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28화 (128/200)

§ 128화. 오르문 (3)

난 그저 팔짱을 낀 채로 패트릭만 당당하게 쳐다봤다.

분명히 실험 과정을 기록한 게 있을 것.

이렇게 비밀스러운 연구시설이니, 진행하는 연구, 실험 과정을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기록의 방식도 컴퓨터 문서 뿐만이 아니라 영상물이 분명히 있을 거란 확신 때문이다.

흔히 좀비 영화만 봐도 어떤 실험을 강행할 때, 실험 과정을 필수적으로 기록하는 게 원칙이니까.

영상을 찍어서 변화가 눈에 보이도록 하거나.

영상을 찍을 수 없는 상태라면 과학자가 일일이 녹음기를 틀어 실험 n일 차,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다 등등.

이런 기록을 담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그게 다 근거도 없이 넣은 장면일까?

실제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아주 당연하게 행해지는 일이니, 영화에도 고증의 요소로 넣은 것과 똑같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로버트 윤과 약속된 사항이라고 들었는데. 프로젝트 네이션에 참여하는 건.”

일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패트릭.

이 답만 들어도 내 예상은 맞았다.

기록물이 없다고 답하는 게 아닌, 최대한 기록물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 나와 로버트 윤의 약속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록물을 보여주기 싫다는 뜻이었다.

이미 이곳에서 오르문이 만든 게이트로 인해서 시설이 한 번 파괴된 적이 있는데도 기록물은 온전하게 남아 있단 뜻이다.

“어차피 로버트 윤은 나에게 모든 걸 보여주라고 지시했다고 했으면서?”

“……잠시 실례하죠.”

그 말을 남기고 연구팀장 패트릭은 어딘가로 향했다.

보나 마나 뻔하다.

로버트 윤에게 연락을 하고, 지금 상황을 알린 다음에 정말 보여줘야 하냐는 질문을 할 셈이겠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됐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뒤.

드디어 패트릭이 돌아왔다.

그는 상당히 불편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라던가요? 로버트 윤이.”

“…….”

당신이 불편한 표정을 지은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중이란 것.

분명히 로버트 윤은 내게 기록물 전부를 보여주라고 지시했으니 저런 표정이 다 나오는 거겠지.

“따라오시죠.”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패트릭은 그 말을 남기며, 먼저 앞장섰고.

난 그의 뒤를 따랐다.

***

우리는 어느 한 방에 도착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패트릭과 윌리엄.

그리고 나와 히로시.

총 네 명이다.

회의실처럼 작은 공간.

벽에는 대형 스크린이 걸린 것을 보니 개인용 영화감상실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패트릭은 테이블 위에 놓인 빔프로젝터를 조작하며 설명했다.

“로버트 윤 부장이 지시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보여주라고요.”

“그래야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궁금합니다. 왜 실험 과정을 보고 싶은지요.”

특별한 이유란 게 어디 있을까.

흑염룡이 보고 싶다고 했고, 나도 인간들이 다루는 물질 중에 정령에게 치명적인 물질이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것까지 전부 답할 필요는 없지 않던가?

난 거짓말로 대신했다.

“이렇게 비밀스러운 곳에선 과연 어떤 실험을 했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죠.”

“……그렇군요, 일단 최초의 실험입니다.”

드디어 패트릭은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는 오르문이 갇힌 실험관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기한 현상을 같이 깨달았다.

영상 속에 있는 실험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는 것.

나는 흑염룡을 거느리고 있기에, 정령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영상 속에 있는 실험관 안에는 분명 오르문이 있을 것.

그런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매개체를 통해서는 정령을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흑염룡. 네 눈에도 저 영상 안에 있는 실험관. 그 속에 오르문이 안 보여?’

[응.]

심지어는 같은 정령에게도 보이지 않는 중이다.

영상이 재생된다.

영상 하나당 평균 시간은 약 20초.

정말 짧은 영상이 순차적으로 재생되는 중이다.

51구역의 연구진들은 실험관에 바닷물을 채우기도 하고, 석유, 염산 등등.

액체를 종류별로 들이붓는 실험을 장기간 진행했다.

“실험관 안에 다양한 액체를 넣은 이유는?”

“우리 감지 헌터의 말에 따르면 분명히 생명체라고 느껴진다곤 하지만, 일반인 과학자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죠. 그렇기에 먼저 눈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합니다.”

다양한 액체를 부은 이유도.

오르문의 형체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액체가 뭐가 있을지 찾는 과정이란 뜻이다.

그렇게 수십 개의 영상이 지나간 뒤.

드디어 오르문의 형상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액체 속에서 투명한 무언가가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얼굴도, 체형도 보이지 않고 형상만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중이다.

“그러던 중에 찾았습니다. 정령이 완벽히는 아니지만, 형체라도 볼 수 있는 방법.”

지금 영상 속에 있는 실험관 속 액체는.

내가 이곳에 처음 와서 본 액체의 색과 같았다.

“뭐였던가요?”

“X-ray 개념을 응용해 봤지요. 거기에 초월석이 가진 에너지 일부분을 첨가한 X-ray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X-ray의 원리는 X선을 인체에 투과하면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는 방식.

거기에 초월석이 가진 힘을 더해서 흐릿한 형상으로나마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단 뜻이다.

그 뒤로 실험엔 박차를 가했다.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한 뒤에 연구진 중 한 명이 해머로 실험관 외벽을 치는 모습도 고스란히 기록물에 남아 있었다.

