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탈출 작전 (2)
“그게 무슨 소리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듯이, 중앙 협회장 매튜에게 말했다.
매튜 협회장은 시선도 주지 않고 반응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허튼소리 말고 나오기나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내가 의문을 표한 그 순간, 장길수도 벌떡 일어나 의의를 제기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두 번째 청문회라니요?”
하지만 우리의 외침은 그저 공허 속의 외침일 뿐.
매튜 협회장은 귓등으로만 듣고 한마디만 남겼다.
“로버트. 내보내.”
아직까지는 매튜 협회장의 명령대로 따라야 하는 입장에 있는 로버트 윤.
그는 장길수에게 다가갔다.
강압적이지 않은 손길로 장길수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할 때도.
“이게 지금 정상적인 청문회가 맞습니까?! 저한테는 증인 신분으로 참석하라고 해놓고, 증언할 일도 없었는데! 어떻게 돌아가는 청문회란 말입니까!”
장길수의 입장을 그대로 전했다.
생각해보면 장길수도 정상적인 청문회가 아니라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증인 신분으로 참석하기 위해 꼬박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이동시간으로 허비했는데, 정작 막상 와서 보니 구경만 하다 간 꼴이 아닌가?
그런 장길수의 불만을 로버트 윤은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일부러 매튜 협회장에게 들으라고 하는 듯이.
하지만 매튜 협회장은 완고했다.
“여행 왔다고 생각하면 되지. 얼른 내보내.”
“도대체 윤도원 씨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청문회를 진행한답니까! 난 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로버트 윤이 장길수를 억지로 내보내는 그 과정에서.
장길수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하지만 역시 그의 외침은 매튜 협회장에게 닿지 않았다.
결국, 장길수는 그렇게 완전히 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연기 성공인가?’
애초에 로버트 윤이 우리에게 그런 주문을 한 이유가.
전혀 몰랐던 사실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보이기 위함인지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어차피 발악한다고 한들,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앞서 최현민, 강만식이 진행했던 것과 같이.
내게도 예, 아니오로만 답하도록 강요할 것이며 지하실로 내려가 구속될 것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고분고분하게 보여야 하나?’
매튜 협회장의 경우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냥 모든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완고한 자세다.
저런 사람한테 고분고분하게 나가봤자 달라질 게 하나 없다.
그리고 오늘이 중앙 협회에 있는 마지막 날.
내일부터는 일본 협회장과 함께 중앙 의회 결성에만 집중하면 된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적대적 관계로 돌려지는 마당인데 굳이 내가 고분고분해야 할까?
괜히 여기에서 기가 눌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 여겼다.
상대가 나를 무시할수록, 우리의 계획에는 금이 가기 마련이니까.
“무슨 소리 하는지나 들어보자고.”
이제 청문회를 진행하는 이곳에는 나와 로버트 윤.
그리고 중앙 협회장 매튜만 남았다.
내가 매튜 협회장에게 당당히 묻자, 그의 눈빛이 변했다.
“호오, 네가 그렇게 당당하게 나와?”라는 의미가 서린 듯한 눈빛이다.
“나한테 적용된 혐의는 몇 건인데?”
어차피 청문회라는 것은 어떤 혐의가 있어야만 진행 가능하다.
뭐, 난 최선을 다해 청렴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만 해당되는 일.
중앙 협회의 눈에는 과연 몇 가지 혐의나 있을지 궁금했다.
“총 2건.”
드디어 매튜 협회장의 입이 열렸다.
그의 말을 로버트 윤이 습관적으로 통역하려 했으나, 내가 그럴 필요 없다는 손짓을 보였다.
정령이 있는 덕에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알 수 있다.
단, 로버트 윤에게는 한 가지만 당부했다.
“그냥 내 말이나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제대로 통역하세요.”
“……알겠습니다.”
“로버트. 청문회 중에 개인적인 대화는 금지된 것을 자네가 모를 리가 없는데, 둘이 무슨 얘기를 한 거지?”
