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중앙 의회 (4)
-뻔하죠. 우리가 여기 모인 첫 번째 이유. 다들 초월석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
바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헌터를 가져서다.
독일 협회장이 말한 대로, 이곳에 모인 21개국 협회는 초월석이 가장 큰 목표였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이 뭔가 궁극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때.
-물론, 독일 역시도 당장은 초월석이 필요해 합류하게 됐습니다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독일 협회장이 선수를 치며 말했다.
초월석이 합류의 이유였긴 했으나,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란 말.
그는 중앙 의회에서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일단 현재 인류의 상황은 참담합니다. 하루아침에 생활이 고달프게 변했으니, 안정화를 갈망하는 국가가 많고. 실제로 한국이 가장 먼저 안정화 작업에 들어가면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중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과 일본은 중앙 의회의 상임국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상임국이 되지 못한다면, 독일은 과감하게 중앙 협회 합류를 철회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무조건적으로 되어야만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난 그 이유가 상당히 궁금했다.
“독일 협회장님. 그렇다면 제가 묻고 싶은데요.”
내가 한 말을 로버트 윤이 곧장 통역해 주었다.
-말씀하시죠.
“한국과 일본이 상임국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한국인인 저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고요. 하지만…….”
말을 잠시 끊고 난 로버트 윤을 쳐다봤다.
이들은 아직 로버트 윤이 정령의 주인이란 걸 모른다.
그리고 독일 협회장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인인 로버트 윤의 존재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미국 협회까지 중앙 의회에 합류한 게 아니기 때문에 로버트 윤을 소속으로 두고, 상임국에 진출하려는 협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난 로버트 윤에게 그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당신이 정령의 주인이란 사실을 이들에게 알려도 되겠냐는 양해의 신호.
신호를 받은 로버트 윤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이 직접 영어로 말했다.
“협회장님들에게 미리 알립니다. 현재 통역을 맡고 있는 저 로버트 윤도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응?
-언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세계에 3명이었던 건가?
역시, 자리에 모인 협회장들은 전부 동요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실에 꽤 큰 충격을 받은 모습들이다.
-음, 이건 이거대로 문제군요. 로버트 윤은 미국인인데. 게다가 그는 중앙 협회를 관두고 중앙 의회에 합류한 미국인이 아니오.
독일 협회장이 말했다.
그의 한마디에 동요했던 협회장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순간적으로 판단이 선 거다.
‘저 로버트 윤을 우리 협회 소속으로 만들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스친 게 분명하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 있듯이.
생각하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다.
이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기에 협회장들의 반응은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독일 협회장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미국인 로버트 윤도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데. 상임국의 기준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헌터를 가진 협회라면. 로버트 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정식적으론 미국인이기에 미국 협회 소속이지만, 그런 미국을 떠나 현재 한국에 있는 로버트 윤.
그런 로버트 윤을 차지하고자 괜한 경쟁이 붙을 수 있기에 지금 확실히 그 기준을 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의 답은 간단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합니까? 로버트 윤이 소속되고 싶은 협회를 직접 정하고. 그 협회를 상임국으로 인정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 로버트 윤. 당신이 속하고 싶은 협회는 어디죠?
언뜻 보면 복잡해질 수 있는 문제를 정말 간단히도 생각하는 독일 협회장.
말이 나온 김에 완벽히 해결하자는 뜻으로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그리고 느낌상으로 독일 협회장은 로버트 윤이 어느 협회에 속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로버트 윤 본인이 속하고 싶은 협회를 말하는데, 불만 가질 협회는 없겠죠?
잡음이 나올 것을 예상해 아예 못 박는 말까지.
이는 여기 모인 협회장들에게 보내는 경고와 마찬가지였다.
로버트 윤이 직접 선택한 협회이니 아무도 불만 품지 말아라.
불만 가질 이유조차도 없다.
이 뜻을 노골적으로 보낸 것이다.
독일 협회장의 말이 끝난 뒤, 대다수 협회장들의 얼굴은 시무룩하게 변했다.
로버트 윤을 자신의 협회로 데리고 오고 싶은 욕심이 가득한 협회들이었다.
“저는, 한국 협회에 속하고 싶군요.”
로버트 윤은 고민도 없이 답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던 걸까?
한국에서 유독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가 중앙 협회에 회의를 느낀 이유도 한국에서 나와 시간을 함께하며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히로시의 존재, 나아가 중앙 의회라는 새로운 국제기관 설립 등등.
전부 그가 한국에 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오르문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과정 속에도.
전부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군요. 한국과 일본. 두 협회가 중앙 의회의 상임국이 된 것이네요. 다들 불만 없죠?
독일 협회장도 냉큼 상황을 진행시켰다.
다른 협회장들은 대답만 하지 않았을 뿐, 전부 수긍하는 반응이었다.
-좋습니다. 전부 정해졌군요.
서둘러 회의를 마치려는 독일 협회장의 발언.
하지만 회의가 끝나기 전에.
난 그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잠시만요, 독일 협회장님.”
-네.
“아까 말씀하셨던 것 중, 오직 초월석만이 중앙 의회 합류의 이유가 아니라고 했는데.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적어도 나는 이 회의에 참여한 협회장 중.
독일 협회장에게 알 수 없는 믿음이 갔다.
그는 진심으로 초월석만 노리고 온 게 아니란 것이.
