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평화로운 날도 잠시 (2)
“아, 진짜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한다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
내가 흑염룡에게 애원하듯 말했을 때.
[…….]
흑염룡은 눈빛에 심한 욕을 담고 두 손으로는 자신의 귀를 꾹 막아버렸다.
약 2개월 전.
중앙 의회는 세상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협회 회의실에서 각 협회장들을 모아 놓고 진행한 화상 회의 이후.
곧바로 장길수는 한국 정부와 함께 산유국들과 협상을 진행했고, 초월석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는지, 협상은 아주 순조롭게 끝이 났다.
그렇게 곧장 설립되고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중앙 의회.
시작 당시엔 21개국 협회만이 모였지만, 지금은 어느덧 전세계 국가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100개국이 넘는 회원국이 되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중앙 의회 가입 의사를 표하는 나라가 넘쳐난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가입 승인을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상임국인 한국 협회와 일본 협회는 철저한 심사를 진행 중이다.
단순히 초월석만 얻기 위해 가입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새로운 국가들 중에 우리 뒤통수를 칠 국가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심사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 의회가 공식적으로 활동한 2개월 동안 당연히 중앙 협회는 초상집 분위기가 따로 없었다.
이제 뉴스에서 그들의 소식을 들을 일도 거의 없으며.
아직도 미국 협회는 중앙 의회 가입을 신청하지도 않고 있다.
이런 현상들 때문에 새롭게 가입하려는 협회 중, 미국 협회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협회가 있진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몸집을 급격하게 늘릴 수 없는 실태다.
아무튼.
그래도 중앙 의회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우리 생활 중에 달라진 게 있다면.
회원국이 늘어난 만큼 소비되는 게이트도 많다는 것.
그래서 2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흑염룡, 오리가미, 오르문.
이 세 정령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특히 흑염룡.
오글거리게 하면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그 능력 때문에.
세 명의 정령 중에서 가장 혹사당하는 중이다.
내가 흑염룡에게 애원하는 이유도.
흑염룡은 정신을 온전히 붙잡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게이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흑염룡 혼자서 만든 게이트는 하루에 약 12개.
거의 내가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전부 혹사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심한 욕설을 담은 눈빛을 내게 보내는 중이었다.
[야. 윤도원.]
“어, 그래! 염룡아! 왜?”
[인간적으로 너무 심한 거 아냐? 오늘만 벌써 16개나 만들었거든?! 아직 저녁도 안 됐는데 벌써 16개라고!]
흑염룡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늘은 유독 내 컨디션이 좋아 흑염룡 오글거리기 작전은 연신 성공 가도를 달렸다.
“알지, 알지.”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게이트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지난 2개월.
정말 흑염룡을 고문하다시피 한 결과.
현재 우리가 있는 양산부에 수용한 게이트는 무려 400개가 넘는다.
그리고 지난 2개월 사이,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우리 양산부를 중앙 의회에선 공식 명칭으로 ‘게이트 단지’라고 부른다.
단지를 이룰 정도로 많은 게이트가 쌓인 것이다.
물론, 단지 내에 있는 게이트 400개를 전부 흑염룡 혼자서 만든 건 아니다.
히로시의 정령, 오리가미가 틈틈이 게이트의 개수를 늘리기도 하고.
로버트 윤의 정령 오르문도 힘이 될 때마다 게이트를 늘려줬다.
우리가 한 달에 평균적으로 만들어 놓는 게이트의 숫자는 약 80개.
소비하는 게이트는 무조건 생산량의 절반으로 고정해 뒀다.
이는 중앙 의회 회원국들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 정해진 규정이었다.
90개를 만들었다면 45개를 소모해야 하고.
10개밖에 못 만들었다면 5개만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게이트라는 게 다다익선이지 않던가?
게다가 흑염룡을 처음 만났을 때도 밤하늘에 있는 별처럼.
초월석의 개수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대에 가까운 개수라고 하니.
나도 욕심이 생겨서 많은 게이트를 만들던 중이었다.
하지만 너무 과했던 걸까.
결국, 참다못한 흑염룡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절대 안 만들어!! 이만하면 됐다고!]
여전히 두 귀를 틀어막은 채, 강렬한 시위를 진행 중이다.
“저기, 도원아?”
로버트 윤도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네.”
“내가 봐도…… 너무 과했어. 당분간 쉬는 게 좋아 보이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 정도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일단은 한발 물러나 주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염룡아.”
[닥쳐. 한마디도 뻥긋하지 마!]
지난 2개월의 행군이 심하긴 했던 모양이다.
이제 부르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사납게 반응하다니.
“그래? 사과라도 하려고 했는데. 닥치고 있으라니까 아쉽게 됐네.”
[……그건 해야지!]
“알았어, 미안하게 됐어. 당분간 쉬자. 게이트도 400개가 넘으니까 안전한 거 맞지?”
[그렇겠지.]
우리가 사용하기 위해 게이트를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늘리는 건가.
다 크루즈라는 미지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 크루즈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 게이트밖에 없다고 했으니.
크루즈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무리한 이유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있던 주적들과 전부 싸웠고, 승리를 거뒀다.
한국의 경우엔 최현민 협회장을 몰아냈고.
그는 수감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
그리고 세계 무대로 나왔을 땐. 중앙 협회장 매튜가 나의 주적이었다.
하지만 중앙 협회는 이제 과거의 그 찬란했던 명성 전부를 잃어버린 뒤이고, 소식도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중앙 협회를 구성했던 협회 대부분이 현재는 탈퇴했고, 중앙 의회에 가입 의사를 밝히는 중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 삶은 이제 평화롭기만 하다.