아주 잠깐이었는데도 매튜 협회장은 그 부분을 유독 집중했다.
로버트 윤이 내 말을 곧장 통역하자, 매튜 협회장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안경을 고쳐 썼다.
“얘기는 들었다. 정령이 있으면 통역이 필요 없다고 하던데. 처음엔 그런 게 가능할까 싶었더니, 사실이군.”
“그러니까 그쪽은 로버트 윤 통역이나 제대로 들으시고. 자, 나한테 적용된 2건의 혐의 그게 뭔데? 그거나 먼저 말해 보시지?”
“첫 번째. 기밀 유출.”
“내가 무슨 기밀을 유출했다고?”
“51구역은 아주 오랫동안 철저한 기밀을 유지해 왔던 곳. 그런데 그곳에 수습하기 힘든 게이트와 몬스터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51구역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으니 당연히 기밀 유출이지. 게다가 너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 아닌가? 충분히 의도적으로 행한 일이라고 판단한다.”
“아~ 그래?”
딱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논리다.
그리고 이 뒤에 이어지는 질문은 단 하나.
인정하냐는 물음일 거다.
“인정 못 하겠다면?”
그러자 이제 빔프로젝터에는 내 청문회의 증거 자료가 띄워졌다.
그들이 증거로 채택한 증거는 다른 것도 아닌, 레드뷰에 올라온 51구역의 두 번째 소동에 대한 영상들이었다.
“풉.”
나도 모르게 영상 자료를 보자마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지?”
최현민과 강만식의 청문회가 진행됐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전혀 위축되거나 황당해하는 반응이 아닌, 노골적으로 비웃는 반응을 보이니 매튜 협회장도 꽤 당황한 듯하다.
“내가 최초로 그랬다면 혐의를 인정하겠는데, 내가 최초가 아니잖아? 51구역에서 사고 터진 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중앙 협회장씩이나 되시는 분이.”
“…….”
오르문에게 각종 실험과 연구를 할 때도 이미 사고가 한 번 터졌고.
그 영상은 세계 곳곳.
심지어 미국 본토 내에서도 뉴스 속보로 다뤄지곤 했다.
그땐 말 같지도 않는 변명인, 한 영화의 CG 장면이라고 어설프게나마 사태를 수습한 이력이 있다.
그런 뒤에 내가 만든 게이트로 인해 두 번째 사고가 터졌던 거다.
“나한테 기밀 유출 혐의로 청문회 할 거였으면. 첫 번째 사고 일으킨 연구팀장 패트릭 엔더슨. 그 양반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로버트 윤의 통역을 들은 뒤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
다만, 머릿속은 상당히 분주하게 움직일 거다.
무슨 설명을 할까. 내가 뱉은 논리를 어떻게 박살 낼 것인가.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여겼지만.
“두 번째 혐의.”
예상을 조금 빗나간 말이다.
매튜 협회장은 오히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냐는 투로 곧장 다음 혐의로 넘어갔다.
나에게 기밀 유출이 의도적인 일이라고 지적하는 순간, 난 이렇게 생각했다.
연구팀장의 경우엔 실수였기에 혐의 인정이 되지 않고, 나는 자의로 게이트를 만들 수 있으니 혐의가 인정되는 차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저렇게 뻔뻔하게 넘길 줄은 정말 몰랐다.
‘재밌네.’
[……이게 재밌어? 상황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저 인간 표정 봐봐. 얼굴이 굳어졌잖아.]
‘처음부터 저랬는데 뭘? 됐어. 신경 쓰지 말자.’
적어도 매튜 협회장이 어떤 인물인지는 대략적으로 파악 끝났다.
전형적인, 최현민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까?
권력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성향.
보통 권력직에 오른 사람 중에 부패한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일컬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곤 하다.
“처음부터 부패했기에 저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권력직에 오르면 사람이 부패하는 것인가?”
솔직히 나도 어느 쪽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매튜 협회장은 최현민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는 생각한다.
최현민은 한국 협회장이고, 매튜 협회장은 중앙 협회장이란 직위의 차이?
