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58화 (158/200)

§ 158화. 중앙 의회 (1)

어느새 화면을 다 채운 외국인의 모습.

화면이 들어온 모니터의 개수를 세어 보니 정확히 19개였다.

중앙 의회 결성에 합류한 협회의 숫자는 총 21개.

이 계획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 협회도 포함된 숫자다.

그리고 한국 협회장과 일본 협회장은 한국 협회 지하실에 있기에 둘을 제외하니, 정확히 19개 모니터가 들어온 것이다.

화면 속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한 국가를 대표하는 협회장들.

정말 정상 회담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화면에 나타난 협회장들 앞에는 명패 대신, 자국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난 눈으로 그 국가들을 빠르게 훑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정말 다양하고 대륙마다 일정한 비율로 섞인 국가들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나라는 중동 국가를 비롯한 산유국들이다.

초월석이 효력을 잃으면서 가장 직격탄을 맞은 나라가 산유국들이었으니.

유독 산유국들이 눈에 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장길수와 헤이로 협회장은 서로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응시했다.

“로버트, 통역을 부탁해도 되나?”

“물론이죠.”

장길수가 묻자 로버트 윤은 흔쾌히 답했다.

그리곤 로버트 윤은 따로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옮겼다.

통역사 전용 자리로 보였다.

장길수와 헤이로가 앉은 쪽에는 마이크가 없었는데, 로버트 윤이 앉은 자리에만 있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되던 찰나.

“오늘 여러분들을 급하게 호출한 건 다른 게 아닌, 중앙 의회의 결성식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마침, 제가 한국 방문 중이었기에 한국 협회에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제 옆은 한국의 신임 협회장 장길수 협회장이라고 합니다. 다들 이미 뉴스를 통해 보셨겠죠?”

헤이로 협회장이 일본어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난 직후.

로버트 윤이 곧장 통역을 시작했다.

마이크에 대고 기계가 말하는 것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딱딱하고 일정한 음성이었다.

“신기하지?”

내가 로버트 윤의 통역을 지켜보고 있을 때, 최현민이 말했다.

“그러네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모든 국제적 회의는 보통 공용어를 영어로 사용해. 그래서 우리 목소리는 안 나가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통역사가 듣고 저런 식으로 통역해 주는 거지.”

로버트 윤이 지금 그 통역을 맡는 중이란 뜻이었다.

게다가 그는 오르문의 주인이 되면서 일본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두 언어를 동시에 통역하게 됐다.

“그럼, 마이크가 로버트 윤 자리에만 설치된 이유가?”

“응, 우리 목소리는 어차피 안 들어가. 그러니 내가 이렇게 슬쩍 말해주는 거지. 화면도 지금은 헤이로 협회장이 말하는 중이라 헤이로 협회장만 나오는 중이고.”

회의 중에 내게 말하는 행동이 문제 될 건 아니니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모든 협회장이 우리처럼 통역사를 두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직접 말하고, 그게 아니면 우리처럼 통역사를 두는 거지.”

장길수 덕분에 궁금했던 게 풀리던 참에.

“중앙 의회의 결성을 앞두고, 몇 가지를 조율하고자 협회장님들을 호출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 한국 협회장이 조율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요.”

헤이로 협회장이 모두에게 말했다.

그리곤 장길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란 손짓을 보였다.

이제 장길수의 차례가 된 것이다.

“흠, 흠.”

장길수는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고.

부리고 싶다는 고집을 드디어 모두에게 말했다.

“중앙 의회가 존재하는 의의는 초월석을 안전하고, 세계 만국이 공평하게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다들 이미 일본 협회장에게 얘기를 들어서 아시죠? 게이트, 던전의 존재가, 인류에게는 사실 안전장치였단 것을요.”

로버트 윤의 통역이 끝난 뒤.

모니터에 있는 협회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그 사실까지 알려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화면 속에 있는 협회장들은 해당 사실을 부정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제가 말한 초월석을 안전하게 사용한다는 것.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예전처럼 무차별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없단 것을 못 박아 넣는 듯한 발언이다.

정식 던전이 인류에 존재할 때.

초월석이 자원 뻥튀기 기술과 같은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분야는 없을까.

이를테면 건물을 짓는 시멘트에 초월석을 넣어 섞는다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웅성의 건물이 되진 않을까 하는 등.

기상천외한 실험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 사용할 수 있는 분야는 딱 하나.

헌터를 비롯해 일반인들까지.

인류 생활에 편의를 가져다주는 자원 뻥튀기 기술에만 사용해야 할 것이며, 그 범주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뜻을 전하는 중이다.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아직까지 반대 의사를 표하는 협회는 없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초월석을 얻기 위해선 게이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게 한국 헌터입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장길수가 내게 눈빛을 보냈다.

카메라 앞에 서라는 뜻이다.

그의 말을 따라 난 카메라 앞에 섰고, 나를 지켜보는 협회장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한국의 헌터 윤도원이라고 합니다. 게이트를 제약 없이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헌터죠.”

내가 스스로 인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로버트 윤이 대신해 먼저 말했다.

아무래도 공개 석상에 드러낸 순간이니, 내가 긴장 때문에 입이 굳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을 염려해,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적절한 조치다.

그러던 중, 한 협회장이 손을 들었다.

의문이 생긴 듯했다.

손을 든 협회장은 러시아 협회장이었다.

“말씀하시죠. 러시아 협회장님.”

러시아 협회장의 행동을 곧장 포착한 장길수가 말했다.

-제약 없이 게이트를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한데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게이트가 인류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알았으나.

그 게이트를 만드는 데 누구는 제약이 있단 사실은 지금 처음 안 듯했다.

