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49화 (149/200)

§ 149화. 탈출 작전 (4)

웅. 웅.

갇힌 지 얼마나 지났다고.

체감상으로는 대략 15분 정도?

그쯤 되었을 때 로버트 윤에게서 받은 휴대폰에서 작은 진동이 울렸다.

곧장 내용을 확인해 보니.

[아무래도 매튜 협회장이 그쪽으로 가는 중인 듯합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친히 한글로 보내신 문자다.

[매튜 협회장이 직접 온다라.]

흑염룡 역시 나와 함께 문자를 확인했다.

[불길하긴 한데 큰 문제는…… 없겠죠?]

오르문은 비교적 소심한 반응을 보였다.

“나야 모르지~ 에휴~ 모르겠다~”

난 그렇게 답하고 침대에 대 자로 누웠다.

스프링도 삐걱대며 그다지 편안한 느낌을 제공하는 침대는 아니지만, 그대로 최대한 편해 보이도록 여유를 부렸다.

[너무 태평한 거 아냐? 매튜 협회장이 오는 중이라잖아!]

“그게 뭐. 그래서 뭘 할 수 있는데?”

흑염룡은 내 반응을 나무랐지만, 내가 한 말도 틀린 건 없지 않은가?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괜히 뭘 하려고 했다가 로버트 윤의 계획을 그르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매튜 협회장이 내게 오는 것에 맞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약자로 보이기 싫은 것도 있었다.

최대한 여유롭게, 아무 두려움 없는 척.

적어도 매튜 협회장에게는 그렇게 보여야 했다.

[로버트 윤을 믿는 건 알겠는데, 그 사람 계획이 잘못됐을 경우도 생각해야지!]

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리는 흑염룡의 질타.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내가 본 로버트 윤은 계획이 잘못될 리는 없을 것 같다는 게 가장 크지.

대표적으로 내게 몰래 건네준 휴대폰.

이것만 보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완성도 높은 계획을 준비했는가.

문자로나마 미리 이렇게 알려주는 것만 해도 그가 세운 계획은 꽤 튼튼하단 뜻이다.

“그냥 믿어주자고. 너무 신중한 것도 때로는 탈이야.”

내가 그렇게 답하며 대 자로 누운 자세에서 누운 채로 다리를 꼬았을 때.

뚜벅. 뚜벅. 뚜벅.

천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오호, 오나 본데?”

매튜 협회장이 내게로 오는 중이라고 했으니, 저 발걸음 소리는 분명 그일 것이다.

다만, 천장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한 사람이 걷는 게 아닌 2명 이상이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당히 요란한 발걸음 소리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설계했나? 천장에서 소리가 울리도록?”

위층에는 청문회를 진행했던 재판장이 있고.

특별 관리 대상만 중앙 협회 지하실에 가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보니 이런 식으로 천장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리게 설계했다고 생각했다.

중앙 협회씩이나 되는 기관의 설계가 부실할 이유는 없고.

죄수를 가둔 지하실이니, 위층에서 발걸음 소리가 잘 들리도록 설계하여 일부러 밑에 갇힌 죄수들에게 심적 압박을 주려는 것 같았다.

아무리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 헌터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날 순 없다.

사람에게는 심리적인 요소가 때로는 무엇보다도 강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까.

지금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그런 것들의 일환이라 여겼다.

뚜벅.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발소리는 지하실로 내려오는 입구로 향하는 것으로 보였다.

철컥!

역시나.

지하실로 내려오는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끼이이익.

불쾌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철문.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는 지하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 소리가 더욱 증폭되어 사납게도 들렸다.

그렇게 들린 발걸음 소리는 내가 갇힌 곳 앞에서 멈췄다.

끼이익.

다시 한번.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매튜 협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맞춰 로버트 윤에게서 몰래 받은 휴대폰을 슬쩍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그를 맞이하는 건 아니다.

깍지 낀 손은 머리를 받치고, 누운 상태로 꼰 다리는 건방져 보이도록 까딱거리며 떨었다.

“진짜 빨리 오네.”

“여기가 호텔은 아닐 텐데. 더군다나 한국인이 신발도 신은 상태로 이러고 있다니…….”

매튜 협회장은 내 자세를 보며 지적했다.

“뭐 어때? 어차피 여긴 미국이잖아?”