그것도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건 그게 아니다.
최현민의 경우엔 정령의 존재를 몰랐고, 당연 크루즈의 존재도 몰랐다.
그렇기에 초월석을 욕심내는 건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관대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매튜 협회장은 정령과 크루즈.
서로 어떻게 대립 중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초월석을 전부 회수하려고 했으니 난 더 나쁜 놈이라고 보는 중이다.
“두 번째 혐의는 공무집행 방해.”
궁금했던 나의 두 번째 혐의가 드러났다.
공무집행 방해라.
이건 아마도 로버트 윤이 내가 가진 초월석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내가 난입하여 그를 제지한 혐의로 보였다.
“혹시. 내가 로버트 윤을 저지한 것 때문에?”
“잘 알고 있군.”
“아~ 이건 인정하지.”
정말 진심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빨리 청문회를 끝내고 갇힐 생각으로 한 답이다.
권력이 최고인 줄 아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 사람이 가진 권력보다 더 강한 권력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
여태 자신이 행했던 것을 그대로 당하게 만들면 된다.
우리는 그럴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상태다.
이미 21개국의 협회 합류 확정을 받았고. 그중에서는 기존 중앙 협회의 구성 협회인 러시아와 독일까지 있다.
중앙 협회의 주인이 미국인 협회장일 뿐이지, 그렇다고 주축까지 전부 미국은 아니다.
제아무리 중앙 협회를 관장하는 협회장이라고 해도.
구성원이 빠지면 중앙 협회는 회복을 위해 잠시 휘청이게 된다.
시청 같은 곳에 가도 청장이 모든 행정 업무를 도맡아서 하나?
괜히 시청에 부서가 나누어져 있고, 부서원이 있을까.
그런 부서가 전부 사라지게 되면 시청도 마비가 된다.
본래 해당 업무를 소화하던 인력이 사라진 공백 때문이니까.
그것이 곧 중앙 협회가 맞이하게 될 위기다.
“한국 헌터 윤도원. 중앙 협회 내의 구속을 처분한다.”
땅, 땅, 땅.
내가 혐의를 인정하겠다는 그 말을 뱉은 순간, 협회장이 선고했다.
의도한 대로 청문회가 질질 끌리지 않고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선고와 함께.
“로버트. 구속시켜.”
그가 로버트 윤에게 지시했다.
로버트 윤은 당당히 내 앞까지 다가왔고,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
“…….”
그 순간 우리 둘은 눈을 마주쳤다.
난 매튜 협회장과 마주 보던 중이었고, 그런 내 앞에서 수갑을 채웠기에.
매튜 협회장에게는 로버트 윤의 뒤통수만 보이는 상태다.
로버트 윤은 소리 하나 없이, 입 모양으로 뚜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매튜 협회장에게 들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고 오직 입 모양으로만 의사를 전달해야 했기에.
그는 수갑을 일부러 천천히 채우면서 입 모양이 뚜렷하게 보이도록 천천히, 강하게 발음에 힘을 줬다.
난 고개를 끄덕여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매튜 협회장이 뭔가 이상함을 깨달을 것이니까.
그렇게 순순히 로버트 윤의 손에 이끌려 구속 절차를 밟았다.
매튜 협회장은 뭐가 그리도 급한지, 내가 재판장을 나오자마자 내 구속 절차를 전부 지켜보는 게 아닌, 어딘가로 향했다.
그 덕에 나와 로버트 윤 단둘이 남은 순간이었다.
“몇 시간 걸릴 겁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되도록 빨리 끝냅시다.”
우리 둘이 나눈 은밀한 대화다.
“그리고 최현민, 강만식, 장길수. 이 세 명은 곧장 한국으로 귀국 조치시켰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이겠군요.”
최현민과 강만식의 경우엔 자국 교도소의 수감이 결정됐으니 그 절차를 밟는 것이고.
장길수 때문에 내게 이런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지하실로 향하는 길에서.
내 바지 주머니로 로버트 윤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