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크루즈의 실체 (1)
“무슨 소리지?”
게이트 안에서 들린 소리에 모두가 집중했다.
안에서는 분명히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한 사람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기계음을 덕지덕지 발라 변조한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게이트를 여태껏 방치한 이유도.
게이트를 당최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51구역으로 복귀하지 않고 게이트에 관한 연구를 지속했다.
보통 게이트라 하면 안에는 던전이라는 공간과 몬스터가 있어야 하고, 초월석도 함께 있어야 한다.
초월석을 회수한 순간, 던전은 붕괴되며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까지 소멸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나 2개월 전에 윤도원이 만들고 간 이 게이트에는 던전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아무것도 없기에 정복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장 패트릭이 게이트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슈슉-!
검은 소용돌이와 같이 생긴 게이트 입구에서 무언가가 불쑥 솟아 나왔다.
뾰족한 검은 송곳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송곳과는 확실히 달랐으니, 사람의 상체 전부를 뚫고도 남을 정도로 굵고 거대한 송곳이었다.
“커억…… 컥…….”
갑자기 튀어나온 송곳에 찔린 사람은 게이트에 가장 가까이 있던 패트릭이었다.
순식간에, 패트릭이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바닥에는 피 웅덩이가 고였다.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왜…….”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의문의 공격.
그리고 첫 희생자가 생긴 순간, 게이트를 살피던 연구팀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리며 도망치기 바빴다.
[에이, 뭐야. 이건 맛없는 거잖아. 아무것도 없어.]
연구팀장을 공격했던 것은 바로 더스티.
더스티는 초월석이나 정령, 혹은 능력을 가진 헌터를 공격하여 가진 능력을 빼앗는 크루즈의 전용 병기다.
하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는 연구팀장을 공격한 것이기에 더스티가 추출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맛이 없다고 표현한 것이지만.
이 뜻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다.
그 직후.
[크크큭! 드디어 길이 완전히 열렸구나!]
[여기가 이제 시오스들의 본거지라는 거지?]
[정말이지 귀찮아 죽겠네.]
이번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목소리.
이 목소리 역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게이트 밖으로 드디어 목소리의 정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게 도대체…….’
세간에 알려진 몬스터의 생김새와는 완벽하게 다른 것들이었다.
신종 몬스터라고 칭해야 하는 걸까.
특징이 하나 있다면 몸체가 전부 검은색으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검은색……?’
그들의 특징을 본 매튜 협회장은 아찔한 과거 하나가 스쳤다.
바로 51구역에서 벌어진 몬스터 대소동.
당시도 형체가 괴이한 몬스터 하나 때문에 상당히 많은 헌터들이 희생당했고, 몬스터가 가진 힘도 굉장히 강했다.
‘저게…… 한국의 윤도원이 말한 크루즈라는 건가?’
비슷한 몬스터를 굳이 찾아보자면, 외형은 오크와 상당히 흡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크라고 볼 수도 없었다.
바로 그들의 피부 때문이었다.
화산 지대의 땅처럼.
온통 까맸으며 심지어 중간중간엔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붉은 선이 존재했다.
마치 사람으로 치면 피부에 핏줄이 선명히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생김새들이었다.
[뭐야? 처음 보는 형태인데.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시오스들의 본거지가 아닌 것 같은데?]
[그나저나 왜 이렇게 좁아? 길부터 만들자!]
콰앙-!
콰앙!
게이트에서 나온 크루즈로 추정되는 의문의 생명체들은 이제 닥치는 대로 중앙 협회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매튜 협회장은 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매튜 협회장의 본능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중이다.
‘도망쳐.’라고.
매튜 협회장 역시 본능적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크루즈가 확실한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중앙 협회를 도망치면서 생각했다.
분명 게이트만 일정 수 이상 유지하면 크루즈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저들이 인간계에 모습을 들인 것일까.
2개월 전에 새롭게 생긴 국제기관 중앙 의회.
그곳에서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게이트가 결코 적지 않다는 소식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도 잠시.
그는 일단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대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끄아아악!”
“끄악!”
그의 등 뒤에선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지만,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도망치기 급급했다.
***
급한 대로 나와 히로시, 로버트 윤까지.
세 명이 함께 게이트를 정복하기에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령의 주인인 우리 셋이 함께 들어가니, 몬스터와 싸우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흑염룡과 처음 만났을 때, 몬스터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나를 먼저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정령 셋이 모이니 적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 셋이 뭉치니 게이트를 정복하는 일은 정말 수월하게 진행됐다.
[알겠지? 지금 크루즈가 인간계도 상당히 많이 넘어온 상태야!]
흑염룡이 나서서 몬스터들에게 말했고.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몬스터들 역시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절대 의심하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게이트를 빨리 없애야 해! 너희들은 여길 버리고 돌아가! 이 던전 없앨 거니까!]
[알겠습니다!]
말 몇 마디로 던전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은 부리나케 사라졌고, 우린 초월석만 회수하면서 진행한 레이드다.
“이건 참 편하군…….”
로버트 윤이 이런 상황을 겪으며 말했다.
레이드라 하면 보통 만반의 준비를 가져야 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
하지만 우리가 행하는 레이드 방식은 고작 정령들이 나서서 몬스터와 말 몇 마디를 주고받고, 그것으로 끝이었으니 로버트 윤도 처음 겪는 평화로운 레이드에 상당히 놀란 듯했다.
