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평화로운 날도 잠시 (1)
독일 협회장이 모두를 휘어잡듯, 한국에서만 게이트를 만들면 전세계가 이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할 때.
공항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그가 든 예는 정말 단순한 예시가 아닌, “나중에 그 정도는 해야 모두가 계속 한국에서만 게이트를 만들어도 불만이 없을 거다.”라는 뜻이 깔려 있던 것이다.
물론, 비단 공항만이 아닌.
다른 이점들도 지속적으로 나와야 이 정책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거란 은은한 협박이었다.
“독일 협회장. 능력이 그렇게 좋은 양반이라며?”
장길수가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로버트 윤은 직접 독일 협회장을 겪은 사람이기에 여기 모인 사람 중에선 독일 협회장을 가장 잘 알았다.
“네. 헌터의 능력만이 아닌 사람 개인의 능력이 참 좋은 협회장이죠. 머리도 상당히 좋고요.”
로버트 윤도 부정하진 않았다.
“실제로 중앙 협회 시절에도 많은 연구나 정책을 건의했지만, 소리소문없이 독일 협회장이 낸 건의들이 사라졌지만요.”
“흠, 중앙 협회장의 폭정이 생각 외로 심했던 모양이야.”
독일 협회장이 하소연하듯 말했었다.
중앙 협회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불만이었다고.
그리고 그것이 중앙 의회로 합류한 가장 큰 이유라고.
겉으로는 건실한 기관으로 보였던 그런 중앙 협회가.
최현민 시절의 한국 협회처럼 문제가 많았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일은 잘 해결됐으니 이제 슬슬 준비할까.”
장길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하다니요? 뭘요?”
“뭐긴? 자네 부서 근처에 공항 지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짓는다면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그런 걸 알아보기 위해선 대통령이랑 미팅해야지.”
아직 일이 제대로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항을 지을 생각부터 했다.
내가 갸우뚱한 반응을 보이자 장길수는 허허실실 웃으며 말했다.
“정치라는 게 일단 저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게 좋을 때가 있거든. 일이 제대로 시작도 되기 전에 미리 환경을 마련해 놓으면, 저들 불만이 조금 사그라지지 않겠어?”
한국에서만 게이트를 만든다고 했을 때.
독일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들의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공항 정도는 먼저 만들어 놓는 편이 앞으로를 위해서도 좋단 뜻이었다.
“따라서 나는 당분간 바쁠 예정. 우리 헌터들은 뭐 하면서 지낼 생각인가?”
“저도 당연히.”
흑염룡을 슬쩍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바쁠 예정이죠.”
이젠 정말 마음껏 게이트를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게다가 사용될 게이트의 숫자도 많아졌으니, 쉬지 않고 게이트를 찍어내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하아…….]
다가올 운명을 직감한 흑염룡은 자신의 이마를 짝 치며 한숨을 뱉었다.
“에헤이, 뭘 그런 반응을 하고 그래.”
흑염룡을 달래듯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사실, 달래려는 생각보단.
“그래, 그렇게 마음의 준비 하고 있어.”라는 뜻을 담은 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손 떼라.]
흑염룡은 벌써부터 나를 한껏 경계했다.
“살려는 드릴게. 마음 단단히 먹고.”
[고막을…… 빼 버릴까.]
한창 흑염룡과 가벼운 말장난을 하고 있을 때.
“그런데 형. 남은 초월석은 어떡할 거예요?”
히로시가 물었다.
일전에 로버트 윤이 중앙 협회 소속일 때.
내가 만들어 놓은 게이트를 멋대로 정복했고, 그 중간에 나에 의해 저지당했다.
로버트 윤이 정복한 게이트는 총 17개.
그리고 내가 한국 정부로 넘긴 초월석은 4개.
이제 13개의 온전한 초월석이 남았다.
심지어 등급도 전부 아는 상태다.
로버트 윤은 게이트를 정복하고 난 뒤에 중앙 협회에서만 사용하는 휴대용 감별기를 통해 초월석 등급을 전부 따로 표기해 뒀기 때문이다.
“그러네. 그 남은 초월석 활용해야 할 때네.”
한국은 급한 불을 껐다.
