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청문회 (2)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협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동 방법은 역시나 아주 간편한 워프 능력.
곧장 정다혜를 불렀다.
“어? 언제 일어났어요? 괜…….”
또, 또.
그 질문은 이제 지겨워.
난 정다혜의 움직이는 입술을 검지로 막았다.
“으읍?”
갑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스러운 반응을 잠시 보였고, 난 한마디만 남겼다.
“말 안 해도 안다구? 숙녀분?”
[……또 시작이네. 어떻게 일어나자마자 저러지.]
흑염룡은 다가올 위협(?)을 느끼곤 귀를 틀어막았다.
“에퉤퉤!”
정다혜는 발작하듯, 입술을 막고 있던 내 손을 황급히 뿌리치곤 입에 모래가 들어간 듯이 연신 뱉는 시늉을 했다.
“괜찮은 거 맞네. 일어나자마자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요.”
“아주 불끈불끈하지!”
“정신만 돌아왔으면 다행인데 중2병도 함께 돌아와 버렸네……. 에휴, 아무튼. 왜 불렀어요?”
“왜긴? 내 기사님이잖아.”
“기사?”
그 단어를 곱씹으며 검을 휘두르는 손짓을 보였다.
중세 시대에나 존재했던 기사(Knight)를 뜻하는 행동이었다.
“그 기사 말고. 내 워프 기사님이잖아? 길 열어달라고.”
“……간만에 봐 놓고 사람을 이렇게 도구 취급하는 거 썩 좋은 기분은 아닌데.”
“에헤이~ 너야말로 간만에 보는데 왜 이렇게 차갑게 반응해? 서운하게.”
“당연히 예민할 수밖에 없죠! 지금 상황이 어떤데! 또 무슨 사고 쳤다면서요!”
사고?
내가 친 사고가 뭐가 있다고? 3일 동안 정신 잃은 거밖에 없는데.
“사고라니. 누가 들으면 사고뭉치인 줄 알겠어.”
“사고뭉치 맞죠! 중앙 협회 상대로 왜 그런 짓을 한 거예요!”
아아, 그거였구나.
아서라. 어차피 다 계획에 있는 일이다.
“다혜야.”
“뭐야, 갑자기 목소리에 힘 잔뜩 주고.”
“예전에 유명했던 노래 중에.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는 가사 들어간 노래 알지?”
“……분홍색 복면 쓴 그 가수요?”
“응.”
“근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지금 내가 할 말이었거든.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어디로 열어둬요. 그냥 빨리 가요. 정신 혼미해지려고 하니까.”
“협회로.”
정다혜는 곧장 협회로 향하는 포털을 열었다.
포털에 들어가기 전, 이번엔 정말 진지하게 진심을 담은 한마디를 남겼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되려고 벌인 짓이니까. 나 믿지?”
“아직은 못 믿어요. 우리가 그거 때문에 예민한 건 사실이니까.”
“으음…… 아직은 못 믿는다라. 여태껏 사건을 해결해 온 명탐정과 같은 내 능력을 보고도?”
“뭐 잘못 먹었어요? 왜 이렇게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근거가 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니.”
“뭐가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태껏 해결한 능력을 보면. 능력이 있다는 건 인정. 하지만 상대는 중앙 협회라니까요! 게임으로 치면 완전 끝판왕!”
“또 그런 끝판왕은 정복하는 재미가 있지. 보상이 쏠쏠할 거야.”
“…….”
“아무튼, 기다리고 있어. 좋은 소식 가지고 오마.”
그렇게 포털을 통과하며 생각했다.
정다혜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말 모르는구나.
벌써 나에게 21개국 협회가 뜻을 함께하기로 했는데.
심지어 그 협회 중에 한국 협회까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무리도 아니지. 히로시와 말이 통하지 않아, 전달받지 않았을 거니까.
하지만 내가 일단 확인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로버트 윤은 무슨 생각으로 일본 협회에 동조했느냐이다.
중앙 협회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근 그가.
왜 이런 돌발행동을 했을까?
그의 진짜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가는 것뿐이다.
“어엇?! 형! 잠깐만요!”
포털 속으로 완전히 몸이 잠식되기 직전.
히로시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어디 가는 거예요?”
“협회지.”
“로버트 윤 만나러요?!”