“이 부분은…… 자네가 직접 설명할 텐가?”

장길수가 내게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흠, 흠.”

나도 장길수가 처음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헛기침으로 목을 푼 뒤에 설명했다.

“복잡한 얘기니까 간단하게만 설명 드리죠. 다른 사람은 게이트를 만들 때, 게이트란 재료가 필요합니다.”

게이트를 만드는 데 게이트란 재료가 필요하다.

이 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단 반응이다.

“쉽게 얘기하면, 피자 한 조각은 보통 여덟 조각이 나온다고 칩시다. 그 여덟 조각 중 한 조각을 뺀다고 그건 피자가 아니게 되는 건가요?”

내 질문에 협회장들은 전부 고개를 저었다.

“그저 한 조각이 빠진 피자이죠. 그런데 그 빠진 한 조각이 여덟 개가 모인다면요?”

그제야 협회장들은 이해가 됐다는 고갯짓을 보였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헌터는 게이트를 만들 때, 이미 만들어진 게이트가 일정 수 이상 있어야 그것을 이용해 게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죠.”

-어떤 문제죠?

러시아 협회장이 물었다.

그는 유독 이 궁금증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떤 흑심을 품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순전히 몰랐던 것을 알게 된 호기심의 행동으로 보였다.

“다들 잘 아실 겁니다. 던전의 등급과 초월석의 등급은 비례하죠.”

-그렇다는 뜻은…….

“네,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게이트는 이미 만들어진 게이트 일정 수량 이상이 있어야 하나를 더 만들 수 있는데, 그마저도 등급이 높지 않습니다. 최대 등급은 B급 정도죠.”

-그렇다면, 당신이 만든 게이트는 그런 제약 없이, 특별하단 뜻인가요?

“물론입니다. 제가 만드는 게이트는 어떤 재료도 필요 없으며 등급도 최고 등급인 S급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조건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불필요한 얘기이니 생략했다.

-직접 보진 못해서 여전히 의아하긴 하지만, 이런 걸 거짓으로 말할 리는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조율하고 싶은 게 뭡니까?

급하기도 해라.

게이트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의문은 풀렸으니, 본론인 조율에 대해서 어서 말해보라는 약간은 강압적인 질문이다.

이에 장길수가 나를 대신해 말했다.

“여러분들은 어차피 초월석을 얻기 위해 중앙 의회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요?”

조금은 위험한 발언을 했다.

모니터 속에 있는 협회장들.

그들에게 지금, “너희 어차피 그냥 초월석 얻고 싶어서 온 거잖아? 그거 말곤 아무것도 없고.”라고 저격하는 말로 들리기에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협회장은 어떠한 불쾌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 협회장만이 아닌, 다른 협회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숨기지 않겠다는 모습이 유력했다.

단, 한 국가만 빼고.

팔짱을 낀 채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협회장은 독일 협회장이었다.

‘흠, 어째 불안하다, 그치?’

[내가 보기에도 저 인간은 불만이 많아 보여.]

흑염룡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장길수의 조율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차피 초월석을 얻으려면 우리가 마음껏 게이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조율하고 싶은 것은 바로 게이트를 만드는 곳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린 게이트의 숫자를 회원국인 여러분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약속합니다.”

-설마……?

눈치 빠른 러시아 협회는 이미 눈치를 챈 듯하다.

명색이 중앙 의회에도 있던 소위 말하는 짬밥도 있고.

그렇게 중요한 게이트의 숫자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단 건, 분명 어떤 조건이 있을 거란 걸 짐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이트를 만드는 곳은. 오직 한국. 한국 내에서, 지정된 곳에서만 만들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에 동의들 하십니까?”

드디어 장길수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 전부가 나왔을 때.

대다수의 협회장들은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라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한국에서만 만들겠다니, 우리에게 합류하면 초월석을 제공하겠단 약속을 한 건 헤이로 협회장 쪽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아닌 다른 협회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에만 게이트를 만들면, 자신들과 약속한 건 어떻게 지킬 수 있냐는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잘 압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한 제공 방법 역시, 초월석만 보내는 게 아닌, 정복해도 괜찮은 게이트를 여러분들이 직접 와서 정복한 뒤.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직접 가서…… 정복한 뒤 가져가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게이트는 일정 수량 이상 유지해야만 합니다. 크루즈라는 존재 때문에요. 그렇기에 무분별하게 정복할 수 없죠. 그리고 제가 이 방법을 생각한 이유도. 제약 없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건 한국 헌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윤도원 헌터에게 세계 일주라도 시킬 생각이었습니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봅니까?”

장길수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주장을 내세웠다.

내 몸은 하나.

그런 내가 세계를 일주하며 협회에 게이트를 만들어주는 행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것을 그들도 잘 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직접 와서 정복하고 가면, 장점은 분명하게 있습니다.”

-무슨 장점이죠?

“우리는 투명하게 게이트 숫자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아닌지를 여러분들이 보낸 헌터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단 것을 확실하게 알지 않습니까?”

정복을 위해서면 해당 국가의 헌터가 한국으로 와야 한다.

그리고 마침 게이트는 한 곳에 몰려 있으니, 우리가 공개한 게이트 숫자와 다를 리가 없단 뜻을 어필하던 중이었다.

그제야 웅성거림이 조금 멈췄을 때.

-짝. 짝. 짝.

나지막한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독일 협회장에게서 나온 소리였다.

초월석 때문에 가입한 거 아니냐는 장길수의 질문에.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그가.

지금은 도리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표정이 저렇게 달라졌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박수 소리에 맞춰 타국 협회장들의 시선도 역시 독일 협회장에게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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