전세계 최초로 안정화 작업이 들어갔고, 그 효과가 하루 만에 긍정적으로 나타났기에 당분간은 필요 없게 됐다.
따라서 남은 13개의 초월석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고심해야 한다.
“일단…….”
그러던 중, 내 시선에 밟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 협회장 헤이로였다.
그는 여전히 앉은 채로 테이블에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행동이 내 눈에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행동으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냥 달라고 말하지. 뭘 눈치를 보는 거야?’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행동.
초월석을 갖고 싶지만, 쉽사리 말하기 힘들어 혼자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눈치 볼 이유가 어디 있나?
한국과 일본은 중앙 의회의 상임국이 되었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헌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헤이로는 이제 저렇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일본이 하나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
역시나.
내가 그 말을 한 순간, 헤이로 협회장의 손가락이 멈췄다.
“일본이……? 정말 그래도 되는 거예요?”
“응, 뭐가 문제야? 어차피 상임국이 되었고. 상임국 먼저 안정화 작업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큰 문젠가?”
“다른 협회들이 보기엔…… 부당할 수도 있잖아요.”
히로시가 답했지만.
어째서인지 이 답은 헤이로 협회장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아무리 상임국이라고 한들.
오늘 회의로 정해진 정책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협회가 적지 않다.
그들 때문에 헤이로 협회장 역시 눈치를 봤던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상임국이라고 한들.
우리가 독식하겠단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에게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이 먼저 사용하고, 회원국에 순차적으로 보내주면 된다.
난 로버트 윤을 보고 물었다.
“혹시, 회의 내내 가장 비협조적이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협회들 전부 기억해요?”
“물론이죠. 독일 협회장님이 말한 대로 전부 산유국 협회였으니까.”
“어디 보자…….”
회의에 참석한 명단을 확인한 결과.
세계 10대 산유국이라 불리는 국가가 전부 참석한 회의다.
아, 물론 1위 산유국인 미국만 제외이니, 9개 국가가 전부 참여했다.
10대 산유국에는 못 들어가지만, 그래도 산유국의 명성을 가진 멕시코, 노르웨이까지 포함하면 11개국이었다.
‘한국은 일단 초월석 4개를 사용하면서 안정화 작업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일시적이야. 특히 석유.’
수도와 전기, 가스 등등.
자발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자원에 한해서는 안전하지만.
문제는 석유다.
석유는 결국, 산유국들에게 받아와야 한다.
지금 안정화 작업이 들어간 건 한국이 보유한 자원에 한해서다.
즉, 한국에 저장된 석유에 초월석을 사용한 거고 그 석유의 양이 영원하지 않기에, 몇 년 후에는 초월석이 아예 없던 시절과 다름이 없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이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남은 초월석 13개.
산유국의 수 11개.
산유국 전부에게 돌려도 2개나 남는다.
“일단 산유국 협회한테 전부 돌리죠?”
“그렇다면…….”
“명단 보니까 11개국인데. 충분하지 않나요?”
“오, 그거 좋네! 산유국에만 우선적으로 주는 거!”
장길수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네 혹시. 산유국들에게만 우선적으로 초월석을 주면. 적어도 모든 국가가 석유 걱정은 없어지니까 그런 건가?”
장길수가 슬쩍 물었다.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간단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한국과 일본이 먼저 안정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들.
석유에 한해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용된 초월석의 등급도 최고 등급도 아니고, 낮은 상태이니 과연 이 안정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이겠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식으로도 최고 등급인 S급 초월석을 사용했을 때만 몇 년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하니, 대부분은 몇 개월 안에 끝난다고 봐야 했다.
즉, 건전지처럼 때가 되면 갈아줘야 하고 그 주기가 생각 외로 짧다는 단점이다.
하지만 산유국들에게만 우선적으로 초월석을 돌리면.
저들이 생산하는 석유에 초월석을 사용하고, 그렇게 불어난 석유는 전세계에 유통될 게 뻔하니 적어도 한국과 일본.
나아가 전세계는 석유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어진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보단. 튼튼한 독으로 바꾸는 게 낫죠.”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가장 현실적이긴 한데 문제는…….”
“산유국 협회들이 갑자기 말 바꿀까 봐요?”
