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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38화 (138/200)

§ 138화. 뉴 에이지 (3)

“Xuck!”

밧줄이 사라지자마자 들린 목소리.

감찰부원 중 하나가 내뱉은 욕설이다.

확인해 보니, 히로시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밧줄을 감찰부원의 몸에 꽁꽁 묶어버렸다.

감찰부원은 졸지에 밧줄이 고치처럼 묶여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휴우~”

그제야 히로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보니 히로시의 신속은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듯하다.

마치 자신에게 흐르는 시간만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게 1초는 정말 1초면 된다.

눈을 깜빡거리는 시간 정도지.

하지만 히로시에 한해서 1초는 대략 10초. 어쩌면 그 이상이 되는 것 같다.

히로시의 시간 10초가 지나야 남들 1초가 지난 것과 똑같은 효과로 보였다.

이런 능력이야, 영화에서 간간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니.

그 원리를 생각하면 됐다.

어느 영화였을까.

학교 같은 곳에서 어떤 폭발로 인한 화재가 터졌고, 불길이 학생, 선생을 덮치려 할 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자가 불길이 그들을 덮치기 전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학생과 선생을 전부 구출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 속 장면이 지금 딱 히로시의 능력으로 보였다.

그러니 히로시가 감찰부원을 제압하는 과정.

특히 밧줄로 온몸을 고치처럼 포박한 뒤에 천장에 거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감찰부원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묶인 것을 보고 든 확신이다.

그와 동시에.

쿠구궁.

게이트 하나가 무너졌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로버트 윤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미스터 윤…….”

목소리 속에 숨은 감정을 듣자 하니, 어떤 애환이 느껴지는 듯했다.

로버트 윤의 손에 들린 초월석을 바라봤다.

이로써 초월석으로 변환된 게이트는 총 17개다.

난 어떠한 인사말도 건네지 않고 염력을 이용해 로버트 윤의 몸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그리곤 로버트 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손에 들린 초월석을 가뿐하게 뺏은 뒤에 물었다.

“나머지 16개는?”

“…….”

로버트 윤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눈짓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부서 내에 있는 테이블 하나였고 그 위에는 초월석들이 가지런히 놓인 상태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경찰들이 범죄의 증거물을 나열하는 것처럼, 초월석 바로 밑 부분에는 등급이 적힌 작은 쪽지가 놓인 것이 보였다.

로버트 윤은 그 뒤로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로 눈빛으로만 알려줄 뿐이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내게 자신을 막으러 오라는 말을 했던 걸까.

난 이제 그 궁금증을 풀었다.

“제안한 대로 막으러 오긴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뭡니까.”

“친근한 척하지 마시죠. 최대한 살벌한 분위기를 내란 뜻입니다.”

아무래도 로버트 윤의 계획 속에서는 내가 강압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포함이 된 듯하다.

“적어도 무슨 계획인지는 알아야 내가 하든지 말든지 하지.”

“간단합니다. 로버트 윤, 당신은 스스로 중앙 협회를 등진 겁니다. 중앙 협회를 향한 반기를 들었단 거죠.”

“……오히려 나만 더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하겠단 뜻으로 들리는데.”

“그건 아닙니다. 저도 중앙 협회. 별로 안 좋아합니다.”

적어도 거짓말로 답한 건 절대 아니란 걸 알았다.

냉담하면서도 확고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의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혼란스럽다.

언제부터?

내가 아는 로버트 윤은 오직 중앙 협회를 위해 움직이는 충실한 직원으로 보였다.

사명감 하나로 똘똘 뭉친 세계의 공무원으로 보였는데.

무엇이 그를 이렇게 돌변하게 만든 것일까.

“이상하네, 내 눈으로는 중앙 협회를 부모 모시듯 했는데.”

“예전엔 그랬죠.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이 달라진 겁니까?”

“오늘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중앙 협회장으로부터 한국에 있는 게이트를 전부 초월석으로 회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뒤라고 느껴졌다.

