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안정화 (3)
“……남사스럽군.”
로버트 윤의 반응이다.
이제 그는 확실하게, 내가 어떤 방법을 통해 게이트를 만드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앗……! 너무 상황이 갑작스럽게 돼서……!]
그리곤 오르문은 약간 절규하는 듯했다.
오르문의 능력은 게이트를 만들 때, 손을 맞잡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게이트가 생겨날 기미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소중한 기회를 잃었다는 반응이었다.
“괜찮아.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오르문을 위로하듯 말한 뒤, 로버트 윤에게도 말했다.
“게이트를 만드는 방법. 자세히 말하지 않은 이유. 이제야 이해가 됩니까?”
“너무 이해가 쉬워서 문제군요.”
“뭐, 창피한 것보다 제대로 설명해도 이해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굳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로버트 윤 역시 있는 그대로를 알려줘도 믿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박힌 듯하다.
하긴, 로버트 윤과 이 대화를 나눌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하자면.
농담조로 말할 수가 없던 상황이다.
“아무튼. 이제 세상이 달라질 거니, 서로 바쁘겠어요?”
이제 로버트 윤도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내가 흑염룡을 통해 게이트를 만들면, 로버트 윤도 거들어야 하는 동조자가 된 것이다.
[다음부턴 신호라도 주고 해요.]
오르문의 부탁이었다.
“그게 뜻대로 잘 되진 않지만, 최대한 신경 쓸게.”
간략한 답을 남긴 뒤, 부원들에게 한가지 공지했다.
“아, 그리고. 히로시도 여기로 와서 지낼 거야. 혹시, 불편하거나 그렇진 않지?”
“불편한 게 있긴 하지.”
이지은이 답했다.
“뭐가 불편해?”
“그 친구는 우리가 하는 말을 정령 덕분에 알아듣지만, 우린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잖아. 그게 아무래도 꽤 불편하지.”
단순히 소통의 문제 때문에 불편하단 거였다.
그래도 생활적으로 불편한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단순히 말동무라곤 나밖에 없고 나마저도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니 외롭진 않을까 하는 따뜻한 걱정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이제 로버트 윤도 있어서 말동무 문제는 없어. 그리고 일본 협회장도 한국에 자주 있을 건데.”
“그런 거라면 뭐…….”
“그거 말곤 문제없는 거지?”
어차피 히로시가 이곳에 방문한 것이 처음도 아니고.
얼굴도 다들 익숙하니 부원들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괜찮죠? 눌러앉아도.”
로버트 윤도 슬쩍 물었다.
중앙 협회에서 나온 몸. 갈 곳이 사라졌으니 당분간 로버트 윤도 양산부에 머물겠단 뜻을 보였다.
“에이, 그건 아니지. 그쪽은 돈도 많으신 분이 왜 굳이?”
하지만 신보미는 반대했다.
맹반대까진 아닌, 농담조로 건넨 말이다.
“왜 제가 돈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죠?”
“중앙 협회 직원, 그것도 고위층을 몇 년이나 지냈는데 집 하나 살 돈 없어요?”
“흠.”
로버트 윤은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컴퓨터를 하다 보면 갑자기 뜨는 오류 창처럼 느낌표 모양의 아이콘이 있는 것 제외하곤.
전부 영어라 정확히 어떤 문구인지 몰랐다.
“보다시피 계좌 압류당해서요. 빈털터리가 됐네?”
“…….”
매튜 협회장이 손을 쓴 모양이다.
“어때요? 이 정도면 양산부에 있을 충분한 이유는 될까요?”
“차암…… 누구누구 부장 씨랑은 다른 사람이라 상대하기가 힘드네.”
신보미의 말뜻은 나는 늘 장난기 가득한 대답으로 둘러대지만, 로버트 윤은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라서 대하기 힘들단 뜻으로 보였다.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하라네요?”
“그럼 마음대로 해야죠.”
로버트 윤의 합류도 결정.
