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뉴 에이지 (4)
콰아아앙-!
퍼엉-!
도착한 51구역.
아니나 다를까.
우리를 맞이하는 건 여기저기에서 무언가가 연속적으로 터지는 폭음이었다.
[주인님!]
게이트 밖을 나오자마자 오르문이 천장을 보며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황급히 뒤를 돌며 위를 올려다 보니, 게이트에서 완전히 나온 검은 드래곤이 거대한 발로 나를 짓뭉개려 하고 있었다.
대처 방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여졌다.
내 옆에 있던 로버트 윤을 끌어안으며, 히로시의 능력 신속을 사용하여 가까스로 벗어났다.
콰아아아앙-!
무사히 피한 드래곤의 거대한 발.
그저 사뿐히 즈려 밟는 정도였는데,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다.
가뜩이나 이곳은 지하 깊숙한 연구시설.
그런 지하에 몇 층이나 되는 새로운 지하가 생겨난 순간이다.
‘오르문.’
[네!]
‘이 상태에서 드래곤을 제압하면, 게이트는 사라지지?’
[당연하죠.]
그렇다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게이트가 있어야만 정령들의 능력인 활류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데, 검은 드래곤이 게이트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드래곤을 없애 버릴 수 없단 뜻이 된다.
‘그럼, 드래곤을 게이트 안에서 처리하면. 활류를 사용할 수 있어?’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하는 거니까 가능해요!]
‘좋아.’
드래곤만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문제는 저 거대한 드래곤을 무슨 수로 밀어 넣느냐였다.
[날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인가, 아니면 내가 정확히 예상하고 있는 건가?]
그때,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어……?! 이 목소리는……!]
오르문에게도 똑같이 들렸는지 상당히 격한 반응이다.
시오스의 최종 병기 능력인 만물을 받으면서 드래곤과 나는 이어진 상태.
단, 정령처럼 내 옆에 꼭 붙어서 상황을 함께 주시하는 게 아닌, 내게 일어난 일들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상태였다.
반가운 목소리에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드래곤. 필요할 때만 나타나 주는 게 마음에 드는데?’
[아무래도 지금 네 능력으로는 시오스의 지도자가 만든 나의 모조품을 제압하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고 판단됐거든.]
‘말로만 하지 말고 얼른 도와주지, 그럼?’
[……이젠 나도 정령처럼 다루는군. 좋다. 대신, 몸을 잠시 빌리마.]
번쩍-!
드래곤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몸에서 섬광이 터졌다.
마치 내가 몬스터가 되어 진화라도 할 때 나오는 듯한 섬광이었다.
“……미스터 윤?”
느닷없이 터진 섬광에 로버트 윤은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그에게 한마디만 남겼다.
“드래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주고 갈 테니까. 여기 수습이나 알아서 하셔.”
이 정도 해 줬으면 됐지, 무언가를 더 바라지 말라는 뜻이었다.
섬광이 끝난 뒤.
펄럭-!
마치 내 몸이 정령이 된 것처럼 드래곤의 날개가 생겼고.
내 손은 드래곤의 앞발처럼 변했다.
나와 드래곤이 하나로 융합이 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미스터 윤…… 당신 몸이……. 그건 또 무슨 현상입니까……?”
당연히 처음 보는 현상이겠지.
처음부터 난 모든 걸 말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드래곤의 능력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차피 한국인 은어로 TMI일 뿐이다.
51구역에 오고 나서.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는 게 탁월한 선택이라 느꼈다.
만약 그들이 내가 드래곤의 능력까지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나를 대상으로 하는 인체 실험도 거리낌 없이 강행할 연구원들이란 것.
이미 잘 봐 오지 않았던가?
‘자, 드래곤. 내 손을 이상하게 만들었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아직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번쩍-!
섬광이 다시 터졌다.
이번엔 내 두 다리 부분에서 터진 섬광이다.
섬광이 끝난 뒤. 내 발까지 드래곤의 발로 변했다.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어. 지금은 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야.]
‘무슨 제약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시오스의 지도자가 만든 저 변이 몬스터. 나를 표본으로 했기에 그만큼 강한 힘을 가졌어. 내 전신을 드러내놓고 싸워야 할 정도지. 하지만 듣자 하니, 지금 수행자 네가 있는 곳에선 그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인간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곳인데다가.
심지어는 광야도 아닌 지하 연구시설이다.
이런 곳에서 검은 드래곤을 제압하려고 전투를 속행하면 다른 무고한 인간까지 휘말릴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서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어라?’
[그래. 시오스의 지도자가 만든 드래곤은 내게 맡기고. 그 틈에 너는 빠져나가.]
상당히 고마운 제안이지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필요로 해서 드래곤을 호출했는데.
오늘만큼은 드래곤이 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느낌이었다.
‘드래곤. 이런 상황에 묻기도 참 그렇긴 한데.’
[뭐? 왜 나서서 도와주냐고?]
‘잘 아네.’
[다른 거 아니다. 약속은 지키는 녀석이니까. 오르문을 구출해 주기도 했고. 네가 인간계에서 하는 모든 일은. 순전히 너만을 위한 일이 아닌, 시오스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너를 전적으로 도와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어딘가 츤데레 같은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거 따질 때인가?
‘고맙다.’
그 한마디만 남긴 채로 검은 드래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후웅-!
검은 드래곤은 나의 전진을 방해하기 위해 거대한 앞발로 나를 찍었지만.
콰앙!
내 등에 펼쳐진 드래곤 날개가 갑옷이 되어 검은 드래곤을 막아주었다.