“아무튼, 세게 한 대 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야 중앙 협회장에게 저도 할 말이 생기니까요.”

적어도 중앙 협회의 성격은 내가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니다.

반면에 로버트 윤은 아주 오랫동안 중앙 협회에 몸을 담갔던 사람이니, 그의 제안이 어느 쪽으로 가건 정답이라고 느껴졌다.

“아플 텐데?”

그렇게 원한다면 그대로 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본격적으로 행하기 전에, 슬쩍 겁부터 줬다.

“죽지 않게만 해 주면 됩니다.”

“그럼 팔다리 중 어디 하나 부러지는 정도면 된다는 건가?”

“그건 좀…….”

그렇다면 적정선으로 정신을 잃는 정도로만 때려주자.

강도를 정하고 곧장 로버트 윤의 제안대로 하려고 했으나.

그의 휴대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이것 좀 풀어주시죠.”

내 염력에 의해 몸을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로버트 윤.

이런 상황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염력을 거둬 달라는 요청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이 타이밍에 로버트 윤에게 전화가 온다는 뜻은 무엇일까.

난 그 발신지를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금세 알 것만 같았다.

보나 마나 중앙 협회나 51구역.

둘 중 한 곳일 것.

한국에 있는 내 양산부에 CCTV가 잔뜩 깔려 중앙 협회에서 실시간으로 이곳 상황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로버트 윤을 막으러 오자마자 전화가 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51구역의 상황 때문인 것 같다.

흑염룡이 폭주하면서 만들어진 게이트.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검은 드래곤.

결국, 드래곤이 완전히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51구역 전체를 파괴하는 중으로 보였다.

고개를 슬쩍 돌려 흑염룡의 상태를 살폈다.

게이트를 타면 대륙 간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 한들,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다.

활류를 이용해 51구역에서 한국의 양산부로 도착하는 과정에서.

흑염룡은 자연스럽게 내 곁에 위치하게 되었고, 오르문이 말한 대로 지금 정신을 잃은 채다.

그러나 흑염룡이 정신을 잃었다고 해서 게이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엄연히 초월석만 없을 뿐,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게이트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아무래도 51구역 자력으로 몬스터를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나와 버린 모양이다.

멀리 떨어진 로버트 윤에게도 전화를 한 것을 보면.

난 로버트 윤의 몸을 묶은 염력을 거두어 줬다.

“전화부터 받아보시죠.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51구역에서 이곳까지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하지만, 그건 나중에 묻겠습니다.”

로버트 윤은 그렇게 답하곤 휴대폰을 들었다.

발신자의 이름은 영어 약자로 적혀 있었다.

P.C.A였다.

일종의 암호처럼 적힌 발신자의 정체.

로버트 윤이 일부러 보여준 이유는 내가 봐도 모를 것이라는 의도보단.

자신이 이런 사람과 통화를 할 예정이라는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의도로 보였다.

“누굽니까. PCA?”

“중앙 협회장의 약자입니다.”

정식 명칭이 얼마나 길면 약자로 말할까.

난 어서 전화를 받아보기나 하라는 손짓을 보이자, 로버트 윤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몇 초 뒤.

그의 평정심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특별한 말은 하지 않고 통화를 끝내기 직전. “Yes.”란 말만 남기고 황급히 통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내가 예상한 일이 맞는 모양이다.

한국에 있는 로버트 윤까지 51구역으로 급파하며 그곳에서 일어난 소동을 빨리 해결하라는 지시로 보였다.

“미스터 윤…….”

이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왜요.”

“51구역에서……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도대체 뭘 했길래 그곳에 몬스터가 다시 출몰하고, 시설을 완전히 파괴한 겁니까……?”

“그 현상을 처음 보는 건 아니면서?”

“……당신이 일부러 그랬단 겁니까?”

“이곳으로 오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만 했으니까.”

