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청문회 (5)
왜 그는 오르문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걸까?
그때가 되면 그는 이제 중앙 협회의 직원이 아니다.
일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을 때도 오르문의 주인이 되고, 초월석을 스스로 만들어 얻으려는 심보로 보였지만.
날 도와주면 중앙 협회 직원 생활도 끝이 나니, 그가 오르문을 욕심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오르문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다른 궁극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중앙 협회를 관둬도 오르문의 주인이 되고 싶은 이유가 뭡니까?”
“저도 정령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고, 크루즈가 어떤지 등등. 많은 걸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물어도 그만인데?”
“일일이 물어볼 수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제가 한국어를 할 줄 알아도 일본어는 모르니까요.”
정령의 주인이 되면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몰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였다.
“결국엔 정령을 통역기로 쓰겠다는 거 아닌가.”
“너무 부정적이시군요. 그렇게 받아들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정령의 주인이 되어 정령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던 건데요. 그러려고 중앙 협회도 관두고 중앙 의회를 지지하는 걸 택한 건데.”
로버트 윤은 서운함을 강하게 어필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닌, 내 주위에 있는 정령들을 위한 일이란 것이다.
그의 생각이 그렇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중앙 협회를 관두고 성공할지 모르는 중앙 의회의 탄생을 지지하는 것 역시 그로서는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돕는다고 그가 오르문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난 오르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순전히 오르문 자신이 주인을 직접 정하는 것이기에 내가 아무리 제안해도, 오르문이 싫다고 하면 그만이다.
슬쩍 오르문의 눈치를 봤다.
어차피 이 내용은 옆에서 다 듣고 있었기에, 오르문도 어떤 결정을 내렸을 거다.
[…….]
오르문은 입술을 오므린 채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긍정적인 건지, 아니면 부정적인 건지 알아낼 수 있는 근거의 표정이 아니다.
‘오르문. 어때?’
이럴 땐 정공법이 정답이지.
대놓고 물었다.
[음…… 주인님이 보기엔 어떤데요?]
그런데 역으로 내게 똑같이 묻다니.
일단 확실한 것은 오르문은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란 거다.
아무리 로버트 윤의 생각이 저렇다 하더라도, 싫으면 싫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는 정령이다.
그런데도 내 의견을 묻는 건,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넌 나쁘지 않은가 본데?’
[진심인 것 같아서요. 저를 이용하겠단 게 아닌, 함께 지내자는 생각이 보이니까요. 물론,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일단 그의 계획을 들었을 땐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인 듯하다.
“그러면.”
오르문의 생각은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나도 오르문의 생각에 맞춰 움직이면 되는 것 아닌가?
로버트 윤에게는 한마디만 남겼다.
“어차피 당장 닥칠 일은 청문회 아닙니까? 로버트 윤 당신의 계획대로 움직여 보죠. 당신이 짠 판대로 움직이겠단 뜻입니다.”
“저를 믿는다는 건가요?”
“중앙 의회 탄생에 합류를 결정한 상태인데다가, 갑자기 뒤통수쳐봤자 당신한테 좋을 게 하나 없잖아요? 즉, 당신도 저한테 올인을 한 상태인데.”
“그건 당연합니다. 헌터가 중앙 협회를 등진다는 건 많은 것을 각오해야 하는 상당히 큰 결정이니까요.”
“그러니 적어도 이번 계획은 믿을 수 있단 뜻입니다. 당신 생각대로 흘러간 뒤에. 오르문에게 정식으로 물어보시죠. 당신의 주인이 되어도 되겠느냐고요. 정령이 주인을 선택하는 건 개인의 선택 영역입니다. 제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거. 입이 닳도록 설명했죠?”
“그렇습니다.”
“지금도 당신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오르문도 다 듣고 있습니다. 당신이 행동으로 직접 그를 설득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기회를 준다는 건…….”