“지금은 그런 한가로운 반응 보일 때가 아니니까…….”
그렇게 우린 서둘러 던전 밖으로 나갔고, 다음 던전도 똑같은 방식으로 순조로운 레이드를 진행했을 때였다.
“그런데. 형. 한국에 있는 헌터들 전부 소집했다며. 그들이 들어가면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히로시가 궁금함에 물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정확히 몰라, 흑염룡을 쳐다봤을 때.
[그렇지. 정령의 주인이 아닌 헌터들이 들어가면 몬스터와 싸워야지.]
흑염룡은 뭘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묻냐는 투로 답했다.
“그냥 우리가 전부 돌아다니면서 회수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불필요하게 헌터들까지 부를 이유가 있었나…….”
평화로운 방법을 놔두고, 혹시 모를 헌터의 부상에 대해 걱정하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크루즈가 인간계로 넘어온 것이 확실한 이 상황에서.
헌터 한 명이 소중한 상황에 놓였다.
레이드 진행 중에 누군가가 심각한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크루즈에 대항하는 전력이 약해지니, 당연한 결과다.
“그렇긴 한데. 지금은 방법이 없잖아.”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했겠나.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게이트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게 문제다.
정령의 주인은 총 셋.
우리 셋이 전부 찢어져서 평화로운 레이드를 진행한다고 해도.
400개가 넘는 게이트를 전부 레이드 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그 시간 속에서 크루즈들이 가만히 있을까?
만에 하나.
양산부에 있는 게이트 중 하나라도.
크루즈들의 전용 통로로 변해 버리면 그건 더 심각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험 요소가 있다 한들, 한국의 헌터 전원을 긁어모아 레이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했다.
난 그런 설명들을 한 뒤에야.
“참…… 답답하네요. 레이드에 나서는 헌터들이 다치질 않기만을 바라야겠어요.”
히로시도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아쉽게 답했다.
그렇게 우리 셋이 닫은 게이트의 숫자가 10개를 넘어갈 때.
“도원아, 잠깐 얘기 좀 하자.”
협회에 있던 장길수 협회장이 양산부까지 직접 찾아왔다.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워프 능력을 이용해 곧장 찾아온 모양이다.
장길수는 혼자만 오지 않았다.
일단 자신이 함께 데리고 올 수 있는 헌터 전부를 대동한 모습이다.
드문드문 낯이 익은 헌터들까지 보였는데, 바로 태원 서큐리티로 사설 경호원 생활을 하던 헌터들까지 전부 긁어온 모습이다.
“느긋하게 얘기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데…….”
“중앙 의회 건 때문이야. 나도 상황을 확실히 알아야 뭐라고 설명이라도 하지. 일단 내가 데리고 올 수 있는 헌터들 전부 데리고 왔고. 추가적으로 도착할 거니까 잠깐 설명 좀 해 줄 수 있나?”
장길수가 급하게 데리고 온 헌터의 수는 대략 70명.
“얼마나 더 오죠?”
“최소 400명은 더 올 거야. 좀 한다는 길드들 전부 비상 소집했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그 정도로 많은 헌터들이 온다면, 일단 한시름 놓기는 했다.
그리고 장길수의 말도 맞다.
이제 우리는 게이트를 만들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중앙 의회 회원국들은 왜 갑자기 게이트를 만들지 않냐며 반발할 가능성이 충분한 상태.
협회장인 장길수가 정확한 내용을 알아야 그들을 설득하거나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시죠. 다들, 괜찮지?”
로버트 윤과 히로시에게 물었다.
내가 잠깐 빠져도 괜찮냐는 질문이었다.
둘은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니까.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 정령은 우리에게도 있잖아?”
듬직한 맏형 로버트 윤의 답이다.
“네, 저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최대한 빨리 없애 볼게요.”
히로시도 든든한 답을 남겼다.
“가시죠.”
나와 장길수는 시장통을 이루는 게이트 구역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됐다.
“일단 크루즈와 게이트의 상관관계부터 알고 싶은데. 크루즈가 나타난 것과 게이트 전부를 닫아야 하는 이유.”
“정령에겐 활류라는 능력이 있어요.”
난 활류의 능력을 설명했다.
“설마……?”
설명은 들은 장길수는 곧장 의심 가는 것을 추측했다.
“크루즈들도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고, 저 게이트를 통해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거야?”
“정확하시네요.”
“……그래, 잘 알겠네. 왜 게이트를 그렇게 급하게 없애려고 했던 건지. 하지만…….”
장길수의 고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난 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았다.
“게이트를 하루아침에 전부 없앤 것. 그로 인해 벌어질 상황. 그걸 대비해야 한다는 거죠?”
장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400개가 넘는 게이트를 하루 안에 전부 없애야 한다.
그렇다면 400개가 넘는 초월석이 추가로 생기지만.
이젠 아니다.
실존하는 게이트가 이젠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정식 던전이 말끔히 사라져 초월석 전체가 효력을 잃은 것처럼.
우리가 수급한 초월석도 똑같이 돌멩이로 전락하게 될 거니까.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반발은 전부 우리가 감당해야 했다.
장길수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중이다.
“그건 걱정 마세요.”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뭔가 방법이…… 있는 거야?”
“아뇨, 방법은 없어요.”
“그런데 왜?”
“세계인은 초월석이 사라진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니까요. 아니, 관심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죠.”
장길수는 이해가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