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청문회 (1)
“지금 뭐라고 했어? 3일이라고?”
설마 내가 정신을 잃었던 기간이.
몇 시간 정도가 아니라 3일이나 되었단 건가?
그 정도로 부작용이 심했다고……?
[윤도원…….]
그때, 흑염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흑염룡도 폭주한 뒤라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는데.
지금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게다가 무언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나를 향해 진심을 가득 담아 미안함을 표출 중이다.
“지은아.”
“왜?”
“혼자 있어야겠다.”
“어…….”
그렇게만 말했을 뿐인데, 이지은은 내 옆쪽을 쳐다봤다.
그곳에 흑염룡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에 내가 혼자 있어야 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잘 아는 모습이었다.
“몸은 괜찮은 거 맞지?”
“어디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어. 고생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지은은 차가운 물을 담은 대야를 들며 일어났다.
“앞으로 무모한 짓은 하지 마. 상황 보니까 우리가 기댈 건 너밖에 없는데. 그런 너한테 문제 생기면. 우리도 다 같이 불안해.”
“……갑자기 이 분위기는 뭐냐?”
뭔가 지금이 애니메이션이라면, 배경 전체가 핑크빛 안개로 물들 것만 같은 기분이다.
3일 만에 깨어났는데 이지은이 저런 말을 하니, 나로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냥. 이제 너 혼자만이 걸려 있는 일이 아니란 뜻이지. 또 이상한 망상하고 있네.”
이지은은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방에서 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와 흑염룡, 오르문만 남았을 때.
[윤도원……. 미안해. 그런 생각인 줄도 모르고. 내가 폭주하면서 정신까지 잃고…….]
3일 전 상황을 상기하며 내게 사과를 전했다.
“괜찮아.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오히려 네가 폭주를 해준 덕에 계획대로 흘러갔는데.”
전혀 미안할 것 없다.
흑염룡은 순전히 자신의 폭주로 인해 괜히 내가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지…….]
“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괜찮아. 그 상황에서 게이트를 만들 방법은 그거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비록 게이트 17개를 잃었지만, 그래도 초월석 17개를 안전하게 회수했다고 해요.]
오르문이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3일이나 지났다는데. 중앙 협회에서는 별다른 움직임 없었고?”
[그거까진 제가 잘…….]
하긴, 인간들의 일이고.
더군다나 오르문과 흑염룡은 내 주위를 떠날 수가 없으니 정확한 상황을 인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난 곧장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부재중 통화가 로버트 윤에게 몇 통만 와 있을 뿐, 내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그다지 소란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다만, 문자 한 통만 남겨져 있었을 뿐이었다.
[깨어나면 연락 바랍니다.]
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들은 건지.
아니면 3일 안에 이곳을 들렀다 간 것인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
“흑염룡.”
[왜.]
“로버트 윤이. 내가 쓰러진 동안 온 적 있어?”
[응. 어제 아침인가? 네가 쓰러진 날 다음날에 바로 왔었어.]
직접 확인하고 간 모양이다.
“별다른 말은 없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 듣기엔 지금 한국에 있다는 것 같은데.]
51구역의 소동은 정리가 되었으니, 51구역에 계속 있을 이유는 로버트 윤에게도 없다.
현재 그는 한국 협회장 대행 신분.
아직 정리되지 않은 한국 협회의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남아 있던 듯이 보였다.
난 즉시 로버트 윤에게 연락하지 않고, 레드뷰를 통해 상황을 살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51구역의 그 소동은 세계 각국의 뉴스 속보로 다뤄졌다.
보통 레드뷰 시스템 설계상 인기 있는 동영상은 검색하지 않아도 메인에 나타났다.
검은 드래곤이 활개를 치는 그 영상이.
레드뷰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보였다.
그것도 최상단. 그만큼 적어도 레드뷰 한국 서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봤다는 동영상이기도 했다.
“이야, 역시 난리 났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네바다주엔 사실 게이트가 있다?]
자극적인 제목을 시작으로.
[네바다주 논란 총정리]
[51구역, 이번에도 영화 한 장면이라고 해 봐!]
