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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48화 (148/200)

§ 148화. 탈출 작전 (3)

그 손길에 화들짝 놀라 몸이 절로 발작하였다.

“뭡니까? 갑자기 손이 불쑥 들어오고.”

“안에 들어가서 주머니를 확인하세요. 어차피 수갑은 풀 거니까요.”

찰칵.

그 말을 하면서 로버트 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손목에 있던 수갑을 풀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어떤 계획을 실행할 예정인지 알고는 있는 상태지만, 정말 이렇게 대놓고 해도 될까 싶었다.

아직 계획대로 진행되기 이전인데도, 너무 조심성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왜요? 너무 경솔한 것 같아서요?”

로버트 윤도 내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먼저 대놓고 물었다.

“뭐, 솔직히 답하면. 그렇단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적어도 제 생각에는 필요에 의한 조치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필요에 의한 조치라…….”

“매튜 협회장이 아무 생각 없이 당신을 지하실에 가두겠습니까? 분명히 비밀리에 무언가를 할 작정이니까 그렇겠지요.”

그 무언가가 뭔지 미리 알았으면 참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삼킨 순간.

로버트 윤이 속삭이듯 말했다.

“첩보인데, 51구역에 있던 연구진 몇몇이 중앙 협회로 와 있다고 하더군요.”

“연구진이면…… 그 연구팀장이요?”

“물론이죠. 팀장이 괜히 팀장이겠습니까?”

“연구진을 불러서 뭘 하려고……? 아니, 이 사실은 언제 알았어요?”

한국에서 워싱턴의 중앙 협회로 오기까지.

전부 나와 함께한 시간만 가득한데, 그 바쁜 와중에도 이런 첩보는 언제 들었을까 싶었다.

로버트 윤은 자만하는 듯한 말투로, 자신은 능력이 좋다고 했다.

그것은 헌터로서 가진 능력이 아닌, 중앙 협회의 직원으로서 그의 능률을 뜻하는 것이었다.

괜히 러시아와 독일 협회가 자신에게 일본 협회장 계획에 합류하겠냐는 제안을 하겠냐며, 설명했던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한 능률을 가진 사람은 맞는 듯하다.

몸은 나와 함께하던 중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로버트 윤에게 첩보를 전해준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요. 아무튼, 첩보에 의하면 연구진들이 키트 하나를 챙겨갔다고 하던데.”

“키트?”

“보통 우리가 키트라고 하면, 휴대용 초월석 등급 감별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이 없이, 그냥 키트라고 하는 걸 보니 녀석도 정체를 모르는 키트인 건 확실합니다.”

“썩 그렇게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네요.”

우리가 한국에서 이곳으로 올 때.

이미 51구역의 연구진들은 중앙 협회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중앙 협회까지 오는 데는 어림잡아 하루 정도의 이동 시간이 걸리지만, 미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그들은 우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과연 그 키트가 무엇을 위한 키트인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주머니에 넣은 건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문자 메시지를 주기적으로 보낼 거예요. 상황이 어떤지 미리 알려주는 용도라고 생각하세요.”

어느덧 로버트 윤을 따라 내가 갇히게 될 지하실에 도착했다.

둔탁한 철문이 굳게 잠긴 독방.

정말 교도소처럼 눈높이가 맞닿는 곳에는 작은 쇠창살이 있었다.

안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용도였다.

철컥!

로버트 윤은 그렇게 철문을 열었다.

“금방 끝내고 오겠습니다.”

“일단 뭘 끝내고 온다는 건지, 미리 말해줄 수 있나요?”

“사직서 제출해야죠. 제가 이 짓을 하려면 사직서 제출이 먼저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네. 중앙 협회 직원 신분을 유지한 채로 당신을 풀어줬다간, 후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직원 신분을 유지하지 않건, 유지하건.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건 로버트 윤만의 생각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그는 중앙 협회라는 조직에 상당히 오랫동안 몸을 담고 살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지금은 전적으로 그를 믿어야 했다.

로버트 윤이 내 뒤통수칠 가능성?

그런 건 완전히 배제했다.

로버트 윤의 진심을 본 것도 그렇고. 여태까지 내게 보인 모습으로만 보자면.

그는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 중이었으니까.

끼이이익, 철컥!

철문은 닫혔다.

이제 난 좁은 독방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분위기가 으슬으슬하네. 사람 죽어 나가도 모를 정도야.]

흑염룡이 독방의 분위기를 보며 말했다.

흑염룡의 말대로, 정말 사람 하나 죽어 나가도 알 방법이 없다.

기껏해야 1평은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독방.

세면대, 변기, 침대.

그 모든 것이 이 좁은 방에 몰려 있다.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교도소 독방을 오게 됐다.

“그래도 침대는 있네.”

교도소 독방엔 침대 같은 거 없던데.

그런 시설과 비교하면 침대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호텔이 따로 없지 않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짜증 나는 냄새도 나. 기분 나빠.]

지하인데다가 물이 흐르는 세면대와 변기까지 몰려 있으니.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침대도 눅눅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런 환경에 불평할 새가 어디 있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로버트 윤이 오길 기다려야 했다.

난 그가 내 주머니에 몰래 넣어둔 휴대폰을 꺼냈다.

누가 미국인 아니랄까 봐.

온통 영어로 된 스마트폰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스마트폰은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몰라도 어플 이미지만 보고 어떤 기능의 어플인지 추측할 수 있다는 점.

“분명히 로버트 윤은 문자로 상황을 주기적으로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문자 메시지 이미지가 있는 어플을 켜 둔 채로, 로버트 윤에게서 문자가 오길 기다렸다.

문자 메시지함에는 어떤 연락의 흔적도 없었다.