물론, 옆에는 통역사가 없는 상태이기에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령이 있는 나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안다.

자, 그럼 여기에서 문제.

통역사 대동 없이 내게 왔다는 뜻은 뭘까?

너무 간단한 산수 수준의 문제다.

통역사가 필요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것은 곧 매튜 협회장이 하고 싶은 것만 한 뒤 사라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듣지도 않겠다는 귀를 꽉 막은 태도다.

매튜 협회장의 뒤로 익숙한 얼굴.

51구역의 연구팀장 패트릭이 성큼 앞으로 나왔다.

그의 한쪽 손엔 검은 007 가방이 들려 있었다.

로버트 윤은 말했다.

51구역의 연구진이 중앙 협회로 갈 때 의문의 키트 하나를 챙겼다고.

분명히 그 의문의 키트가 들어 있는 가방일 것이라 짐작했다.

단,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 오랜만.”

오히려 패트릭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지만.

역시 통역사가 없기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매튜 협회장과 패트릭 연구팀장.

둘 사이에 어떤 의미를 담은 눈빛이 교환되었고, 그 직후.

패트릭 연구팀장은 가방을 바닥에 눕힌 뒤, 열었다.

딸깍.

안에는 키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키트의 크기는 일반적인 태블릿 PC와 비슷한 수준.

그러나 얼마나 정교한 물건인지, 충격을 받지 않도록 키트 크기에 딱 맞춘 검은 스펀지틀이 키트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윤도원, 저게…….]

‘응, 로버트 윤이 말한 그 키트 같다.’

저 키트를 내게 사용하기 위해서 온 것은 확실한데…….

문제는 저 키트가 어떤 용도인지 아예 모른다.

매튜 협회장이나 패트릭 연구팀장이나.

친절하게 물어도 설명해 줄 사람들도 아니며, 결정적으로 통역사도 없으니 소 귀에 경 읽는 상황만 벌어질 것이다.

패트릭 연구팀장은 키트를 조심스럽게 꺼냈고, 어떤 버튼을 누른 뒤 키트를 작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매튜 협회장이 내게 말했다.

“어차피 정령이라는 것을 가진 사람은 언어 소통이 된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을 통역사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겠지. 맞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 한번 준비한 패 전부를 꺼내 보라는 뜻이다.

“협회장 재량으로 너에게 내릴 처벌은 관리형이다. 네 몸에 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니 순순히 따르도록.”

관리형?

이건 또 무슨 형벌일까.

하지만 나를 가두면서까지 키트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저들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라는 건데…….

패트릭 연구팀장이 바로 내가 누운 침대 옆까지 다가왔을 때.

타다다닥! 탁탁!

천장에선 요란한 발걸음이 들렸다.

매튜 협회장이 내게 왔을 땐 느긋하고도 중압감 가득한 발걸음 소리를 냈다면.

지금 천장에서 들리는 것은 부리나케 어딘가로 뛰는 듯한 다급한 발걸음 소리다.

‘로버트 윤이다!’

그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중이다.

즉, 시간을 조금 더 끌면 됐다.

“동작 그만.”

난 그들에게 말하며 염력을 매튜 협회장과 패트릭 연구팀장.

그리고 동행한 연구진들 전체를 대상으로 사용했다.

용도는 당연히 그들의 행동을 묶어두기 위한 것.

매튜 협회장은 몰라도 패트릭 연구팀장과 그 연구진들은 명백한 일반인이다.

그들을 상대로 몸을 공중에 띄우는 염력을 사용했다가 다칠 염려도 있고, 일반인 상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에 아주 평화적인 시위를 진행했다.

“당신 뜻대로 당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어.”

어차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을 꾹 닫고 싶은 마음도 없다.

“너…… 지금……. 우릴 상대로 네 능력을 꺼낸 거냐……?”

매튜 협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나를 협박하듯이 물었다.

난 고개만 끄덕였다.

적어도 이건 알아먹겠지.

내가 뱉은 말을 이해할 순 없어도, 그가 내게 한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의미는 알 테니까.

그 직후.

타다다다다닥!

이번엔 뛰는 발걸음 소리가 천장에서 들리는 게 아닌, 같은 층에서 울려 퍼졌다.

