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중앙 의회 결성 작업 (1)
“흐음…… 이건 또 어떻게 된 우연일까요?”
나는 지금 히로시에게서 전화가 오는 중이고.
로버트 윤은 중앙 협회장 매튜에게서 전화가 오는 중이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저는 무슨 일로 전화가 오는지 알겠지만.”
로버트 윤의 경우엔 전화가 오는 이유는 나도 알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히로시에게서 오는 전화다.
로버트 윤은 매튜 협회장에게서 오는 전화를 무시한 채, 내게 말했다.
“미스터 윤은 전화를 받는 쪽이 좋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하필이면 우리가 중앙 협회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오는 전화라니.
어딘가 불길한 기운이 가득했다.
난 곧장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그래, 히로시. 무슨 일이야?”
-형……. 지금 어디예요? 오늘 청문회가 있는 날이었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조금 조급하긴 하나, 그렇다고 정신이 없어 보이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차분한 상태다.
하지만 내가 어디 있는 것을 묻는 걸 보니, 내 위치가 중요한 듯하다.
지금 히로시에게 일어나는 일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진작에 끝났어. 왜 그러는데?”
-그게…… 갑자기 중앙 협회에서 저한테 호출이 왔어요.
돌연 히로시에게 호출을 한다라?
“누가?”
-중앙 협회장이 직접요.
“그거 말고 특별한 말은 없었고?”
-네.
이상하다.
히로시를 호출해서 뭘 얻고 싶었던 걸까.
히로시와 나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정령의 주인.
그것은 바꿔 말하면 게이트 관련 능력자이다.
히로시 상대로 무언가를 할 작정이었던가?
로버트 윤이 중앙 협회를 떠나기 직전 압수한 키트가 또 있었고, 그것을 히로시에게 사용할 생각이었던 건가?
갖은 생각이 겹쳤지만, 이게 정답이다, 싶었던 건 없었다.
-그래서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전화해 봤죠.
“단지 그것 때문에?”
-네.
아직까지는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저 느닷없이 중앙 협회 호출 연락이 왔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개인적인 연락이었다.
난 히로시에게 중앙 협회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로버트 윤은 예정대로 사직했으며, 이제 중앙 의회 결성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렸을 때.
-아~ 그럼 중앙 협회가 저를 호출한 것도 썩 긍정적인 이유는 아니네요.
히로시도 호출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기에 금방 알 수 있다.
“그렇지.”
-그럼 그냥 무시해도 되겠네. 어차피 이제 볼 일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요?
“완전히 그렇진 않지만…….”
-아무튼, 제가 중앙 협회에 협조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청문회가 끝나고, 나와 로버트 윤이 중앙 협회를 떠나면서 인연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이젠 새롭게 시작될 악연만이 남은 상태다.
“혹시, 히로시에게 내일까지 일본 협회장과 함께 한국으로 방문할 수 있겠냐고 물을 수 있습니까?”
그때, 로버트 윤이 물었다.
난 그의 질문을 그대로 히로시에게 전했다.
-음, 어려운 일은 아닌데. 문제는 허가가 필요하잖아요? 한국 협회 쪽에서 허가해 줘야 할 텐데.
헌터들이 국경을 넘나들 땐.
출국 허가, 입국 허가가 필요하다.
출국 허가의 경우엔 일본 협회장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입국 허가를 한국 협회 측에서 미리 작업해달란 요청이었다.
“라는데요?”
“하하하하! 그걸 왜 걱정합니까, 크큭.”
그런데 히로시의 요청을 전하자, 로버트 윤은 배꼽을 부여잡으며 폭소를 터트렸다.
[……쟤 이상해. 아무리 봐도 이상해…….]
흑염룡은 소름 끼친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버트 윤의 행동을 비정상으로 바라봤다.
나 역시도 지금은 흑염룡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게…… 웃겨요?”
“다들 왜 이렇게 순진한 겁니까?”
“뭐가요.”
순진하다니. 순진과는 제법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로버트 윤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으니 얼떨떨했다.
“출국, 입국 허가는 중앙 협회가 세운 규칙인데. 우린 이제 중앙 협회의 통제를 받는 기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킬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아…….”
