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45화 (145/200)

§ 145화. 청문회 (6)

다음날이 되었을 때.

중앙 협회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번 비행기 역시 전용기.

탑승자는 로버트 윤, 나, 장길수, 최현민, 강만식.

그리고 한국에 있던 감찰부원들까지.

그 전부를 포함해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전용기라는 거 늘 이렇게 좁은가?]

아, 물론 정령 두 명은 사람이 아니니까 포함하지 않았다.

생긴 것만 사람과 똑같이 생긴 거지, 엄연히 다른 생명체니까.

특히 흑염룡은 두 번째로 맞이하는 전용기다.

비행기 내부를 보며 불만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했다.

‘어차피 정령한테 크기가 무슨 상관이야. 그냥 참아.’

[답답하니까 그렇지.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참 까탈스러워라. 오르문 너도 그러냐?’

[어…… 아니요?]

‘윗물이 고아야 아랫물이 곱다는 말이 있는데, 어째 위에 흑염룡은 별로 곱지가 않은데 아랫물은 고운 느낌이지.’

[……시비 거는 거냐?]

‘아니, 그냥 그렇다고.’

정령들과의 수다는 그것으로 끝.

전용기를 둘러봤다.

이번 전용기도 크기는 크지 않았다.

이유는 테이블 형식으로 된 좌석 때문이었다.

51구역을 갔을 때 탔던 전용기와 상당히 비슷한 구조였다.

다만, 좌석 구석에는 죄인 신분의 2인이 함께 있다.

구속복을 입은 채로, 주변에는 감찰부원이 정말 죄인을 수송하는 것처럼 그들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슬쩍 최현민과 눈을 마주쳤다.

주변에서 살벌하게 그를 감시하는 감찰부원 때문에 입은 열지 못했지만, 분명하게 눈으로 심한 욕을 하는 중이었다.

뭐, 내가 상황을 고려할 필요나 여유가 어디 있나.

최현민은 전적으로 저렇게 초라한 꼴이 된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여겨 눈빛으로 심한 욕을 보내는 중이지만.

사실 나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는 모르지만, 나 역시 그의 청문회가 끝나면 그대로 최현민과 똑같은 처지가 될 예정이니까.

로버트 윤이 전적으로 책임지며 나를 구출하겠다고는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식적으로 사람이 곧 “너 교도소 갈 예정인데 조금만 버텨 금방 꺼내줄게!”라고 말해도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중앙 협회 지하실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했으니, 그곳이 교도소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최현민에게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그래서 괜히 비웃는 듯한 썩은 미소를 보이며 무시했다.

“잘 될 겁니다.”

그러나 로버트 윤에게는 긴장의 표정이 보였을까.

그가 슬쩍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전했다.

“잘 되게 만드셔야겠죠.”

전적으로 이젠 로버트 윤의 기량에 달린 문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직은 아무것도 없다.

내게 처할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한 논의를 하고 싶었으나, 듣는 귀가 많다.

난 최현민이나 강만식에게 내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로버트 윤 역시 곧 중앙 협회를 관두고 일본 협회장의 계획에 합류할 예정이기에 감찰부원들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

그가 부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부원들과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깊게 쌓인 상태라면 그들과 함께 일본 협회장의 계획으로 합류할 생각이었겠지만, 로버트 윤은 혼자만 움직일 생각인 것 자체가.

함께한 부원들과 그 정도로 두터운 관계는 아니란 뜻이다.

아니면 부원들은 정말 열혈한 중앙 협회의 직원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건, 신뢰가 가지 않는 상태라는 건 확실하다.

“눈 좀 붙이고 계세요. 어차피 오래 움직여야 하는데. 지칠 겁니다.”

로버트 윤이 말했다.

비행기는 곧 이륙할 예정이고, 그에 맞춰 로버트 윤도 슬슬 안대를 착용할 준비를 했다.

