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안정화 (2)
“이봐…… 협회장…….”
독일 협회장의 비꼬는 듯한 말에, 매튜의 목소리가 떨렸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억제하는 중이었다.
-반응 보니 내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된 것 같군.
선고하듯 뱉는 그 말.
무엇보다 독일 협회장은 상당히 당당했다.
일방적으로 결격 사유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메시지?”
-나한테 연락한 이유가 한국의 뉴스를 봐서 그런 것 아닌가?
“…….”
이렇게 뻔히 알고 있단 것은.
독일 협회장 역시 문제의 그 뉴스가 나오길 기다렸단 뜻이었다.
-독일 협회는 중앙 협회를 탈퇴한다. 시간 보니 러시아 협회보다 우리 독일 협회에 가장 먼저 연락한 것 같은데. 러시아 협회에 연락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네, 협회장.
“이게 지금 말이나 되나?! 고작 초월석에 눈이 멀어 세계의 질서를 거스르겠다고?!”
이제 매튜는 협박과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져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이 앞서며 스스로 무덤을 판 발언이 되고 말았다.
-고작 초월석? 그 고작 때문에 여태껏 패악을 부리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우리가 그동안 정말 몰랐다고 생각하는 건가? 던전이 존재하던 시절, 실 보유 던전 개수는 뭐, 모든 국가가 숨겼으니 넘길 수 있지만. 왜 유독 미국의 초월석 실사용량을 조작한 거지? 고작이라면서.
“…….”
타이밍 좋게 훌륭한 변명을 찾아내야 했지만.
이미 감성에 완전히 먹힌 매튜의 뇌는 그대로 활동이 정지된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은 이유가 컸다.
-그런 것 다 참는다고 치지. 하지만 우리가 중앙 협회를 탈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독일 협회는 헌터력 세계 2위다. 미국 다음이란 뜻이지.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런 국가의 협회장인 내가. 중앙 협회에 안건을 제시할 때마다 묵살했던 게 누구지?
중앙 협회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협회가 어디냐고 말한다면.
독일 협회라는 것은 매튜도 부정할 수 없다.
독일 역시 게이트 정복에 대해 미국과 똑같이 열정적이었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낮은 랭크의 헌터도 상위 랭크 던전 레이드를 정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찰을 끝없이 진행했던 곳이다.
하지만 독일 협회의 안건은 세상에 공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너무 현실적이고 실제로 효과가 좋아 보여서였기 때문이다.
던전 속 게이트로부터 인류 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목에 세워진 중앙 협회.
하지만 지도자의 문제였을까.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인지도가 서서히 올라가면, 중앙 협회 패권을 잡고 있는 미국인 협회장의 입지가 점점 위태해졌기에 독일 협회의 계획은 묵살된 것이었다.
-협회장. 하나 분명히 말하지. 내가 중앙 의회에 합류한 이유는 초월석 때문이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초월석 때문으로 보인다.”
-그거야 당신 눈과 생각에는 초월석밖에 없으니까 그러겠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말야.
“…….”
-우린 우리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기회를 줄 사람이 필요했다. 단지 그뿐이다. 초월석? 받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 애초에 초월석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중앙 협회에 있으면서 독일 협회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없다고 치부하는 건가?”
-실제로 그랬으면서 왜 지금은 선량한 척, 피해자인 척하지? 피해자는 우리 독일인데. 우린 중앙 의회에 합류해, 그간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예정이다. 중앙 의회는 그것을 확실히 보장해준다고 했으니.
“사람 말은 언제든 바뀐다. 달콤한 사탕발림은 누가 못하지?”
매튜 협회장이 이토록 애잔하게 독일 협회를 되돌리려 하는 것도.
이미 러시아 협회가 빠진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협회는 엄연히 중앙 협회 내에서 큰 입지가 없는, 그저 머릿수를 채우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협회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중앙 협회 내에서도 서열 2위인 독일까지 빠져나가게 되면, 중앙 협회의 이미지는 물론 권위까지 바닥을 향해 치닫기 때문에 막아야 했다.
독일이 이런 결정을 내리면 서열 3위, 4위 협회들도 독일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렇기에 독일 협회장과 약속한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을 들먹이며 최대한 흔들려고 해 봤지만.
-일본 협회장이 참 똑똑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더군.
“뭐……?”
-그는 약속을 지킬 사람이란 걸 확신했다.
“독일 협회장. 당신이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을 정도로 순진했나?”
-아니지. 당신 덕에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는 눈이 생겼지. 앞에서 약속한 것을 뒤에선 어기는 것. 당신의 특기였잖아?
“독일 협회장……. 일본 협회장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나?”
-약속을 어기고 싶어도 어기지 못할 장치를 만들었더군. 그것도 스스로 말야. 그러니 믿음이 갈 수밖에.
“…….”
매튜 협회장은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장치를 만들었기에, 저렇게 완고한 독일 협회장의 마음이 한순간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인가?
묻고 싶지만, 지금 상황상 물을 수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
-상당히 궁금한 듯한데? 내가 무엇을 보고 일본 협회장을 믿는 것인지.
독일 협회장이 먼저 물었다.
매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영상 통화도 아니었기에 그 모습이 독일 협회장에게 보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독일 협회장은 꿰뚫어 보듯이, 곧장 설명했다.
-중앙 의회장이라는. 총책임자이자 지도자 직책을 아예 만들지 않겠다고 하더군. 추진하고자 하는 사안은 안건을 올리고. 중앙 의회에 속한 협회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시스템이야. 아주 단순하면서도 공정한 시스템이지.
중앙 의회란 새로운 국제기관이 생겨날 것인데도.
의회장이란 책임자 자리가 없다니.
