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연합 부서 (1)
“…….”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최현민은 한껏 당황한 눈초리다.
단순히 내 등장만으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다.
내가 한 말 때문이다.
히로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고 했으니, 난 최현민의 생각을 전부 간파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너무 이상했잖아. 넙죽 외국 헌터의 입국을 허가한 것도 수상하고. 역시, 다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지~ 히로시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헌터라는 걸 알고 난 뒤 어떤 꿍꿍이가 있었던 거지.”
내가 만드는 게이트가 아닌 히로시가 만드는 게이트로 정확히 무엇을 이루고자 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확실한 것은 히로시의 게이트가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거다.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난 일부러 히로시와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히로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 나와 처음 본 사이인데 완전 도원결의를 한 사이라서. 아하하! 내 이름도 마침 도원! 도원 결의 맞네!”
이런 시답잖은 말장난이 절로 나올 정도다.
“…….”
최현민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노려만 봤다.
그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영화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왜? 그렇게 노려보면 뭐가 달라져?”
“강만식 부장은 어디 가고 왜 너와 히로시 헌터가…….”
“아, 말했잖아요. 도원결의 한 사이라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는데, 우린 눈빛만 보고 통했다고 할까나.”
정령을 보고 통한 거긴 하지만.
아무튼, 난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최현민에게 한마디만 남겼다.
“뭘 꿈꿨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꿈꿨던 것. 실현 가능성 제로니까 이만 포기하세요. 나까지 개입했으면, 말 다 하지 않았나?”
“…….”
“듣자 하니 협회장직도 물러나시게 됐고, 조사도 받아야 할 판인데. 멘탈 잘 추슬러서 성실 조사받길 기원하고요.”
파이팅의 의미로 최현민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중이다.
이에 로버트 윤이 나서서 한마디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미스터 윤이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란 걸 중앙 협회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린 그에게 협조하기로 결정했고요.”
“중앙 협회가…… 알았다고요?”
이제야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어느 정도 피부로 체감한 모습이다.
“그렇습니다. 미스터 윤에게 다 들었습니다. 그에게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것도 모자라 게이트 전부를 빼앗으려고 했다고.”
“그거는……!”
“워우.”
로버트 윤인 미국인의 제스처를 보였다.
그만두라는 식의, 손바닥을 활짝 펴 보이는 서양식 제스쳐다.
“여기에서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설명은 어차피 1주일 후에 있을 청문회에서 원 없이 하면 됩니다. 그때까지 생각 정리하시고. 자.”
그리곤 이 협회장실에서 나가라는 손짓을 보였다.
협회장실밖에는 로버트 윤이 거느린 감찰부원들이 있었다.
최현민이 순순히 협회장실 밖으로 나가자 감찰부원들이 그를 안내하려 했고, 로버트 윤이 영어로 무어라 말한 뒤에 그들은 사라졌다.
[자신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데리고 가라고 하네요.]
그때, 히로시의 정령 오리가미가 슬쩍 일렀다.
이제 협회장실에 남은 건 나와 히로시. 그리고 로버트 윤이다.
“최현민 협회장은 이렇게 임시 직위 해제가 됐습니다. 미스터 윤, 당신이 원하던 대로 아닌가요?”
“그렇기야 한데, 호텔로는 왜 데리고 간 거예요?”
“영어를 할 줄 몰랐던 걸로 아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아들었습니다.”
“그냥…… 간단한 영어니까요.”
지금은 정령 덕에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 숨겼다.
후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니까.
로버트 윤은 곧장 답했다.
“간단합니다. 도주의 위험도 있고. 1주일 사이 또 무슨 비리를 저지를지 모르니, 저희가 보는 곳에서 가둬놓고 구속시키기 위함이니까요.”
“구속이면 교도소로 보내 버리면 되지 않나.”
솔직히 진심이기도 하다.
괜히 밖에 있으면 악의 근원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니까.
최현민은 완전히 인간계의 크루즈다.
