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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50화 (150/200)

§ 150화. 일본 협회장 (1)

로버트 윤이 요청한 대로, 염력을 이용해 매튜 협회장의 행동을 조종했다.

로버트 윤이 내민 사표를 받게 하는 일이다.

매튜 협회장의 손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로버트 윤의 사표로 향할 때.

매튜 협회장은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지금 이거…….”

“넣어둬, 넣어둬.”

그렇게 로버트 윤의 사표는 확실하게 매튜 협회장의 품으로 전달됐다.

“수리, 감사합니다.”

로버트 윤은 마지막까지 깍듯한 인사를 남겼다.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나 싶은 모습이다.

숙였던 허리가 올곧게 세워진 직후.

로버트 윤의 눈빛은 돌변했다.

“그럼 이제 전 중앙 협회의 직원도, 뭣도 아니네요. 미스터 윤.”

신호탄이다.

그의 계획이 시작되는 신호탄.

이제부터는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옛썰.”

“가시죠. 아, 참. 그 전에…….”

로버트 윤은 패트릭의 손에 들린 키트를 빼앗았다.

“이게 미스터 윤에게 사용하려고 한 그 키트군요? 이건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증거물이 될 수 있으니까.”

51구역 연구진이 비밀리에 공수해 온 의문의 키트.

나 역시 외관으로 봤을 땐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아예 추측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안으로 철저한 51구역에서 만든 물건이니 획기적이거나 위험하거나.

둘 중 하나는 분명하다.

로버트 윤은 키트를 가방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충격에 상당히 예민한 물건인가 보군요. 케이스부터 특수 제작한 것을 보니 말이죠.”

“잠깐! 로버트! 뭐하는 짓이야?!”

로버트 윤이 키트를 넣은 가방을 든 순간.

패트릭은 절망을 본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고, 매튜 협회장은 버럭 소리를 쳤다.

저들의 반응을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하다.

로버트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무언가라는 것.

어쩌면 51구역의 보안보다도 저 키트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어차피 이젠 남남이니까 미리 말씀드리죠.”

“뭘…….”

“과연 중앙 협회에 미래가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무슨 헛소리를…….”

“중앙 협회는 이제 몰락하게 될 겁니다. 제가 드리는 힌트는 여기까지. 자, 미스터 윤. 가시죠.”

그렇게 로버트 윤이 먼저 문밖으로 나갔고, 나도 따라서 나가며 물었다.

“그런데 한국까지는 어떻게 가요?”

“당연히 비행기 타고 가죠. 워프가 되는 거리도 아니니까.”

“흠. 그건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

이런, 완벽할 거라 여긴 그의 계획에도 오점은 존재했다.

중앙 협회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그 공항에서 한국 공항으로 가는 길까지.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는다.

과연, 중앙 협회장 매튜가 우리의 과정을 그저 너그럽게 지켜볼까?

더군다나 지금 로버트 윤은 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키트까지 빼앗은 상태.

키트라도 회수하기 위해 무슨 강도 높은 견제를 벌일지 모른다.

비행기를 이용한 복귀는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슨 걱정 하시는지 알겠는데, 복귀 방법에는 다른 방법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저도 이게 최선이었죠.”

그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이용 수단으로는 복귀가 불가능할 것은 확실하다.

공항을 폐쇄해 버리거나 하는 간단한 조치로 우리의 복귀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으면 참 좋은데…….”

하지만 그런 매튜 협회장도 우리의 복귀를 막을 수 없는 하나의 방법이 있었으니.

게이트를 이용한 정령이 가진 능력 ‘활류’.

게이트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대로 한국.

그것도 나의 둥지나 다름이 없는 양산부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트 만들 수 있습니까?”

로버트 윤도 슬쩍 기대하며 물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흑염룡을 화나게 한다거나.

혹은 오글거리게 한다거나.

애초에 모든 일이라는 건 멍석이 깔려야만 가능한 일인데, 앞에 백색 피부의 외국인이 살벌한 눈초리로 우릴 쏘아보는 상황에서 흑염룡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어…… 저기, 주인님.]

