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뉴 에이지 (1)
그 뒤로 히로시는 일본 협회장과의 통화를 계속 이어갔다.
나는 히로시가 하는 말만 들릴 뿐, 일본 협회장과 정확히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통화가 지속되던 중.
히로시는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떨어트린 뒤, 내게 물었다.
“형. 지금 상황에 이런 걸 물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요.”
일본 협회장이 무슨 말을 한 듯하다.
“뭔데?”
“정말 믿고 해도 되냐고…….”
난 또 뭐라고.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잘 물어봤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인가?
세계의 독보적인 권력 기관인 중앙 협회에 반기를 드는 행위다.
지금이 왕정국가면 우린 반역자나 다름이 없다.
실패하면 그대로 목이 날아가는 그런 반역자들이다.
그러니 일본 협회장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상황.
일본 협회장 입장에서도 약속을 꼭 지킨다는 어떤 서약이나 하물며 각서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말로 대놓고 불어본 듯했다.
오히려 그런 협회장의 질문 덕에 난 일본 협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신중하고, 정말 일을 확실하게 진행시킬 추진력은 있다는 것.
성공까지는 장담할 수 없어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난 히로시에게 자신 있게 답했다.
“물론이지. 어차피 이 순간 우리는 한배를 탔는데 뭘. 작전명 뉴 에이지. 저지르자고 해.”
이 계획의 주축은 내가 된다.
그리고 히로시나 일본 협회, 일본 협회가 끌어들일 다수의 타국 협회들은 서포트 개념.
연극으로 치면 내가 배우다.
그런 내가 자신감 없이 답하면 저들에게도 악영향이 간다고 판단했기에 당당히 답한 것이다.
히로시는 곧장 내 답을 일본 협회장에게 건넸다.
“알겠답니다. 일단은 비상연락망 돌려서 즉시 접촉해 보겠다는데요?”
비상연락망이라.
평소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협회들끼리 따로 통하는 비밀의 연락망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일본 협회장은 예전부터 이런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지라도 한 걸까?
따로 비상연락망을 가지고 있게?
적어도 한국 협회장이었던 최현민에게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다.
역시나 한국 협회와 일본 협회는 차이가 심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상 연락망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나도 조금 안심되는 효과가 생겼다.
정말 생각한 대로 일이 흘러갈 것만 같은 자신감은 덤.
나는 히로시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한국으로 가서 로버트 윤을 막을 거라고 전해. 바로 시작한다고.”
히로시는 즉각 내 말을 전한 뒤 통화를 끊었다.
“결정되면 저한테 다시 연락하겠대요.”
“좋아, 그럼 우린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해야겠네.”
한국으로 향하는 방법은 딱 하나.
게이트를 통해 정령들의 능력인 활류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게이트를 만드느냐가 중요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흑염룡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일?
그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오글거림이란, 평화롭고 무료한 시기에 그 효과가 극대화로 나오는 법.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아무리 흑염룡을 오글거리게 하는 일을 집중한다고 해도, 절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거다.
[두 번째…….]
그때, 흑염룡의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두 번째라는 말은 물어보지 않아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
이미 한국에 있는 로버트 윤은 중앙 협회 지시에 의해 S급 초월석 수확에 나선 상태.
게이트에 누군가가 들어가면 흑염룡이 느낄 수 있고, 이미 들어갔다고 했으니 로버트 윤은 벌써 두 번째 게이트를 들어갔다는 뜻이다.
잠깐, 이렇다는 것은……?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흑염룡을 꼭 오글거리게만 만들어야 게이트가 생기나?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게이트 생성 조건은 감정에 격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흑염룡은 지금 불안과 분노를 함께 느끼는 중이다.
게이트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런 게이트가 사라지면, 크루즈가 본대를 이끌고 인간계로 올 것이란 불안감.
저 대로 불안과 분노가 최대치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다.
난 오르문과 오리가미도 한 번씩 쳐다봤다.
흑염룡이 폭주하게 되면 강력한 몬스터가 튀어나오며 이성을 잃는다.
즉, 흑염룡이 자아를 가지며 활류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뜻.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정령이 흑염룡 하나만 있던가?
상황이 달라졌다. 오리가미, 오르문.
두 명의 정령이 추가로 있다.
본래 인간계에 정식 던전이 즐비했을 시절.
정령들은 던전을 만남의 광장으로 여겼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뜻은, 대정령인 흑염룡 말고도 활류 정도는 정령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용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정령의 주인이 되어야 정령을 볼 수 있는 특징처럼.
흑염룡이 폭주하여 몬스터를 강림시켰을 때.
이곳 51구역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며, 뉴스 속보에 다뤄지는 효과도 있겠지.
어차피 중앙 협회를 향해 반기를 들었으니, 이 정도 뒤통수는 쳐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은 이제 끝.
내가 즉흥적으로 세운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흑염룡이 나에게도 분노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즉, 난 상황을 방관하는 것처럼 보여야 흑염룡이 빨리 게이트로 변할 것이었다.
“히로시.”
“네, 형.”
“잠이나 자자. 피곤하다.”
“……예? 아까 저한테 했던 말은 뭐예요? 갑자기 잠이나 자자뇨.”
“피곤하잖아. 반란이나 다름이 없는 중대한 계획인데 최고의 컨디션으로 준비해야지. 지금처럼 피곤에 찌든 채로 하면 실패만 해.”
물론, 거짓말이지.
전부 다 흑염룡을 빨리 게이트로 변하게 만들기 위한 나의 노림수다.
난 이제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도 보였다.