51구역으로 향했을 때 장거리 이동이 얼마나 피곤한지 깨닫지 않았던가.

게다가 중앙 협회에 도착하게 되면 나에게도 폭풍처럼 일이 닥칠 텐데, 지친 상태로 맞이하는 것보다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배려이기도 했다.

“안대 필요하세요? 어차피 달라고 하면 주는데.”

“그러죠. 저도 곧 바빠질 건데, 적어도 이동하는 시간에는 푹 쉬어야겠죠.”

“좋은 선택입니다.”

그렇게 로버트 윤은 이륙 직전.

내가 쓸 안대를 받아와 줬고, 난 안대를 쓰며 잠시 현실과 동떨어진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이륙했다.

콩닥, 콩닥.

심장은 놀이기구를 처음 탔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뛰었다.

긴장한 것도, 그렇다고 설레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과 함께 비행은 시작되었다.

***

18시간가량을 날아서 도착한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정해진 것처럼 공항 게이트에서 우릴 마중 나온 누군가가 있었고, 로버트 윤과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더니 최현민과 강만식을 자연스럽게 인계받았다.

그 행동으로만 봐도 중앙 협회 직원.

더 나아가, 청문회를 진행하는 요원들인 것으로 보였다.

공항에서 나오니, 검은 리무진 한 대와 검은 봉고차 한 대가 이미 우릴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린 앞에 차를 타면 됩니다.”

로버트 윤이 말했다.

나와 장길수가 타고 갈 차는 리무진.

봉고차는 현재로서는 죄수 신분인 최현민과 장길수가 타게 될 차란 뜻이었다.

차의 종류부터 이렇게 철저하게 차별을 두다니.

슬쩍 최현민의 반응을 보니 역시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다.

공항 게이트를 나오면서, 그리고 차가 대기하는 곳까지 이동하는 과정까지.

다양한 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가진 외국인들이 검은 머리의 동양인 둘이 구속복을 입은 채로 끌려가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봤고.

심지어는 구경거리로 여겨 사진을 찍는 행동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도 이미 자존심이 철저하게 구겨진 최현민과 강만식인데.

정말 사소한 이동 수단인 차량부터 이렇게 대우가 다르니 최현민의 경우엔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올라, 절정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차가 좀 불편해 보이긴 하지만, 조심히 오세요.”

일부러 난 여유가 가득하단 뜻으로 최현민에게 한마디 남겼다.

“…….”

그는 여전히 눈빛으로 심한 욕만 가득 보냈다.

나는 그의 눈빛을 무시하고 차에 올라탔고, 본격적으로 중앙 협회가 있는 워싱턴 DC로 향했다.

워싱턴 DC로 향하는 길.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것이 문득 떠올랐다.

중앙 협회라는 것은 헌터력 세계 TOP 11 국가가 모여 이룬 연합체.

그런데 왜 그 협회 본부는 미국에 있는 걸까?

심지어 중앙 협회와 미국 협회가 같은 국가에 있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다고 해도.

같은 구역에 중앙 협회와 미국 협회가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은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구성 협회들은 불만이 쌓인 게 아닐까?

러시아와 독일 협회가 일본 협회장의 계획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곧바로 밝힌 것을 보면.

불만이 짧은 기간에 걸쳐서 쌓인 것이 아닌, 이미 오랜 불만이 쌓여 터진 것으로 보였다.

미국 협회와 중앙 협회가 같은 구역인 워싱턴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로버트 윤 씨.”

한창 차가 달리던 와중, 장길수가 로버트 윤에게 말했다.

뒤따라서 달리는 봉고차에는 최현민과 강만식, 그리고 감찰부원이 타 있고 리무진에는 나와 로버트 윤, 장길수가 탑승 중이다.

“네, 뭐죠?”

“청문회가 시작되었을 때.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이나 조심해야 할 게 있나요?”

