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35화 (135/200)

§ 135화. 수상한 협회 (2)

“심각한 일이에요……?”

통화를 끊자마자 한숨을 푹 쉬니 덩달아 히로시가 불안하게 물었다.

“그런 것 같아.”

나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답했다.

로버트 윤이 내게 남긴 의미심장한 통화 내용을 공유했을 때.

[그건 안 되지…….]

흑염룡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남은 모든 게이트를 사용할 예정이란 것에 오는 불안감이다.

그 게이트가 없어지게 되면, 이제 인간계도 크루즈의 세상이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51구역에서 나가고, 세 정령을 이용해 여러 개의 게이트를 펼치는 미래를 상상하던 와중에 이런 전화를 받으니 허탈감과 분노도 느껴졌지만.

직접 크루즈와 전쟁을 겪은 시오스인 흑염룡은 오죽하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이런…… 결국,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히로시의 답은 조금 태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됐네요……?”

이런 일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건가?

염두에 뒀다는 건 무엇인가?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따른 대비가 세워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뭐야, 히로시 넌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예상은 어느 정도 했죠?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요. 형은 전부를 믿었어요?”

“…….”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는 답도 할 수 없었다.

분명 히로시가 말하는 전부란, 중앙 협회를 가리키는 것.

나도 전부를 믿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믿었다.

왜냐, 이미 한국에서 한국 협회장과 늘 마찰이 있었고 전쟁과 다름없는 신경전도 이어왔기에 나도 모르게 지쳤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와중에 중앙 협회가 도와줬으니, 중앙 협회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 협회와 한국 협회의 성향 차이가 이런 결과까지 낳는 건가.”

반면에 히로시의 경우엔 자국인 일본 협회와 아무 거리낌이 없이 지내고 서로 협조도 곧잘 하니, 중앙 협회를 의심할 여유가 있던 것이다.

나와는 명백히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이런 차이가 나오는 거라 믿었다.

“아무튼, 히로시.”

“네.”

“이런 일을 예상했다면 혹시……?”

대응 방안도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지 않냐는 질문에.

“당연히 있죠. 근데 저랑 협회장님한테는 되도록이면 그런 상황이 나오질 않길 바랐는데…….”

협회장?

히로시가 말하는 협회장은 분명 일본 협회장인데…….

일본 협회장까지 가담해서 같이 대응 방안을 마련했단 뜻이잖아?

“일본 협회장이랑 함께 고안한 거라고?”

“네. 협회장님이 먼저 제안했으니까요.”

“어쩌다가?”

“제가 중앙 협회 소속 연합부원이 되었다는 걸 알고 그랬어요. 게이트의 우선 소유권은 중앙 협회에 있을 거라면서.”

던전이 존재했던 시기만 하더라도 던전의 소유권 기준은 딱 하나였다.

해당 던전이 어느 나라에 속해 있으냐?

한국에 있는 던전은 한국 소유이며, 한국 협회에서 관리하는 아주 간단한 방식.

그러나 던전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고,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곤 예비 던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게이트.

게이트는 심지어 나와 히로시 같은 정령의 주인들이 만들어내는 것만이 존재했다.

국가 단위 소유에서 개인의 소유가 되었으니, 그런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소속 기관에게 그 소유권이 돌아가는 셈이다.

특히나 중앙 협회와 같은 거대한 권력 집단의 소속이니.

당연히 우리가 만든 게이트도 그들이 우선적으로 휘두를 수 있다.

결국에 게이트는 나와 히로시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중앙 협회가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고, 명령으로 게이트를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 협회장은 이미 읽었단 뜻이다.

“그럼…… 일본 협회장이 그 제안을 한 것도…….”

“네.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서죠.”

일본 협회의 경우엔 당시로 봤을 땐 정말 히로시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던 상태.

확인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히로시의 정령 오리가미는 이미 있는 게이트의 조각을 떼어 조립한 다음, 새로운 게이트를 하나 만드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한국에 게이트가 펼쳐진 것을 보고 내가 있는 한국으로 보냈다.

그제야 비로소 히로시의 능력이 검증되었고 일본 협회는 히로시가 애써 만든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 저들만의 계획을 세웠단 뜻이다.

“히로시.”

“네, 형.”

“너와 일본 협회장이 세운 계획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지?”

내 질문의 속뜻은.

저들이 세운 계획 속에 나도 동행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웠냐는 질문이다.

즉, 바꿔 말하면 나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함께 하는 동료라고 여기냐는 것이다.

“당연하죠. 형이 없으면 어차피 저도 게이트 못 만들잖아요?”

“일본 협회장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 거고?”

“네. 저한테 물어본 적도 있어요.”

“뭐라고?”

“형을 믿냐고요.”

“그래서 네가 한 답은?”

“믿는다고 했죠. 저와 같은 정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내가 히로시를 믿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히로시가 어떤 녀석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령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만이 오직 기준이 되니까.

“좋아. 그 계획이 정확히 뭔지 말해줄래?”

일단 그들의 계획을 듣고 싶었다.

일본 협회는 무슨 근거로 중앙 협회를 향해 반기를 드는 생각을 했을까?

정상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일본 협회장은 분명히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발상이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모르는 무언가.