중앙 협회 하나 등졌다고 이런 편리함이 생기다니.
곧장 히로시에게 설명했다.
-그러네? 습관이 됐나 봐요. 늘 허가받고 움직이다 보니까요.
“그럴 수 있지. 아무튼, 허가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내일까지 오기만 하면 되는데. 할 수 있지?”
-물론이죠!
“그래도 도착 예정 시간은 알려줘. 그래야 마중을 나가든지 할 테니까.”
-네, 당장 저희 협회장님이랑 상의하고 알려드릴게요.
어차피 일본에서 한국까지는 정말 길어야 비행시간 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20시간은 써야 하는 미국에 비하면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오냐, 내일 보자.”
난 이제 전화를 끊고,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내일 그 둘을 부른 이유. 다 있는 거죠?”
“물론이죠. 내일이면 장길수 협회장이 복귀할 거니, 중앙 의회 결성을 공식적으로 시작합시다. 그리고 내일부터 미스터 윤. 당신이 바빠질 거예요.”
“내가…… 바빠진다라.”
여태까지도 그리 한가한 나날을 보내진 않았다.
흑염룡이 내게 온 뒤로.
늘 바쁘고 피곤하고, 머리 아픈 나날이 연속되었는데, 여기에서 더 바빠진다고 한들 뭐가 다를 게 있을까.
전혀 무섭지 않았다.
“뭐, 여기서 더 바빠져 봤자지.”
생각해 보면 지난날 중에, 어디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있었을까?
아, 물론.
정신을 잃은 3일 제외하고.
그땐 진짜 푹 잤지.
그러나 그전까지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아마 만성 스트레스로 난치병 하나 정도는 충분히 걸릴 수 있다.
“흠, 많이 바쁠 텐데.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이 받고요. 젊은 날에 탈모 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로버트 윤은 뭔가 확신하는 듯한 말이었다.
“탈모라니. 이 얼굴에 탈모 오면 얼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크큭, 역시. 미스터 윤은 재밌는 사람이었네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는 거죠? 내가 많이 바쁠 거란 거.”
“뭐, 간단합니다. 중앙 의회를 결성하기 위해선 세계인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적을 세워야 해요. 우리끼리 뭉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뜻이죠.”
“세계인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적이라…….”
“중앙 협회가 등장하고. 미국인이 초대 협회장으로 앉았을 때. 누군가 이의를 표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물론, 소수는 있었겠지만, 절대적인 다수는 오히려 납득했었죠. 왜 그런지 당신은 알지 않나요?”
“그렇구나, 무슨 공적을 말하는 건지 알겠네요.”
약 50년 전 시작된 인류 빅뱅.
그때 일선에 나서서 발명한 던전 등급 측정법.
던전 등급에 따라 출몰하는 몬스터의 강력함.
그리고 그런 몬스터의 공략법.
거기에서 끝이 아닌 초월석 등급 측정법 등등.
지금 우리 일상에서 생활하는 모든 기술이 미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것만 나열해도 이 정도이다.
절대적인 공적 바로 자원 뻥튀기 기술.
그것 역시 미국에서 나왔다.
인류를 위해 이런 획기적인 기술을 공유한 곳이 바로 미국.
그렇기에 중앙 협회가 결성되고, 그 총책임자로 미국인이 임명되었을 때도 세계인은 자연스럽게 수긍했다.
왜냐, 이미 그들이 세운 공적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기에, 미국인이 중앙 협회장으로 있으면 더 편리한 기술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으로.
이번에 새롭게 결성할 중앙 의회 역시 세계인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적을 세워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꽤 어려운 과제군요? 세계인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적을 세워야 한다라…….”
“어렵진 않아요. 그저 피곤할 뿐이지. 그리고 미스터 윤. 당신에겐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잖아요?”
그는 깊은 믿음을 담은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나에게 세계인 전부를 납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
그의 눈초리는 이제 내 옆부분으로 향했다.
아마도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렇구나. 초월석?”
“그럼요, 초월석이 멸종된 이 시대에. 초월석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데. 그것만으로 세계인은 납득할 수 있죠.”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 같은데, 미리 들을 수 있나요?”
“미리 말하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
“그럼 재미있게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나는 알아야 하지 않던가?