그러던 중, 오르문이 소심하게 내 어깨를 톡톡 찌르며 말했다.

“왜?”

[제 능력. 있잖아요. 저번에 51구역에서 린느 님이 게이트로 변하기 직전에 제가 슬쩍 손잡았었는데.]

“정말?!”

51구역 숙소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때.

흑염룡을 게이트로 변하게 했던 그때.

당시 내 모든 신경을 흑염룡에게만 쏠려 있어서, 오르문의 행동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슬쩍 흑염룡의 손을 잡았다는 것은…….

[지금 당장 게이트를 하나 만들 수 있는데요.]

“왜요? 미스터 윤. 무슨 일이죠?”

정령을 볼 수 없는 로버트 윤은 내가 지금 무슨 주제로 정령과 대화 중인지 몹시 궁금한 반응이다.

게다가 내 목소리가 흥분한 듯이 한껏 올라갔으니, 분명 희망적인 주제의 대화라고 믿는 중이었다.

“게이트. 지금 당장 하나 만들 수 있다던데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런데…….”

“게이트?”

“게이……트.”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매튜 협회장이나 51구역에서 온 연구진들의 귀에는.

게이트란 단어가 정확히 들린 듯하다.

그 세 글자를 중얼거리며 우리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난 이제 오르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게이트, 흑염룡이 폭주했던 게이트잖아? 네가 당장 만들면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시 린느 님이 만들었던 게이트 속 몬스터는 저한테는 수준이 너무 높은 수호신 드래곤님의 표본이었죠! 제가 게이트를 만들어도 그런 몬스터는 나오지 않을 거예요.]

정령도 헌터처럼 각각 능력의 한계치가 있고, 등급과 같은 개념이 존재한다.

대정령 흑염룡의 경우엔 만드는 게이트가 최고 단계인 S급까지 만들 수 있지만, 오르문의 경우엔 그 절반 수준인 최대 B급이 한계다.

“그럼…… B급 수준의 몬스터가 나오는 건가?”

[아니요! 그냥 아무것도 없는 빈방이 나올 거예요. 린느 님이 만들었던 게이트는 수준이 너무 높거든요.]

초월석도, 몬스터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게이트란 뜻이다.

폭주로 인해 만들어진 게이트인데다가 본래 안에는 수호신 드래곤의 표본 몬스터가 있었으니.

오르문이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기엔 역량이 부족하여 큰 틀인 게이트만 만들어낸다는 뜻이었다.

안이 텅 비어 버린 게이트는 다른 사람 눈에는 팥 없는 붕어빵으로 보이겠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그게 아니지 않던가?

한 일주일 정도 굶은 뒤에 팥 없는 붕어빵 먹어 봐라.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을 거니까.

“그럼 당장 만들어!”

오르문에게 명령하자 오르문은 즉각 게이트를 만들었다.

찰흙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허공에서 이리저리 손으로 무언가를 다듬는 손짓을 보였다.

손짓이 일정한 것을 보니, 마치 게이트 틀을 만드는 것 같았다.

처음엔 투명했던 게이트 틀이.

오르문의 손길 몇 번이 더해지자 점차 선명하게 보였다.

“어어……?”

나뿐만이 아닌 로버트 윤의 눈에도 게이트가 슬슬 설명하게 들어오는 중인 듯하다.

로버트 윤이 당황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틀이 완성된 다음, 오르문은 틀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꽉 쥐고 힘을 주는 시늉을 보였다.

[흐읍!]

그러자 틀만 존재했던 게이트에.

정말 정식 게이트처럼 입구인 포털이 생겨났다.

[다 됐습니다!]

“들어가죠, 로버트 윤. 내가 아주 황홀한 경험을 하게 해드리지.”

“황홀한 경험……?”

“게이트를 이용한 대륙 이동. 이거 원래 정령의 주인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인데. 내가 특별히 그쪽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얼른 들어갑시다.”

그렇게 들어가려던 찰나.

“협회장님, 저거…… 분명 게이트 아닙니까……?”

패트릭 연구팀장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하며 오르문이 즉석으로 만든 게이트를 가리켰다.