단, 양산부원으로 합류가 아닌 그저 양산부에서 지내는 것이 확정이다.
“미스터 윤. 슬슬 준비 합시다.”
그리고 곧장 그는 내게 말했다.
“뭘요?”
“중앙 의회가 정식으로 세워질 명분은 충분하니, 합류를 결정한 협회들과 조율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적어도 그들에게는 미스터 윤 당신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의 기관이 이제 정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문제.
신생 기관이다 보니 조율할 것이 있으니 창설 전에 필요한 것들을 확실히 정하잔 뜻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욕심이나 흑심을 품고 합류한 협회가 있을 경우, 합류를 반려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는 장소다.
“그러죠.”
“협회로 갑시다. 현명한 장길수 협회장이니, 이 부분도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졌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럼~ 우리 부원들은 부서 잘 지키고 있어.”
“우리가 무슨 집 지키는 개야……?”
신보미는 투덜거렸다.
“농담도 못 하나.”
“길 열어드릴까요?”
정다혜가 곧장 내 앞에 나타나 물었다.
“음, 아니.”
“엥……? 그럼 오늘은 차 타고 가게요?”
워프를 거절한 나를 보고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이번엔 내가 직접 해보려고.”
“직접……?”
마물이란 능력의 활용도를 늘리고 싶었다.
이제 중앙 의회도 생겨날 거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내가 가진 능력 전부를 숙련시키겠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따라 할 생각이었다.
“쉬고 있어.”
난 그렇게 정다혜의 워프 능력을 따라 해 봤다.
특히나 정다혜의 워프 능력은 자주 봐 온 것이기에 따라 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로버트 윤의 능력도 한 번만 보고 따라 했는데, 이걸 못할까.’
그런 생각을 가지며 정다혜의 능력을 그대로 따라 했을 때.
포털이 열렸다.
“오, 쉽네.”
“……우와. 이렇게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는 거라니.”
워프 능력자인 정다혜도 놀란 것을 보면 꽤 훌륭하게 따라 한 것 같았다.
“갑시다! 로버트 형아!”
“……형아?”
***
도착한 협회.
협회장실을 향하는 길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협회장이 최현민이었던 시절에는 이곳에 오는 게 영 찜찜하고 불편했지만.
이젠 눈치 볼 사람도 없지 않은가?
만약 내가 결혼을 했고, 처가와 사이가 좋은 사위라면.
장인, 장모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뜬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펭귄처럼 보여.]
흑염룡이 말했다.
“이렇게 잘생기고 비율 연예인급인 펭귄 봤냐?”
[아이 씨……. 괜히 말 걸었어…….]
흑염룡은 금세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협회장실에 도착하고, 당당히 노크를 했을 때.
“누구지?”
안에선 장길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협회장님~”
내가 우렁차게 답하자.
협회장실의 문이 스스로 열렸고, 그 안에선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장길수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와락 안았다.
“이게 누구야 우리 한국의 보물 윤도원이 아니야!”
누가 보면 장길수가 내 아버지로 보일 지경이다.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닌가요?”
“오버 좀 해도 되지! 들어와. 로버트 씨도 같이 왔구먼!”
“안녕하십니까, 협회장님.”
“자네는 너무 사무적이야. 때론 여기 윤도원이처럼 좀 부드러워져 봐.”
“사람마다 스타일이란 게 있고, 미스터 윤의 스타일은 저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나 참……. 맥빠지는구먼. 아무튼, 자네도 얼른 들어오게.”
그렇게 우리는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협회장실에서 뉴스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길수가 뉴스만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채널을 계속 틀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뉴스로 향했다.
[안정화를 찾기 시작한 한국. 국민들의 반응은?]
난 어제 초월석을 넘겼고.
그 초월석은 국가 기관에 전달되어 이제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자원 뻥튀기 기술이라 불리는 것에 사용된다.
내가 전달한 초월석은 4개.
각각 석유, 수도, 전기에 우선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란 것도 들었다.