침대에 털썩 눕고 두 다리를 쭉 뻗었다.
“히로시. 일단 자고 난 뒤에 최고의 컨디션에서 시작하자고.”
“하지만 형……. 일본 협회장은 형만 믿고 바로 비상연락망 돌리고 있다는데…….”
알아.
하지만 지금은 이게 방법이야.
히로시에게도 계획을 알릴 수 없으니, 히로시를 이용하는 중이다.
히로시가 조급해지면 덩달아 흑염룡도 조급해진다.
그 조급함은 나를 향한 분노로 바뀌게 되고 흑염룡이 게이트로 변하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 것.
[벌써 네 번째……. 윤도원! 뭐하는 거야! 당장 돌아가겠다며!]
이거 봐라.
약발이 벌써 오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로버트 윤이 두 번째 게이트에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네 번째지?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로버트 윤이 그만큼 강하단 걸까.
아니면 운 좋게 고만고만한 등급의 게이트가 걸린 것일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궁금했지만, 지금은 나도 조급해선 안 된다.
흑염룡이 게이트로 변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했다.
“나 잔다.”
난 그렇게 눈을 감아 버렸다.
정말로 자는 척하기 위해.
***
한국 양산부의 상황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윤도원이 농장처럼 만든 게이트들은 하나둘씩, 꽤 빠른 속도로 무너지는 중.
그런 게이트 밭 앞에 양산부원을 비롯해 게이트 경비를 담당하는 장길수는 밧줄로 포박된 채, 죄인처럼 주저앉은 상태다.
그러던 중.
네 번째 게이트가 사라지고, 이제 다섯 번째를 향할 때.
“거긴 절대 안 돼!!”
권다정이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다섯 번째 게이트가 바로 권다정에게 꼭 필요한, 던전산 흙이 가득한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윤도원이 권다정을 양산부로 합류시키면서 대가로 줬던 게이트다.
자신에게는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이트를 뺏기기 직전이다.
권다정이 벌떡 일어서며 로버트 윤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을 때.
팡!
“끅!”
공기가 경쾌하게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권다정의 몸은 그대로 날아갔다.
몇 미터를 난 뒤, 벽에 등을 부딪친 다음에야 바닥으로 쓰러졌다.
감찰부원 중 한 명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권다정을 저지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세요. 안 그러면 다칩니다.”
다섯 번째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로버트 윤이 남긴 한마디.
고요한 협박이다.
자신들은 언제든지 양산부원을 향해 해를 가할 수 있으니, 통제에 잘 따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로버트 윤은 기어이 다섯 번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 돼…….”
권다정이 꼭 지켜야만 했던 자신의 소유가 된 게이트.
그것이 온전한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은 몇 분 되지 않았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로버트 윤은 초월석을 회수하며 다섯 번째 게이트에서 나왔다.
쿠구궁.
그리고 몇 초 뒤, 게이트는 완전히 무너졌다.
“안 돼애애!!”
그렇게 권다정의 꿈도 무너진 순간이다.
로버트 윤은 냉철하게 회수한 초월석을 감찰부원에게 건넸다.
초월석을 건네받은 감찰부원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제법 큰 키트에다가 초월석을 넣었다.
초월석의 등급을 확인할 수 있는, 중앙 협회와 51구역이 협업하여 개발한 휴대용 키트다.
보통 초월석 등급 감별은 협회에 있는 전용 감별기에서 진행한다.
사무용 복합기처럼 큰 감별기를 이용해 등급을 확인하는 것이 타국의 방식이라면.
중앙 협회 소속 헌터들이 사용하는 도구의 수준은 익히 알려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수준이었다.
이 휴대용 키트는 오직 중앙 협회에서만 사용하는 중이다.
초월석 감별이 끝났다.
권다정이 가진 게이트에서 나온 초월석의 등급은 C급.
상당한 하급품이다.
“이번에도 꽝이군…….”
로버트 윤이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오는 목소리를 냈다.
현재까지 5개의 게이트를 정복했지만, 초월석은 모두 평균 C급.
여태 가장 높은 등급의 초월석은 B급이 전부였다.
“어쩐지…… 안에 있는 몬스터가 그다지 강하지 않더라니.”
초월석 등급이 높을수록, 던전에 있는 몬스터도 강하다.
로버트 윤이 이렇게 빠르게 초월석을 순차적으로 회수할 수 있었던 이유도.
몬스터의 힘이 너무 약해 로버트 윤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봐요, 로버트 윤.”
그때, 장길수가 한마디를 뱉었다.
“뭐죠?”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나를 협회장으로 앉히려고 하는 것 하며, 최현민과 강만식도 직접 처리해서 정말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여겼것만……. 어떻게 믿는 사람 등에 칼을 꽂을 수가 있지?”
힘으로 저들을 대항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무력하게 있는 자신에게도 화가 나던 중이었다.
로버트 윤은 그런 장길수를 한번 살피고는.
“나라고 좋아서 하는 일 아닙니다. 빨리 S급 초월석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남기며 여섯 번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심이다.
로버트 윤도 좋아서 하는 일 아니니까.
‘미스터 윤, 이대로 놔둘 겁니까? 한국으로 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요?’
그도 윤도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
시간이 꽤 흘렀을 때.
[윤도원…….]
흑염룡의 목소리가 완전히 변했다.
폭주 직전에 냈던, 그 목소리와 상당히 유사했다.
[벌써 16개째야……. 정말 제정신이야……?]
펄럭!
흑염룡의 날개가 펴졌다.
기다리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