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34화 (134/200)

§ 134화. 수상한 협회 (1)

숙소에서 나는 히로시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히로시. 내가 그 핵에 들어갔을 때, 외부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었어?”

“아니요. 연구진들 컴퓨터 모니터 통해서 볼 수 있던데요?”

안에서는 온통 칠흑의 어둠이 깔려 있기에,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나.

밖은 나를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단 뜻이다.

“훔쳐보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별로 좋진 않네. 실험 결과는? 혹시 알아?”

“연구진들이 말을 아끼더라고요.”

이미 난 통역사가 없어도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령이 있으면 그게 가능하다고 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연구진들도 히로시가 보는 앞에서 말을 아낀 것 같았다.

“그래도 분위기로는 유추할 수 있죠. 뭐가 잘 안됐나 봐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데.”

약간의 노파심이 들었지만, 이 정도는 안심이다.

“그럼 됐어.”

프로젝트 네이션 건은 이렇게 끝.

앞으로 며칠만 더 시간을 질질 끈 뒤, 최현민의 청문회에 참석하고.

그 뒤엔 한국으로 귀국하면 된다.

그런 뒤엔……?

이제 본격적으로 세 정령을 이용해 게이트를 늘리고 정말 게이트 단지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세 정령을 이용하고 시간만 투자한다면 몇백 개 이상의 게이트를 수용하는 것도 허황된 얘기는 아니다.

그렇게 많은 게이트가 있다면 정식 던전이 완전히 정복된 세상 이전으로 돌릴 수 있겠지.

필요한 만큼은 사용하고, 유지할 게이트는 유지하고.

어쩌면 크루즈를 완전 봉인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게이트가 많이 있다는 것은 크루즈가 인간계로 넘어오지 못할 결계가 쳐진단 뜻.

나와 흑염룡이 15년 만에 재회했을 때, 크루즈와의 전쟁도 각오했지만.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 크루즈와의 전쟁은 생략해도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 황홀한 미래를 그리며 상상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이번에도 로버트 윤이다.

“……하, 뭐지. 이 양반 전화는 늘 불안한데.”

하필이면 행복한 상상 중에 맞이한 전화라니.

불길함이 배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로버트 윤이에요?”

이젠 히로시도 곧장 알아차렸다.

“그러네.”

“또 무슨 소릴 하려고…….”

“그래도 무시할 수 있는 전화는 아니니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있지 않던가?

솔직히 로버트 윤을 믿진 않는다.

내가 오르문의 주인이 되었을 때, 대뜸 자신이 오르문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달라는 것 하며.

전적으로 중앙 협회의 충실한 개의 이미지를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줘왔다.

그렇다 보니 나를 위한다는 말에서 진심을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배척할 수 있는 인물이냐?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중앙 협회가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떻게 움직일 계획인지 등등.

자세하거나 큰 틀에 대한 정보는 전부 로버트 윤이 쥐고 있다.

결정적으로 나와 히로시는 제약 없이 서로 붙어 있기 위해 중앙 협회 소속 연합부원이란 게 되지 않았던가?

로버트 윤은 연합부장이다.

그렇기에 미워도 마냥 배척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전화가 온다는 것은.

중앙 협회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고, 그것을 내게 알려주는 게 아닌 공지하기 위함이란 뜻도 된다.

난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스터 윤…….

‘뭐야?’

목소리가 이상하다.

비장하면서도 착잡한 감정이 섞인 미묘한 목소리.

마치 무언가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뭡니까? 목소리가 왜 그래요?”

어차피 심리전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대놓고 물었다.

-후우…….

역시,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날 모양이다.

로버트 윤은 깊게 한숨을 쉰 뒤.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한 뒤에 어렵게 입을 뗐다.

-결심은 했지만, 정녕 이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습니다.

“뭔데 그렇게 비장하죠?”

-오늘 중앙 협회에서 새로운 지시가 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중앙 협회라고 말하는 거면……?”

-매튜 레이먼 협회장밖에 더 있겠습니까?

중앙 협회의 최고 권력자가 직접 내리는 오더인 것이다.

“그래서요? 새로운 지시가 뭐였죠?”

-오늘 프로젝트 네이션 가동 결과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이곳 연구진들이 알려주진 않았지만, 분위기로 유추할 수 있죠.”

-……어떻게 유추하셨나요.

“실패요. 중앙 협회와 51구역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던데?”

-정확하시군요.

나는 모르던 실험 결과가 이미 멀리 떨어진 로버트 윤에게는 공유가 된 것이 확실시되는 순간이다.

“새로운 지시부터 말씀하시죠?”

덩달아 나는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중앙 협회와 51구역에서는 로버트 윤 당신의 능력이 핵에 저장되지 않은 이유를 초월석의 등급이 문제라고 판단 중입니다.

완전히 헛다리를 잘못 짚었구나.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은 순전히 내가 아닌 정령이 행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결과지만, 이들은 그것을 간과하며 오직 초월석의 등급을 원인으로 분석 중이다.

그러면서도 안도감이 느껴졌다.

내가 가진 세 개의 능력.

은신, 염력, 만물.