‘비늘의 가호와는 격이 다른 느낌인데?’
내구성부터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더 단단하며, 핵폭탄이 터져도 나만은 살 수 있을 것 같은 안정감.
드래곤에게 받았던 비늘의 가호와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그거야 당연하다. 비늘의 가호는 결국 내가 힘을 잠시 빌려주는 개념이지만, 지금 너와 나는 잠시 융합한 거니까.]
즉, 드래곤이 가진 모든 걸 인간의 몸으로도 잠시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황이란 뜻이다.
‘이런 융합이 있으면 4개의 가호를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순간 그런 의문도 들었다.
이토록 훌륭한 융합이란 것이 있는데.
굳이 힘을 빌려오는 개념인 4개의 가호를 고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필요에 따라서는 드래곤과 융합을 하면 그만인데?
[아, 중요한 걸 놓쳤군…….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가호는 총 4개가 있고, 특정 가호를 사용하기 위해선 단계가 있다고.]
비늘, 날개, 발톱, 정신.
날개를 사용하기 위해선 비늘의 가호가 필요하고.
발톱을 사용하기 위해선 날개의 가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가호인 정신의 가호를 사용하려면 3개의 가호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랬지?’
[정신의 가호 없이 진행한 융합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분명히 있어.]
‘무슨…… 부작용인데?’
[정신을 잃을 거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직전. 비늘의 가호를 꼭 꺼내 놔라.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몸이 완전히 분해되어 죽을 수도 있다.]
‘…….’
왜 4개의 가호가 필요한 것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상황이 긴박하여 진행한 융합.
그 부작용은 당연하게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리 말해줘서 다행이군.’
정신을 잃기 직전에 비늘의 가호를 발동시켜 놓는다.
그것만을 기억한 채로 검은 드래곤 앞에 섰다.
‘드래곤을 안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이거지? 내가 할 일은.’
[그렇다.]
드래곤의 발로 변한 내 손과 발.
발로 땅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벽을 밀 듯이 그대로 검은 드래곤을 밀었다.
드드득-!
저 거대한 몸체를 가진 드래곤이 조금씩 밀리자,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렸다.
검은 드래곤은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 원하는 만큼으로 밀리지 않았다.
펄럭! 펄럭!
내 뜻대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었을까.
날개를 이리저리 펄럭이며 최대한으로 발악했다.
콰앙-!
콰아아앙-!
내 몸은 드래곤과 융합한 덕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시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으으……! 끄악!”
낙하하는 부서진 시설물로 인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연구원이 깔리기 직전.
“로버트 윤! 당신은 연구진들이나 대피시켜!”
“……네! 알겠습니다!”
로버트 윤은 자신의 능력인 압축을 이용해 연구원 몸을 덮치려는 낙하물을 소멸시켰고, 재빠르게 대피 작업에 나섰다.
보통 정령이 폭주하며 만들어낸 몬스터의 경우.
몬스터가 가진 힘은 정령의 폭주 수준과 비례한다.
‘흑염룡……. 화가 정말 머리끝까지 났구나.’
일전에 한국에 있던 내 부서에 폭주하려고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폭주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트가 16개나 사라진 상태에서 생긴 폭주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난 너를 탓하지 않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여기니까.]
‘너라도 이해해줘서 고맙다.’
이제 난 어금니까지 꽉 물었다.
힘을 너무 과하게 줘서 잇몸과 치아 사이에서 피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목구멍으로 비릿한 맛이 느껴졌으니까.
“으그그그극!!”
그 상태로 검은 드래곤을 게이트로 향해 힘껏 밀었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드래곤이 게이트 속으로 쓰러지면서, 시설을 다시 파괴시켰다.
하지만 성공이다.
‘오르문! 들어갈 거야! 준비해!’
[네! 두 눈 바짝 뜨고 있습니다!]
나도 덩달아 게이트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펄럭-!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행자. 얼른 나가라.]
검은 드래곤의 날갯짓 소리가 아닌, 드래곤이 나와의 융화를 풀고 직접 강림한 듯이 보였다.
“그렇다면…… 곧 오겠군.”
드래곤이 미리 고지한 부작용이 슬슬 올 타이밍이다.
하지만 정신을 잃기 직전 딱 맞춰서 비늘의 가호를 꺼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
즉시 비늘의 가호를 꺼내 몸을 보호했다.
[다 됐어요! 주인님!]
그 사이, 오르문은 속전속결로 활류를 걸어뒀고.
난 게이트로 몸을 다시 내던졌다.
[이곳은 내가 책임지마. 쉬거라.]
게이트를 통과하기 직전, 들린 드래곤의 목소리다.
“부탁하…….”
난 하고 싶은 말 전부를 끝맺지 못한 상태로.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의식을 잃었다.
***
“으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무감각했던 몸에 감각이 서서히 생겼다.
이불을 덮었는지, 발부터 목을 전부 뒤덮은 온기.
찜질방에 온 것처럼 땀이 후끈하게 적셔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떠 보니 아주 익숙한 천장이 나를 맞이했다.
양산부에 있는 나의 기숙사다.
“이제 정신이 들어?”
그리고 옆에서 들린 목소리.
이지은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감기·몸살에 시달리는 사람을 간호하듯이, 물수건을 적시며 물었다.
“……무슨 유난이야? 물수건?”
허리를 들자, 이마에서 무언가가 톡 하며 떨어졌다.
물수건이 내 이마에 올려져 있던 상태였다.
“죽는 거 아닌가 걱정했지. 3일 내내 열은 펄펄 끓고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고.”
“……어?”
뭐라?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