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중앙 의회 (3)
“말씀하시지요. 과연 독일 협회장님은 어떤 정책을 생각하고 있던 건지, 저도 궁금하네요.”
독일 협회장에게 답한 것은 일본 협회장 야마다 헤이로.
헤이로의 눈빛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하는 것인지.
포커 페이스의 정석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중앙 의회라는 새로운 국제기관을 결성하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헤이로 협회장.
중앙 의회가 앞으로 반 영구적으로 적용해야 할지도 모를 정책일 수 있다.
그렇기에 자세히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중앙 의회가 앞으로 적용할 시스템. 모든 사안은 투표로 결정하며, 중앙 의회장과 같은 총책임자 직책은 만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생각은 여전한가요?
“물론입니다. 그 정책 덕분에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모이게 된 것 아닙니까? 독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데요.”
말에 상당한 뼈가 있었다.
독일 협회도 중앙 협회에 있던 시절, 정확히 알 수 없는 불만이 많았으니 공정한 투표, 그리고 의회장이라는 직책은 만들지 않겠단 말에 합류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의회장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거든요.
독일 협회장도 숨기지 않고 답했다.
“그 뜻은…… 의회장이란 직책이 있으면 중앙 의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과 마찬가지겠군요?”
-네.
“중앙 협회가 그랬나 보군요.”
일본도 한국도.
중앙 협회의 구성된 협회가 아니었기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모른다.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중앙 협회의 2인자, 독일 협회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을 정도니, 기관을 대표하는 직책의 위험성이 상당히 크단 것을.
-그랬으니 독일 협회가 탈퇴했겠죠.
독일 협회장의 답변 덕분에 추측이 사실로 변했다.
-아무튼, 말이 조금 다른 곳으로 샜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닙니다. 모든 사안을 투표로 결정하겠단 말이 언뜻 보기엔 공정할 수 있으나 사실 문제가 많을 듯하군요.
“어떤 문제가 많을 거라 생각한 거죠?”
-일부 협회끼리의 단합이 있을 수 있고, 자신들이 유리한 정책에만 찬성표를 던지고, 반대로 조금이라도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무조건적인 반대를 할 것 같은 느낌이라서 말이죠.
앞으로 중앙 의회가 어떤 정책을 시행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 범위는 크지 않다.
바로 초월석.
세상에 초월석이 귀해진 지금 모든 게 초월석과 귀결되는 정책을 시행할 것이고 그에 따라 중앙 의회 회원국들은 어떤 정책을 놓고 봤을 때, 이 정책이 정녕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보다.
그저 자신들에게 유리한가? 그렇지 않은가?
이 기준만 가지고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단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정작 해당 정책이 가진 고유의 방향성을 잃게 되고, 중앙 의회의 앞날에도 캄캄한 어둠만 드리울 거라는 지적이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헤이로 협회장 역시, 해당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건의합니다. 상임국을 정했으면 하는데요.
“오호, 상임국이라.”
국제 사회 기구에 존재하는 상임국.
그 개념을 중앙 의회에도 적용하잔 뜻이었다.
일본 협회장도 상임국이란 단어를 듣고 흥미가 생긴 표정이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아마도 처음 중앙 의회 결성을 생각했을 때, 상임국의 존재는 배제했던 것으로 보였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지나친 제 착각일까요.
독일 협회장이 반문했다.
이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 역시 상임국을 꼭 적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행동일 테다.
“그렇습니다, 독일 협회장님. 상임국의 존재.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상임국까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독일 협회장님께서 상임국을 적용하려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참이었습니다.”
-간단합니다. 상임국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투표하면 제가 앞서 말했던 문제점들이 서서히 나타날 겁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결정하는 협회들이 생겨날 거라고요. 물론, 개인의 이익이라고 한다면 역시 초월석을 남들보다 많이 차지하고 싶은 욕심쟁이들 때문이겠죠.
-협회장님! 여기 모인 모든 협회를 그런 식으로 봤단 말입니까?!
한 협회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은 지나가는 개가 짖듯, 귓불을 긁적이며 답했다.
-이 회의 참석 전까진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는데, 회의 참석하고 나서 그런 식으로 보이니까 그렇죠.
-그런 식으로 보인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언성을 계속 높이는 한 협회장.
삿대질까지 하며 격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흡사 정치인들의 토론회를 보는 기분이다.
-다들 초월석 독식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됐으니까요.
-도대체 뭘 보고!
-자, 그럼 반대로 물읍시다. 초월석 독식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상임국 선정을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죠? 열심히 해서 상임국이 되면 그만 아닙니까? 지금은 어떤 국가가 상임국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왜 벌써부터 그런 격한 반응이죠?
-…….
독일 협회장의 반문에 이의를 제기한 협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저도 모르게 자신이 속한 국가는 상임국이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깔렸기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을 거다.
그리고 독일 협회장의 말이 맞다.
현재 상임국을 누구로 정하잔 말이 아닌.
상임국 제도를 도입하잔 의견이기에.
여기 모인 21개국 협회 중 몇 개의 협회가 상임국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더 하실 말씀 있으면 해 보시지요.
독일 협회장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의를 제기한 협회장 쪽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이어서 말하죠. 상임국을 정하잔 건 앞으로 시행될 정책에 있어 상임국만 투표하잔 말이 아닙니다.
