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난항 (2)
-우리가 그에게 과분할 정도의 특혜를 준 것, 모르나?
매튜 협회장의 매서운 질문에 로버트 윤이 움츠러들며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로버트 윤, 너는 그를 대변하는 것 같지? 윤도원이라는 한국 헌터는 지금 중앙 협회를 뭐라고 생각하냔 말이야. 애써 그곳에 보냈는데 난동까지 부리다니.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로버트 윤도 중앙 협회가 윤도원에게 우호적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매튜 협회장의 상태를 보면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 여겨졌다.
“……어떻게 할까요, 협회장님.”
하지만 로버트 윤이라고 거스를 수가 있을까.
그도 결국엔 협회장의 지시를 받는 중앙 협회 직원일 뿐.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어떡하긴. 놈에게 간 정령 다시 빼앗고. 프로젝트 네이션. 빨리 진행하게.
“그…… 뒤에는. 어떻게 합니까?”
불안하게 물었다.
두 가지 일을 완수한다면, 윤도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매튜 협회장의 반응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거까지 네가 신경 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네이션을 위한 초월석은. 어떻게 됐지?
매튜 협회장은 화제를 돌렸다.
이미 윤도원에 대한 지시는 그것으로 끝.
중앙 협회가 가장 원하는 프로젝트 네이션의 진행 상황에 관심이 쏠렸다.
윤도원과 일본인 헌터 히로시.
이 둘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저장할 수만 있다면.
중앙 협회는 더더욱 독보적인 권위를 가진 기관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동안은 헌터라는 영역 안에서만 세계적인 기관이었으나.
계획대로 완성만 된다면.
세계 경제까지 조율하는 언터쳐블이 될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나 확보해 뒀습니다.”
-등급 측정은 했나?
“네. B급이더군요.”
-B급…… 그걸로 가능하리라고 보나?
매튜 협회장도 프로젝트 네이션의 핵이 소비될 초월석의 등급에 따라 성능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물었다.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로젝트 네이션에 사용된 초월석은 전부 S급 이상.
하지만 지금은 초월석이 귀한 상태이니, 아쉬운 대로 B급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것은 곧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프로젝트 네이션 영역은 헌터인 제가 알 수 없습니다. 51구역의 연구진들이 만든 것이니까요.”
로버트 윤은 현실적인 답변을 했다.
실제로 프로젝트 네이션의 존재, 성능만 알고 있을 뿐이지.
막상 어떻게 작동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로버트 윤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렇겠군. 알겠네.
매튜 협회장이 끊으려 할 때.
“저…… 협회장님.”
-뭐지?
“미스터 윤과 미스터 오카다의 체류 기간 연장과 같은 말이 나왔습니까?”
윤도원은 분명히 경고했다.
중앙 협회에서 약속한 기한은 최현민, 강만식의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라고.
혹시 그 약속까지 깨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지, 미리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체류 기간은 연장할 수 없어. 외부인에게 너무 쉽게 노출한 것도 모자라, 장기간 체류까지 허락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군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어쨌든 체류 기간은 정해져 있다고 하니, 윤도원과의 약속은 깨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미스터 윤이 한국 협회장의 청문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것은?”
-그렇게 하라고 해. 그 전에 프로젝트 네이션만 끝내면 돼.
“……만약, 프로젝트 네이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시에는요?”
-작동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혹시 몰라서 그렇죠. 연구진들도 초월석의 등급에 따라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작동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라…….
구시대적인 무모한 생각이지만, 매튜 협회장이 생각도 없이 이런 답을 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매튜 협회장의 머릿속을 들어가 보지도 않았기에.
정확히 그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더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의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후우…… 이상한데. 중앙 협회에서 이렇게 찬 공기가 분 적이 있었던가?”
로버트 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일단 그가 급하게 처리할 것은 딱 하나.
윤도원이 데리고 간 정령을 다시 빼앗아 오는 일.
이것이 가장 난제였다.
“정령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못 봤던 내가……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한국 협회장 대행으로 발이 묶인 상태인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지시를 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로버트 윤은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한창 51구역 지하 시설 숙소에서 쉬고 있던 중.
조용한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일지, 불안한 마음일지 모르는 감정이 들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라?”
“왜요?”
“로버트 윤한테……. 전화가 왔는데?”
“……음.”
“히로시, 네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좋은 소리 안 할 거 같지?”
“아무래도요? 솔직히 저희 이 연구소 오자마자 사고 쳤잖아요. 아, 정확히 말하면……. 저희가 아니라 형이.”
“어쭈? 이것 봐라? 야, 우리 공동체 아니야? 갑자기 지금 나랑 선 그어?”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라. 솔직히 사실이잖아요. 갑자기 형이 실험관 부숴 버리고, 방사능 수영장 될 뻔하고……. 그리고 정령 문제로 여기 연구팀장이랑 다투기도 하고…….”
뭐, 인정한다.
히로시와 상의한 게 아니라 나 혼자 자발적으로 한 행동이니까.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했다.
“일단 얼른 받아봐요.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하잖아요.”
히로시는 애써 화제를 돌리듯 제안했고.
내가 곧장 로버트 윤의 통화를 받았을 때였다.
“여보세요.”
-어떻습니까? 그곳은?