그동안의 발언, 행동을 통해 충분히 설명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이 상임국이 될 수 없음에도 상임국으로 지정한 이유 역시.
그는 현재 중앙 의회에 진심이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간단합니다. 제가 중앙 협회의 탈퇴를 결정한 이유는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것……?”
-네. 우리 독일도 정식 던전이 존재하던 시절, 어떻게 하면 헌터들이 안전하게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는가, 또 헌터들의 힘을 어떻게 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 등등. 다방면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었죠.
연구란 말에 난 표정이 찌푸려졌다.
적어도 나에게 연구란 말은 그다지 긍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단어가 아니었으니까.
51구역이 자동적으로 생각났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은 내 반응을 알만하단 듯이 말했다.
-연구라고 해서 중앙 협회가 독단으로 진행한 그런 거 아닙니다.
적어도 그는 51구역에서 어떤 연구를 진행했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단 반응이다.
-중앙 협회장이 저희의 연구와 건의를 묵살시킨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어떤 이유였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가 공적을 세우면 안 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차후 중앙 협회장 자리는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자리를 뺏기기 싫어서 권력으로 우리의 연구를 전부 막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중앙 의회를 합류한 이유입니다.
중앙 협회에서 권력에 밀려 하지 못했던 것들을.
중앙 의회에서는 할 수 있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단 뜻이었다.
역시, 그는 중앙 의회에 진심이었다.
초월석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닌, 인류 전부를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참…… 신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제가 한국과 일본도 상임국으로 하잔 의견을 낸 것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상임국은 중앙 의회 회원국 수에 비례해야 한다고 했죠?
독일 협회장의 질문.
무슨 답을 듣고 싶은지 알았다.
“상임국은 한국, 일본. 두 국가로 끝나는 것이 아닌 앞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거군요?”
정치건 뭐건.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하지 않았던가.
독일 협회장이 먼저 한국과 일본에게 상임국이라는 기브를 행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테이크.
보나 마나 독일도 상임국이 될 것이며, 그것을 약속해달라는 뜻으로 보낸 질문으로 보였다.
-물론입니다. 독일 협회도 상임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앞으로 갖은 노력을 할 겁니다. 그러니 냉정하게 평가해 주시죠.
또 의외의 답을 내놨다.
“너희한테 상임국을 줬으니 나도 나중에 줘라.”가 아닌, “나도 행동으로 모두를 납득시키겠다. 그때 가서 결정해 줘라.”로 말하다니.
그가 말한 “냉정하게 평가해 주시죠.”가 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독일 협회장은 처음부터 상임국이란 존재를 만들고 싶었고, 독일 협회도 상임국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질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회의 끝난 것 같은데. 먼저 실례해도 될까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요.
독일 협회장이 서둘러 회의를 마치려는 모습이었다.
헤이로 협회장과 장길수.
두 사람은 독일 협회장 장단에 맞췄다.
“네, 당장 급한 것이 정해졌으니 그러셔도 됩니다.”
장길수가 답했다.
-아, 잠시만요. 초월석 지급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회의를 마치려던 중.
러시아 협회장이 물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순차적으로 지급하겠다고요. 그리고 아직 한국 내부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니 저희가 따로 연락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장길수가 혼자 정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시간을 조금 끌기 위한 답을 내놓았다.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독일 협회은 가장 나중에 받겠습니다.
그리고 독일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한마디를 남겼다.
독일 협회가 가장 나중에 받겠다라.
어떤 생각으로 저 말을 남겼는지 짐작하기 쉬웠다.
상임국 제도를 도입하며, 독일도 상임국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단 어필을 적극적으로 했던 독일.
하지만 이는 다른 협회장들 눈으로 볼 때 대놓고 로비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을 내가 직접 상임국으로 만들었으니 그 특혜로 나도 나중에 상임국 만들어 줘라.”라는 식으로 볼 수 있었으니, 지금 협회장들의 심기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독일 협회가 초월석을 받는 순서가 앞 순번에 있다면?
당연히 협회장들은 들고일어날 거다.
결국, 중앙 의회도 시작부터 부패한 것이냐며 와해될 수 있기에, 독일 협회가 가장 늦게 받음으로써 그 잡음을 깔끔하게 없앤 효과가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길수 역시 독일 협회장의 마음을 읽곤 답했다.
-좋습니다. 앞으로 기대되는군요. 정말 교류가 활발해졌을 때, 원정 헌터들 전용 공항이 근처에 생길 기대요.
독일 협회장은 그 말을 마치며 회의에서 먼저 떠났다.
“그럼, 이상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초월석 배분은 저희가 내부적으로 조율한 뒤에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헤이로 협회장의 끝맺음으로 회의는 완전히 끝났다.
모든 모니터가 꺼진 뒤.
“흐아~ 으그극!”
장길수는 시원한 기합과 함께 기지개를 활짝 켰다.
“독일 협회장 저 양반 저거. 보통 사람이 아니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우리한테 협박한 거잖아. 큰일이구먼.”
“협박……?”
난 협박이라고 느끼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느꼈단 건가?
“게이트는 한국에서만 만드는 게 결정됐으니 공항 지어달란 거잖아.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사람이구먼. 공항 짓는 데 돈 많이 들지 않나……?”
“아…….”
왜 협박이라고 느꼈는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