“…….”

매튜 협회장 역시 상황 파악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일까.

입을 꾹 다문 채로 게이트만 바라봤다.

“이거 겉만 게이트지, 안에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초월석이건 몬스터건. 그러니 방치해 두고 가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난 슬쩍 로버트 윤에게 알려줬다.

“그래요? 그렇다면…… 매튜 협회장에게 선물로 남기는 것이군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떠나기 직전, 매튜 협회장에게 한마디 남겨도 될까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던 겁니까?”

“게이트를 보고 갑자기 생각난 거라서요.”

그래, 어차피 여전히 내가 매튜 협회장과 연구진의 몸을 염력으로 통제 중인데.

안 될 건 또 뭐가 있을까.

마음껏 하라는 손짓을 보였다.

그러자 로버트 윤은 생겨난 게이트 틀에 손을 얹고 매튜 협회장에게 말했다.

“이 게이트는 선물로 드리죠.”

“뭐……?”

“원래 퇴직 선물 같은 건 제가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특별히 협회장님에게 드린다고요. 선물로. 단, 기프트(Gift)가 아닌 프레젠트(Present)입니다.”

“로버트,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앞으로 일어날 현실(Present)를 보라는 뜻에 드리는 저의 마지막 선물. 그럼, 이만. 가시죠. 미스터 윤.”

“허허~”

이제 보니 로버트 윤 이 양반.

속된 말로 명언충 기질이 조금 있었구먼?

게이트를 보고 떠오른 말이 뭔지 나도 궁금했는데 꽤 오글거리는 말이었다.

[으으으! 쟤도 마음에 안 들어. 야! 오르문! 저런 애를 주인으로 맞이하고 싶냐? 제2의 윤도원인데 저거 아주!]

흑염룡이 곧장 반응했다.

로버트 형아.

형한테도 그런 중2병 기질이 있었으면 진작 보이지 그랬어.

애써 힘들게 게이트 만들지 않아도 됐잖아.

[음~ 전 나쁘지 않은데요? 이런 걸 인간들 언어로 반전 매력이라고 하나? 꽉 막히고 딱딱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재밌는 부분도 가진 사람이네요?]

오르문은 로버트를 주인으로 맞이할 생각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인사는 확실히 끝난 거죠?”

“네.”

“좋아요. 갑시다.”

그렇게 난 로버트 윤을 데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정말 끝이다.

중앙 협회와의 인연은.

이제 적으로 상대할 악역만이 남았다.

“로버트으으으!!”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매튜 협회장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

“우와, 이거 상당히 재미있는 능력이군요? 이름이 뭐라고요?”

게이트를 통해 1초 만에 양산부로 돌아왔을 때.

로버트 윤은 놀이동산에 처음 온 어린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활류요.”

“활류……? 활력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활류란 말은 참 생소하군요. 그럼 이 능력을 이용해서 게이트 정복 중인 저를 막으러 온 겁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51구역에 처음 갔을 때, 아무리 오래 가둬두려고 해도 빠져나올 방법이 있다고 했을 땐 솔직히 약간은 허풍으로 들렸거든요.”

“약간이 아닌 거 같은데?”

당시 겉으로는 내 말을 귀담아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단 뜻이다.

“직접 겪어보니까. 확실히 알겠네요.”

“뭘요?”

“시오스라는 정령들. 이렇게 편리한 수단을 제공하는 존재인데, 그들을 지키는 게 무조건적으로 옳다고요. 즉, 일본 협회장에게 합류를 결정한 제 선택이 신의 한 수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야…….”

보통 사람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으면 호전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로버트 윤의 경우엔 달랐다.

첫인상부터 경계 가득했던 이 사람이.

보면 볼수록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뉴 에이지.”

그리고 의욕이 가득한 걸 넘어, 자신감까지 잔뜩 붙은 그였다.

“어떻게 시작하면 됩니까?”

“일단, 장길수 협회장이 돌아오길 기다리죠. 그가 있어야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선 전문가이니, 나도 전적으로 로버트 윤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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