이 뜻은, 로버트 윤이 나를 위해 급하게 새 휴대폰 하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기다려 보자고.”

그렇게 침대 위에 휴대폰을 고이 올려둔 채로, 팔짱을 끼며 지켜봤다.

***

매튜 협회장은 청문회가 끝나는 즉시, 협회장실로 돌아와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호출했다.

똑, 똑.

그가 거의 연락하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들리는 노크 소리.

이미 전부 약속된 것들이다.

“들어와.”

매튜 협회장의 한마디에 문은 스스로 열렸고, 드디어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51구역의 연구팀장 패트릭 앤더슨과 연구진 3명.

총 4명의 연구원이 중앙 협회로 오게 됐다.

“패트릭 팀장.”

“네, 협회장님.”

“내게 설명했던 그 키트, 꺼내 봐.”

매튜 협회장의 말에 패트릭 연구팀장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문제의 키트를 꺼냈다.

“흐음. 겉보기엔……. 그냥 의료기구 같은데.”

흔히 당뇨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당 수치 측정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일반적인 측정기보다는 조금 더 컸다.

태블릿 PC 버전의 측정기라고 보는 게 옳았다.

“그게 헌터들 대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 뭐더라?”

“마이크로 드론 이식기입니다.”

“이름 참 길고 어렵네. 효과가 정확히 어떻게 됐다고?”

“이 안에는 작은 드론 하나가 있습니다. 그걸 인체에 주입하여, 대상의 신체 타입을 낱낱이 파악하는 용도죠.”

“실용 가능하다고 했지?”

“……예.”

“줘 봐.”

이식기를 건네받은 매튜 협회장.

그는 이식기 표면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상태를 살폈다.

이것이 바로 윤도원에게 사용할 키트의 정체다.

이미 그가 51구역에 있을 당시, 프로젝트 네이션을 진행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매튜 협회장과 51구역의 연구진들은 같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윤도원이 한국에서 의식을 잃은 3일.

그 시간 동안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갖은 추측을 하던 중이었다.

그 결과.

51구역의 연구진들은 원 네이션이 실패한 이유가.

단순히 초월석이 B급이라서가 아닌, 윤도원의 능력 코드가 51구역이 가진 자료에 해당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애초에 프로젝트 네이션은 헌터가 가진 능력들을 종합하여 카테고리 형식으로 만든 코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윤도원은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최초의 게이트 관련 능력자다.

51구역조차도 처음으로 맞이하는 형태의 능력이다 보니, 그 개념이 자신들이 아는 것과 익히 다르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점점 지배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내린 특단의 대책.

51구역이 소유한 이식기를 윤도원의 몸에 투입하고, 그가 어떤 코드를 가졌는지.

새로운 코드라면 그 코드에 맞춰 프로젝트 네이션이 성공하도록 샅샅이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좋아, 지금 청문회 막 끝나고 별관 지하실에 갇혀 있으니까. 곧장 가서 진행하자고. 느긋하게 할 필요 없잖아?”

매튜 협회장이 명령했으나.

패트릭 연구팀장은 우물쭈물하게 답했다.

어딘가가 상당히 불안해 보이는 반응이다.

“저…… 협회장님. 이게…… 세상에 알려질 일은 없겠죠?”

다름이 아닌 인식기의 존재 때문이다.

“놈이 이게 뭔지 알 리가 없잖아?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이 인식기를 저희가 만들어 놓고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상당히 비윤리적인 인식기라 그렇습니다. 미세 드론을 몸에 직접 넣는다는 것은…….”

“알아. 우리 마음에 안 들면 드론을 터트려서 죽일 수도 있는 거.”

“……네, 그래서 이게 알려지게 되면 중앙 협회는 물론 51구역까지 위험해집니다. 이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고요.”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그리고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일인가? 다 인류를 위한 일 아닌가? 윤도원. 그놈의 게이트 능력 코드만 제대로 알아내면. 우린 이런 지저분한 짓 안 해도 돼. 덤으로 우리가 인류 평화에 앞장선 역군이 된다고. 그 뜻이 뭔지 모르나?”

“……잘 알지만.”

그렇게 되면 중앙 협회는 정말 독보적인 기관이 된다.

지금도 중앙 협회는 독보적인 기관이지만, 사실 매튜 협회장의 목적은 따로 있다.

미국인이 중앙 협회장으로 지낸 동안, 이런 대단한 공적을 세운다면?

앞으로 중앙 협회 자리는 미국인으로 고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51구역의 연구진이건, 매튜 협회장이건.

그들의 권력 생명을 불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함이었다.

“정말…… 문제없겠죠……?”

“문제가 있다면 이 인식기 성능의 문제만 있겠지. 도대체 뭘 겁내는 거야?”

매튜 협회장의 눈에는 그저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패트릭 연구팀장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가 뱉은 답도, 중앙 협회와 51구역의 연구진이 합동으로 준비하는 이 계획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이 계획에 문제가 생기려면 인식기의 성능에 어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야만 차질이 생길 거란 뜻이었다.

“……네.”

“좋아, 당장 가자고.”

매튜 협회장이 그렇게 일어났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답게 그가 앞장서며 윤도원이 갇힌 별관의 지하실로 향했다.

그렇게 완전히 협회장실이 비워진 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협회장실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노크 소리는 다시 들렸다.

똑. 똑. 똑.

역시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노크를 한 사람이 협회장실의 문을 열었다.

“이런. 생각 외로 행동이 빠르시군.”

노크를 한 사람은 바로 로버트 윤이다.

협회장실이 텅 빈 것을 보자마자 그가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벌써 시작한 건가…….”

로버트 윤은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윤도원에게 상황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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