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21화 (121/200)

§ 121화. 연합 부서 (3)

“초월석은 딱 하나. 하나만 드릴 거예요. 게이트가 어떤 현상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지 아시니까,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히로시의 강경한 통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나와 히로시의 상황으로는 연합부원이 되어 서로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중앙 협회의 목적은 51구역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추출하여 저들 멋대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나와 히로시는 그들의 계획이 무산될 것이란 것을 이미 안다.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정령들은 주인이 필요한 것뿐이지, 엄연히 우리 개인의 능력이 아니니까.

게다가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하기 위해선 새로운 초월석이 필요한 상태.

그 초월석은 주겠다.

그렇게 약속한다.

단, 줬는데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엔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라.

이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오호, 비르. 머리 좀 썼구나?]

흑염룡도 히로시의 뜻을 알아차리곤, 히로시의 정령에게 말했다.

[그럼요. 우리 시오스는 인간들까지 적으로 돌리진 말자곤 했지만……. 인간들은 우리를 이용할 생각밖에 없잖아요. 그걸 막기 위함이죠.]

[잘했어! 잘했어! 아주 기특해!]

흑염룡이 오리가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리가미의 표정은 정말로 흐뭇해 보였다.

마치…… 집사를 잘 따르는 고양이가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이다.

“…….”

그런 오리가미의 표정을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을 때, 흑염룡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그 시선 뭐야?]

‘그냥. 신기해서.’

[뭐가!]

‘대정령 맞구나~ 뭐, 이런 생각? 평소에 부하들한테 잘했나 봐? 존경받고 있다라는 게 느껴진다는 거지.’

[부하는 무슨! 우린 다 친구지!]

‘그래, 그래.’

나와 흑염룡이 잠시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인 뒤.

“딱 하나요?”

로버트 윤이 재차 물었다.

역시, 이 과정에서도 통역사를 거쳐야 했기에 조금은 불편한 대화다.

“네. 무조건 하나요. 중앙 협회는 게이트를 보존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런데 막무가내로 사용할 건 아니죠?”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얘기 다 된 거 아닌가요? 문제도 없고.”

로버트 윤은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한 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히로시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럼 두 분이 먼저 51구역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히로시 헌터가 새롭게 만들어낸 게이트는 저희 중앙 협회가 따로 통보할 예정이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중요한 것을 숨기고 일단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자는 생각으로 들리지만…….

솔직히 나는 별로 상관할 게 없다.

어차피 내 목적도 51구역에 있고, 드래곤에게 비늘의 가호를 받으면서 약속도 한 상황.

빠르게 정령을 구출하는 게 먼저다.

“나는 상관없지만……. 히로시 너는?”

통역사가 내 질문을 고스란히 통역했다.

통역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가는 거 아니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빠르게 준비한다고 해도 밤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윤의 말이다.

비행시간도 있고, 더군다나 목적지는 보안이 삼엄하기로 유명한 51구역이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된다.

“그럼 그냥 내일 가는 걸로 하죠? 오늘 바로 움직이기엔 피곤한데.”

내가 제안하자, 로버트 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잠깐 전화 한 통 하고 올게요.”

히로시는 그 말을 한 뒤에 자리를 비킨 틈에.

궁금했던 것을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두 가지가 궁금합니다.”

손가락을 ‘V’자로 만들면서 말했다.

“어떤 거죠?”

“일단 첫째. 게이트가 몰려 있는 부서를 비우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또 도둑질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악의 주축인 강만식과 최현민은 구속된 상태.

따라서 악인들이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란 법이 있던가?

또 예상도 못한 악인이 나올 수 있었다.

심지어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땐

“그렇지 않아도 이미 조치했습니다.”

“조치라니요?”

“중앙 협회에서 게이트를 지키기 위한 추가 인원이죠.”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궁극적인 이유는 난 아직 중앙 협회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협회보다는 믿을 수 있단 거지, 절대적으로 믿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미 초월석이 저들의 목표를 위해 사용할 목적을 가졌단 걸 알고서도 넙죽 게이트를 맡길 수 있냔 말이다.

차라리 사기꾼한테 내 공인인증서를 맡기고,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맡기고 말지.

덥석 게이트를 맡겼다간 일이 머리 아프게 바뀔 가능성은 다분했다.

“아니요. 오늘 바로 올 건데, 문제라도 있습니까?”

로버트 윤은 내 생각을 조금 읽은 듯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그냥 까놓고 말하는 게 훨씬 나을 거란 생각에 내질렀다.

“네. 솔직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한테 맡기기 싫어서요.”

“그럼……?”

“제가 잘 아는 사람한테 맡기고 싶은데요.”

“그 조건이 얼굴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으면 된다, 이건가요?”

“비슷합니다.”

“저도 함께 있을 건데 저도 못 믿겠다는 뜻인가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하군요.”

“사실이니까요. 오늘 막 본 것 가지고 모든 걸 다 맡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로버트 윤도 중앙 협회 소속.