“당연한 거 아냐.”
“그거 때문이죠? 왜 로버트 윤까지 일본 협회에게 동조했는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아는 녀석이 뭘 그렇게 다급히 묻냐는 투로.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안 될 건 없지. 근데 꼭 가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네. 저희 협회장님이 부탁했거든요. 로버트 윤이 무슨 생각으로 동조했는지 알아볼 수 있냐고요.”
오호, 그래?
일본 협회장에게 동조의 의사를 밝혔으면서.
정작 무슨 목적으로 동조하는 것인지는 숨겼다라?
일본 협회장은 분명히 이렇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한국 협회장 대행직을 맡고 있는 로버트 윤은.
일단 일본 협회와 동조하면서, 최소한의 초월석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 것이라고.
그리고 초월석을 얻었을 때, 로버트 윤은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일본 협회장 역시 로버트 윤의 생각을 정확히 모르기에, 무조건적인 거절보다는 그의 합류를 일단은 수긍한 것으로 보였다.
일본 협회장은 최현민과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혜안이 깊은 사람인 건 내가 가진 확신.
무조건적으로 로버트 윤의 합류를 거절했다간, 오히려 계획이 아예 시행되지도 못하고 끝날 것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보였다.
그런 일본 협회장도 모르는 로버트 윤의 속내를.
내가 직접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닌가?
마침 나도 궁금했는데.
“그래, 그러자. 같이 가자.”
“네!”
그렇게 나와 히로시는 곧장 협회로 향했다.
***
“식사는 했습니까?”
협회장실에 도착하자, 로버트 윤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느긋하게 차를 따르고 있었다.
응접용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은 총 두 개.
로버트 윤과 나만의 것으로 보였다.
로버트 윤은 내 옆에 있는 히로시를 보며, “히로시 헌터도 함께 왔었군요.”라고 말하며 찻잔 한 세트를 더 꺼냈다.
“과자라도?”
“과자는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요? 천진난만하게 어린이 같은 모습을 자주 보였길래, 과자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음.
싸우자고 불러온 건 분명히 아닌데.
그렇다고 살가운 농담식 인사도 아닌 거 같고…….
미국식 조크인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일단, 앉으시죠.”
그렇게 히로시와 내가 나란히 앉고.
맞은편에는 로버트 윤이 앉았다.
그는 찻잔에 손도 대지 않고 곧장 입을 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합시다. 제가 일본 협회장 계획에 합류한 이유. 그게 궁금해서 온 게 결정적인 이유죠?”
저쪽에서 먼저 본론을 꺼내주신다면야.
나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난 답하기 전, 흑염룡과 오르문의 표정을 살폈다.
둘 다 쌍둥이라도 된 듯이, 똑같이 팔짱을 끼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로버트 윤을 쏘아보던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버트 윤이 직접 무려 17개의 게이트를 없애 버렸으니.
당연히 정령들에게는 크루즈와 다름이 없는 악인으로 보일 터였다.
“좋아요, 그거부터 얘기해 봅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요. 청문회 얘기는 잠시 뒤로 미룹시다.”
“좋습니다. 말하시죠. 무슨 생각을 가지고 동조했는지.”
“일본 협회장 야마다 헤이로. 상당히 똑똑한 협회장이죠. 능력도 있고.”
뭐야? 갑자기 이 뜬금없는 칭찬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말하라고 했을 뿐인데, 계획의 설계자인 일본 협회장을 칭찬한다?
점수라도 따고 싶었던 걸까?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가 그런 계획을 생각해 낸 것도 그렇고. 그가 개인적으로 연락망을 가지고, 타국 협회와도 두루두루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단 것에서 더 놀랐고요.”
그래? 비상 연락망의 존재는 감찰부.
나아가 중앙 협회조차도 아예 몰랐단 뜻이 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쓸데없이 혓바닥이 긴데. 까놓고 물읍시다. 중앙 협회 뿌락치 노릇하려고 동조한 겁니까? 일본 협회가 별도의 협회를 모으고 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고.”
“한 번에 두 가지 질문을 해 버리니, 어떤 순서로 답해야 할지 고민이군요.”
나로서는 꽤 강단 있게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로버트 윤은 당황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그런 질문이 올 것을 예상했다는 걸까.