그가 세운 계획의 중심엔 내가 있으니까.
로버트 윤은 아주 잠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곤 답했다.
“그렇네요. 미스터 윤. 당신은 미리 알아야 행동력도 빨라지겠죠. 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세계인에게 납득할 수 있는 공적을 세우는 방법.”
그렇게 로버트 윤의 설명이 시작됐다.
듣는 내내, 내 눈동자는 커졌다.
이거.
꽤 괜찮은……. 아니, 훌륭한 계획이다.
“어때요? 어렵진 않죠?”
설명이 전부 끝난 뒤 로버트 윤이 물었다.
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뭐야, 생각 외로 간단하잖아?”
정말 그의 말대로 어렵진 않다.
다만,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았지만.
***
다음날 오후가 되었을 때.
히로시와 일본 협회장 야마다 헤이로가 한국 협회로 도착했다.
미리 마중을 나가겠다고 말을 했는데, 길을 이미 알고 있는 히로시가 직접 일본 협회장을 데리고 방문한 것이다.
나와 로버트 윤은 시간에 맞춰 협회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두 일본인이 협회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다.
“당신이 그 유명한 윤도원 씨군요. 반갑습니다.”
헤이로 일본 협회장.
그가 나를 보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나이는 지긋했으나, 어딘가 젠틀함이 있다고 느껴졌다.
전대 한국 협회장 최현민과 비교하자면…….
헤이로 협회장 쪽이 훨씬 믿음이 가고 포근해야 한다고 할까?
이상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반갑습니다. 윤도원입니다.”
“일본 협회장 야마다 헤이로요. 이쪽은……? 독일 협회와 러시아 협회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그 유능한 사람?”
그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향했고, 내 옆에 있던 로버트 윤을 보며 한 말이다.
나는 유명하고.
로버트 윤은 유능하고.
한 글자 차이인데 이상하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말이었다.
“……뭐라고 하는 건가요?”
하지만 정령이 없는 그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없었고 내게 슬쩍 물었다.
[에잇! 답답하죠, 주인님?!]
그때, 오르문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쳤다.
“아악!”
하필이면 내 귓구멍 바로 앞에서 소리를 친 탓에 순간적으로 고막이 얼얼했다.
오르문이 소리친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오르문이 있는 쪽 귓구멍을 막았다.
“……지금 무슨?”
“갑자기 왜 그래요? 미스터 윤?”
하지만 정령을 볼 수 없는 두 사람.
헤이로 협회장과 로버트 윤은 나를 미친놈 보듯이 봤고.
“히힛, 고생이 많네요~”
정령을 볼 수 있는 히로시는 코미디 무대 감상하듯, 킬킬거리며 웃었다.
“깜짝 놀랐잖아! 왜 갑자기 소리치고 그래?!”
[보는 제가 답답해서 그렇죠! 똑같은 말 계~속 들어봐요. 얼마나 답답한데!]
“그럼 어떡해? 저 두 사람한테는 정령이 안 보여서 이게 방법인데.”
[어차피 약속한 것도 있고. 로버트 윤은 보아하니 정말 믿음이 가는 행동만 보였으니까.]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을 보인 오르문.
그는 유유히 날아, 로버트 윤의 한쪽 어깨에 앉은 순간이다.
“……어어?”
로버트 윤은 갑자기 오르문이 앉은 쪽을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렇게 보였다.
설마…… 오르문이 보이는 건가?
[안녕하세요? 오르문이라고 해요. 오늘부터 제 주인님으로 받아들이죠! 이제 통역 없어도 대화 편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이게…… 정령……?”
로버트 윤도 정령의 주인이 된 순간이다.
그리고 로버트 윤은 이제 히로시와 나를 훑었다.
히로시의 오리가미.
그리고 나의 흑염룡.
둘을 번갈아 가며 보다가 다시 오르문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왜 내 정령만 남자야? 차별인가. 저 둘은 미소녀들인데.”
[풉!]
[풉!]
로버트 윤의 작은 불만(?)에 오리가미와 흑염룡은 침이 튀길 정도의 폭소를 터트렸고.
[……이 인간이 죽고 싶나. 선택과 동시에 후회하게 만드네?]
오르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