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안정화 (1)
다음날이 되었을 때.
양산부에서 나는 물론 부원들과 로버트 윤까지.
전부 한데 모였다.
그리곤 모니터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우리는 지금 뉴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세상 참 좋아, 옛날엔 TV 없으면 뉴스를 아예 못 봤는데. 이젠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고 말야.”
뉴스를 기다리면서 슬쩍 그런 농담도 건넸다.
“왜 갑자기 애늙은이 소리를 하고 그래? 누가 보면 50대 아저씨인 줄 알겠어.”
나와 동갑인 이지은이 핀잔을 주듯 말했다.
“그냥 그렇단 거지, 뭘 진지하게 받아들여.”
사실 설레는 마음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런 헛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본래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 눈앞에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하면, 사람은 점점 흥분하게 되니까.
드디어 뉴스는 시작되었다.
[속보]
일반적인 뉴스의 시작과는 사뭇 다른 자막.
시작부터 속보라는 단어를 띄워 놓곤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자막은.
[사용 가능한 초월석 확보, 내일부터 물가 안정화에 들어가.]
앵커가 해당 소식을 차분하게 전했다.
겉으론 차분하게 보이지만, 이 소식을 전하는 앵커 역시 속마음은 흥분된 것이 눈에 보였다.
그동안 나에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심각한 상황을 눈을 통해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렇지.
현재 사회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유가(油價).
내가 헌터가 되기 이전.
그리고 세상에 정식 던전이 아직 남아있던 때.
리터당 100원 수준이었던 유가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어느덧 3,000원 선을 넘었다.
이 때문인지 실제로 도로를 봤을 때, 교통량이 예전에 비하면 50% 이상 줄었다.
대중교통인 버스 역시 배차를 최소화하고, 수도권인데도 시골처럼 하루에 몇 대 지나다니지 않을 지경.
신동원 같은 재벌 아니고선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디 유가만 그럴까?
전기, 수도 등등. 많은 부분이 유가와 비슷한 정도로 치솟아 올랐기에.
국민들은 강제 절약 운동을 하는 중이다.
내가 처음 예상했던 대로 물을 끓여 먹는 값싼 식품의 대명사, 라면 역시 본래 1,000원 정도면 한 끼 식사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은 10,000원 정도로, 10배가량 올랐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이제 세계에서 최초로 한국부터 해결할 수 있단 생각에 앵커는 저렇게 들뜬 것이다.
저 앵커 역시 그 암울한 상황 속의 피해자였으니까.
“응?!”
“뭐야? 초월석 확보라니?”
그와 동시에.
부원들은 나를 일제히 바라봤다.
이 시대에 초월석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이 알기에는 딱 한 사람.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 뉴스는 내가 가졌던 초월석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순간이다.
“아니, 언제 준 거예요?”
특히 신보미가 날 보며 물었다.
단순히 궁금한 질문이라기보단,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판단하면 심문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
“어제? 어제 협회로 간다면서? 가서 뭘 한 거예요, 도대체?”
“새 협회장 취임 선물로 줬다고 생각해.”
“잠깐, 새 협회장이면?!”
그리고 우리 부서의 가장 연장자.
권다정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새로운 협회장의 등장이란 뜻은 기존 협회장은 사라졌단 뜻.
즉, 최현민의 행방에 대해 궁금한 듯하다.
“아, 이건 말 안 해 줬구나? 중앙 협회에 갔다 오자마자 내가 쓰러져 버렸으니. 최현민 협회장 구속됐어요. 협회장직은 당연히 잘렸고.”
“그럼…… 누가 협회장이 되는 거야? 될 사람이 있기나 한가?”
“궁금하면 계~속 보기만 하면 돼요.”
이제 뉴스에 집중했다.
[국민 여러분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이른바 자원 뻥튀기 기술을 재개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 전해드립니다.]
앵커 역시 흥분한 거 맞다.
보통 앵커는 최대한 무표정을 짓는데, 저 앵커는 얼마나 기뻤으면 은연중에 본심이 나와 버렸을까.
입가가 자꾸만 씰룩거렸다.
[어떻게 한국에서 제일 먼저 자원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신임 한국 헌터 협회장의 인터뷰를 보시겠습니다.]
화면은 전환됐다.
그리고 등장한 반가운 얼굴.
장길수였다.
자막 역시.
[장길수(62)/헌터 협회장]
으로 표기되었다.
“아따~ 우리 협회장님 화면빨 잘 받네. 안 그래? 믿음직스러운 중년 배우 같지 않아?”
내가 장길수를 향해 아끼지 않고 칭찬을 했지만, 부원들은 반응이 없었다.
내 말에 대꾸하기가 싫은 게 아닌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음, 그래요? 전 실물이 더 나은 것 같은데.”
로버트 윤만은 내 말을 들어줬다.
아마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뉴스에 나온 것이다 보니, 다른 부원들처럼 굳이 집중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나와는 의견이 갈릴 뿐이다.
장길수의 인터뷰 영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신임 협회장 장길수라고 합니다. 일단 이 일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드리자면……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난세 속에선 영웅이 등장하는 법이란 말이 있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내가 영웅이긴 하지.”
부정할 순 없을 거다.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부원들 반응을 살피려 할 때.
“아! 좀! 조용히 좀 해 봐요! 잘 안 들리잖아!”
“…….”
신보미의 철벽 수비와 같은 태클이 곧장 날아들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뭘 기대하니.
[협회는 최근, 아주 우연한 기회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를 찾았습니다. 그것도 한국이라는 이 작은 땅을 가진 나라에서 그런 영웅이 등장한 것입니다.]
