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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32화 (132/200)

§ 132화. 난항 (3)

느닷없이 정령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달라니.

[무슨 소리래? 왜 갑자기 주인이 되고 싶은 거냐고.]

이렇게 느끼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다.

옆에서 같이 통화를 듣고 있던 흑염룡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절대로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부정적이며 한없이 의심하는 반응이다.

사실, 이게 당연하다.

내가 51구역에 있던 정령 오르문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로버트 윤에게 전화가 왔고, 자신이 주인이 되도록 도와줄 수 없냐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결국엔 딱 하나를 뜻할 거다.

이곳의 연구진이 자신들 소유라 주장한 정령을 되찾겠다는 의미겠지.

“이유는요?”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나, 무슨 핑계를 댈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대놓고 물었다.

-이유라…… 솔직히 말하죠.

솔직히?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앙 협회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게 두 가지를 지시했죠.

“두 가지가 뭔데요.”

-첫 번째는……. 프로젝트 네이션을 얼른 진행하라는 것.

이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니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정령을 되찾으라고 하더군요.

역시나. 내가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의문이 먼저 들었다.

왜 로버트 윤은 숨겨야 할 사실을 내게 흔쾌히 알려주는 느낌일까?

나한테 알려줘서 결코 좋을 게 없을 텐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런 거대한 사실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알려주는 것인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그걸 제게 말하는 이유는요?”

-이번 질문에는 답변하기보다는 역으로 제가 묻고 싶은데요.

“물어보시죠.”

-미스터 윤,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죠?

갑자기 분위기가 입사 면접도 아니고…….

아니면 귀화 심사라도 하는 건지. 로버트 윤의 질문은 그만큼 뜬금없게 느껴졌다.

“질문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전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처음부터 그걸 말하고 싶어서 전화한 건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요.”

-처음부터 이걸 묻기 위해 질문한 겁니다.

이 정도로 하면 진심인 것 같으나, 여전히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기에 답하기가 껄끄러웠다.

어쨌든, 로버트 윤은 중앙 협회에 오래 몸을 담근 사람이고.

엄연히 따지면 나와 국적도 다른 남남이다.

히로시의 경우엔 나와 똑같이 정령을 가지고 있으니 가치관, 목적이 일치하는 사람이지만.

로버트 윤에겐 그런 게 없으니까.

그는 중앙 협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오직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아니다.

“뭘 어떻게 생각해요. 그냥 중앙 협회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그 뜻은…… 당신이 제게 전에 말했던, 신뢰가 없는 관계라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네.”

나도 숨길 건 없다고 판단하고.

로버트 윤이 서운하게 느낄 정도로 답은 곧장 튀어나왔다.

-히로시는요?

“히로시는 다르죠.”

나와 로버트 윤의 통화 중에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히로시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는 눈초리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나는 왜?”라고 묻는 표정.

-저와 히로시의 차이는 뭘까요. 보니까 히로시와는 상당히 신뢰가 두터워 보이는데.

“알면서 왜 묻죠? 정령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는 거죠.”

-그래서 저도 정령을 가지게 되면. 당신과의 신뢰가 생긴다는 생각으로 부탁드린 건데요.

“그건 아니죠.”

이제 보니 말장난을 하려는 것 같다.

나와 신뢰를 쌓기 위해 정령을 가지려 한다라…….

내가 저 말에 믿음이 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히로시의 경우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령의 주인이 됐고, 주인이 된 다음에 나와 만나게 됐으니.

우린 서로 동료가 생겼다고 여겼다.

그러나 로버트 윤의 경우엔 완전히 반대다.

나와 알고 있다가 정령이 어떤 것이고, 정령을 가지면 어떤 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 등등.

자세하진 않아도 포괄적으로나마 정령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주인이 되겠다고 하니, 그 속내가 검게 보일 뿐이다.

난 이러한 이유들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지금 제가 주인이 되려는 건 결국엔 중앙 협회를 위해 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거군요.

다행히 머리가 나쁘거나 뻔뻔한 사람은 아니라서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쉽게 이해했다.

“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신뢰가 생긴 뒤에. 주인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실 겁니까?

“그거야 당연하죠. 저를 도와주는 일은 정령을 도와주는 것과도 같으니까.”

-그럼, 그렇게 약속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로버트 윤에겐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던 걸까?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제 이름이 나왔어요?”

통화가 끝나고,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이유가 궁금했는지, 히로시가 즉각 물었다.

“별 거 아냐. 그냥 난 로버트 윤 별로 못 믿겠다고 하니까 히로시 너는 믿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했지.”

“뭐지……. 유치하게 편 가르기라도 하려고 했던 건가.”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도통 알 수가 없네. 또 특별한 말 없어요?”

“나한테 신뢰를 얻은 뒤에는 정령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냐던데.”

“음? 그러면…… 전화를 한 이유가 혹시?”

히로시는 내 옆에 떠 있는 오르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뻔하지. 아까 여기 연구진들이 원래 오르문은 자신들 소유라고 억지 부렸잖아. 그러니까 오르문을 되찾으려고 하는 거지. 중앙 협회가 로버트 윤 시켜서.”

“왜 하필 로버트 윤이지? 한국에 있는 사람인데.”

히로시의 생각으로는 그런 일을 시키려면 51구역과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시키지.

굳이 멀리 떨어진 로버트 윤에게 지시할 이유가 있냐는 의문이다.

