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중앙 의회 (2)
-원래 중앙 의회의 원칙은……. 모든 사안은 투표로 결정한다고 했는데, 지금 이런 조율을 하는 건 중앙 의회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이전이라서 그런 거겠죠?
독일 협회장의 질문에.
장길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했던 부분이다.
게이트를 만드는 장소는 한국으로만 지정하는 것.
독일 협회장의 말대로 본래 중앙 의회의 원칙대로라면, 이것 역시 투표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투표에서는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훨씬 많을 것.
다들 초월석 때문에 가입했기에, 절대 찬성하지 않을 생각이 분명했다.
그래서 장길수는 이 사안을 놓고 고집이란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습니다. 이거 하나는 분명히 조율하고 싶어서요.”
당황도 잠시.
장길수는 이내 곧장 당당하게 답했다.
모니터 속에 있는 독일 협회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주장을 굽힐 생각 없다.
이 조율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이런 뜻을 강하게 피력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리에 있는 협회장들은 전부 알 겁니다. 우리 독일은 헌터력 세계 2위. 따라서 중앙 협회에 있던 시절에도 저희는 2인자였죠.
갑자기 독일의 과거사를 꺼낸다라.
과연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저런 서론이 필요했던 걸까?
단순히 모두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효과는 제대로다.
지금 나조차도 독일 협회장에게 집중하게 됐으니까.
독일 협회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듯이 말하는 이유는.
필시, 이다음에 나올 이야기에 진짜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때문일 테니까.
-그런 자리를 버리고 중앙 의회의 합류를 결정한 건 저에게는 큰 도박인데, 내 도박이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거든요.
“실패하면이요?”
그가 말하는 도박 실패란.
중앙 의회의 실패를 뜻하는 말이다.
설립은 제대로 되어도, 유지가 되지 않거나.
아니면 설립부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설립 단계부터 불안한 점이 있었다면, 독일 협회장이 합류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
그는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신임 한국 협회장을 보니 제 걱정이 사라지는군요.
그는 갑자기 장길수를 극찬했다.
장길수 역시, 예상도 못한 극찬에 당혹스러운 반응이었다.
“뭘 보고 그렇게 느꼈는지, 물어도 될까요? 독일 협회장님.”
-당신의 생각 덕분입니다. 정말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거든요.
한국에서만 게이트를 만들겠다는 장길수의 생각.
그 간단한 말에서 어떤 깊은 생각을 읽은 것인가?
-전 다른 협회장들과 달리. 당신의 생각에 적극 찬성입니다. 아니, 만약 당신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먼저 말했을 겁니다. 한국에서만 게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우린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아요. 다른 협회장의 경우엔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한국에서만 초월석을 만들면 한국의 초월석 독식이 시작되고. 그것이 중앙 협회가 그간 해왔던 편파 정책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생각이죠.
독일 협회장의 비수와 같은 말에.
모니터 속 다른 협회장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등.
최대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단 것을 알리려 노력을 다했지만, 내 눈으로 보기에도 독일 협회장의 말이 정답이었다.
-잠깐만요, 독일 협회장님.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다니요. 우린 지금 조율하기 위해 모인 자리인데, 상대를 향한 비난은 좋지 않은 듯한데요. 분위기만 망칩니다.
다른 협회장이 지적했을 때.
-분위기는 당신이 망치고 있는 거고. 그리고 비난 아니고 비판입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이러는 거 아니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내 말 끝난 다음에 하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은 일단 듣고.
-……말씀해 보시죠.
결국, 불만을 제기한 협회장은 한 발 물러났다.
‘이야, 독일 협회장.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카리스마가 상당하지 않아?’
[부정은 못 하겠네.]
말 몇 마디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힘을 가진 독일 협회장.
중앙 협회장 매튜를 경험한 나인데도.
매튜보다 독일 협회장의 힘이 더 강해 보일 정도였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중앙 협회장이 되지 않고, 일개 구성원으로만 중앙 협회에 속한 건지 의문일 정도다.