소위 말하는 사이버 렉카들도 본격적으로 네바다주 51구역에서 일어난 일을 물어뜯는 중이다.
추천 영상으로 나온 영상의 조회수만 대충 합해도 그 수는 무려 1억 5천만 뷰.
우리나라 인구 3배가 넘는 숫자다.
이 정도면 최소한 한국인은 전부 이 영상을 시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구역에 관한 소식을 쑥 훑던 중.
[51구역. 돌연 폐쇄?]
심지어는 이런 영상까지 보였다.
영상을 확인하니, 정말 말 그대로 51구역을 잠정적으로 폐쇄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보였다.
귀하디 귀한 연구 자료와 결과물을 전부 고스란히 간직한 51구역을 폐쇄하겠다라?
오르문을 상대로 실험한 자료는 둘째치고.
그들이 가진 독보적인 실험 결과물.
프로젝트 네이션.
그 핵이 51구역에 버젓이 있는데도 폐쇄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보인 것이다.
“이번엔 치명타로 들어간 것 같은데. 안 그래? 흑염룡?”
[난 잘 모르겠다. 네가 쓰러진 3일 동안 네 옆을 지키느라 세상 소식을 자세히 듣질 않아서.]
“아니야. 이 정도면 확실하다. 치명타가 맞다.”
영어로는 크리티컬이라고 부르지.
자, 과연 51구역 폐쇄설은 사실일까, 아닐까?
솔직히 나로서도 확정할 순 없다.
51구역은 이미 연거푸 두 번이나 몬스터가 나타나는 사고가 터지면서, 그들이 세워 놓은 삼엄한 보안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논란을 잠재우고 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생각하니 답은 금세 나왔다.
일단, 그들은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왜냐 연구에 필요한 필수 준비물, 초월석이 없으니까.
하물며 오르문도 이제 그들에겐 없다.
오르문을 상대로 연구, 실험했을 땐 초월석이 사라진 현 시국에서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았다는 희망에서 진행했지만.
이젠 그런 정령까지 사라진 상태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제 51구역이 가진 초월석도 없기에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할 수도 없다.
물론, 나와 히로시가 이제 실험에 응할 이유도 없는 게 치명적인 이유다.
상황 파악은 어느 정도 됐다.
51구역은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
자, 그렇다면 이제 내게 벌어질 일은 무엇인가?
아주 호기롭게 무려 세계의 절대적인 공신력을 가진 헌터계의 대법원이라 할 수 있는 중앙 협회의 뒤통수를 후렸다.
독자적인 게 아닌 일본 협회까지 끌어들여서.
상대는 가만히 당하고 있을 바보들이 아니니, 분명 무슨 움직임을 준비했을 거다.
내가 쓰러진 기간은 3일.
중앙 협회나 되는 엘리트들이라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도 남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일본 협회는 과연 얼마나 많은 타국 협회를 끌어들였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정확한 일본 협회장의 생각이 듣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똑, 똑.
아주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형, 깨어났다는 소리 들었는데. 들어가도 돼요?”
문은 열리지 않고 목소리만 흘러 들어왔다.
히로시다.
“들어와. 마침 부르려 했는데. 딱 맞춰서 잘 왔네.”
내가 흔쾌히 답하자, 히로시는 문을 열고 얼굴을 보였다.
“형! 괜찮아요?!”
“야, 지겹다. 깨어나자마자 연신 괜찮냔 말만 들으니까.”
“당연히 할 소리가 그거밖에 없죠.”
“네가 보기엔 어때 보이는데? 어디 문제 있는 거 같아?”
히로시는 내 질문을 듣고는, 시선으로 부담스럽게도 내 몸 전체를 훑었다.
“음~ 얼굴에 홍조가 조금 있는 거 빼고는 전혀요?”
“그래. 나도 괜찮으니까 깨어났지 안 괜찮았으면 영영 못 깨어나지 않았겠냐.”
“살벌한 소리를 너무 해맑게 하시네. 그런데 저를 부르려고 했다니요?”
“앉아.”
침대 맞은편에 있는 작은 의자를 가리켰다.
