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신세계 (3)
로버트 윤의 질문을 받은 뒤, 장길수는 계속 생각했다.
‘확실히 내가 은퇴한 이유의 근원이 사라지기도 했고…… 게다가…….’
은퇴가 번복되었을 시, 한국 협회장은 별도 투표 없이 장길수로 정해진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너무 거대한 떡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추후에 문제가 생길 일은 아예 없다는 것 또한, 장길수는 잘 안다.
왜냐.
애초에 그가 한국 협회장이 되는 과정은 전부 중앙 협회가 관여했고, 중앙 협회에서 판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장길수는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을 물었다.
“은퇴를 번복하면 제가 협회장이 된다는 말인데…….”
“잘 들으셨군요.”
“문제가 아예 없을까요? 남들 눈에 봤을 땐 은퇴했던 사람이 너무 손쉽게 협회장이라는. 헌터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데요.”
“그거야 당연…….”
로버트 윤도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뒤에 답했다.
“잡음은 있겠죠. 아무리 정당한 과정으로 협회장에 올랐어도, 어느 정도의 잡음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강조하려는 듯이 잠시 말을 끊은 뒤.
“그 뒤는 미스터 장. 당신의 역량이겠죠.”
듣기에 따라서는 장길수에게 비수처럼 느껴지는 말이었다.
협회장은 임명해 주겠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문제는 중앙 협회는 관여할 수 없고, 오로지 장길수.
당신의 능력으로만 해결해야 한다.
이런 뜻이었다.
“허허허…….”
‘그럼 그렇지. 협회장 자리를 이렇게 쉽게 준다는 것이 뭔가 이상했지.’
하지만 장길수는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도,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최현민만 없다면…….’
그간 똥이 무서워서 피했나?
더러워서 피하고 만다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우발적인 은퇴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최현민이 사라진 헌터계라.
이 뜻은 장길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뜻과 같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길수의 생각이 눈빛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그 생각을 삼키자마자 로버트 윤이 물었다.
하지만 장기수는 결정적으로 하나를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제가 협회장이 된 이후에 발생한 문제의 해결은 순전히 제 역량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중앙 협회는 제가 협회장이 된 이후에 관여할 수 없다는 뜻과 같고요?”
“네. 뭐가 궁금한 거죠?”
“중앙 협회가 나서서 저를 협회장으로 만든 것과 다름이 없고, 그것을 빌미로 협회의 사소한 업무에도 관여하는 일. 없다는 뜻이지요?”
“하하하하!”
장길수의 물음에 로버트 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저희가 사람은 잘 봤군요.”
그리곤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나서서 미스터 장 당신을 협회장으로 임명했다는 이유로. 앞으로 사소한 일에 관여는 없을 겁니다. 물론, 세계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는 다르지만요.”
장길수는 이것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괜히 달콤한 열매라고 덥석 받았다가,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
게다가 협회장이라 하면 한국 협회 소속 헌터에 한해서, 대통령과 마찬가지의 권력을 쥔 일이다.
그런 사람이 외세에 휘둘릴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 버리면 협회도 그렇고, 협회를 믿는 헌터들까지도.
큰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으며, 그 불만은 협회라는 기관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장길수는 그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답받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나중에 달라질 수 있지만.’
장길수는 이제 로버트 윤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녹음 기능이 켜진 휴대폰.
분명 중앙 협회의 증거물로 제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증거물도 있으니. 아무리 중앙 협회라고 해도 양아치 짓은 안 할 거야.’
처음부터 양아치 짓을 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면, 중앙 협회도 지금과 같은 권력을 가진 기관이 되지 못했을 건 분명했다.
그리고 로버트 윤이 말한 세계적인 문제.
그건 지금 상태에서는 게이트에 관한 것밖에 없다.
장길수도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문제이니, 중앙 협회가 관여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단 걸 잘 알았다.
“좋수다.”
고민을 마친 뒤, 그는 시원하게 답했다.
“좋다는 뜻은…….”
“하겠다고요. 내가 안 그래도 최현민이 한국 헌터계를 어지럽힐 때부터 불만이 많았수다.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이제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중앙 협회의 제안. 받아들이겠수다.”
협상이 끝난 듯, 장길수는 손을 내밀었다.
이에 로버트 윤은 장길수와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중앙 협회에서도 당신이 거절하면 누굴 협회장으로 세우나, 고민하던 참인데. 그 고민이 사라졌군요.”
“협회장이 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단 말입니까?”
“저희가 판단하기엔요.”
“허허~”
중앙 협회에는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높게 평가한 것인지.
솔직히, 장길수 본인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제부터 잘해서 “당신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 된다.
로버트 윤은 한 가지를 강조했다.
“미스터 장. 당신이 협회장이 되는 시점은 최현민 협회장의 청문회가 끝난 뒤입니다.”
“그렇다는 뜻은…….”
“네. 1주일 후에 있을 청문회. 그게 끝나야 정식으로 교체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장길수가 증인으로 참석할 예정인 청문회다.
“청문회도 잘 부탁드린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로버트 윤은 이 질문에 대해선 그저 싱긋 웃으면 답했다.