로버트 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뭔가 홀가분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적어도 저를 어느 정도는 믿겠다는 뜻으로 보이는군요.”
은근히 기대를 걸며 남긴 그의 한마디.
“뭐, 그 믿음이 확신이 될지 안 될지는, 앞으로 당신이 하기 나름 아닐까요?”
“그래도 일말의 신뢰는 생긴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음대로 생각하시죠. 그럼, 청문회는 언제 출발할 겁니까?”
“내일 오전에 출발할 겁니다. 이미 항공편은 전부 준비가 된 상태니까요.”
“어…… 근데, 전 궁금한 게 있는데.”
그때 히로시가 내게 슬쩍 말했다.
“뭔데?”
“형이 청문회에 가 있는 동안 전 뭘 해요? 보니까 따라갈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결정적으로 청문회가 진행되고. 구속된 형을 빼내 온 뒤 한국에 돌아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히로시가 물은 것을 그대로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하루 만에 다 끝날 겁니다. 내일 출발하면 이틀 뒤, 중앙 협회에 도착할 거고. 그날 다 끝내도록 할 겁니다. 저도 준비는 다 해놨거든요.”
로버트 윤의 답이다.
며칠 정도 시간 끌 것 없이.
내가 구속되는 그 날 바로 꺼내주겠다는 확신에 찬 답변이다.
“그렇다네?”
“음, 그럼 뭐 제가 딱히 할 일은 없겠네요.”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어. 앞으로 탄생할 중앙 의회를 위해.”
내가 그렇게 히로시에게 제안했지만.
“잠시만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라는 조치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었다.
“이유는요?”
히로시는 현 상태에서 로버트 윤과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으니 내가 물었다.
어차피 나와 대화를 진행해도 그가 전부 이해할 수 있으니까.
“전 중앙 협회를 관둘 예정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미스터 윤 당신과 히로시의 현재 소속이 어떻게 됐죠?”
“중앙 협회 연합부…….”
연합부라는 어찌 보면 기괴한 부서를 만들었다.
그 이유는 특별한 것도 없이 서로 국적이 다른 나와 히로시가 아무런 제약 없이 함께 있을 수 있었던 방법이.
당시로서는 연합부라는 이름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곧 새롭게 생겨날 중앙 의회란 것이 등장하게 되면, 중앙 협회가 만든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니 얼마든지 히로시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새로 만들 수 있다.
“저도 그렇고 미스터 윤 당신도 그렇고. 어차피 중앙 협회를 탈퇴하게 될 예정입니다. 히로시 헌터 역시 그렇고요. 그런 상태에서 히로시가 한국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중앙 협회가 그걸 걸고넘어질 수 있다, 이 말이군요?”
“네. 구조상으로는 저희가 먼저 중앙 협회를 탈퇴하고, 히로시 헌터가 나중이 되니까요.”
괜히 불안 요소를 먼저 제공하지 말자는 취지다.
“그럼 제가 먼저 탈퇴 의사를 밝혀야 하나……?”
히로시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며 물었다.
내가 그대로 통역해 주자.
“아니요. 그럼 중앙 협회가 더 이상하게 생각하죠. 히로시 헌터는 저희가 한국으로 오길 기다렸다가, 탈퇴하는 쪽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입니다. 단, 히로시 헌터는 본국인 일본으로 가 있으세요.”
로버트 윤은 이 계획을 짤 때 히로시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느 방법이 가장 피해를 적게 받을지.
그 모든 것을 염두에 둔 모습이다.
역시, 감찰부 일을 오래 해서 그런가. 대응 방안도 꽤 현실적이며 똑똑하다고 느껴졌다.
“음…… 하지만 지금 제가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가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나.”
히로시의 질문이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연합부원이라는 것은 갑자기 생겨난 부서인만큼. 정식적인 중앙 협회 일원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일본으로 가는 것까지 전부 보고하고 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지요. 그냥 일본 협회장이 호출했다는 이유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식 구성원이 아닌, 임시 구성원이기에 그 정도는 허용된다는 뜻이다.
