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탈출 작전 (1)
도착한 중앙 협회.
역시나 ‘아직까지는’ 세계 기관인 위엄을 뽐내는 것인가.
중앙 협회가 차지하는 면적을 한국 협회와 비교하자면 한국 협회 쪽이 애교 수준으로 느껴졌다.
한국 협회는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면.
중앙 협회는 그런 한국 협회의 건물 최소 4개가 모인 하나의 단지라고 봐야 했다.
단지 이것이 중앙 협회가 세계적인 기관이란 이유로 저렇게 규모가 크진 않을 거다.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국토를 가졌다는 이유가 컸을 것으로 보였다.
로버트 윤의 안내에 따라 우린 중앙 협회의 본관이 아닌 구석에 있는 별관으로 향했다.
“여긴 뭘 하는 곳이죠?”
별관에 들어서자마자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뭐라고 정확히 콕 집어서 말하긴 힘들지만, 그냥 있는 것 자체가 거북한 느낌이다.
마치 던전을 처음 들어갔을 때처럼.
“청문회를 진행하는 별관이죠. 중앙 협회에 있는 재판장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들어오자마자 뭔가 기분이 좋지 않더라니.
내 촉이 이곳은 기분 나쁜 곳이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었다.
난 슬쩍 로버트 윤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우리 바로 뒤로는 최현민과 강만식이 구속복을 입은 채로 따라붙었기에, 그들에게 최대한 들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혹시 이 별관이 지하실이 있는 곳인가요?”
“네, 눈치가 빠르시네요. 본관에는 지하실 없습니다. 이곳 별관에 있죠.”
로버트 윤 역시 귓속말로 내게 전했다.
그 뒤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로버트 윤은 정해진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어느 한 곳의 문을 열었고, 안을 들여다보니 재판장과 흡사한 구조의 방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청문회를 진행하는 장소다.
단, 차이가 있다면 보통의 재판장에는 피고, 원고측의 좌석이 따로 있고 각각 검사, 변호사가 앉는 자리지만.
이곳엔 그런 게 없다.
중앙에 있는 청문회를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는 자가 앉는 자리.
심지어 테이블의 높이도 높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청문회 대상자를 내려다보게 되는 구조였다.
바로 저 자리가 중앙 협회장이 앉는 자리로 보였다.
심지어는 서기석, 증인석도 없다.
오직 청문회를 진행하는 사람 하나와 죄인 신분으로 끌려 온 사람만이 일대일로 마주하는 아주 부담스러운 구조였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느낌이다.
“증인 신분으로 참석하는 두 분은 뒤에 계시면 됩니다.”
로버트 윤이 뒤쪽 방청석을 가리켰다.
증인석이 따로 없으니, 뒤에서 앉아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장길수와 함께 나란히 앉고, 청문회 대상자인 최현민과 강만식이 나란히 앞에 섰다.
“당신 먼저.”
로버트 윤의 한마디.
최현민에게 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순서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강만식은 조금 뒤로 물러나고, 중앙에 최현민만 덩그러니 서 있는 채로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덜컥.
굳게 닫혔던 출입문이 열리며, 중년의 외국인 한 명이 들어왔다.
멀끔한 인상과 복장.
게다가 별것 아니지만, 괜히 어떤 포스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안경을 쓴 중년의 외국인.
눈치껏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중앙 협회를 총괄하는 총책임자 중앙 협회장 매튜 레이먼이란 것을.
그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테이블에 앉은 뒤였다.
“시작하지.”
영어로 말하는 중이지만, 정령이 있는 덕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쉬웠다.
로버트 윤이 즉시 최현민을 향해 통역했다.
“시작합니다.”
로버트 윤의 통역이 끝난 직후.
방 안을 환하게 밝혔던 전구가 전부 꺼지고, 한쪽 벽에는 빔프로젝터용 스크린이 내려왔다.
로버트 윤도 그에 맞춰 빔프로젝터를 작동시켰다.
감찰부가 그간 입수한 증거 자료를 띄우는 용도였다.
“한국 협회장이었던 최현민은 총 9건의 비리 혐의로 인해 본 청문회를 진행한다. 혐의를 인정하나?”
아직 본격적인 자료가 나오기도 전인데 매튜 협회장이 물었다.
그나저나 9건의 비리 혐의라니.
많기도 해라.
내가 알고 있는 건 크게 잡아야 대략 3~4건 정도인데 감찰부가 판단하기엔 그보다 2배는 훨씬 더 많은 혐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최현민이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하려고 할 때.
“예, 아니오로만 답해.”
매튜 협회장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예, 아니오로만 답하는 청문회라…….
이런 거 영화에서 더러 봤던 기억이 있는 거 같다.
“…….”
최현민은 변명할 구멍이 막히자 입을 잠시 다문 뒤, 나지막이 답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뭐, 당연한 답이다.
여기에서 인정한 순간 모든 게 끝이 나고, 파란만장했던 그의 권력 생활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관대하게 생각하면, 나도 최현민 상황에 처하면 일단 아니라고 우기고 볼 것 같았다.
하지만 최현민이 모르던 사실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청문회의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것.
그가 아무리 기발한 발상으로 변명을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위증의 답을 할 경우, 가중 처벌된다. 다시 한번 묻지. 혐의를 인정하나?”
이거 완전히 우리 한국 젊은이들 말로 답정너가 아닌가?
게다가 위중의 답을 할 경우 가중 처벌이라니.
협박도 살벌하게 한다고 생각됐다.
‘나한테도 저렇게 하겠단 소리인데…….’
이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난 일단 매튜 협회장의 성향을 파악했다.
어차피 나도 결과가 정해졌지만, 매튜 협회장의 경우엔 오늘 보고 평생 안 볼 사이인가?
