 건가?”

그제야 윤도원이 보인 행동이 이해되었다.

약한 놈은 필요 없다.

약한 놈 하나 때문에 다 죽는 거 사양한다.

고작 자신의 능력에 당해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냐 등등.

왜 저런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을까 싶었는데.

실상을 마주하니 그 행동은 나름대로 깊은 뜻을 가졌던 것이다.

“미국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상대해, 저걸?”

대부분의 헌터들은 동영상 하나만 보고 지레 겁을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능력으로 저 재앙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아, 이 병신들이.”

한 남자의 목소리가 좌중의 귀에 꽂혔다.

동시에 헌터들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남자를 쳐다봤다.

모두에게 비수를 꽂은 인물은 SF길드와 아테나 길드가 사라지며 국내의 초대형 길드로 떠오른 무성 길드의 길드장, 오문성이었다.

최현민 협회장의 시대가 끝나며.

득세를 취하던 강만식의 SF 길드도 몰락했고, 그 자리를 대신한 무성 길드.

그곳의 길드장이 모두를 향해 광역 도발을 걸어도 누구 하나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SF 길드의 강만식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인전에 한해서는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고 한다.

비록, 그가 가진 능력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라도.

대인전 관련 능력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 실력이라는 명성이 뒤따르니, 누구도 강만식을 향해 노골적인 반항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게다가 강만식의 뒤를 봐주던 것이 협회장 최현민이었으니.

정말 오늘만 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와 척지며 살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최현민이 있던 시절에도 묵묵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최현민 눈치를 보지 않고 했던 사람.

그가 바로 무성 길드의 오문성이다.

헌터의 능력은 크게 세 종료라고 볼 수 있다.

대인전 특화냐, 몬스터전 특화냐.

그 두 가지에도 속하지 못하면 워프와 같은 서포팅이냐.

오문성이 바로 몬스터전에서 특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레이드 실력이 워낙 뛰어나 그가 직접 설립한 길드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레이드 성공률 120%, 부상률 3%라는 기이한 업적을 세운 국내의 유일한 길드다.

특히 레이드 성공률 120%.

100%면 100%지, 100%가 넘어가는 수치를 기록한 이유는.

정식 던전이 있었던 시절 한국 협회가 던전 레이드를 각 대형 길드에게 할당시켰고, 길드가 할당받은 레이드를 진행시키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보통 1년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다른 길드에서 할당받은 레이드를 미처 소화하지 못해, 무성 길드로 넘기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할당받은 레이드 건이 10건이라면, 실제 성과를 올린 레이드는 12건.

그래서 100%가 넘는 수치를 기록하는 유일한 길드였다.

레이드면에서는 국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유일무이한 위엄을 뽐내는 오문성이다.

나이는 40대 초반.

길드장의 나이치고는 젊은 편도, 늙은 편도 아닌 적정한 나이.

파마를 한 것 같은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카락.

심지어 장발이라 그가 걸을 때마다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는 흔들흔들하는 것이, 머리카락이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였다.

“생각하는 꼬라지들이 너무 병신 같아서 참을 수가 없네.”

이제 정식 던전도 사라진 상태고, 그의 특기인 레이드를 행할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 속에서 살면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에.

장길수 협회장의 긴급 호출을 받고 아주 즐겁게 레이드에 임한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뿌듯한 성취감도 잠시.

헌터들이 동영상 하나 보고 지레 겁먹는 모습과 심지어는 “난 못해.”라고 패배감에 찌든 모습들을 보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문성도 그 문제의 동영상을 안 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신조차도 과연 저런 몬스터를 상대한다면, 사지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당연하게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음가짐과 생각의 문제였기에, 그가 나선 것이다.

“야 이 병신들아. 뭐? 못해? 난 안 해? 그게 헌터들이 할 소리야?”

“…….”

“생각해 봐. 우리보다 강한 헌터들이 많은 미국이 저 지경인데. 미국이 끝장나면 우리라고 안전해? 이게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일이냐고. 우리까지도 피해 보는 일 아니야?”

그가 화를 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헌터력 세계 1위라는 미국도.

저거 하나 막지 못해서 쑥대밭이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대로 끝.

하지만 미국이 끝났다고 해서 이 사태가 끝이 날까?

아니다. 이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만 남았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그 타깃이 될 것이고, 그들까지 무너진다면 아시아에 있는 한국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날 것은 명백했다.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하냐?”

“그럼 뭐 어쩌라고! 세계 강대국인 미국도 못 막았어! 우리라고 막을 방법이 있냐고!”

“이 새끼가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확. 잘한 거 하나 없는 게.”

오문성은 정말 위협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뺨이라도 후려갈길 기세였다.

그 기세에 잔뜩 주눅이 든 헌터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미국은 얘기치도 못한 상황에 습격받아서 저런 지경이 된 거고. 게다가 미국은 자력으로 막으려다가 뚫린 거잖아. 그러니까 세계 헌터들 전부가 힘을 합쳐서 막을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저 몬스터 군단이 다른 나라까지 퍼지기도 전에.”

오문성의 말뜻은.

저 몬스터가 강한 것은 맞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저 몬스터 군단이 적어도 미국을 벗어나지 못하게, 세계의 모든 헌터가 연합하여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

하지만 이것은 평소 레이드에 자신이 있는 오문성만이 가질 수 있는 발상.

다른 헌터들은 동의하는 표정들이 아니었다.

“병신들 진짜 맞았네. 쓰레기 새끼들.”

그들의 표정을 읽은 오문성은 그들에게 경고 하나를 남겼다.

“난 협회장한테 건의할 거야. 국내 헌터들도 부대식으로 모집해서,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저 몬스터들이 미국을 넘어 다른 나라까지 저 지경으로 만드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다른 나라까지 무너지면 한국 순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한국은 중앙 의회 상임국. 그 권력을 이용해서 회원국 중에서 미국 파견을 희망하는 헌터들이 있다면 싹 다 보내자고. 그리고 우리가 힘을 합쳐서 막아야 한다는 건의지. 그런데.”

특히 패배감에 찌들었던 헌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너처럼 헌터면서 자기 살 궁리만 하는 놈들은 헌터라고 할 수 없으니, 너 같은 놈들은 꼭 헌터 딱지를 떼면서 징계받을 수 있게 만들 거야.”

일반인보다 강한 힘을 가진 헌터라면.

몬스터라는 재앙으로부터 일반인을 지켜야 하는 책무를 가졌다.

그 책무를 어겼으니, 더는 헌터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경고였다.

“평생 병신 소리 들으며 살라고. 내가 어떻게든 너 같은 애들은 병신 소리 듣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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