상당히 편안한 표정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답하겠습니다. 어떻게 일본 협회의 계획을 알았는지요.”
“편하신 대로.”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미스터 윤. 당신은 일본 협회 쪽에 합류한 협회 중 어떤 국가가 있는지, 아예 모르는 것 같군요?”
“…….”
그건 그렇다.
깨어나자마자 히로시에게 이 사실을 들었으며, 21개국의 합류가 결정됐다고만 들었지.
정작 21개국이 각각 어떤 국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단도 본 적이 없으니까.
“이게 힌트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협회에 합류한 협회 중엔. 러시아 협회도 있습니다.”
“러시아……?”
힘의 대명사. 불곰국에서 합류가 힌트가 된다라.
어떤 뜻을 담은 힌트였을까를 고민…….
할 필요도 없었다.
러시아 협회가 합류했다. 이것을 듣고 난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반응 보니까 이제 눈치를 채신 것 같군요.”
“중앙 협회의 구성 협회 중 하나가 중앙 협회를 탈퇴하겠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제야 로버트 윤은 여유가 넘치게, 아주 느긋이 찻잔을 들이켰다.
중앙 협회.
헌터력이 강한 협회들이 모인 연합체.
그것이 중앙 협회가 처음으로 생기게 된 명분이었다.
UN 안보리 사회처럼 여러 국가의 협회가 모여, 뜻을 함께하는 연합체로 시작했으나.
지금의 중앙 협회는 약간은 변질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중앙 협회장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에 따라 연합체가 아닌, 절대권력을 가진 한 국가의 협회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앙 협회장은 미국인.
그래서 미국 협회에 혜택을 넘어선 특혜를 주기도 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괜히 미국 협회를 중앙 협회 2중대라고 불렀겠나?
뒤를 봐주는 절대적인 세력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구성 협회.
말 그대로 중앙 협회의 구성원 중 하나인 셈이다.
통상적으로 세계 헌터력 TOP 11 국가까지만 중앙 협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헌터력을 가진 국가가 중앙 협회장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중앙 협회장도 미국인인 이유였다.
“러시아가 탈퇴면…….”
“공식적으로 아직 탈퇴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독일 협회까지 일본 협회에 합류했어요. 독일도. 잘 아시죠?”
헌터력 세계 2위 국가.
그런 거대한 협회에서 중앙 협회를 탈퇴하고, 일본 협회에 합류했다는 거대한 뉴스다.
“그렇게 두 국가가 일본 협회에 합류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경로도 러시아와 독일 협회에서 말해줬기 때문이죠.”
“칙쇼! 이건 기밀이 생명인 건데! 누구 입이 그렇게 가벼운 거야?! 이렇게 중대한 일을 떠벌이고 다닌다고?!”
정령 덕에 로버트 윤이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있는 히로시.
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는 과격한 행동까지 보이며 불만을 울분을 뱉었다.
나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이 계획은 51구역에 버금가는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깨졌으니까.
기밀이 깨졌다는 뜻은.
계획이 성공될 수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때 로버트 윤은 여전히 느긋하게 말했다.
“히로시 헌터의 반응 보니까. 제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우리한테는 중요한 거 맞는데.”
벌써 내부에 배신자가 생긴 거니까.
하지만 로버트 윤은 고개를 저었다.
“러시아 협회와 독일 협회가 제게만 알려줬습니다. 이게 정녕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겁니까? 중앙 협회장에게 알려준 게 아니라, 제게 알려줬다고요.”
“어…… 어어?”
개인적으로 알려줬단 뜻은…….
“제가 인생은 그대로 제대로 살았나 봅니다. 러시아 협회와 독일 협회는 저를 신뢰하는 걸 보니까요.”
신뢰…….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당신만 넘어오기를, 러시아와 독일 협회가 희망했다. 이겁니까?!”
“빨리도 알아차리는군요.”
로버트 윤은 다시 찻잔을 들이켰다.
러시아 협회와 독일 협회가 따로 접촉했다는 것.
왜일까?
그것은 바꿔 말하면.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선 로버트 윤의 능력이 필요하단 뜻이다.
나도 모르는 어떤 능력이. 그에게 있다는 게 분명하다.
“얘기 그럼 이어갈까요? 제가 무슨 생각으로 한국 협회도 합류하겠다고 밝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