매튜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면 질서가 엉망일 텐데?”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질서가 무조건 정립되란 법도 없지. 중앙 협회를 보고 있자면 말야.
“…….”
이 역시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중앙 협회는 한순간에 입지가 아주 위태롭게 변했으니까.
독일 협회장은 비수와 같은 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얘기인데. 미국 협회가 중앙 의회의 가입을 희망해도. 아마 뜻대로 되지 않을걸세. 내가 중앙 협회에 있으면서 없던 미국인 혐오가 다 생겼으니 말야.
“유치하게 복수를 하겠다, 이런 건가?”
-굳이 부정하지는 않지. 우리가 적당히 당했으면 나도 이런 마음이 생기진 않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던가?
“이봐! 독일 협회장!”
-아~ 그리고. 내가 미국인은 혐오하지만 그래도 딱 한 명은 예외야. 아, 생각해 보니 그를 온전한 미국이라고 보기는 힘든가?
“……뭐?”
그 순간 매튜 협회장은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온전한 미국인이라고 보기 힘든 사람.
그리고 매튜도 알고, 독일 협회도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매튜는 조용히 로버트 윤이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
사직서를 바라봤다.
“설마…… 로버트를…….”
-아주 유능한 친구야. 내게 꼭 필요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기지. 훗.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함께.
독일 협회장은 진정 남기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네 부하 대단하더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뚝.
그렇게 독일 협회장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로버트…… 다짜고짜 사직서를 내민 이유도…….”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성실한 모습을 보였던 그가 갑자기 태도가 변해 중앙 협회를 관둔 이유도.
결국, 로버트가 처음부터 중앙 의회 결성에 깊게 관여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다.
“이것들을 전부……!”
눈앞에만 있다면, 생으로 갈아 마셔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매튜 협회장은 서서히 몰락하는 중앙 협회를 관망하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젠장!”
***
“음? 근데 있잖아.”
화려한 장길수의 데뷔식인 인터뷰가 끝난 뒤.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를 내는 신보미였다.
그녀의 시선은 나를 향하는 중이다.
또 뭔가 궁금한 게 생긴 듯했다.
“뭐야. 뭔가를 알고 싶어 하는 그 눈빛.”
“오빠는 왜 인터뷰 안 했어요? 나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저기 나가서 신나게 떠들어댔을 것 같은데. 의외네?”
장길수 다음으로 왜 물가 안정화의 혁혁한 공로가 있는 초월석을 만들 수 있는 장본인인.
내가 인터뷰 하지 않았냐는 질문이다.
“말 좀 예쁘게 해라. 나대기 좋아한다는 게 뭐냐?”
“뭐야, 왜 갑자기 꼰대짓이야.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여기 양산부 있으면서 오빠가 한 짓 생각하면 진짜 관심종자 그 이상 아니었어요?”
“안 되겠다. 넌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지 마. 애가 선이 없네. 부장님이라고 불러.”
“아~ 니예~ 니예~ 부좡님~”
더 열받네…….
이렇게 말리는 것도 오랜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열받는 건 아주 잠시고.
그 뒤에 드는 느낌은 편안함이라고 할까?
적어도 신보미와 이런 일상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그간 내게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그 머리 아픈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나도 궁금하네?”
“나도! 우리 꽃돌이가 어째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걸까? 심지어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네? 신비주의, 뭐 이런 건가?”
이지은과 권다정 역시 신보미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왜 인터뷰를 하지 않았느냐라~”
사실, 뉴스에 나왔던 장길수의 인터뷰는 어제 급하게 한 녹화본.
장길수의 인터뷰가 끝이 난 뒤.
장길수 역시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국민들에겐 구원의 주역이나 다름없는데 얼굴 보여주는 편이 어떻겠냐고.
하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절했다.
“내가 중2병 환자였던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에이~ 말은 제대로 해야지. ‘였던’이라니? 왜 과거형으로 말해요? ‘환자인’이지. 지금도 똑같은데.”
“확 씨. 사람 말하는데 끊고 있어.”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신보미는 기겁을 했다.
“어머머? 여자 치겠네?”
“시끄러워. 아무튼. 난 중2병 환자지 연예인병 환자는 아니라고.”
중2병과 연예인병은 엄연히 다르지.
연예인병은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걸 좋아한다면.
중2병은 그저 나 혼자 좋을 것을 즐기는 것뿐이니까.
그렇기에 난 일부러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국에 내 얼굴 팔리는 거 난 싫다~”
“왜요? 아, 하긴. 혹시 악플 같은 뭐 그런 거 걱정해서? 아니면 너무 관심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집중돼서?”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유명인이면 그 일거수일투족이 기삿거리가 되곤 한다.
그것을 걱정해서 일부러 그런 선택을 했냐는 질문이었지만.
난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그런 건 별로 안 무서운데? 나 이래 봬도 멘탈 꽤 튼튼하거든.”
“그럼 왜요?”
“보미야, 내 얼굴이 전국으로 나가면 큰일 나지.”
“그러니까 왜! 무슨 밥솥이야? 그냥 말하면 될 거 가지고 왜 이렇게 뜸을 들여?!”
“훗, 이 잘생긴 얼굴 보고 어여쁜 처자들이 상사병에 걸리면 안 되잖니? 난 의사가 아니라 처자들의 상사병을 치료할 수 없단다.”
“십…….”
신보미는 급정색을 하며 욕설을 겨우 참았고.
“다훈아…… 듣지 마. 저런 건……. 좋은 것만 보고 들어야 하는데…….”
정다혜는 정다훈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흑염룡은.
[아! 씨! 방심했는데!]
쿵.
게이트로 변했다.
음, 이건 장길수 협회장님 취임 선물로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