걱정할 것이라곤 크루즈 하나밖에 없으니, 그 크루즈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중이었다.
“미안하게 됐어. 푹 쉬어.”
그 고생에는 흑염룡도 러닝메이트로 함께 했다.
아, 물론 흑염룡이 더 큰 고생을 했지만.
아무튼 그런 흑염룡을 이제야 위로하듯,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손 치워!]
화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흑염룡은 내 손이 머리에 닿자마자 발작하며 손을 뿌리쳤다.
저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라면…….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겠지.
난 이제 정말 흑염룡을 건드리지 않겠단 다짐을 하며 시선도 뗐다.
이렇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평화롭구먼~”
정말 이렇게 느긋한 일상을 맞이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양산부 내에 있는 TV 앞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활짝 켤 때였다.
덜컹! 덜컹!
그러던 중, 요란한 바퀴 소리가 들려 왔다.
권다정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양산부로 복귀하던 것이었다.
권다정이 중앙 의회를 위해 어떤 출장을 했던 건 아니다.
권다정이 양산부로 합류하면서 하나는 지켜달라고 했던 약속.
바로 흙을 가진 게이트가 있다면 하나만 자신에게 달라고 했던 그 약속 때문이다.
일전에 로버트 윤이 중앙 협회에 있던 시절.
매튜 협회장에 의해 양산부의 게이트 17개를 정복한 적이 있고.
그 17개 중에선 내가 권다정에게 줬던 게이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게이트가 많이 늘어나다 보니, 권다정을 위한 게이트 하나 정도는 다시 줄 수 있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를 주었고, 그곳에서 채취한 던전산 흙을 타국에 있는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헌터들에게 팔며, 차곡차곡 돈을 모으던 그녀였다.
오늘도 그녀는 던전산 흙 거래를 마치고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
본래 전에는 직접 해외로 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그녀가 직접 해외로 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있었느니.
바로 비행기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안정화 작업이 들어가기 전.
비행기라는 건 이제 각국의 재벌이 아니고선 꿈도 못 꿀 정도로 비싸진 교통수단이 되었다.
듣자 하니 석유에도 초월석처럼 급이란 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귀한 석유가 바로 항공유라 불리는, 비행기에 들어가는 석유.
세상에 존재했던 초월석이 효력을 잃으며, 석유가 비싸졌고.
대중교통까지도 마비가 될 정도였는데 비행기는 오죽할까.
물론 나 같은 경우에야 중앙 협회가 직접 비행기를 공수하는 등의 편의가 있어 그런 불편함 없이 다녔지만.
나와 같이 특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매일이 암담함 그 자체였다.
“잘 다녀왔어요?”
시선은 주지 않은 채, 말로만 인사를 건넸다.
“아니.”
그런데 오늘 권다정의 목소리가 상당히 심통하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듯한 모습이다.
아무래도 거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왜요? 네고를 너무 심하게 했어요?”
2개월 안에 일어난 일 중 하나다.
권다정과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해외 헌터 중 진상 헌터들도 있었다.
“너희 나라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나라 아니냐? 심지어 게이트를 만드는 사람과 친하다면서, 싸게 줄 순 없는 거냐? 이런 횡포가 어딨어?!”라며 폭언과 폭력으로 맞서려던 헌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해결사, 로버트 윤이 직접 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오곤 했다.
권다정이 던전의 흙을 파는 일은 중앙 의회 내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던전산 흙으로 자원 뻥튀기처럼 인류에게 이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그런 잡음이 많았다.
“무슨 일 있으면 로버트 형 부르지 그랬어요.”
“그런 거 아니야. 에휴, 머리 아파.”
그럼 무슨 일 때문에 저렇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알고 싶진 않았다.
괜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거래도 사람 봐 가면서 해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거래한 상대가 미국 헌터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
“혹시…… 중앙 협회가 거래 방해했어요?”
쪼잔한 중앙 협회는 미국 내 모든 한국, 일본 헌터를 입국 금지시켰다.
이는 로버트 윤을 뺏기고, 한국과 일본이 중앙 의회를 만든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보였다.
“아니야. 그런 거. 어차피 그쪽도 내가 미국으로 못 가는 거 알아서 중간 지점에서 만났거든.”
“그런데 왜요?”
“아니, 글쎄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해대. 나는 흙을 분명히 보냈는데 그쪽은 못 받았다고. 제대로 보낸 게 맞냐고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환불해 달라는 거야. 그거 가지고 싸우느라 진이 빠진다. 저쪽이 거짓말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권다정이 거래하는 방식은 흙을 대량으로 주문하면 국제 택배로 보낸다.
이번 주문자가 대량으로 주문했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직접 해외를 갔다 온 경우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어떡하긴. 정확히 알아본 다음에 우리 쪽이 착오가 있었다면 새로 보내준다고 했지. 주문한 것보다 더 많이.”
“그래도 잘 끝났네요.”
“에휴, 몰라 머리 아파. 아니 흙이 중간에 어디서 사라진 거야? 누가 훔치는 건가?”
권다정이 그런 추측을 하던 때.
난 무심코 TV를 틀었을 때였다.
[속보입니다. 미국 플로리다 해협에 괴이한 현상이 포착되었습니다. 이 현상의 2개월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곧장 자료 화면이 나왔다.
푸른 바다에 어울리지 않은 검은 소용돌이가 화면에 나타났다.
[……윤도원. 잠깐만.]
흑염룡이 심각하게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