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난항 (4)
패트릭 연구팀장에 의해 도착한 프로젝트 네이션 핵이 있는 곳.
우리가 도착하자 이미 안에는 소수의 연구진들이 있었다.
무언가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을 보니,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긴, 오는 길부터가 범상치 않았지.
가뜩이나 이 지하 연구시설의 경우엔 구조가 전부 비슷하게 생겨서 처음 오는 사람이면 무조건적으로 길을 잃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보통 연구를 진행하는 방이면 하다못해 ‘연구실 00호’와 같은 팻말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엔 그런 게 없다.
팻말도 없고 구조도 다 똑같이 생겼으니, 정말 이곳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외울 수 없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는 길이 상당히 복잡하네.”
“보안 수칙 중 하나니까요.”
중얼거리듯이 말했을 때, 패트릭이 답했다.
이제 패트릭은 거대한 실험관 앞에 있는 컴퓨터로 다가갔다.
빠른 손놀림으로 컴퓨터 명령어를 몇 가지 입력하자,
실험관에는 조명이 들어오며 우리에게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오르문이 갇혔던 실험관과 모양만 같을 뿐, 재질 같은 건 완전히 다르다.
오르문이 갇힌 실험관의 경우엔 투명했기에 우리가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지금 마주하는 실험관은 철통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둔탁한 회색빛의 거대한 실험관만 있을 뿐.
안은 절대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였다.
“이게…….”
“프로젝트 네이션의 코어입니다.”
천장까지 뻗은 실험관.
그 크기만 어림잡아도 5m 정도는 되어 보였다.
패트릭은 실험관 옆에 있는 철제 의자를 통해 위로 올라갔고, 뚜껑 부분에 초월석을 넣었다.
지상에 있는 내 눈에는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아무래도 뚜껑 부분에 초월석을 넣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런 뒤에 패트릭은 다시 내려왔고, 컴퓨터 앞에 섰다.
무언가 명령어를 내린 뒤.
푸슈슈슈…….
실험관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패트릭의 안내에 맞춰, 소수의 연구진들은 먼저 실험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보니 실험관이라고 하기보단 SF 영화에 나오는 첨단 과학 캡슐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안에는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뇌파 탐지선과 같은 것들이 연결되었다.
연구진들은 그 선들을 정리하던 중이다.
정리가 다 끝나자, 내게 얼른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그렇게 캡슐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연구진들은 선에 달린 패드를 내 몸 이곳저곳에 붙였다.
누운 채가 아닌 선 채다.
애초에 이 캡슐에는 누울 곳이 없고, 전부 선 채로 진행되는 듯이 보였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내가 하나의 실험체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이 선의 용도는 뭐지?”
연구진들은 그 어떠한 설명도 없이 선을 연결한 뒤.
캡슐에서 나갔다.
푸슈슈슛…….
그렇게 다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며 캡슐의 문이 닫혔다.
“음…….”
[왜? 뭐 이상해?]
“기분이 이상하지.”
[나도 그렇게 좋진 않아.]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갇혀 있고.
몸엔 다양한 선이 연결되어 있고.
프로젝트 네이션이란 거.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그러던 중에.
우우우우웅.
기계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 과정에서도 어떠한 안내음은 없었다.
동시에 난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욱……!”
[왜 그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때문에 멀미가 났다.
방심하면 정말 구토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목구멍에 힘을 잔뜩 주면서 일부러 침을 연속적으로 삼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뭔가가 역류할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불쾌한 느낌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체감상으로 10분 가까이 되었을 때.
푸슈슈슈슛…….
다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캡슐의 문이 열렸다.
캡슐이 열리면서, 외부의 공기가 캡슐 안에 돌자 역한 멀미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외부의 상쾌한 공기도 아니고. 그래봤자 지하의 탁한 공기인데도.
그 공기를 마신 순간 적어도 기분은 상쾌하게 변한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캡슐 내부의 공기가 상당히 불쾌하면서 탁했단 뜻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연구진들이 다시 들어와 내 몸에 붙인 감지선들을 떼 주었다.
그리고 밖을 나왔을 땐, 패트릭은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도리에 내게는 청신호가 아닐까?
저들의 목표는 오직 나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
그것을 추출하고, 핵에 저장하기 위해 초월석까지 구해왔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게 아닐까?
패트릭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제대로 된 거예요?”
“…….”
그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영어만 가득한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봐요.”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Xuck!!”
한껏 예민해진 그는 욕설을 뱉으며 내 손을 뿌리쳤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모른다고 해도, 영어 욕 정도는 안다.
고작 어깨에 손 올린 것 하나 가지고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니.
역시 내 예상대로 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이미 정해진 결과다.
처음 프로젝트 네이션이란 것을 들었을 때도 흑염룡은 절대 능력을 핵에 저장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왜냐, 근본적으로 그 능력을 가진 것은.
헌터 개인이 아닌, 정령이었으니까.
정령을 대상으로 하면 모를까.
정령의 주인인 내게 아무리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한다고 해도, 어차피 원하는 결과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난 이제 윌리엄에게 물었다.
“제대로 안 됐나 보군요?”
“…….”
윌리엄 역시 말을 아꼈다.
몰라서 답하지 않은 건 아닐 테고.
그저 결과를 내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뭐 어쩌란 거야.”
“……돌아가서 쉬세요.”
