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난항 (1)
패트릭은 계속 말을 아꼈다.
나를 상대로 거짓말 해봤자 나중에 들통이 날 것이고, 의미가 없는 짓인 걸 제일 잘 안다.
그렇다고 눈 뜬 채로 정령을 뺏길 수도 없단 생각이 가득할 것.
정령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존재다.
초월석이 사라진 현재 상황에선 이들이 독점적으로 다량의 게이트를 보유하고, 그 안에 있는 초월석을 운용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어서요. 답해 보세요.”
사정은 이해하나, 공감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기 오고 나서 한가지는 확실히 느꼈는데, 그건 이들이 나와 뜻이 같지 않다는 것.
나는 일정 수준의 게이트는 유지한 채, 정말 불가피하게 초월석이 필요할 때만 흑염룡에게 미리 동의를 구하고 사용해 왔다.
명령을 내리면 절대 내 말을 거역할 수 없는데도, 처음부터 흑염룡을 지배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들은 모든 전제가 지배로 깔려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중앙 협회라는 이름으로 모든 국가의 협회를 지배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런 생각이 박힌 것도 당연할 터.
여전히 패트릭은 답이 없었다.
“정령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정령이 직접 주인을 선택한단 말. 못 들었습니까?”
“듣기야 했습니다.”
마지 못해 드디어 답하는 패트릭.
그 사실은 인지하고 있으나, 그래도 51구역만의 입장이 따로 있는 듯하다.
역시나 패트릭은 내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치듯이 먼저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실을 안 시점은 이미 공식적으로 정령이 51구역 소유가 된 것이 한참이나 지난 시점이죠. 따라서 당신 마음대로 데리고 갈 순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답변이다.
인간들 사회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상황은 많다.
그간 아무 문제 없는 어떤 일이 있다고 치면, 갑자기 법이 개정되면서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위법 행위로 바뀌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공공장소 흡연 정도가 있겠지.
아주 흔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법이 적용되기 전에 공공장소에서 흡연했던 사람들 전부에게 과태료를 청구하나?
그건 아니다.
지금 패트릭이 말하는 게 그 논리다.
정령이 직접 주인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으나 문제는 그 사실을 알기 훨씬 이전에 오르문이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공식적으로는 오르문이 자신들의 소유라는 주장이다.
“정령을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소유라고 주장하니까 참 와닿지 않는데.”
“이는 중앙 협회에서도 인정한 사안인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간섭합니까. 엄연히 당신도 중앙 협회 소속일 뿐, 중앙 협회보다 위에 있는 건 아닌데요.”
패트릭은 자신의 주장이 허점을 찌른 주장이라고 생각한 걸까.
갑자기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난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이는 히로시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히로시는 정령을 가진 세상에서 둘밖에 없는 사람.
그렇기에 정령이 주인으로 지정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안다.
패트릭에게 답하기 전, 난 오르문에게 확실하게 짚었다.
‘오르문. 내가 너의 주인이 되는 것에. 반대하나?’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면 당황스럽죠.]
짝!
[시끄럽고 그냥 알았다고 해!]
흑염룡은 그런 오르문의 뒤통수를 찰싹 때리며 압박했다.
[아야! 왜 갑자기 때리세요…… 린느 님.]
[내 주인이 아무 생각 없이 너한테 주인을 강요한 것 같아? 정령이 주인을 모시게 되면 어떻게 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아아!]
그제야 오르문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다.
그래, 그거야.
난 지금 그걸 노리는 중이거든.
계속 숨기고 싶었던 사실이지만, 패트릭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 사실은 불가피하게 꺼내야 할 때라고 여겼다.
[네네! 좋아요! 제 주인님이 되어 주세요!]
오르문은 기쁘게 답했다.
이제 난 씨익 웃으며 패트릭을 쳐다봤다.
내 미소가 그에게는 기분이 나쁘게 다가왔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또 뭐하나 알려드릴까?”
“무슨…….”
“정령의 비밀 말야.”
“비……밀……?”
“정령은 주인을 지정하면. 주인을 기준으로, 일정 반경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나의 말에.
통역사 윌리엄의 입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였다.
“일정 반경이란 뜻은. 정령의 활동 반경에 제약이 생긴다는 뜻이지요.”
“그래서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나 참. 이 정도로 얘기했는데도 모르는 건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명색이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연구진들 아니야?
그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졌단 것인데도 이해를 못하는 모습이다.
“그새 잊었어요? 51구역에 있던 정령. 내가 주인이 되었다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내 주위에만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공교롭게도 로버트 윤이 내게 약속한 51구역 체류 기간은 한국 협회장의 청문회가 열리기 전까지만인데?”
“……!”
그제야 동공이 커진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였다.
오르문이 나를 주인으로 지정한 순간.
이제 오르문에게도 활동 반경이란 제약이 생겨났고, 나를 따라다녀야 하는 운명이다.
그런데 내가 51구역에서 거주를 하는 건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아주 잠깐 오는, 견학 수준이다.
즉, 기간은 정해져 있고.
심지어 이 기간은 중앙 협회에서 허가해 준 기간이다.
따라서 길어야 6일 뒤 난 이곳을 떠나야 하고, 이는 오르문도 함께 떠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해 끝?”
“…….”
내가 얄미운 미소와 함께 되묻자 패트릭의 표정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저들은 정령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으니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알고 있을 거다.