“잘 들으셨습니다. 어차피 있는 그대로만 답하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최현민 협회장의 비리를 입증하기엔 충분하니까요. 지어낼 필요도 없이. 그럼, 일주일 뒤. 정식으로 당신을 협회장님이라고 부를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렇게 두 남자의 협상은 끝이 났다.
‘내가…… 협회장이라…….’
장길수는 오히려 감회가 새로웠다.
평소에 권력에 욕심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그 권력을 이용하여 정상적인 협회로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게이트가 펼쳐져 있는 내 부서로 장길수가 찾아왔다.
“크하하하, 고객님!”
그는 갑자기 내게 달려오더니 나를 와락 안았다.
“……갑자기 뭡니까?”
그런 그의 행동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하루아침 사이에 너무 들뜬 모습을 보이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고객님이라 부르는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마음껏 불러 두려고요.”
“예……?”
뭐지? 갑자기 이별할 것만 같은 말을 하는 이유가?
한창 의문만 가득할 때, 장길수는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1주일 후에 협회장 됩니다.”
“……예에?!”
난 장길수가 이곳에 온 게,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협회장이 된다니.
도통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장길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내게 설명했다.
로버트 윤과 따로 이야기했고, 최현민의 청문회가 끝난 뒤.
자신이 협회장이 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럼……?”
“이제 고객님은 저를 협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럼요, 괜찮고 말고요.”
장길수와 알고 지내면서 든 생각.
이런 협회장이 있으면 어떨까?
그 상상이 실현되는 날이다.
최현민의 경우엔 하도 나를 못살게 굴고, 나와 전쟁까지 선포했던 사람이었던지라.
내 상황 대부분을 아는 장길수라면.
왠지 나를 도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그게 정말 단순히 꿈이 아닌, 곧 다가올 현실이란 것이다.
“정말 축하드려요!”
난 그의 두 손을 맞잡았다.
“축하는 아직 이르죠. 그런데 듣기엔, 오늘 미국으로 가신다던데? 가서 할 일이 있다고.”
“로버트 윤이 그러던가요?”
난 아직 듣지 못했지만, 장길수는 이미 듣고 온 듯했다.
“그럼요~”
장길수는 답하면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행기 티켓 2장을 꺼냈다.
나와 히로시가 타고 갈 비행기로 보였다.
“오후 3시 비행기랍니다. 고객님이 미국으로 간 사이에 저는 고객님의 게이트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맞아요. 제가 팀장님을 지정했거든요. 아, 이젠 협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1주일 뒤에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아직은 협회장 된 거 아니니까요.”
역시, 늘 느끼던 거지만 장길수는 그다지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다.
권위로 한껏 온몸을 치장한 최현민을 상대하다가, 장길수랑 대화하면 편하게 느껴진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보였다.
“그런데…… 고객님. 고객님이 미국에는 왜 가는지, 제가 듣지 못해서…….”
내게 슬쩍 알려달라는 소리였지만, 아쉽게도 난 그럴 수 없었다.
“로버트 윤이 말하지 않았다면, 저도 말할 수 없습니다.”
51구역으로 가는 길.
게다가 51구역은 보안이 삼엄할 정도로 철저한 곳이니, 내가 함부로 떠벌릴 수 없다.
한국의 장소도 아니고 미국의 장소다.
괜히 내가 여기에서 그 정체를 얘기했다간, 후에 껄끄러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뭐, 고객님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이유가 다 있겠죠?”
역시, 장길수는 내 의견을 존중했다.
“아무튼. 오후 3시에 비행기 타고 가시면 되고…… 로버트 윤 그 사람이 배웅은 못 한다고 합니다.”
“우리끼리 알아서 가랍니까?”
장길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데 도리어 저랑 히로시만 보낸다니, 조금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전 이해가 되던데요?”
“어떤 면에서……?”
“지금 최현민의 청문회 준비 중인데다가 한국 협회장 대행직을 맡고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게 큰 모양입니다.”
“아아.”
그렇지.
한 번에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터졌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51구역이 무슨 관광 명소도 아니고.
버스 정류장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우리끼리 어떻게 찾아가냐는 문제였다.
“우리가 가는 곳은 누군가가 동행하지 않으면 못 찾아가는 곳인데…….”
“그거에 대해서도 이미 로버트 윤이 설명했습니다.”
“뭐라고요?”
“공항에 내리면, 미국 협회에서 나왔다는 피켓을 든 사람이 있을 거랍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던데요?”
“아~ 그래요?”
미국 협회 사람이 나올 거라니.
중앙 협회에서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미국 협회가 따르는 걸 보면.
역시 미국 협회는 중앙 협회 2중대나 다름이 없었다.
“오후 3시입니다. 필요한 거 지금부터 챙기셔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
나도 서둘러 미국으로 향할 준비를 마친 다음, 문제의 51구역으로 향해야 했다.
“그럼. 1주일 정도. 잘 부탁드립니다.”
난 장길수에게 그 한마디만 남겼다.
“그간 했던 것처럼. 성심성의껏 지키죠.”
“감사합니다.”
그렇게 급히 출국할 채비를 마치고,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공항에 도착했다.
“가자, 히로시.”
우리가 탈 예정인 비행기의 출국 심사가 시작되었고, 우린 그렇게 심사를 착실히 마친 뒤.
비행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