이제 독일 협회장이 이어서 말했다.
-좋습니다. 자, 일단 우리가 얻을 이점은 한국 협회장이 말씀하신 대로. 투명하게 공개한 게이트 숫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거죠. 사실 이것만으로 우리는 불만을 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그는 최대한 우리에게 믿음을 주려는 거니까요. 중앙 협회 시절처럼. 의심할 필요가 없는데, 다들 무엇을 그리 겁내는 겁니까? 아, 혹시…….
독일 협회장의 시선은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마도 그가 있는 독일 회의실의 모니터를 차례대로 쭉 훑는 듯했다.
-초월석을 독식하고 싶은 건 당신들의 생각 아닐까요?
-…….
-무슨 그런 말씀을!
-사람을 뭘로 보고 그렇게 무례하게 말한단 말입니까!
몇몇 협회장들이 발끈했다.
-오호라, 발끈한 협회장들에게 신기한 공통점이 하나 있군요?
그 순간에도 관찰의 눈은 감지 않고, 여전히 날카롭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공통점……?’
-전부 산유국 협회장들이네요? 아, 하긴. 특히 석유는 초월석이랑 궁합이 잘 맞으니 당신들 생각도 알겠네요. 그나저나 러시아 협회장 실망입니다. 당신도 그런 생각이라니.
발끈한 협회장 중에선 러시아 협회장도 있었다.
중앙 협회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인데.
그런 러시아 협회가 초월석 독식이라는 음흉한 생각을 가졌단 것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오해입니다.
-뭐, 제가 한 말을 오해로 만들고 싶으면. 당신은 한국 협회장 정책에 찬성하면 그만이죠. 그럼 전 근거도 없이 다른 협회에게 시비를 거는 파렴치한 협회장이 되는 거니까.
-…….
그 순간, 러시아 협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미 장길수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 중에.
러시아 협회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발언을 오해로 만들고 싶으면 찬성하면 그만이라는, 조용하면서도 날이 시퍼렇게 선 협박이었다.
-그저 한국 협회장의 정확한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한국 협회장. 당신이 내세운 그 정책. 정말 속뜻은 독일 협회장이 생각한 대로입니까?
상황이 갑자기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장길수에게 묻는 러시아 협회장.
조금은 얄팍하지만, 그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독일 협회장 덕분에 우리 쪽 상황도 유리하게 변했다.
“그렇습니다.”
장길수도 판을 읽을 줄 아는 사람.
냉큼 답했다.
장길수의 정책이 시행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순간이다.
-그렇다면 전 찬성입니다.
동시에 러시아 협회장도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나머지를 말하죠. 왜 한국 협회장의 정책이 상당히 똑똑한 정책이며. 그것을 반대한 당신들이 단편적인 생각을 가졌단 것인지요.
그리고 시작된 독일 협회장의 마지막 발언.
그 순간, 독일 협회장은 좌중을 마이크 하나로 휘어잡는 월드 스타와 똑같이 보였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여기 모인 협회장 전부를 관객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한국의 국익과도 직결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장은 21개국 협회만 모였지만, 초월석을 이용해 정상화 혜택을 받는 나라는 서서히 증가할 겁니다. 시작은 고작 21개국이었지만 100개국, 나아가서는 전 세계 국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 200개국이 넘는 국가가 중앙 의회에 가입하고,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면. 한국의 관광 수익은 어떻게 되겠어요?
독일 협회장의 말에.
장길수의 입 모양은 “오~?”를 그렸다.
솔직히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낸 정책이지만, 그런 생각까지는 가지지 않았다는 반응으로 보였다.
-우리가 관광하러 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놀러 가는 겁니까?!
다시 한 협회장의 지적.
어떻게 게이트 정복이랑 관광이랑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냐는, 나름대로 현실적인 지적이다.
-그럼 한국 도착한 당일에 게이트 정복을 마치자마자 바로 귀국시키게요? 세상 어느 국가가 그런 식으로 진행했습니까?