‘음?’
목소리가 이상하다.
분명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로버트 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화가 살짝 난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를 나무라는 목소리도 아닌.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다.
개인적으로 복잡한 사정이 있어,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와 같았다.
‘이상한데……?’
하지만 어쨌든, 내게 전화를 한 이유는 나한테 용건이 있다는 뜻.
일단은 내색하지 않고 통화를 이었다.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군요. 아마 이틀 뒤에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할 겁니다. 초월석은…… 미리 합의한 대로 히로시가 만든 게이트를 사용했습니다.
히로시는 이곳으로 오기 전 3개의 게이트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게이트 하나는 벌써 정복했단 뜻이었다.
“감찰부원들이랑 함께 정복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확보한 초월석은 측정해 보니 B급. 감찰부원들 통해서 그곳으로 보낼 예정입니다.
이상하게 설명이 자세하다.
평소 로버트 윤 같았으면 그냥 게이트를 하나 썼고 곧 프로젝트 네이션만 실행할 거라고만 말할 것.
그런데 뭔가 해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설명이 자세한 걸 보니 내가 듣기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주제를 계속 빙빙 돌리며 말하는 듯했다.
“아~ 네. 그리고요?”
오히려 내가 답답함을 느끼고 물었다.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니지 않더냐.
다른 중요한 용건이 있어서 전화한 거 아니냐?
그리고 결정적으로. 초월석을 사용한 거면 히로시한테 전화했을 거다.
히로시가 만든 게이트를 사용했으니까.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정곡이라도 찔린 듯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잖아요? 뭔데요. 그냥 말해요.”
-…….
로버트 윤은 한참이나 침묵했다.
“여보세요?”
국제전화이다 보니 갑자기 끊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휴대폰 액정을 확인했을 땐 통화는 끊기지 않고 멀쩡히 연결 중인 상태.
로버트 윤이 계속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나, 뭔가 심오하고 심각한 일 때문에 나한테 전화한 것이 맞단 확신이 들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들었습니다.
올 것이 왔다.
“무슨 일을 어떻게 들었죠?”
발뺌하려고 묻는 게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 들었는지.
혹시라도 사실이 와전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51구역 소유의 정령이 있는 실험관을 부수고. 그 정령의 주인이 됐다는 소리요.
정확히 들었다.
와전 없이 깔끔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다.
“네, 그랬죠.”
-왜 그랬는지, 일단 물어봐도 될까요.
“왜긴요. 이곳에선 정령을 괴롭혔고, 실제로 제가 오자마자 정령의 상태를 확인하니 마약에 찌든 사람보다도 더욱 피폐하게 보였거든요. 처음엔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심각해서.”
-…….
“그리고 정령을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했는지. 기록물을 보여달라고 했죠.”
-그래서 그곳의 연구팀장이 제게 어떻게 하냐고 전화를 걸었던 거군요…….
“네. 보고 난 뒤에 참을 수가 있어야죠. 로버트 윤, 당신의 몸에 방사능 넣고 여러 실험을 진행하면 기분 좋겠습니까.”
-하지만 당시엔 정령의 존재를 몰랐기에 악의를 가지고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악의…….”
이상하게 입가에 맴도는 그 단어.
내가 느끼기엔 정령의 존재를 알고 난 뒤에도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아니던데요?”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겁니까.
“네.”
날카롭게 딱 잘라서 답했다.
-근거라도. 있는 겁니까?
“제가 정령의 주인이 됐을 때, 51구역 소유라고 주장하던데요. 그러니 내놓으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그게 뭐겠습니까? 정령에겐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그 힘을 어떻게든 이용할 방법을 찾을 생각으로 보이던데. 그러려면 또 정령을 상대로 각종 실험이 자행되겠죠. 그건 못 봅니다.”
-연구진의 생각은 저도 알 수 없으니…….
갑자기 한 발 빼는 느낌이다.
“아무튼, 정령 때문에 전화한 겁니까?”
-……네.
“돌려달라고요?”
-아니요, 한 가지를 묻고 싶어서요.
“뭔데요.”
-혹시 정령이 주인을 한 번 정하면 절대 바꿀 수 없는 귀속 관계라던가 그런 게 있던가요?
로버트 윤은 이제 정령과 주인의 관계를 깊이 파고들었다.
이런 질문이 못내 불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숨길 건 아니다.
어차피 알고 있다고 한들, 정령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로버트 윤이나.
이곳의 연구진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릴 방법은 아예 존재하질 않으니까.
“아니요. 정령의 의지로 주인을 바꿀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단, 듣기만 했을 뿐. 저도 그런 일은 직접 겪지 않았기에, 정확히 모릅니다.”
일부러 사족을 붙였다.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른다.
내가 거짓말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흑염룡과 오리가미.
두 정령이 주인을 바꾸는 걸 아예 본 적이 없으니까.
일부러 로버트 윤에게 혼동을 주려고 붙인 사족이다.
-……그렇군요. 한번 결정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귀속 관계가 아니다. 이건 확실하군요.
로버트 윤은 그 부분을 집중했다.
“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죠? 정령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이.”
-……혹시 말입니다.
“혹시 뭐요.”
-제가…… 그 정령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까?
“뭐?”
예상도 못 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