청문회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최현민은 자국 교도소의 구속을 면치 못하는 처지인데, 혹시 그런 결과가 정해진 사람을 상대로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냐는 신중한 질문이다.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묻는 것에만 답하면 됩니다. 청문회는 중앙 협회장 혼자서 진행하지만, 통역을 위해 저도 참관하니까 언어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청문회 대상이 한국인이란 것.

만약 히로시까지 있었으면, 중앙 협회 직원 중 일본어가 가능한 자를 참관시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한국인만 있으니, 한국어가 유창한 로버트 윤이 전적으로 통역사 역할까지 도맡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중앙 협회장이란 사람.

정말 로버트 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 로버트 윤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군요.”

“그리고 혹시나 실수해도, 제가 알아서 통역하면 되니까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어차피 최현민 협회장의 비리 혐의 입증엔 증거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구속을 못 피할 겁니다.”

“강만식은……?”

“마찬가지죠.”

청문회가 끝나면 나도 잠시 구속되지만, 적어도 장길수는 새로운 한국 협회장이 된다.

그가 은퇴를 번복하게 된 것도 중앙 협회가 먼저 제안해서였지, 스스로가 번복하고 싶다고 전하진 않았으니까.

“잘 부탁합니다.”

장길수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탁이었다.

정말 혐오하는 정도로 싫어했던 최현민이 구속될 것이라 좋아하는 것도 약간은 느껴지지만.

전적으로 자신이 협회장이 되면 잘못된 방향으로 한국 협회를 운영하지 않겠단 굳은 다짐이 보였다.

“그럼 저도 한가지 당부의 말씀 드리죠.”

로버트 윤이 말했다.

“당부요……? 어떤……?”

“청문회 끝나면 미스터 윤은 바로 중앙 협회에 구속됩니다. 그때 연기 좀 잘해주세요.”

“그게 무슨……?”

적어도 장길수는 지금 처음 듣는 얘기다.

느닷없이 아무 연관도 없는 내가 구속될 예정이라고 하니, 정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연기는 또 무슨 말입니까?”

“아마 최현민과 강만식의 청문회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끝날 겁니다. 본래 청문회는 3~4시간 이상 진행합니다. 비리 혐의 죄목 하나하나 해명하는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걸 미리 예고하는 중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 고객님의 청문회가 시작된다고요……?”

“네.”

“왜요……? 아니, 고객님은 이런 거 알았어요?”

그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지만.

난 태연하게 빙그레 웃어 보이며 고개만 끄덕였다.

“웃음이 나와요……? 다른 곳도 아니고 중앙 협회에서의 구속인데……?”

“뭐, 여유를 가져도 되는 상황이니까 가지겠지요? 로버트 형아가 알아서 다 해준대요.”

“형아……?”

“그만큼 이번 일은 로버트 윤을 믿는다, 이 말이죠.”

“아무튼……. 연기를 잘하라는 말은 뭡니까?”

“난동을 부리지 않는 선에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왜 미스터 윤은 나오지 않냐고 따지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래야만 하니까요.”

로버트 윤은 무슨 생각이 있기에 미리 이런 주문을 하는 것이다.

다만, 장길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게 무슨 생각인지 정확히 모르기에, 선뜻 알겠단 답이 나오지 않을 뿐이었다.

우리의 표정을 읽은 로버트 윤은 짧게 설명했다.

“간단합니다. 그래야만 중앙 협회장도 저에 대해 의심을 안 할 테니까요. 미스터 장. 당신이 따지는 모습을 보이면,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요.”

“그렇군.”

적어도 앞으로 로버트 윤의 계획이 뭔지 아는 나는 왜 그가 이런 주문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중앙 협회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리고, 작전명 뉴 에이지를 실행하기 위한 발판.

그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자는 뜻이었다.

“미스터 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만 남으라고 할 텐데, 그때 난동은 말고 발악 정도만 하세요.”

“내가 또 그런 깽판은 전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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