“그건 청문회를 진행한 뒤. 영구 제명이 되었을 때 교도소로 보내질 겁니다.”
“아~”
세상일에는 엄연히 전부 순서가 있는 법.
따라서 청문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최현민을 쉽게 감시할 수 있는 호텔에 구속을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강만식은……?”
“같이 구속될 겁니다.”
“강만식은 길드장인데 그 길드는 어떻게 되죠?”
아무리 둥지를 떠나왔어도, 직원으로 지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SF 길드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어쩌긴요. 해체되겠죠.”
“오호…….”
“왜요? 그건.”
“그냥 궁금해서요.”
“아무튼…… 둘이 인사는 한 겁니까?”
이제 그는 나와 히로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네. 친해졌죠.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어떻게 되나 궁금하네요.”
“뭔데요?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뜻이요.”
“히로시가 게이트 3개를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예?”
정말 한껏 놀란 표정이다.
그리곤 로버트 윤은 히로시를 쳐다봤다.
히로시는 이미 서로의 대화를 알고 있어, 로버트 윤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곧장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데스!”
하지만 로버트 윤은 정령이 없는 몸.
히로시가 일본어로 답해도, 대충 의미를 짐작할 뿐, 정확한 뜻을 알 순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전적으로 나섰다.
어차피 정령 오리가미의 존재로 인해 히로시는 우리의 대화를 전부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그를 빼놓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이 추가로 생겨난 게이트.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묻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떻게 처리할 지라고 한다면…….”
“다 알면서 뭘 그럽니까? 어느 국가의 소유로 하느냐죠.”
“으음…… 조금 문제가 복잡해졌군요.”
“최현민 협회장도 구속이 됐으니, 이 일을 조율할 사람도 없어져서요?”
“그건 아니죠. 한국 협회장의 공백은 제가 협회장 대행으로 처리하라고, 중앙 협회에서 지시했습니다.”
“오……?”
중앙 협회의 권력이 엄청나다곤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협회장 하나를 날려 버린 것도 모자라 중앙 협회 사람을 대행으로 앉힐 수 있을 정도라니.
정말 세상 헌터계를 조율하는 곳다웠다.
“따라서 저와 일본 협회장이 조율하면 되지만, 이것도 중앙 협회에서 나서야겠군요.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전화 한 통화 하고 올 테니.”
그렇게 로버트 윤이 협회장실을 나가려고 할 때.
난 슬쩍 몸으로 출구를 막았다.
“뭡니까?”
“약속 하나하고 가시죠.”
“무슨 약속이요?”
“밖에 나가서 전화 통화하고 오는 일. 저희 사이에선 썩 유쾌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로버트 윤은 내가 몰래 엿본 것에 기분이 상했고.
반대로 나는 로버트 윤이 나를 이용할 생각이란 것이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결과만 놓고 봤을 땐.
서로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 다행이었지만, ‘그래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다시 그런 일을 만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어차피 그곳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고, 거의 모든 사정을 알려줬는데. 더 이용할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적어도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중앙 협회와의 통화가 꼭 필요하기에 지금 나가서 통화를 하고 오려는 듯했다.
그가 나갈 수 있게 슬쩍 출구를 비켜주었을 때, 로버트 윤은 내게 확실히 물었다.
“미스터 윤.”
“예.”
“저 헌터와 제약 없이 함께 있는 방법도 물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굳건한 의지를 담은 약속으로 보였다.
그렇게 로버트 윤은 밖으로 나갔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죠!”
“커피 좋아하니?”
“좋아하진 않지만, 주면 마시죠!”
“그래? 내가 직접 줄게.”
어차피 이 협회장실은 나름대로 자주 온 경험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지금은 주인이 사라진 공실.
커피가 어디 있는지 정도야. 어렵지 않게 알고 있으니, 내가 직접 커피를 탔다.
그렇게 서로 커피를 나눠마시길 약 20분 정도 뒤.
로버트 윤이 돌아왔다.
“uh umm…….”
뭔가 한껏 당황한 모습이다.
“왜 그러시죠, 불안하게?”