실제로 난 정령을 이용해 한국에 있는 나의 부서에다가 게이트를 다량으로 만들어 놨고.
무엇보다 중앙 협회 상대로 거짓말을 할 간 큰 헌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숙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쉬시지요.”
패트릭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내 예상대로 더 얘기 해봤자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으니, 나에겐 친절한 척 숙소를 안내하고 휴식을 취할 틈을 기다리는 것. 그렇게 따로 중앙 협회나 로버트 윤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지시를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시죠.”
그렇게 패트릭에게 지하 시설에 마련된 구석진 숙소를 안내받았고.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 끝을 향해 갔다.
[고맙다.]
그때 들린 드래곤의 목소리.
뭔가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고맙긴 뭘. 내가 말했잖아, 약속은 지킨다고.’
[가호를 너무 쉽게 준 것 같았고, 혹시 네가 갑자기 말이 바뀌면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내가 너무 의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알면 됐어. 그런데 나머지 세 가지 가호는 언제 줄 거야?’
비늘, 날개, 발톱, 정신.
총 네 개의 가호 중 내가 받은 것은 가장 기초가 되는 비늘 하나.
게다가 이 가호는 후에 크루즈와의 전쟁에서도 사용될 가호.
미리 받아서 몸에 익히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나머지 가호는.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내가 하기 나름이라니?’
[가호가 아닌 네가 가진 능력부터 최대치로 익숙해져야 한다. 네 능력도 한계치까지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호를 받았다고 한들, 가호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거란 게 내 생각이다.]
뭐……. 그건 나도 동감이다.
인간들 세계에서 흔히 이런 말 하지 않던가?
운전면허 막 취득한 사람한테 억 소리 나는 고급 외제차 주는 거 아니라고.
지금 드래곤의 가호가 그것과 똑같이 느껴졌다.
‘알겠어.’
욕심을 조금 접어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능력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니, 이걸 터득하는 게 먼저라고 여겼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드래곤은 그 말을 남긴 뒤, 더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난 이제 오르문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시죠……?]
“오르문, 너의 능력은 뭐지?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 말야.”
[아~ 그거요? 전 특별한 거 없는데. 저랑 손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게이트를 만들면. 똑같은 거 하나 더 만들어요.]
“그렇다면…… 복사하는 개념인가?”
[그렇죠?]
“으음…….”
오리가미처럼 실용적이진 않다고 생각했다.
오리가미의 경우엔 이미 만들어진 게이트의 조각을 떼어, 하나의 새로운 게이트를 만드는 방식.
그러나 오르문은 만들어진 게이트가 아닌, 게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해요. 그마저도 등급이 높은 게이트는 못 만들고요.]
“이런…….”
나도 모르게 아쉬움의 한탄이 나왔다.
오리가미의 경우엔 등급에 따라 쿨타임이 존재하고, 너무 높은 등급의 게이트 조각을 사용했을 경우 탈진 상태가 와서 쉬어야 했다.
하지만 오르문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하루에 한 번이고.
그마저도 높은 등급은 할 수 없다는 것은.
낮은 등급에 한해서만 가능하단 뜻이다.
“소화할 수 있는 등급은? 어디까지? 인간들의 등급 체계로 말해줘.”
인간들이 정의한 E부터 S급까지로 말해달란 뜻이었다.
[C급이요.]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한 등급이다.
그래도 다다익선이란 말이 있듯이, 오르문의 능력이 대단하진 않아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더군다나 정령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점은 분명히 있을 거다.
“그래, 기억하고 있을게. 앞으로 잘 부탁하자고.”
난 오르문을 향해 악수를 건넸다.
오르문은 조심스럽게 내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리고?”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
그래, 어떤 일을 당했는지 우리가 기록물을 통해 전부 다 봤는데 어떻게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고생했어.”
난 그 한마디만 남겼다.
***
“뭐라고요?”
한편, 한국에서 협회장 대행직을 수행하고 있던 로버트 윤.
51구역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 51구역이 소유하던 정령이 윤도원의 주인이 되며 강제적으로 빼앗기게 생겼다는 뜻이었다.
-로버트 윤. 우리가 그를 돕도록 결정하긴 했지만, 약탈까지 감수하며 도울 생각은 아니었네. 일이 왜 이렇게 됐지?
휴대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중년의 목소리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는.
그런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직후, 로버트 윤은 식은땀이 다 났다.
직접 전화를 건 사람이 중앙 협회장 매튜 레이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매튜 중앙 협회장은 명백하게 로버트 윤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듯하며, 51구역으로 간 윤도원의 행동이 중앙 협회에 피해를 입혔다고 받아들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협회장님.”
그렇다고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있을까.
적어도 로버트 윤은 지금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분명, 윤도원에게 시오스란 정령의 존재.
그리고 던전이 어떤 이유에서 존재했던 것인지.
나아가 크루즈와 시오스의 관계도 전부 전했을 때, 그들은 전적으로 인류 평화를 위해 윤도원을 지원하잔 결정을 내렸는데.
지금은 그 성격이 변질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중앙 협회의 결정은…….”
로버트 윤이 반박하기도 전에.
-그가 협조할 마음이 없는데 우리가 무슨 이유로 협조를 해야 하는 것이지?
매튜 협회장은 들을 마음이 없다는 듯이 말을 끊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