아니다. 일본 협회장과 함께 중앙 의회라는 새로운 국제기관을 결성했을 때.
분명히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한 상대다.
그렇기에 대면한 지금, 최대한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을 파악하고자 마음먹었다.
[음, 보통 인간이 아닌 거 같은데? 주변을 감싼 분위기가 되게 묵직하다고 해야 하나? 말 한마디 거는 것도 어렵게 느껴져.]
흑염룡의 말이다.
정령이 그렇게 느낄 정도로, 매튜 협회장.
저 양반은 소위 말하는 기가 세기로 타고난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질 순 없잖아?’
[당연하지. 어쨌든 저 인간이 우리 게이트를 노리던 놈이잖아! 용서 못하지!]
흑염룡은 매튜 협회장을 자신의 주적으로 삼는 중이다.
하긴, 게이트를 노리는 자들은 크루즈와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지켜보자고. 어떤 사람인지 알면 나중이 편해지겠지.’
[내가 슬쩍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보고 올까?]
‘굳이 그러지 마. 보아하니 촉이 좋은 사람 같은데. 괜히 트집 잡힐 행동하지 말자고.’
매튜 협회장이 무서운 이유가 그의 능력 때문일까?
단순히 그가 가진 권력 때문이지.
게다가 그는 내게 정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몸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면, 분명히 나를 의심할 것.
그렇기에 지금은 최대한 행동을 조심하며 청문회 진행 사항을 묵묵히 지켜봤다.
“최현민 전 한국 협회장. 혐의를 인정하냐고 물었다.”
최현민이 답을 아끼자, 강압적으로 답을 재촉했다.
“……인정 못합니다. 어떤 혐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분명 한국 협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
한창 최현민이 변명하던 중, 빔프로젝터에는 사진 자료 하나가 띄워졌다.
최현민이 협회장으로 오르기 직전의 투표 결과다.
참여 32표 중 찬성 단 2표.
문제의 그 사진이었다.
자료가 나오자 최현민은 심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저 2표. 감찰부의 조사에 따르면 최현민 본인과 대기 중인 강만식의 표로 확인되었다. 이에 동의하나?”
“…….”
최현민이 입을 꾹 다물자, 매튜 협회장은 기다리지 않고 선고해 버렸다.
“동의한 것으로 알겠다. 따라서 부정선거 혐의가 입증되었다. 다음, 권력 남용 혐의. 중앙 협회에서 규정한 부서가 아닌, 개인적인 부서인 관리부와 양산부라는 것을 운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인정하는가?”
“…….”
역시 이번에도 답을 하지 않자.
“증인 앞으로.”
이는 나를 부르는 말이었다.
내가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오자, 매튜 협회장이 내게 물었다.
“증인은 한국에서 양산부장이란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최현민이 개인적으로 양산부라는 부서를 만든 것이 사실인가?”
“예.”
“혐의 입증되었다.”
정말 속전속결로 끝이 났다.
속된 말로, 지금 매튜 협회장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전부를 하는 중.
최현민은 그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이곳이 학교라면, 교무실에 끌려가 열중쉬어 자세로 학생 주임에게 일방적으로 호되게 혼나는, 그런 무기력한 학생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렇게 최현민이 가진 9개의 비리 혐의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전부 입증되었다.
최현민은 반론의 기회도 없을뿐더러, 오직 “예.” 혹은 “아니오.”로만 답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빨리 끝난 거다.
장길수 역시 증인의 신분으로 왔지만, 그가 나서서 증인 할 수 있었던 시간 역시 없었다.
“최현민 전 한국 협회장. 자국 교도소의 구속을 선고한다.”
탕. 탕. 탕.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중앙 협회란 곳에서 청문회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최현민은 억울함에 울분을 토했다.
뭐, 사실……. 정말 억울하지 않을 거다.
명백히 그는 비리 혐의가 많았고, 이제야 드러난 것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지금 중앙 협회의 청문회 진행 방식은 어딘가 문제가 많아 보였다.
분명히 나중에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그럼 그동안 청렴하게 운영하지 그랬나?”
매튜 협회장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로버트 윤에게 고갯짓을 보였다.
얼른 눈앞에서 치우라는 의미를 품은 듯했다.
역시나, 로버트 윤에 의해 최현민은 밖으로 끌려갔다.
“이건 말도 안 돼……!!”
그 절규를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 강만식 한국 SF 길드장.”
강만식도 단두대라고 봐도 무방한 중앙으로 나왔고, 최현민이 당한 절차를 그대로 당했다.
단, 강만식의 경우엔 죄목이 3건.
최현민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기에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났다.
쾅!
하지만 강만식도 성깔을 부릴 땐 부린다.
그가 매튜 협회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높게 뻗은 테이블을 향해 발길질을 보였다.
“장난하냐……?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답을 유도하는 청문회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강만식 한국 SF 길드장. 자국 교도소의 구속. 이상, 청문회를 마친다.”
“야 이 양키 새끼야!!”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는 건가.
강만식은 최대한 매튜 협회장의 심기를 건들여,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했으나.
매튜 협회장은 오히려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감찰부장. 저거 치워.”
“예.”
“이거 놔!! 안 놔?! 반론의 기회는 줘야 될 거 아냐!!”
이 역시 강만식의 마지막 절규였다.
그 뒤로 강만식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로버트 윤이 다시 복귀했을 때.
“두 번째 청문회를 진행하겠다. 한국 양산부장이라는 비공식 직책을 가진 윤도원. 앞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순간 로버트 윤은 나와 장길수에게 눈빛으로 시선을 보냈다.
‘지금입니다.’
약속된 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