따지고 보면 나는 헌터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SF 길드로 일하고 있었기에 헌터계의 상식을 일반인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수준이지, 해박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 협회장의 경우엔 헌터계에서도 정치권에 있는 인물.

그런 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니,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

혹은 내가 생각했더라도 실현할 수는 없지만, 그는 실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단 뜻이다.

“간단해요.”

“간단하다?”

“게이트 20개 이상만 만들어 놓으라고 했어요. 그럼 준비할 수 있다고요.”

“그게 끝이야?”

“네.”

이건 조금 실망스럽다.

게이트 20개 이상만 만들어라.

그럼 준비할 수 있다.

이 뜻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

머릿속에만 있는 계획이며, 본격적으로 실행하진 않았단 뜻이다.

그 실행을 위해선 20개의 게이트라는 준비물이 필요하단 것은 잘 알겠지만…….

문제는 히로시도 정확한 계획을 모른다니 조금은 답답했다.

이렇게 되면 전적으로 일본 협회장 혼자서 세운 계획이라 봐야 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어떻게 할지,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

“게이트 20개는 왜 필요한 거야……? 그것도 몰라?”

“그건 알죠. 게이트 20개 이상이 있으면, 따로 뜻이 맞는 협회끼리 뭉칠 수 있대요.”

“뜻이 맞는 협회라…….”

그렇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생각이 핑 돌았다.

게이트 20개 이상.

이것이 결코 의미가 없는 숫자가 아니다.

즉, 게이트 하나당 동조하는 협회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미국, 한국, 일본은 이미 초월석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봐도 된다.

미국의 경우엔 나와 히로시가 중앙 협회 소속이 되어 있으니, 초월석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열렸고.

일본은 히로시가 있다.

한국은…….

더 말할 게 있나?

내가 있는데.

한국이 가장 많은 초월석을 가진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아직은 눈치 볼 곳이 있고 어지러워진 협회 내부도 정리가 되지 않았기에, 본격적으로 대표적인 윤택한 삶을 제공하는 자원 뻥튀기 기술에 사용할 수 없을 뿐이지.

이것만 정리되면 곧장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지구에 나라가 한국, 미국, 일본.

이 세 나라만 있나?

240개국 이상이 있는데, 그들은 초월석을 구경도 못하는 상태로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꼴이다.

그런 그들을.

일본 협회장이 나서서 끌어들이고, 하나의 무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당연히 그 대가는 초월석.

“그래, 로버트 윤이 한 말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로버트 윤은 중앙 협회가 나를 향해 강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 근거가 어디 있을까?

다른 것도 아닌 내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형태이니 내가 가진 힘이 가장 강하다.

중앙 협회가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고 헌터계의 질서를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일?

그것 바꿔 말하면 던전이 인류에 존재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런 내가 중앙 협회에 등을 돌리고, 자발적인 단체를 조직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초월석을 보수로 내건 거래에, 과연 동조하지 않을 협회가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일본 협회장이 말한 20개 이상의 게이트.

그것을 또 달리 해석하면 최소 20개국의 협회를 합류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뒤.

할 일은 정해졌다.

그래, 중앙 협회가 말을 바꿔 버렸다면.

나도 중앙 협회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던 중, 흑염룡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래? 흑염룡.”

[……누가 게이트에 들어갔어.]

한국에선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이다.

장길수가 지키고 있긴 하지만, 그의 힘으로 로버트 윤을 막는 건 역부족.

그걸 알고 있음에도 장길수에게 초월석 경비를 부탁한 건 그저 내 심적 안정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로버트 윤이 본격적으로 행동해 버렸으니, 우리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히로시.”

“네.”

“지금 당장. 일본 협회장과 통화 연결돼?”

“물론이죠.”

“얼른 해.”

“……그런데 뭐라고 말해요? 형이 직접 통화하게요?”

그건 불가능하다.

일본 협회장에게는 정령이 없어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까.

게다가 시간도 없는 상태니, 빠르게 통보만 하고 우리 나름대로 행동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니, 일본 협회장에게 이 말만 해.”

“뭐라고……?”

“한국에 남은 46개의 게이트. 동조하는 협회에게 하나씩 보수로 내걸 테니까. 동조할 협회 즉각 모집하라고.”

“……46개 전부요?!”

[야! 윤도원! 애써 만든 걸 한 번에 써 버리면 중앙 협회에서 멋대로 사용하는 거랑 무슨 차이인데!]

흑염룡이 격분했지만 난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멍청아. 한 번에 안 주면 되잖아. 오르문이 있는데.”

[……전 왜.]

오르문은 하루에 한 번.

최대 B급 게이트를 복제한다. 그런 오르문을 이용하면, 46일에 걸쳐 동조하는 협회에 나눠주는 일도 지킬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시간이 대수냐?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히로시! 얼른!”

“네, 네……!”

히로시는 그렇게 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통화를 시작했다.

“협회장님! 히로시입니다!”

협회장과의 간단한 인사 뒤에.

현재 중앙 협회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알린 후, 본론을 꺼냈다.

“한국의 게이트 능력자가 46개 게이트 전부 줄 테니 동조할 수 있는 협회 최대한으로 끌어모으라던데요!”

나와 히로시, 일본 협회를 주축으로.

새로운 중앙 협회가 탄생하는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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