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청문회 (4)
“제 청문회는 또 무슨 소리랍니까?”
“뻔하죠. 온갖 죄목을 갖다 붙일 겁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죄가 없는 건 아니다.
시오스와 내 입장에서나 정당한 행위였지.
중앙 협회 입장에서 보면 천하의 죽일 놈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당장 내가 생각해도 저당 잡힐 죄목이 몇 개나 되던가?
오르문이 있던 실험관을 부수면서 연구소를 방사능 물질 섞인 물바다로 만들 뻔했고.
오르문을 대상으로 한 실험, 연구 자료들 다 봤으니 기밀 유지 위반으로도 걸고넘어질 거고.
게다가 흑염룡이 폭주하고 게이트가 생성되면서 51구역은 쑥대밭.
마지막 피날레로는 중앙 협회에 대적하기로 했으니.
지금 당장 내가 기억하는 것만 이 네 가지다.
아, 물론. 현재는 중앙 협회를 배신하려는 걸 모른다고 쳐도 큰 것만 콕 집으면 세 가지다.
이 정도면 뭐 거의…….
문제아를 넘어 국제 수배범 되기에 아주 적합한 상태가 아닌가?
“표정 보니까 대충 어떤 죄목으로 걸고넘어질지 예상하는 것 같군요.”
로버트 윤이 곰곰이 생각하는 날 보며 한 말이다.
“음, 생각 외로 사고를 조금 치긴 했네요. 제 입장에선 정당한 행동이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절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 청문회 얘기를 계속 해보시죠.”
“이미 결과는 정해졌습니다.”
그렇다는 뜻은 내게 내려질 처벌도 정해졌다는 뜻.
재판과 똑같다고 볼 수 있는 청문회는 사실상 그냥 표면적인 연기 행위일 뿐이다.
‘네가 이런, 이런 걸 했으니까 우린 이런 이런 벌을 줄 거야!’라고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청문회에서 내가 무슨 반박을 하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공허한 변명이 될 뿐이란 거다.
“어떤 결과가 정해졌죠?”
“일단 구속될 겁니다. 청문회는 아주 짧게만 진행되고요.”
그래도 사형 아닌 게 어딘가.
사실 헌터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정말 해당 헌터가 국제적인 빌런이 아니고서야 사형 판결을 내리는 청문회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국제적인 빌런이라 하면.
던전이 왕성하게 있었을 시기였다.
던전 안에서 동료 헌터를 죽이는 살인마들이 있곤 했다.
죽이는 목적도 특별한 게 없다.
보통 레이드를 통해 얻는 초월석은 협회에게 팔고, 당시 레이드에 참여한 인원에 따라 수익금을 배분한다.
자신이 수익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혹은 독식하기 위해 벌이는 범죄다.
던전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증거도 없다.
던전은 CCTV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이세계 공간이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티나 팀 개념이 생긴 거고.
특히나 대형 길드에서 진행하는 레이드의 경우엔 같은 길드원끼리만 팀을 구성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혹시라도 범죄자 헌터가 끼어 버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니까.
이렇게 악질적인 살인을 일삼는 헌터가 아니고서야 사형은 내리지 않는다.
다행히, 난 구속이라고 했으니 그 정도로 심각하게 보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미스터 윤, 당신에게 적용되는 구속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여태껏 구속 명령이 내려졌던 헌터들과는 다르단 뜻이죠.”
보통 구속 명령이 내려지면, 중앙 협회에서 관리하는 국제 교도소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나랑은 결이 다르다고 하니. 어떤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떻게 적용된답니까?”
“중앙 협회에는 비밀 지하실이 있습니다.”
“51구역처럼?”
“비슷합니다. 무언가를 실험하거나 하는 시설은 없지만요.”
“그럼 지하실엔 뭐가 있는 겁니까?”
“철창으로 된 독방이요. 중앙 협회가 특별 관리하는 헌터를 구속 시키기 위한.”
“특별…… 관리라.”
이렇게 들으니 대충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런 처벌을 내릴 예정인지 알 것 같았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중앙 협회에선 내가 극도록 분노를 일으키는 요주의 인물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란 것.
초월석을 만들 수 있는 게 가장 클 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나를 다른 수감자도 있는 국제 교도소로 보내면 내 존재와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심지어 중앙 협회에는 미국 협회장만 있는 게 아니지 않던가?
일본 협회로 합류를 결정한 러시아, 독일 협회처럼 구성 협회들이 있다.
그런 협회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알리게 되는 꼴이니 그걸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혹시, 청문회는 어떻게 진행한답니까? 보통 청문회라 하면, 위원들이 있는데요.”
“중앙 협회장 혼자서 참석할 겁니다.”
다른 것도 아닌, 청문회를 미국인인 중앙 협회장 혼자 진행하려 한다?
구린 냄새가 풀풀 풍겼다.
“원래 이런 식으로 했었나요? 중앙 협회장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요.”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중앙 협회장이건, 구성 협회장 중 하나가 단독으로 청문회를 진행하는 일이요.”
“……그래요?”
내 예상이 엇나간 건가?
청문회를 단독으로 진행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란 게 오히려 신기했다.
로버트 윤은 내가 이해를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설명했다.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보통 한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죠?”
“감찰부에서 해당 국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청문회를 열었을 경우요. 이런 경우엔 감찰부의 감찰을 결정한 책임자 혼자 청문회를 진행합니다.”
“잠깐, 제가 감찰부에 걸린 건 아닌데…….”