보통 정복 하나를 마치면.
휴식 기간이 주어진다.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며, 헌터들은 정말 사투를 벌이다 온 것이기에.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짧으면 며칠.
통상적으로는 대략 2주의 휴식이 주어진다.
하지만 해외 원정의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최소 1개월 이상.
비행기를 통해 소모되는 이동 시간도 상당하기에, 그에 따른 피로감 등등을 고려해, 이참에 해당 국가에서 휴가나 즐기다 오라는 배려 차원이다.
실제로 인류의 마지막 던전.
남극의 던전을 정복한 헌터들의 경우엔 남극과 가까운 국가로 옮겨 3개월 이상의 휴가를 줬었으니까.
-이것 역시 해외 원정이니 현지 휴가가 원칙이죠. 그 기간은 각자 알아서 적당히 주면 되는 거고. 헌터들이 현지 휴가를 즐기면서, 돈 한 푼도 안 쓰겠어요? 그들이 현지에서 사용하는 돈 전부가 곧 관광 수익인데요?
냉정하게 말하면, 헌터 한 명이 돈을 써 봤자 얼마나 쓸까?
하지만 헌터가 한 명만 오던가?
정식 레이드면 팀 단위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런 국가가 하나만 있나?
독일 협회장이 말한 것처럼, 점진적으로는 100개국 이상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경우.
한국의 관광 수익이 갑자기 크게 오르는 것을 설명하는 중이다.
-그래서. 한국 관광 수익 올라가면 결국, 한국 협회장만 좋은 일 아닙니까?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이점이라고요.
다른 협회장의 지적이었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 참, 이래서 당신들이 단편적인 생각을 가진 거라고 하는 겁니다. 한국 협회장의 정책으로 인해서 한국의 관광 수익이 오르면, 한국 협회장의 한국 내부 입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건 한국 협회장 개인에게 좋은……!
-아니죠. 정말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는데 타국 헌터가 레이드를 위해 한국 방문하는 일을 꺼릴 리가 있습니까? 중앙 협회 시절엔 해외 원정의 경우 협회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죠.
-…….
그 순간 정적이 드리웠다.
독일 협회장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난 확실히 알게 됐다.
정식 던전이 있던 시절.
자국의 힘으로 레이드를 진행할 수 없던 경우엔 해외 헌터들이 원정을 오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던전 실보유량이 발각될 우려도 있고, 여러 보안 문제도 있기에 협회들은 최대한 원정을 꺼렸다.
정말 피치 못할 때만 진행한 거니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해서 불러 놓고.
원정 온 헌터에 대한 대우가 심각하게 차별적이기에 국가 간의 외교 관계가 틀어지곤 했다.
적어도 장길수의 정책이 시행되면 그럴 일 자체가 없단 뜻이다.
왜냐, 한국은 관광 수익이 크게 늘어 국익이 늘었으니, 방문 자체를 마다할 이유도 없으며.
이젠 숨길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니까.
독일 협회장이 자신의 의견을 마무리했다.
-생각해 보시죠. 그런 이로운 효과가 장기화되었을 시. 정말 어쩌면 게이트를 수용하고 있는 장소와 가까운 곳에 원정 헌터들을 위한 별도 공항을 세울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점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그 순간, 반대 의견을 내보냈던 협회장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렇기에 전 찬성입니다만, 다들 어떻습니까?
독일 협회장의 물음에.
하나둘씩, 찬성표로 돌아섰다.
끝내, 모든 협회장이 찬성하게 됐다.
-좋습니다. 이로써 한국에만 게이트를 만드는 게 확정이군요.
“하하, 대단하신 분이군요. 독일 협회장님.”
장길수가 감사의 인사를 남겼을 때.
-그럼, 저도 의견 하나 말해도 되겠습니까? 저도 정책 하나 정하고 싶은데요.
“…….”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말씀해 보시죠.”
이번엔 내가 답했다. 과연 이 정책을 주고.
독일 협회장, 당신은 무엇을 얻고 싶은 건가?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