“도대체 뭘 했길래…….”

이제 로버트 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을 보니, 예상한 대로 급히 51구역으로 가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요? 협회장이 당신한테 직접 와서 해결하라고 하던가요?”

“……그렇습니다.”

“나 참, 대책 없는 협회장이었네.”

그곳에 있는 헌터들로는 무리인 건가?

물론, 드래곤의 표본이었으니 여태껏 헌터들이 익히 아는 몬스터와는 수준이 다르긴 하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로버트 윤까지 급파할 정도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면 로버트 윤이 독보적으로 강한 것일까?

어쩌면 둘 다 해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로버트 윤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능력의 레벨이 가장 높은 사람.

중앙 협회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거고, 어쩌면 로버트 윤의 능력은 미국에서도 한 자릿수에 꼽히는 실력자라는 뜻일 수도 있다.

“좋습니다, 어차피 상황 이렇게 된 거. 까놓고 얘기하죠.”

“무슨……?”

“중앙 협회와 본격적으로 등지기 위해 나를 도와준다는 사람 위주로 세력을 모았습니다.”

로버트 윤의 표정이 다시 한번 급격하게 무너졌다.

설마 그런 움직임까지 취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지.

로버트 윤이 아는 나는.

헌터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고, 별도의 세력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인맥이 넓지 않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일본 협회장이 발 벗고 나서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뭐. 유종의 미란 말이 있죠. 중앙 협회장이 당신만 51구역으로 가라던가요, 아니면 부원들 전부 데리고 가라던가요.”

“……급한 대로 한국 공항에 있는 비행기 전용기로 지정할 테니 바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세월에?”

가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장기간이다.

하루 지나고 나서 로버트 윤이 도착한다고 한들.

그곳의 상황이 나아질까?

어쩌면 로버트 윤의 힘으로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

“유종의 미. 무슨 뜻입니까?”

“상황 보아하니 그곳에 벌어진 일도 제대로 수습 못하던데. 이번엔 내가 도와주겠단 뜻입니다.”

나 역시도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방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히로시가 걱정하던 부분이 현실로 바뀌었고, 그건 막아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르문.”

[네.]

“활류. 다시 한번 할 수 있지?”

[……거기로 다시 가겠단 뜻인가요?]

“그래. 가서 그것만 막아주고 오자고.”

시오스의 수호신인 드래곤이다. 어떤 변수가 존재할지 모르니, 비늘의 가호까지 있는 내가 막아주는 게 훨씬 빠르며 안전할 거다.

귀찮게 된 상황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일을 끝내야만 내게도 명분이란 게 생기기 때문이다.

난 로버트 윤에게 이것 하나만은 단호히 경고했다.

“당신 협회장한테 똑똑히 전해요.”

“……무엇을.”

“그깟 드래곤 한 마리도 못 막으면서 시오스보다 강한 크루즈 본대가 인간계로 전부 넘어올 위험이 있는 짓을 할 생각을 어떻게 가진 거냐고.”

그깟 드래곤이라고는 했지만, 명백히 따지고 보면.

시오스보다 강한 게 크루즈들 아니던가?

심지어 그 드래곤은 드래곤 본체도 아니다.

흑염룡이 분노로 만들어낸 복제품 드래곤이지.

실제 드래곤보다 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드래곤 하나 가지고 쩔쩔매는 인간들이. 어떻게 초월석 전부를 회수할 생각을 했는지.

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끝내야, 중앙 협회에서도 심각성을 다시 깨달을 거라 여겼다.

로버트 윤을 가장 가까이 있는 게이트 속으로 밀어 넣고.

그 즉시 나도 뒤따랐다.

‘오르문. 들어가자마자 바로 활류 준비해.’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나를 따라오려는 히로시에겐 다른 지시를 내렸다.

“히로시. 넌 여기에서 감찰부원들 통제하고 있어. 얼른 갔다 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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