“뭐긴 뭐겠어. 로버트 윤은 우리 부장이잖아. 직속상관 통해서 하고 싶었나 보지.”

“그런가…….”

아무래도 중앙 협회는 직속상관이 말하면 통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럼, 절 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은…… 아니시죠?]

불안한 오르문이 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정령을 되찾으려고 하는 건 순전히 게이트가 목적이잖아. 너를 되찾으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모양이야.”

저들은 오르문이 어떤 능력을 가진지도 모른다.

정령마다 게이트를 만드는 방식은 서로 다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식의 게이트를 만드는 건 오직 흑염룡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였던가?

51구역이다. 이미 일전에 오르문이 폭주하며 게이트를 만든 적이 있던 그곳.

따라서 51구역 연구진은 정령마다 게이트를 만드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럼 됐어요. 휴, 다행이네.]

오르문은 한숨을 뱉으며 안도감을 찾았다.

“그런데 말야, 로버트 윤이 나를 도와주면 주인이 되도록 해주겠냐는 질문에 그러겠다고 했거든?”

[네……? 왜요?]

“나를 도와주는 건 정령을 도와주는 일과 같으니까. 애초에 내가 인간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건 전부 게이트 때문인 거잖아?”

한국의 최현민, 강만식처럼 만들어진 게이트를 노리거나.

혹은 51구역의 연구진처럼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정령 자체를 노리거나.

어느 쪽이건 내가 겪은 인간들과의 트러블은 전부 게이트 관련이다.

로버트 윤도 그걸 모를 리가 없는 사람.

따라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말은, 내가 그런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구해주겠단 말과 똑같았다.

“게다가 로버트 윤은 중앙 협회에 오래 근무한 직원. 그런 중앙 협회를 등지고 우리를 도와준다면……. 계속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기야 한데……. 연기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럴 가능성이 있다.

연기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뭐, 어떻게 도와주는지 보면 연기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은 일단 버리자.

어차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적어도 이 문제는 일어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르문.”

[네.]

“만약 네가 로버트 윤을 주인으로 맞이하라고 말해야 하는 날이 왔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명령하진 않을 거야. 로버트 윤을 주인으로 받들라고.”

[그럼…….]

“제안만 할 거야. 선택은 순전히 네 몫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정말 감동이라도 받은 듯이, 오르문의 목소리는 감정에 복받친 것이 느껴졌다.

“일단은 쉬자.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평화로운 휴식일 거 아냐?”

오르문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나도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고 쉴 생각이다.

오르문은 몇 년이나 그 비좁은 실험관에 갇혔고, 갖은 실험을 당했다.

그런 그가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식이니.

편하게 쉬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오르문은 이제 흑염룡을 쳐다봤다.

[린느 님.]

[왜?]

[주인 정말 잘 고르신 거 같아요! 이렇게 따듯하고 마음이 넓으신 분이라니!]

오르문도 내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들었고, 큰 감동을 느낀 모양이다.

흑염룡에게 내 칭찬을 아낌없이 하던 중.

[아니야. 네가 아직 얘를 잘 몰라서 그래. 극악무도한 놈이야.]

[……예?]

“야, 내가 언제 극악무도했어?”

[난 아직도 생각나. 날 가둬놓고……. 그렇게 괴롭혔던 그 날…….]

“도대체 언제?”

내가 때리기를 했어, 뭘 했어?

누가 보면 정말로 가둬놓고 괴롭혔을 거라고 느껴질 정도로 연기가 실감이 났다.

[이지은의 건물 3층에서…… 구석에 몰아놓고…… 흐윽……! 흑!]

그러더니 갑자기 흑염룡은 눈물을 훔치며, 몸을 잔뜩 움츠러들었다.

아니, 잠깐만…….

네가 진짜 그런 식으로 실감 나는 연기를 하면 내가 뭐가 되는데?

[세상에……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때리기라도 한 거예요?!]

역시나…… 오리가미가 오해하곤 펄쩍 뛰었다.

지금 흑염룡이 말하는 이지은의 건물 3층이란…….

내가 살던 작은 오피스텔을 버리고, 이지은의 건물에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오글거리는 영상이나 글을 보여줬던.

그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

오르문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야…… 흑염룡……. 그거 게이트 만들려고 한 거였잖아. 내가 언제 때렸어.”

[난 때렸다고 말한 적 없는데? 뜨끔했나 봐?]

“……입 닫고 있어.”

겉으로는 짜증이 가득 난 것처럼 답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진 않다.

흑염룡이 이런 장난을 치는 것도.

지금 오르문을 되찾았기에 마음이 그만큼 편해져서가 아닐까?

그런 흑염룡을 이해하며, 우린 본격적으로.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에 들어갔다.

***

이튿날 늦은 밤이 되었을 때였다.

“미스터 윤?”

연구팀장 패트릭이 통역사 윌리엄을 대동한 채로 우리의 숙소를 찾았다.

“뭡니까?”

내가 불만스럽게 답하자.

그는 손에 들린 무언가를 내게 보여줬다.

“저건…….”

초월석이다.

“약속한 것을, 바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로버트 윤이 말한 그 초월석으로 보였다.

히로시의 게이트에서 얻을 초월석.

한국에서 얻은 초월석이 지금 막 이곳 51구역으로 도착했고,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하기 위한 준비도 끝났단 뜻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의 휴식도 끝이다.

“귀찮게 됐네.”

난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후딱 끝냅시다.”

어차피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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