“어때? 히로시. 그렇다는데.”
“그럼…… 명분이 중요하겠네요. 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는가. 이런 거요.”
“그 부분은 일본 협회장이랑 얘기를 맞춰보던가.”
“히로시 헌터가 뭐랍니까?”
나와 히로시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로버트 윤이 물었다.
대화 내용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히로시의 일본행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어떤 명분으로 일본에 가 있을지요.”
내가 대화 내용을 알려주자, 그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졌다.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듯이.
“굳이 명분 만들려고 하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명분으로 인해서 일본으로 가게 되면 더 이상하게 보여요. 저와 미스터 윤 당신이 중앙 협회 탈퇴 시기에 맞춰 명분으로 인해 일본으로 간다? 아마 일본 협회 대상으로도 감찰부가 창설될 수도 있습니다.”
“…….”
듣고 보니 또 그렇다.
중요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것도 시기가 귀신같이 맞아떨어지도록?
중앙 협회의 시선으로 봐도 상당히 이상하게 보이기에, 진상을 조사할 가능성이 있다.
“왜요? 형? 뭐라는데요?”
“명분 같은 거 만들지 말라는데.”
“이유는요?”
나도 로버트 윤에게 이유를 물었다.
“명분이 생기려면 그럴 이유가 있어야 하지요. 왜 그런 명분이 생겼는지, 원인의 이유요. 그렇다고 거기에 대고 중앙 의회 결성 때문이라는 소릴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넙죽 중앙 협회에게 알려줄 순 없으니까.
“따라서 그냥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든지, 일본 협회장과 간단히 식사를 했다든지와 같은 아주 가벼운 이유가 좋습니다. 명분을 만들어 버리면, 그것이 왜 정당한 명분인지 설명을 해야 하지만, 그런 가벼운 개인사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로버트 윤의 설명을 들은 뒤에.
히로시는 정말 진심으로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네……? 그냥 개인사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네?”
애초에 우리는 명분이란 것도 없다.
그냥 시기에 맞춰서 다 함께 행동하기 위해 정해진 행동을 하는 중이지.
그렇기에 후에 중앙 협회가 의문을 표할 때도, 무마할 수 있는 방법으론 이게 최선이란 뜻이다.
“좋아요! 그렇게 하겠어요! 그럼 난 지금 당장 일본 비행기 예약해야지.”
히로시는 적어도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아들었다.
“일본에 가서 뭐 할 거야?”
“로버트 윤 말대로 가족이랑 시간도 보내고 협회장님이랑 밥도 먹으면서 놀 생각이에요. 노는 거에 이유 필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히로시의 행동은 이것으로 끝.
이제 나와 로버트 윤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그럼, 얘기는 다 끝난 것 같군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군요.”
어느덧 우리 앞에 놓인 찻잔 속 차는 식어버려 김도 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미스터 윤. 내일 봅시다. 공항에서 봐요. 어차피 한국 내부니까 워프로 움직일 수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내일부턴 우린 새 시대를 여는 겁니다. 작전명 뉴 에이지라고 했지요?”
“그것까지 들었구나.”
“뉴 에이지. 그 개막에 제가 앞장서 보겠습니다.”
그는 일어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여태 그와 나눈 악수 중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악수였다.
나와 로버트 윤은 그렇게 악수를 힘차게 나눴다.
“후, 떨리네요. 오래 있던 곳을 배신하고 새 보금자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이럴 땐 우린 철새를 닮을 필요가 있어요.”
“철새……?”
“철새한테 소속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환경 맞는 곳으로 가는 거지.”
“재밌는 말이군요.”
이제 청문회만 해결되면 정말 끝이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로버트 윤.”
“오르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그 기대에 꼭 부흥하지요.”
큰 믿음이 가는 그의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