“네, 최현민의 청문회는 그저 눈속임. 그걸 이용해서 다른 위원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때 미스터 윤 당신의 청문회가 시작될 겁니다. 마침, 당신은 최현민의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상태 아닙니까?”
그걸 이용하겠단 뜻으로 보였다.
중앙 협회 안에 있는 구성 협회들에게도 내 존재를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판이 깔린 상태다.
“그렇게 저는 중앙 협회 지하실에 갇히게 된다. 이거군요.”
“전 마침 감찰부장이지 않습니까. 이미 중앙 협회장의 생각을 미리 제게 알려줬으니, 당신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질문. 이 사실을 알려주는 이유는 어떻게 대응하면 독방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지. 그걸 알려주기 위함입니까?”
하지만 내 질문에도 로버트 윤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음, 이상하군요. 제가 정확하게 말한 거 같은데.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요.”
“……?”
“당신이 어떻게 대응하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당신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럼 왜 알려주는 건데요, 이걸?”
결과를 돌이킬 수 없으니, 그냥 마음의 준비나 해라.
이런 뜻은 아닐 거다.
애초에 그런 뜻이라면 알려줄 이유가 없으니까.
분명히 로버트 윤은 나를 돕겠다는 이유로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는 중이다.
“일단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갇히라고요?”
“네.”
“…….”
남의 일이라고 너무 시원하게 답하는 것 아닌가.
나더러 일단 지하실에 갇히고 보라니.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싫다.
세상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가는 걸 좋아하겠나?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청렴한 사람인데.
물론, 내 입장이지만.
“갇히면 끝 아닌가?”
순순히 갇혔다는 것 자체가 결과에 승복하겠다, 난 아무런 반론의 의지가 없다.
이것을 나타내는 행동과 똑같다.
지하실에 순순히 갇혀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여겼다.
일본 협회장의 최종 목표인 중앙 의회의 탄생도 백지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앙 의회의 탄생은 비단 나만의 목표만이 아닌, 이미 합류를 결정한 21개국 협회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목표인 만큼.
내가 갇히면 모든 게 끝난다고 여겼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로버트 윤은 어떤 생각이 있던 걸까?
정말 자신감이 가득한 채로 어떤 확신에 차며 답했다.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까?”
“뭘 돌이키죠? 어차피 미스터 윤, 당신은 중앙 협회와 앞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 없잖아요?”
그 질문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이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 협회가 정말 인류의 평화를 위한 곳이라 여기고 여태껏 헌신한 거지만, 이제야 그들의 본심이 보였으니까요. 결국, 그들도 부패한 협회처럼 사리사욕을 위한 집단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제가 왜 이 사직서를 아직도 제출하지 않았겠어요?”
“……설마.”
나를 위한 거……?
내게 내려진 처벌이 어떤 건지 알고, 내부자인 로버트 윤은 그에 맞춰 대응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기대를 갖고 슬며시 물었다.
“나 때문이라고요……?”
“네. 일단 미스터 윤을 갇히게 둔 뒤에. 제가 빼내 올 겁니다. 어차피 그 지하실은 중앙 협회 직원이 아니고선 출입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생각대로 될까요?”
나의 존재는 중앙 협회장에게도 상당히 중요하다.
중앙 협회 내에 있는 구성 협회들에게도 가능한 알리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협회 직원이 아니고선 출입할 수 없다는 뜻은, 분명히 출입구에 ID 카드 인식기가 있다는 거다.
일반 대기업 공장에도 특정 구역에는 정직원이 아니고선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이 존재하는데, 중앙 협회와 같은 국제기관에서 그런 흔한 보안 장치 하나 없는 건 말이 안 되니까.
51구역에서도 그런 장치를 봤으니, 중앙 협회는 무조건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권한이다.
분명히 중앙 협회장 자신만 출입이 자유롭도록 설정해 놨을 것.
즉, 중앙 협회장의 ID 카드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중앙 협회장만 출입할 수 있도록 했을 것 같은데.”
“그래봤자 기계로 설정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이 일일이 지키고 있지 않아요. 피곤하게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 기계 설정을 만질 수 있다고요?”
“네. 당신이 예상한 대로 출입 권한은 중앙 협회장만 가졌을 겁니다. 거기에 제 ID 카드도 추가하면 끝입니다.”
“추가하는 순간, 중앙 협회장이 알 수도 있잖아요?”
“알아차리기 전에 일 끝내 버리면 되죠. 어차피 당신만 빼 오면 그만인데.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엔 저를 믿고 따라주세요. 제가 바로 빼낼 테니까. 그런 뒤에. 함께 중앙 의회를 만듭시다.”
로버트 윤의 진심이 느껴졌다.
적어도 그는 중앙 협회보다 중앙 의회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고 싶어 하는 욕구가 훤히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중앙 협회가 믿었던 로버트 윤이라는 도끼에 발등이 찍힐 예정이다.
게다가 오래 근무한 만큼, 나중에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로버트 윤도 위험하다.
그는 정말 목숨 걸고 동조하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이 정도로 하면 당신이 저한테 신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죠.”
“단순히 신뢰 하나 때문에? 신뢰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왜 그는 이토록 신뢰란 것에 목을 매는 걸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신뢰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로 여기는 건 아닐 텐데.
그의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할 때.
“그 정도로 하면. 제가 오르문의 주인이 되는 거. 도와주실 겁니까?”
그는 진심으로 물었다.
결국, 오르문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걸 보여주는 중이다.
“잠깐…….”
하지만 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