“그게…… 중앙 협회에서 정말 예외적인 결정을 해 버려서요.”
그 예외적인 결정이란 게 도대체 뭔데?
***
“……협회장님.”
“강만식 부장.”
최현민과 협회장과 강만식.
둘은 지방의 호텔로 도착한 상태다.
그리고 그들을 포위하듯 둘러싼 외국인들.
로버트 윤의 감찰부원들이었다.
호텔이라 하면 보통은 쉬러 온 개념이겠지만, 지금 이들에게는 호텔이 쉼터의 개념일까.
좌천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 이곳은 그들을 구속시키기 위한 장소였으니까.
심지어는 최현민이건 강만식이건.
마주하기 싫은 사람까지 이곳에 나온 상태다.
검은색의 사설 경호복을 입은 두 사람.
하난 장길수 팀장이고, 또 하난 영어 통역사였다.
“이야, 그 고귀하신 분들을 이렇게 보게 되고.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재밌다고 해야 할지.”
슬쩍, 장길수는 특히 최현민을 향한 도발의 한마디를 남겼다.
“…….”
“…….”
두 사람은 그저 뭐 씹은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감찰부원 두 명이 객실 출입 카드를 최현민과 강만식에게 각자 나눠주며 영어로 무어라 말했다.
영어를 모르는 둘은 그저 멀뚱히 출입 카드만 받았다.
“각자 나눠준 객실로 들어가고. 청문회가 열리는 1주일 뒤까지. 절대 나올 수 없답니다.”
장길수와 함께 온 통역사가 통역해 줬다.
“1주일간 나올 수 없다니.”
구속될 것을 알고 왔지만, 막상 이런 대접을 받으니 울컥한 강만식.
그가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나서려고 하면서,
“Hey.”
감찰부원 한 명이 강만식의 어깨를 잡으며 차분하게 경고했을 때였다.
덜컥!
“으윽……?”
그런데 감찰부원이 자신의 어깨에 손이 닿은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완전히 속박된 느낌이었다.
멀쩡히 눈을 뜨고 있는데도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심지어 호흡도 불편하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이 감찰부원의 능력일 거다.
“오호, 양키 능력이 강만식 정도는 가뿐하게 제압할 수 있나 보구먼. 한국에서 날고 긴다는 강만식인데, 허허허허! 세상은 역시 넓어~”
장길수는 손짓 한 방에 옴짝달싹 못하는 강만식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Yankees?”
그러나 양키라는 단어에 반응한 감찰부원.
그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장길수는 이에 능청스럽게 답했다.
“Oh, no! I love New York Yankees. I love baseball!”
양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그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미국의 프로 야구팀 뉴욕 양키스를 좋아해서 양키란 말을 쓴 거라고 둘러댔다.
물론, 감찰부원도 못 미더웠지만, 따질 상황은 아니기에 그렇게 넘어갔다.
그렇게 그들이 구속될 객실 앞에 도착한 뒤.
감찰부원은 영어로 무어라 말했다.
역시, 장길수와 함께 온 통역사가 그대로 한국어로 바꿔 주었다.
“식사는 알아서 넣어줄 테니 굶어 죽을 걱정 하지 말랍니다.”
정말 저렇게 말하진 않았을 거다, 어쩌면 통역사의 개인감정이 들어가 의역을 한 것 같았지만.
영어를 모르기에 눈 뜨고 당해야 했다.
“허허허! 굶어 죽을 걱정보단 사장될 걱정을 하셔야지! 역사적으로 폭군의 말년은 늘 초라한 법이거든.”
장길수는 허허실실 웃으며, 그들을 강제로 객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최현민의 순간이 되었을 때다.
“최현민. 전에도 느꼈는데, 너는 협회장실의 고귀한 집무 테이블이랑은 안 어울려.”
“……장길수!”
“넌 쇠창살이 어울리는 녀석이라고 전부터 생각했어.”
그 말을 남긴 직후.
쾅!
장길수는 매정하게 문을 닫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