“그럼 상임국의 정확한 의의는 무엇이죠?”
-앞으로 중앙 의회 내에선 많은 투표가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그 투표가 정말 공정한 것인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한 투표인지 우리는 판별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부정은 못하겠습니다.”
일반 회원국끼리 단합하거나, 가까운 협회에게 로비를 해서 자신의 안건을 통과시키려는 비리가 생길 수 있단 말이었다.
-그래서 상임국을 정하잔 겁니다. 상임국의 표는 중앙 의회 회원국 수에 비례해, 표의 값어치가 달라지는 식으로요.
“그렇단 말씀은…….”
일반적으로 찬성표에 투표한다면.
그저 찬성표 한 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찬성표가 상임국의 표라면?
단순한 한 표가 아닌, 회원국에 비례해 2표, 3표로 가치를 다르게 하잔 뜻이었다.
상임국은 전체 중앙 의회 회원국에 비하면 숫자가 월등히 부족하다.
현재 이곳에 모인 협회는 21개국.
이 중 상임국을 3개국으로 정한 뒤, 투표를 진행해도.
상임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은 18개국이 전부 반대표로 물타기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공정한 투표가 되질 않는다는 뜻.
이런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상임국의 표는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잔 의견이었다.
상당히 이상적인 의견이었지만, 역시 화면 속에 있는 협회장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러면 상임국끼리 단합하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시는데요?
역시, 이번엔 러시아 협회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반대로 상임국의 표가 더욱 강해진다면, 소위 말하는 끼리끼리 해 먹는 방식.
그것을 상임국이 할 수 있단 위험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의 답은 너무 간단했다.
-상임국의 숫자를 적당히 제한하고, 그 표의 가치도 적절히 조절하면 그만인데. 왜 그걸 겁냅니까?
-적당히 제한한다뇨?
-현재 여기 모인 협회는 21개국.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안은 당장 상임국은 2개국만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임국의 표는 일반 회원국 숫자에 비례해, 3표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당장 어떤 안건을 두고 투표를 진행해도.
상임국 2개국이 찬성을 해도 총 6표의 가치.
나머지 19개국이 반대하면 어차피 상임국의 단합은 의미가 없단 뜻이었다.
생각 외로 상임국의 표는 그 가치가 절대적으로 강하지 않았다.
-그런 개념이라면 결국, 상임국이 있어도 단합은 막을 수 없을 텐데요?
러시아 협회가 물었다.
-처음부터 전 단합을 막자는 게 아닌, 방지하잔 의견이었습니다. 협회장님은 어째 단합하실 분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흠, 흠……. 그럴 리가요.
독일 협회장의 반문에 러시아 협회장은 헛기침하며 답했다.
이어서 독일 협회장이 자신이 생각한 상임국의 존재.
이 의견을 내세운 이유를 설명했다.
-상임국의 표가 너무 강력하면 러시아 협회장이 말한 대로, 상임국의 단합이 의심되며. 그것은 중앙 의회가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힘을 가져선 안 됩니다.
“그건 저 역시 동의합니다.”
헤이로 협회장이 답했다.
-하지만. 또 너무 적으면 상임국의 의미가 없지요. 그래서 3표 정도로 정한 겁니다. 이것까지는 이해가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어떤 안건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투표에 참여하는 협회장들이 해당 안건을 두고, 투표를 결정할 때. 정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찬성을 하겠죠. 그 찬성표까지 합치면, 과반수는 충분히 넘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3표 정도가 적당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상임국 2개국의 찬성표. 총 6표와.
일반 회원국의 찬성표가 합치면 과반수는 넘을 수 있으니 독일 협회장 생각엔 완벽한 밸런스라고 본 것이다.
난 미래를 상상해 봤다.
현재 21개국이 있는 지금 기준으로.
정말 독일 협회장처럼 상임국의 개념이 정립되고.
투표를 진행한다면?
단순히 일반 회원국들이 단합해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는 힘은 확실히 생긴다.
일반 회원군은 19개국이 될 것이고, 그 19개국 전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 테니까.
“자, 그렇다면…….”
헤이로 협회장이 이어서 물었다.
“독일 협회장님께서 생각하는 상임국은 2개국이라고 했는데. 숫자가 정확한 것을 보니 이미 생각해 두신 것 같습니다만. 어떤 국가인지요?”
그 순간, 헤이로 협회장의 포커 페이스가 깨졌다.
미소를 지은 그의 입가.
마치 독일 협회장이 어떤 답변을 할지 알고 있단 듯이 보였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독일 협회장 역시, 카메라를 당당하게 응시하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시작했다.
그리곤 독일 협회장의 시선이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헤이로 협회장 옆에 있는, 한국 협회장 장길수에게 향한 눈빛이었다.
-답변에 앞서. 이건 강조하고 싶군요.
“무엇이지요?”
-제가 생각한 상임국 2개국. 무조건 되어야 한다고요. 이게 안 되면 전 중앙 의회 합류을 철회할 것이라고요.
중앙 협회를 탈퇴하고 합류한 중앙 의회 합류를 철회할 정도라.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집착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걸까?
-한국과 일본입니다. 어디 반대 의견 가진 협회장님들. 말씀해 보시죠.
‘그렇구나…….’
왜 한국과 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그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