하나 남은 초월석은 국가 기관이 시급한 곳에 사용하도록 놔뒀다.
특히 리터당 3,000원 선을 뚫었던 유가는 이제 1,000원대로 대폭 하락.
내가 초월석만 꾸준히 공급해 준다면, 예전의 100원대로 찾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자원 뻥튀기 기술이 활성화되었던 시대를 놓고 보자면.
100원대와 1,000원대는 10배의 차이가 나지만.
이미 국민들은 30배 차이였던 3,000원대라는 지옥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하루아침에 3배가 절약되었으니, 뉴스 인터뷰에 응한 국민들 얼굴에는 전부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서서히 물가가 안정화되어 가는 걸 보니 어떠세요?]
현장 취재를 나간 기자가 한 국민에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지금 너무 꿈같아요. 이게 다 한국에 있는 헌터 한 명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면서요?! 누군지 몰라도 정말 위인전에 실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답변을 하는 국민의 눈망울은 물기가 가득했다.
감정이 복받쳐 곧장 눈물이라도 왈칵 쏟을 듯했다.
[맞아요! 위인전에 안 실리면 화폐에라도 실려야 해요!]
누군지도 모르는 나를 향해 보내는 찬사들이다.
“기분 좋지?”
내가 뉴스 화면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장길수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음, 이런 기분 처음 느껴보네요.”
“그래서 좋단 거야 안 좋단 거야.”
“안 좋을 리가요.”
“정말 큰일 한 거야. 아무튼, 앉지. 왜 왔는지 알고 있으니까.”
협회장실에 있는 응접용 테이블에 앉았다.
이번에도 감회가 참 새로웠다.
원래 이 앞에는 그 너구리 같은 최현민이 앉아있던 자리인데.
든든한 장길수가 앉아있다니.
사람 하나 바뀐 것 가지고 자리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장길수 한 명 덕분에 협회장실의 그 부정적인 이미지 전부가.
말끔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도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뉴스로 향했다.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가는 그런 상황이다.
“에헤이~ 안 되겠구먼.”
특단의 대책으로 장길수는 TV를 꺼 버렸다.
“중요한 얘기니까 집중 좀 하자고?”
“하하, 그러시죠.”
“그래. 얘기해 보자고.”
이제 장길수는 로버트 윤을 쳐다봤다.
“중앙 의회 창설 때문에 온 거 아닌가?”
“역시, 현명하시네요.”
“중앙 협회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기관이 세워지는 건데. 동네 구멍가게 여는 게 아니잖나? 조율할 게 많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
로버트 윤이 예상한 대로.
장길수는 이미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어느 정도의 생각을 마친 것 같았다.
장길수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난 고집부리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말야.”
“말씀해 보시죠. 과연 장길수 협회장님의 고집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군요.”
“까놓고 얘기해서. 중앙 의회에 합류한 협회들은 전부 초월석이 목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태잖아?”
“그렇죠?”
로버트 윤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초월석 얻고 싶으면 중앙 의회로 오라는 언론 플레이를 해 버렸으니, 오직 초월석만이 목적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세계에서 초월석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 명. 우리의 윤도원이, 일본의 히로시, 그리고 로버트 윤까지. 초월석이 목적인 협회가 많은 만큼, 초월석의 개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게이트 현황도 마찬가지로 전부 알려줘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맞습니다. 중앙 협회가 저지른 과오를 우리가 똑같이 되풀이해선 안 되죠.”
“그래서 내가 부리고 싶단 고집이 이거야. 투명하게 모든 걸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만큼, 게이트도 한 곳에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잠깐, 게이트를 한 곳에만 만들어야 한다면.
혹시……?
그런 생각으로 이어질 장길수의 말을 기다렸다.
“게이트를 만드는 장소를 한국으로 하고 싶은데. 도원이가 있는 양산부로. 처음부터 게이트가 있었던 장소니까.”
그것이 장길수의 고집이었다.
“흐음. 조금 어려운 문제군요.”
하지만 로버트 윤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