혹시 프로젝트 네이션을 진행하다가 엉뚱하게 이 능력들이 추출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요?”

-그게…….

이제 본질을 파고들자.

그렇게 냉철했던 로버트 윤이 다시금 난처한 반응을 보였다.

화상 통화를 하는 느낌이다.

방금 “그게…….”라고 답할 때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일 것만 같았다.

-중앙 협회에서 한국에 있는 게이트를 전부 소비하라는 명령입니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였다.

중앙 협회에서 나선다?

이런 일은 이미 겪은 적이 있었다.

강만식이 갑자기 새롭게 합류한 권다정의 능력을 믿고 쳐들어왔을 때.

그러나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강만식이 그런 일을 벌였을 땐 배후가 한국 협회장인 최현민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힘으로 최현민 정도야 무시하고, 깔끔하게 묵살할 수 있었지만…….

중앙 협회는 얘기가 다르다.

가진 권력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최현민의 비리를 파악하고 협회장직 보직 해제까지 할 수 있는 권력을 보인 그들이.

내가 만든 게이트를 작정하고 노린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막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들의 세계에는 중앙 협회를 억누를 수 있는 기관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협회의 질서와 법을 다스리고, 세계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자리잡힌 중앙 협회.

그런 그들이 나와 적대적인 관계로 틀어지는 순간이었다.

“잠깐……. 그런데 지금 그 사실을 제게 알려주는 이유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

왜 그토록 로버트 윤이 내내 망설이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였는지.

그는 지금 중앙 협회의 명령을 거스르려는 것으로 보였다.

-미스터 윤.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망설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상황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진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진 않다라.

이 뜻은 무엇일까?

한국에 있는 모든 게이트를 결국, 로버트 윤이 직접 나서서 정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통보로 들렸다.

“지, 지금……. 협박하려고 전화한 겁니까?”

예기치도 못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말이 더듬어졌다.

-아니요. 협박이 아니라 통보라고 해야겠지요. 중앙 협회는 한국에 남은 46개의 게이트 중, S급 초월석이 최소 1개는 있다고 굳게 믿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초월석을 이용해 당신이 가진 게이트 생성 능력을 핵에 저장할 수만 있다면.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여기고 있죠.

아무것도 모르는 중앙 협회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들이 가진 기술력으로는 게이트를 생성하는 능력은 추출할 수 없다.

정령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기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기계로 조종할 수 없단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령의 능력이기에 쓸데없는 일이라고 알릴 수도 없는 노릇.

최대한 막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 저와 전쟁이라도 하자, 이겁니까?”

적어도 로버트 윤은 행동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가 왜 이 사실을 당신에게 알렸는지, 그 생각은 안 했습니까?

로버트 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비장함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연신 느껴졌던 망설임은 사라진 상태다.

“무슨 말이죠?”

-전 중앙 협회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거스를 수 있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곳으로 향할 때, 제가 남긴 협박. 아직도 기억합니다. 기한을 넘어서까지 붙잡으려 해도 절대 붙잡지 못할 거라고요.

기억난다.

이곳에 오기 직전, 나를 51구역에 가둘 생각을 가졌어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것은 정령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고유 능력인.

게이트가 있는 곳을 넘나드는 활류란 능력을 이용해 51구역에서 한걸음에 한국으로 향하는 방법이 있었으니까.

-절 막으세요. 그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버트 윤의 본심이 나왔다.

자신은 오랜 기간 중앙 협회에서 일해 온 사람이기에, 중앙 협회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에 남은 46개의 게이트.

그것을 정복하는 일은 결국, 진행될 것이다.

단, 내가 직접 가서 막으라는 권유다.

“그래요, 그렇게 했다고 칩시다. 그 뒤는 어쩌잔 겁니까?”

백번 양보해서, 로버트 윤의 제안대로 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럼 나는?

중앙 협회에 반기를 든 최초의 문제 헌터가 된다.

이는 나아가 국제 수배범 헌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그런 수배범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감히 중앙 협회를 거스르고, 반기를 드는 헌터?

그냥 차라리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게 훨씬 안락한 삶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 역사를 새로 쓰자는 것은 너무도 허황된 제안이다.

아니,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나를 죽이려는 건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그러자 로버트 윤은 나를 타이르는 듯이 말했다.

차분하고도 고요한 목소리로.

-미스터 윤, 당신은 이미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이지 않습니까?

상식에서 벗어났다라.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별로 좋은 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데요.”

단어가 품은 분위기 자체가 내게는 부정적으로 들렸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런 짓을 해도 중앙 협회는 당신을 향해 강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거란 뜻입니다.

“왜죠?”

-왜긴요. 당신이 가진 능력 때문이지. 히로시 헌터도 물론이고요.

그러니까 그 말인즉슨…….

내가 독단적으로 로버트 윤을 막아서도.

국제 수배범이 되거나 하는 짓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말인가?

아무래도 로버트 윤은 무슨 생각이 있는 듯했다.

-지금으로선 전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서 저를 막으세요.

로버트 윤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본격적으로 할 생각인 듯했다.

이렇게 끊어 버리면…… 어쩌라고……?

“하아.”

착잡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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