로버트 윤이 정말 빠른 속도로 지하실로 들어왔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오는 것은 확실했다.

“기다리자고. 무슨 말을 할지 나도 궁금하거든.”

일부러 로버트 윤이라는 말은 피했다.

아무리 매튜 협회장이 한국어를 몰라도 내가 발음하는 로버트 윤이라는 이름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로버트 윤의 계획이 전부 끝나지도 않은 이 상황에.

친분을 과시하듯, 그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게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협회장님!”

드디어 로버트 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갇힌 곳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어떤 상황인지 눈치 빠르게 파악했다.

“미스터 윤. 설마 이 사람들의 행동을……?”

“네, 묶어뒀어요.”

“이봐…… 로버트. 지금 저 죄수랑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

매튜 협회장은 나와 로버트 윤의 대화를 상당히 경계했다.

로버트 윤이 무슨 생각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썩 좋지 않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란 그의 날카로운 감각이 있는 듯했다.

로버트 윤은 그런 매튜를 무시하고, 내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거라면. 얘기가 쉽겠군요. 미스터 윤. 혹시 사람의 행동도 조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가진 능력으로요.”

“너무 어려운 게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그렇다면…….”

로버트 윤은 매튜 협회장 앞에 섰다.

그리고 그의 손은 자신의 자켓 안 주머니로 향했다.

하얀 봉투를 꺼낸 로버트 윤.

그 봉투의 정체는 내게 이미 보여준 적이 있는 사직서일 것이다.

“뭐지? 로버트.”

“사직서입니다. 협회장님.”

“……뭐?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사직서라는 말에 상당히 당혹한 목소리를 내는 매튜 협회장이다.

그 정도로 로버트 윤을 인재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현재의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전 현 시간부로 중앙 협회를 관두겠습니다. 사표. 수리해 주시지요.”

로버트 윤이 매튜 협회장에게 건넸다.

“이건 못 본 걸로 하지. 느닷없이 사직이라니. 말이나 되나? 더군다나 지금은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려는데 여기까지 쫓아와서 사표를 내겠다고? 이게 무슨 경우지?”

그의 몸은 내 염력에 의해 묶인 상태지만, 그래도 입은 자유로운 상태.

절대 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게 무슨 경우라……. 전 미스터 윤의 게이트를 직접 정복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뭐……?”

“중앙 협회는 인류의 평화를 위한 역군이자 선구자라고 굳게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부패 협회장이 있었던 한국 협회처럼. 중앙 협회도 사리사욕만을 위한 집단이란 것을 깨달아 버렸지 뭡니까.”

“로버트. 너 지금 무슨 소릴…….”

“미스터 윤은 자신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네이션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한 것은 순전히 중앙 협회와 51구역 연구진의 책임이죠. 초월석의 등급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네가 연구진도 아닌데 어떻게 확신하지?”

“게다가 게이트가 전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크루즈라는 무시무시한 상위 몬스터가 우리 인간계로 오게 됩니다. 즉, 협회장님은 제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것이죠.”

“그게 어떻게 부당한 지시일 수 있어!”

매튜 협회장이 호통을 버럭 쳤지만, 로버트 윤에겐 안중에도 없었다.

로버트 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이었다.

흡사, 지금은 매튜 협회장의 청문회가 진행되는 것만 같다.

매튜 협회장이 최현민이고.

로버트 윤이 청문회를 진행하는 매튜 협회장처럼 보였다.

“연구진의 실수로 인해 51구역에서 처음 몬스터가 생겨났을 때, 그때 희생된 헌터가 자그마치 150명입니다. 그 몬스터 하나 제대로 못 막아서 150명이나 죽었다고요. 그보다 더 강한 크루즈라는 존재는 어쩌면 정말 인류 전체를 멸망하게 할 수도 있는 존재란 걸 알면서도. 협회장님은 게이트 정복을 강행했죠. 그 부당한 지시를 보고 전 더는 이 집단에 헌신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너…….”

“그러니 받아주시죠. 제 사표. 거절하신다면…….”

“어쩔 생각이지?”

“미스터 윤.”

그 순간, 로버트 윤은 나를 불렀다.

“네.”

“사람 행동 조종할 수 있다고 했죠.”

“……설마?”

“네. 매튜 협회장이 제 사표를 받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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