“해머로는 왜 치죠?”

“정말 생명체가 맞는가 싶었죠. 생명체라면 충격이 가해졌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거니까요.”

그렇게 영상은 계속 재생된 뒤.

드디어 문제의 영상이 나왔다.

실험관 전체에 고압 전류를 흘려보낸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악!!]

“…….”

영상 속에서 분명히 오르문의 것으로 보이는 비명이 들려 왔다.

그 순간, 패트릭은 영상을 잠시 멈췄다.

“우리는 이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실험관에 고압 전류는 단순한 전기가 아닙니다. 역시, 초월석의 에너지를 함유한 전력. 이걸 흘려보내니 반응이 일어난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 특별한 에너지가 발생했는데, 그게 초월석이 가진 힘과 상당히 유사했던 것입니다.”

이건 이미 로버트 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충격을 가했을 때 나오는 초월석과 유사한 에너지.

이것을 이용하여 던전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에서 초월석을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측으로 시작된 실험.

하지만 안에 갇힌 오르문에게는 끔찍한 고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풀지 못한 문제 하나가 있었지요.”

패트릭의 설명이다.

“그게 뭔데요.”

“이 방법을 지속적으로 적용했을 때, 정확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리?”

“마치……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라고 할까요? 그 정체는 찾지 못했죠.”

[……그게 애가 비명 지르는 소리잖아.]

흑염룡이 다시 분노에 차며 중얼거렸다.

내게 들렸던 오르문의 비명 소리.

그것이 정령이 없는 저들에게는 웅웅거리는 진동의 형태로 들렸단 뜻이다.

“그 문제는 뒤로 하고. 우린 이 에너지를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24시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전류를 흘려보냈죠.”

“…….”

사람으로 치면 어느 한 곳에 가둬놓고 움직일 수도 없게 손발을 확실히 묶어 놓은 뒤에.

전기 고문을 장기간으로 강행했다는 뜻이다.

사람도 그렇게 하면 아마 내장이 다 익어 버려 결국, 죽게 되지 않을까?

아무리 정령이라고 해도 고압에 초월석 에너지까지 함유한 전류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이렇게 보니 실험관 안에 있던 오르문이 왜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피폐하게 변했는지.

쉽게 이해가 됐다.

[어떡해…….]

히로시의 정령 오리가미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여태까지 본 실험 내용으로만 보면, 정령에게도 상당히 끔찍한 방법이었단 반응이다.

게다가 오리가미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보고 있는 나 역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이들이 정령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도, 결국 저런 충격을 가한 게 초월석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즉,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생명체 하나를 무참히 죽인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도 흑염룡과 함께 지낸 기간이 상당히 되었고, 함께 위기도 극복하고 여러 상황을 겪어서였을까?

내 마음은 이미 정령의 편에 서 있었다.

‘흑염룡.’

[왜.]

흑염룡의 목소리 역시 상당히 날이 섰다.

정말 잘못 건들기라도 하면 폭주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경고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도 현재 흑염룡과 같은 마음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흑염룡에게 폭주하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다.

‘내가 먼저 사고 쳐 줄게.’

[무슨…… 소리야?]

날이 시퍼렇게 섰던 흑염룡의 목소리가 당황스럽게 변했다.

“끄세요.”

그런 흑염룡은 무시하고, 내가 패트릭에게 말했다.

“더 남았는데 안 봐도 되는 겁니까?”

패트릭은 단순히 내게 모든 과정을 보여주라는 로버트 윤의 지시를 따르는 중.

그렇기에 도중에 끊었다고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미 충분히 다 봤어.”

난 그렇게 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출입문으로 향했다.

실험관이 있는 곳에서 이 방으로 오는 길이 멀지 않기에 한 번 온 것만으로도 아주 쉽게 외울 수 있는 길.

내가 출입문으로 향하자, 패트릭은 상당히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어…… 어디를 가는 겁니까?!”

패트릭은 다급하게 빔프로젝터를 끄고는 내가 나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가만히 있어.”

난 염력을 사용해 그의 몸을 그 자리에서 굳게 만들었다.

패트릭은 애처롭게 내게 손을 뻗은 상태로, 메두사의 눈을 본 것처럼 그대로 몸이 굳었다.

“이…… 이게 도대체…….”

당황한 패트릭과 함께.

“저…… 저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윌리엄도.

내가 나가는 것을 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역시 윌리엄도 똑같이 염력을 사용해 그 자리에 굳게 만들었다.

그리곤 난 회의실에서 나서고.

실험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히로시는 내 뒤를 따랐다.

“형. 뭘 하려고요……?”

“뭐긴. 어차피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뭔데.”

“……정령 구출.”

“그래, 드래곤이랑도 약속한 거야. 처음부터 그 약속 지키려고 온 거고. 넌 영상 보고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건 아니죠.”

“그럼 된 거야. 우리 행동은 정당방위란 거지.”

그렇게 실험관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오르문은 입을 멍하니 벌리고 동공이 풀린 듯한, 피폐한 모습 그대로다.

난 실험관 외벽에 손을 대며 오르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고생했다. 오르문.”

그리고 염력을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방출한 그 순간.

쩌저적-!

실험관 외벽에 큰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직후엔.

와장창창-!

완전히 깨지며, 실험관 안을 가득 채운 액체가 쓰나미처럼 이곳을 덮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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