장길수는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지속했다.
사실 말이 좋아 밝은 표정이지. 정말 갖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된 어린이가 생각나는 듯한, 약간은 오버스러운 반응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
난 장길수에게 물었었다.
왜 그렇게 오버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했느냐고.
협회장이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너무 가벼워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제 장길수가 내게 준 답은 의외였다.
“이 인터뷰는 이제 전국민이 함께 볼 건데. 지금 국민들은 힘든 상황에 놓였잖아요? 그런 고단한 삶을 끝낼 수 있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는 자리인데. 제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고 있는 국민들도 설레는 마음이 더 생기지 않겠어요?”
정말인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부러 오버스러운 반응을 보였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역시, 준비된 협회장이다.
최현민과는 달리.
그리고 나에 대한 존재는 이미 예전에 알았지만, 인터뷰에선 이제 막 알아차린 것처럼 말한 이유도.
국민들이 오해를 하기 쉽기 때문이다.
“진작에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를 알고 있었으면서 상황이 심각해지니까 알려주는 이유가 뭐냐!!”
라고 생각할 사람이 충분히 많을 법했다.
사실, 우리가 싫어서 숨긴 건 아니지 않던가?
우리는 초월석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으나 탐욕스러운 괴인이 주변에 너무 많았을 뿐이지.
한국에는 최현민, 강만식.
미국에는 매튜 중앙 협회장 등등.
그런 방해 공작을 벌인 자들을 일일이 국민들에게 고자질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렇게 무마한 것이다.
다시 장길수의 인터뷰에 집중했다.
이제 나올 소식이 우리의 결정타였으니까.
[초월석을 만드는 능력자는 한국의 헌터로, 그는 협회와 협력하길 원했고, 초월석을 어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길 간절히 희망했습니다. 저희 역시, 반갑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전달된 초월석은 이제 국민께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장길수는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국민들께 한가지 알리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사실이죠?]
이건 예정에 없던 인터뷰.
저 인터뷰를 촬영했을 당시에도 당황한 기자가 저렇게 물었었다.
이제 준비된 말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저희 한국 협회는 중앙 의회라는 새로운 국제기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이번 초월석 유통 역시 그 국제기관인 중앙 의회에서 많은 부분을 도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잠깐만요, 협회장님……. 그럼 초월석의 존재를 알고 있던 외세가 있었고, 그간 견제를 해 왔다는 말씀이신가요?]
장길수는 피식 웃었다.
고자질을 전부는 할 수 없지만, 일부는 할 수 있다.
장길수는 그 생각으로 저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
초월석은 이미 예전에 사용할 수 있던 상태인데, 그걸 견제한 사람이 있다?
도대체 누가 견제하던 중이길래 새로은 국제기관인 중앙 의회란 이름까지 나올까?
견제하던 사람 중 국제 기관까지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을 품는 게 당연하다.
장길수가 전부 의도한 것들이다.
국민들은 똑똑하다. 상황 하나를 놓고 꽤 적중률 높은 추측을 하곤 하니까.
게다가 한국 협회장까지 갑자기 바뀌었으니, 이 일은 이제 한국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똑똑한 아저씨야. 장길수.’
[적이라는 건 내부에도, 외부에도 늘 있는 법이죠. 아무튼, 초월석이 안전하게 전달되었고. 한국 협회는 중앙 의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도와준 일본, 러시아, 독일 협회 등등.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곤 장길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건 중앙 협회를 저격하는 말이다.
“너희 기관의 구성 협회인 러시아와 독일까지. 새로운 중앙 의회에 있다.”라는 도발이다.
장길수의 마무리 멘트가 흘러나왔다.
[저희 중앙 의회는 앞으로 의회에 가입한 국가의 안정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설 것입니다.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가 한국인이었기에 한국이 최우선 순위가 된 것이고. 한국 이후로는 일본. 그다음은 독일, 러시아 순서가 됩니다. 모쪼록 앞으로 평화를 위한 중앙 의회의 활동. 국민 여러분은 물론, 세계인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길 소망합니다.]
이제 세 번째로 고개 숙인 장길수.
이번엔 중앙 협회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말과 같다.
장길수가 한 말의 뜻은.
“초월석은 이제 중앙 의회란 새로운 국제기관에서 전담한다. 그리고 초월석은 중앙 의회 가입 국가에게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초월석 얻고 싶으면 중앙 의회에 가입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라고 알리는 것이다.
장길수는 뻔히 아는 거다.
초월석 이슈를 다룬 자신의 인터뷰가.
각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에 널리 퍼질 것을.
그리고 뒤늦게 정보를 접한 타국의 협회들의 입질이 슬슬 시작될 예정이다.
중앙 의회는 세계를 향해 미끼를 던졌고, 세계의 협회는 그 미끼를 덥석 물어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짝, 짝!
난 손뼉을 쳤다.
“이상, 신임 협회장님의 아주 멋진 인터뷰였습니다~ 다들 박수~”
부원들 역시 얼떨결에 나를 따라 손뼉을 쳤다.
***
“……독일, 러시아 협회가 왜?”
한편, 한국의 뉴스 속보는 빠르게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 전체에 퍼졌다.
레드뷰를 통해 퍼진 한국의 뉴스 속보 하나.
중앙 협회장 매튜는 장길수가 남긴 인터뷰를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이 얼얼했다.
곧장 휴대폰을 들어 독일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이제 봤나? 염치도 없지. 우리가 통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나?
독일 협회장은 여유 넘치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