내가 궁시렁거리자 그제야 패트릭은 마지못해 답했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없었다.
“어떻게 됐는지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결과까지 알려줄 의무는 없는 걸로 압니다.”
“그럴 리가. 애초에 난 프로젝트 네이션에 협조하기로 약속했었는데, 그 결과를 모르면 협조도 의미가 없지.”
“무슨 뜻이죠?”
“당신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뜻이잖아. 프로젝트 네이션이 제대로 됐는데도 그 사실을 숨길 수도 있으니까. 아, 아니구나?”
한껏 그들을 의심하던 중에.
난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만약 저들이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 네이션이 성공적으로 가동이 되었을 시에. 나에게 숨길 이유가 없단 것.
중앙 협회와 이곳 연구진이 원하는 것은 게이트를 자발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게 갈구하던 능력을 얻었는데 굳이 내게 숨길 이유가 있을까?
얼른 나를 본국으로 보내 버리고 그 능력을 마음껏 쓰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할 것.
즉, 숨길 이유 자체가 없단 뜻이다.
이미 저장에 성공했는데도 내게 숨기고 프로젝트 네이션을 계속 진행할 의미 또한 없는 거다.
게다가 결정적인 이유.
프로젝트 네이션을 한 번 할 때마다 초월석 하나가 소비된다.
지금은 초월석을 구하는 게 내 허락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
이미 내가 프로젝트 네이션 핵 안에 들어가면서 초월석은 하나가 소비되었고.
결과는 저들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뜻은, 새로운 초월석을 또 구해야 하고. 게이트를 생성하는 능력을 핵에 저장할 때까지 계속 반복하겠단 뜻이었다.
“제대로 안 됐구나? 그렇죠?”
“…….”
일부러 신경을 긁듯이 물었다.
이렇게 하면 홧김에라도 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지만, 패트릭은 입을 꾹 다물었다.
“돌아가세요.”
대신 이 말만 나지막이 남길 뿐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라고? 미로처럼 보여서 우리가 있던 숙소 길도 못 찾겠던데.”
“제가 안내하죠.”
가만히 듣고 있던 윌리엄이 이때다 싶었는지, 자신이 나섰다.
마치 연구진들을 도울 생각으로 귀찮은 나를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가시죠.”
그렇게 우리는 거의 쫓기듯이, 숙소로 돌아갔다.
***
로버트 윤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발신자는 중앙 협회장 매튜.
매튜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그는 표정이 굳어졌다.
“또…… 무슨 일이길래…….”
분명히 좋은 일 때문에 전화한 것은 아니다.
51구역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자신에게 전화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텐데?”
한국에서 구한 초월석은 이미 51구역으로 보냈다.
게다가 지금 시간이라면 51구역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일 것.
아마도 결과가 좋지 않은 듯했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로버트 윤은 통화를 받았다.
“예, 협회장님.”
-한국에 있는 모든 게이트. 정복해.
“……잠시만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한국에 있는 게이트. 총개수가 몇 개였지?
하지만 매튜 협회장은 로버트 윤의 반박은 안중에도 없었다.
“……46개입니다.”
히로시가 추가한 게이트까지 포함하면 47개.
그중 하나는 이미 정복했기에 46개가 남았다.
-그중에 S급 초월석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
“협회장님…… 혹시 프로젝트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더군.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기존에 프로젝트 네이션의 경우에도 S급 초월석이 아닐 경우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로버트 윤이 보낸 초월석은 B급.
역시나,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을 추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협회장님……! 게이트를 전부 없애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크루즈라는.
인류가 파악하지 못한, 게이트 속에 있는 몬스터들보다 강한 존재가 강림하게 된다.
중앙 협회도 크루즈의 강림을 막기 위해 윤도원에게 협조하기로 했던 게 아니던가?
그 사실을 강조하는 답이었다.
-자넨 생각이 왜 이렇게 짧지?
“……무슨 말씀이시죠?”
-프로젝트 네이션만 제대로 되면. 그깟 게이트 몇십 개, 아니 몇천 개까지 늘릴 수 있어. 대의를 위해서는 사소한의 희생은 늘 따라오게 된다고.
“그게 지금…… 한국에 남은 46개의 게이트를 전부 사용해서라도 이루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 크루즈라는 거. 게이트만 많이 펼쳐 놓으면 넘어올 수 없도록 할 수 있다며? 프로젝트 네이션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돼. 그것이 인류를 위한 일 아닌가?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게이트는…… 윤도원과 히로시 개인 소유입니다. 그들이 만든 게이트이기에 아무리 중앙 협회라고 해도 아무런 명분 없이는…….”
-명분이 왜 없어? 그들은 어차피 중앙 협회 소속 연합부원 아닌가? 부원이 기관을 위해 일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시간 없어. 당장 시작해.
매튜 협회장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는 매몰차게 끊어 버렸다.
“여보세요……?! 협회장님! 협회장님!”
로버트 윤은 다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매튜 협회장 측에서 받지도 않은 채로 통화를 거절해 버렸다.
“이렇게 말이 바뀌면…… 우리가 한국의 최현민과 다를 게 뭐란 말입니까……?”
정말 처음으로. 중앙 협회의 두 얼굴을 보게 된 로버트 윤이었다.
그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중앙 협회장의 명령대로 하느냐.
아니면 윤도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느냐.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