또 현실적인 문제는 존재했다.
초월석을 받아 놓고선 도리어 유통하지 않고 독점 형식으로 가격을 부풀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장길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과 일본이 상임국이 된 것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던 협회들이다.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뭘 걱정합니까? 어차피 우리가 초월석을 전달해 줄 산유국은 11개국. 11개국 전부가 단합한다고 해도. 해결 방안은 있잖아요?”
“어떤?”
“초월석 공급을 끊어 버리면 그만이죠.”
“흠…… 좋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만일, 산유국 협회들이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한다면.
초월석 공급을 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하더라도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초월석을 얻지 못한 불편함이 더 클 테니까.
물론, 산유국들도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기에 그런 짓까진 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그리고 안전장치 좀 만들어야겠죠.”
“안전장치?”
“협회장님 대통령 미팅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미팅 내용에 하나 추가해 주세요. 산유국들이랑 협상 확실하게 하자고요.”
“협상?”
“네. 산유국들에게 초월석을 우선적으로 제공해 줄 테니, 책임지고 유통하라는 내용의 협상이요. 무슨 뜻인지 알죠?”
“완벽히 안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충분한 안전장치군.”
국가 대 국가 협상이라는 게.
무슨 동네 구멍가게에서 외상 달아 놓는 수준의 가벼운 거래가 아니다.
보험 약관보다도 엄한 수준의 협상이니.
그 협상문을 증거로 남겨 놓고, 내용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도 초월석 공급을 끊을 수 있는 무기를 쥐는 셈이다.
“위반 시에는 초월석 공급을 끊겠단 말도 꼭 들어가야죠. 어차피 세계는 다 알아요. 한국에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단 걸요.”
“그렇지 않아도.”
장길수가 자신의 휴대폰을 슬쩍 보여줬다.
무음 상태로 해 놔서 몰랐지만, 찍혀 있는 부재중 통화가 무려 15건.
회의 내내 그의 휴대폰으로 누군가가 계속 전화를 걸고 있다는 뜻이었다.
“뭡니까, 그건?”
“협회 직원들이 나를 못 찾아서 안달이야.”
“협회장님을 왜……?”
“왜겠어? 한국부터 안정화 작업이 들어갔으니까 그 소식을 들은 다른 국가의 협회들이 가입 문의하려나 보지.”
하긴, 그렇게 중대한 사안이니 협회장이 직접 처리해야 할 문제는 맞았다.
“그럼, 난 정말 바빠서 이만. 할 일이 많아. 급한 건 산유국과의 협상인데. 추가될 내용은 없는 거지?”
“네, 그대로만 해 주세요.”
“좋아.”
장길수는 그렇게 떠났고.
난 이제 로버트 윤과 히로시에게 말했다.
“갑시다.”
“어디를……?”
“어디긴. 내 부서인 양산부지. 이제부터 우리 정령들 본격적으로 갈아봅시다. 합리적으로다가.”
***
“저게 뭐지? 원래 저런 게 있었던가?”
한편, 미국 플로리다 해협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화물용 선박의 선장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의문의 형체를 보곤 선원들에게 물었다.
“아니요? 이상하네. 처음 보는 건데.”
선원들도 난생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의 온 신경을 빼앗은 것은 바로 바다 한가운데에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난 것이었다.
“이상 기후 현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한데.”
“별 거 있겠습니까? 그냥 좋은 구경 했다고 생각하죠. 마침 여긴 버뮤다 삼각지대 아닙니까? 그런데 신기하긴 하네요. 이상 기후를 직접 보다니.”
버뮤다 삼각지대의 미스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던가.
물론, 전부 부풀려진 괴담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데 막상 그런 괴담을 실제로 마주하니 무서움보단 신기함이 컸다.
“사진이라도 찍어 둘까? 이런 진귀한 경험을 언제 또 해 봅니까?”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선원들 전부가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올린 순간.
쿠구궁-!
거대한 화물선에선 굉음이 울려 퍼지며 선박이 휘청였다.
그와 동시에 선박 전체엔 경보가 울려 퍼졌다.
“어어?!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쩌저저적-!
그리곤 선박이 뜯기는 소리까지 들려 왔다.
[드디어……. 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