차라리 그가 정령의 주인이라면 모를까.

우리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에겐 전부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중앙 협회의 지시를 받는 구성원이다.

로버트 윤이 중앙 협회를 지휘하는 중앙 협회장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소위 말하는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위치에 있는 그이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던 것이다.

로버트 윤은 그대로 내가 믿을 수 없단 말을 직설적으로 한 탓일까.

표정이 상당히 불편했다.

난 그에게 해명하듯, 설명했다.

“제가 말이죠. 한국에서 처음 초월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자인 걸 알고 딱 두 부류로 나뉘었어요.”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최현민 협회장처럼 권력을 이용해 뺏으려는 자. 그리고 하나는…….”

“신동원 본부장처럼 저를 돕는 사람으로 나뉘었죠.”

“그래서 미스터 윤 눈에는 제가 최현민으로 비치고 있다는 겁니까? 최현민이 사라지고, 제가 그 자리를 대행하고 있으니?”

“아니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더군다나 한국말은 더더욱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입니다.”

로버트 윤은 끝까지 얘기하라는 손짓을 보였다.

“그 신동원 본부장도 처음부터 저를 선뜻 도와주진 않았습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죠.”

“어떤 말이죠?”

“우리 사이에 아직 신뢰는 없지 않으냐? 그렇기에 헌터 신분을 내린 자신이 어떻게 모든 걸 나서서 선뜻 도와주겠냐고.”

“그 뜻은…….”

“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신동원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로 고스란히 돌려준 것이다.

“저와 로버트 윤. 당신 사이에 아직 신뢰는 없지 않습니까? 게이트를 맡길 정도의 신뢰.”

“차차 쌓아가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군요.”

“네. 중앙 협회가 우릴 도와주는 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도와주는 과정에도 결국 중앙 협회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섞이지 않았습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럼…… 중앙 협회의 목적도 이루지 말고 당신과 히로시를 위해 모든 분야에서 발 벗고 나서는 걸 원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런 걸 바랐으면 제가 욕심만 가득한 멍텅구리죠.”

“멍텅……구리?”

구조적으로 그게 가능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류에겐 적정 수의 초월석이 필요하고.

반대로 시오스들에겐 게이트의 보존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그래도 목숨 걸린 쪽이 더 중압감이 들지 않냐?

게이트가 없어지면 크루즈가 인간계로 넘어오게 되고, 그럼 인간도 다 죽게 되는데 물가가 좀 비싸진 게 대수냐?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60억 인구가 넘는 지구에.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

당장 내가 살아왔던 방식만 하더라도 월급 들어오면 카드사에서 퍼 가 버리고, 집주인이 월세로 퍼 가 버리고.

남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럼 또 다음 달을 살기 위해 한 달을 일하게 된다.

이런 암울한 삶이. 아이러니하게도 상위 50%는 될 거다.

누군가는 이런 삶도 살 수 없을 정도일 거니까.

그런 상황에서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결국 하나밖에 뜻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라면 끓일 때도 물이 필요한 법이고 그 물을 끓이기 위해선 수도세, 가스비 두 가지의 비용이 필요하다.

실제로 초월석이 없어진 뒤로 지금 컵라면까지 가격 올라 버린 상황이니,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은 매일매일이 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굶어 죽나, 크루즈한테 죽나.

결국 죽는다는 건 똑같은 거니, 둘 다 소중한 거다.

따라서 난 최소한의 초월석을 사용하고, 크루즈가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두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만 바라는 건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중앙 협회에선 나와 히로시를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단 걸 알면서도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조건을 제시한다.

이것이 양쪽 모두 균등한 협상이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다.

“중앙 협회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단, 우리의 조건을 들어주면서 하란 뜻입니다. 게이트를 지킬 사람을 제가 지정한 사람으로 하자는 게 무리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본론을 꺼내자, 역시 로버트 윤은 난처한 반응을 보인 뒤 고민을 이었다.

그래도 히로시가 초월석을 하나만 주겠다고 했을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짧은 고민 시간이다.

“누구로 지정하고 싶단 말입니까?”

내 조건을 수락하려는 듯이, 물었다.

“장길수 팀장님.”

“하지만 장길수는 1주일 후에 열릴 최현민과 강만식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야 하는데…….”

“1주일 안에 51구역에서 우리가 돌아오면 되는데, 문제 있습니까? 설마, 우릴 거기에다가 무인도처럼 가둬버릴 생각이었나요?”

“…….”

반응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차피 내게 다 방법 있다.

“이거 하나는 정확히 말하겠습니다. 아니, 협박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협박이라니요.”

“51구역에 우릴 가둬 버릴 생각을 했어도. 뜻대로 흘러가진 않을 거란 말입니다.”

51구역에 있는 정령만 구출하면, 난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 정령을 거느린 히로시도 그 능력은 가지고 있다.

바로 정령들이 게이트를 넘나들 수 있는 ‘활류’.

이들은 그걸 모르니까.

“일단 그건 그렇게 넘어가죠. 두 번째 의문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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