히로시는 의자를 침대 옆으로 끌고 와, 앉은 뒤에. 본격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우리랑 뜻을 같이하겠다는 협회를 모으겠다고, 일본 협회장이 그랬잖아.”
“네. 저도 그거 말하려고 왔죠.”
히로시는 답하면서 휴대폰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곤 일본어 가득한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내가 해석할 수 없는 일본어 중에서도.
딱 하나만은 해석할 수 있었다.
왜냐, 그것은 일본어가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였으니까.
문자에는 분명히 ‘21’라고 적혀 있었다.
“이 21이 의미하는 것은……?”
“오늘까지. 21개국의 협회가 동참하기로 했어요.”
“……그렇게나 많이?”
솔직히 놀랐다.
21개국이면…….
모르긴 몰라도 한 대륙이 통째로 우리에게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속한 동북아시아에 있는 모든 국가를 합쳐도 21개나 나올까?
유럽이건 아프리카건.
대륙 곳곳에 뻗은 나라와 연락이 닿고, 동행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단 뜻이다.
분명히 21개국 중에서 한국 협회는 빠진 상태일 거다.
왜냐, 한국 협회장은 현재 공석.
전대 협회장이었던 최현민의 청문회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기에.
중앙 협회 소속의 로버트 윤이 대행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협회장이 정말 그렇게 능력이 있던 걸까?
아시아를 넘어 다른 대륙에 있는 협회까지 끌어들이게?
“이야, 너희 협회장님은. 진짜 능력자인가?”
“왜요?”
“아니, 어떻게 21개국 협회의 약속을 받아내?”
“뭐…… 적을 가능하면 두지 않겠다는 마인드긴 해요. 솔직히 지나서 하는 말인데. 제가 일본에 있을 때도 일본 헌터들이 한국 협회장 욕을 엄청 했다니까요? 어떻게 그런 망나니가 협회장을 하고 있는지 신기한 나라라면서요.”
내가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곧장 히로시의 입을 향해 주먹이 날아갔을 터다.
감히 한국을 욕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거.
내가 당한 수모들이 있기에 와닿지 않았던가?
최현민이 어떤 사람이고, 그가 어떤 불법도 스스럼없이 저질렀는지를 봐 왔기에.
지금 이 순간은 히로시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건 국제적 망신이다.
얼마나 그 악명이 높았으면 바다 건너 떨어진 일본까지 그 소문이 퍼지랴.
하긴, 그렇게 망나니니까 중앙 협회 감찰부의 표적이 되기까지 했지.
어떻게 보면 또 최현민은 성실한 거다.
안 좋은 쪽으로만.
“아무튼, 형. 21개국 협회가 참여했다고 해도 안심하면 안 돼요. 초월석은 17개밖에 없는데 어떻게 배분하려고요?”
“그건 차차 해결할 문제고. 어차피 당장 줄 거 아니었으니까.”
졸지에 초월석 채무자가 되었지만. 괜찮다.
적어도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런 게 21개국 협회 중에. 한국 협회는 당연히 없지?”
“네? 아닌데요? 한국 협회도 동조하기로 했는데?”
“……뭐?”
순간 내 귀가 잘못된 것 같았다.
어떻게 한국 협회가 동조를 한단 말인가?
지금은 로버트 윤이 협회장 대행으로 있는데.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로버트 윤에게 오는 전화였다.
“잠깐만.”
내가 전화를 받았을 때.
-깨어나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이걸 한국말로 ‘읽씹’이라고 하던가요?
이상하게 로버트 윤은 살갑게 내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 나한테 이런 인사를 할 처지가 아닌 걸로 보이는데……?
“……뭡니까? 갑자기?”
경계심 가득 유지하며 묻자.
-이틀 뒤에 전 협회장 최현민의 청문회가 시작됩니다. 미스터 윤도 참석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준비하시죠.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궁금한 거 많이 있을 것 압니다. 협회로 오시겠어요, 제가 갈까요? 그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설명하죠. 제가 왜 일본 협회장과 동조했는지도요.
로버트 윤은 이미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 뒤 뱉은 말이다.
“내가 바로 가지요.”
그래,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