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교통정리 (1)
“무슨 얘기?”
“뭐긴요, 제가 만든 이 게이트에 관해서죠.”
히로시 자신의 정령을 이용해 만든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다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나와 같은 목표를 가졌고, 나와 똑같이 정령까지 가지고 있는 몸이긴 하나.
게이트에 대한 소유권이라도 주장하고 싶은 걸까?
엄연히 나와 목적이 같기에 함께하는 동료 개념이지 내 부하가 아니기에 이런 것은 확실히 하자는 취지로 보였다.
“게이트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은?”
“정확히 말하면 물어보고 싶은 거죠.”
“뭘 물어본다는 거지?”
“이 게이트.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알고 있잖아요.”
“네 능력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아!”
히로시가 게이트 관련 능력자라는 건 일본과 한국 협회.
양국이 전부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히로시의 한국 방문 목적은 순전히 양국 협회에서 ‘정말 히로시의 능력이 사실인가?’를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나야 처음 히로시가 방문하게 됐을 때,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 사실이라고 여겼지만.
정작 한국 협회와 일본 협회는 확신이 없는 상태이기에 히로시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먼저 히로시만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히로시의 능력은 진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히로시가 가진 능력에서 나온 결과물 때문이다.
바로 게이트.
게이트라는 것은 곧 하나의 초월석과 같다.
게다가 지금 세상의 정서는 게이트를 갈구하는 상황.
이런 조건 속에서, 히로시의 능력이 사실이라면. 그의 능력을 토대로 나온 게이트의 소유권은 두 협회가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듯이 보였다.
“혹시, 네 능력으로 나온 게이트에 대한 소유권이나 이런 문제 때문인가?”
“네. 저희 일본 협회에서도 그런 상세한 합의 없이 먼저 저만 보냈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이상하다.
세계가 초월석을 갈구하는 상황에서.
초월석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가 나타났음에도 너무 안일하게 일을 처리한 느낌이다.
히로시만 혼자 온 게 가장 이상한 현상이다.
일본 협회도 히로시가 주장하는 능력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
동행한 일본 협회 직원 하나 없이 너무 순순히 히로시만 보낸 게 의아했다.
심지어 히로시의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필요한 능력인데,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할 일본 협회 직원이 없다?
그 정도로 일본 협회와 한국 협회가 모든 것을 공유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건 아니다.
적어도 SF 길드 직원 출신인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 왜 너 혼자만 온 거야? 이렇게 중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야.”
“한국 협회 측에서 건 조건이지요. 다른 사람 동행 없이 오직 저 혼자 와야 한다고요.”
그래, 그럼 그렇지.
히로시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최현민이 생각해둔 그림이 있었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히로시만 혼자 오라고 말한 게 아닌가?
“저도 제 능력을 이번에 처음 사용해 본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게이트를 당일에 뚝딱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거든요. 그것도 3개나.”
히로시가 자신의 정령인 오리가미를 이용하여 만든 게이트는 총 3개.
이로써 내 부서에 있는 게이트는 총 47개가 되었다.
이 중에서 엄연히 3개는 히로시의 것이다.
“저도 이걸 일본 협회에 보고할 건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일본 협회에서는 이렇게 주장할 거거든요?”
“뭐라고?”
“일본 국적을 가진 제가 만들었으니 일본 협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요. 적어도 제가 만든 게이트를 한해서는요.”
일리 있는 말이다.
억지도 아니다.
말 그대로 히로시의 능력으로 만든 게이트이니, 그의 것이 맞다.
그러나 과연 최현민이 이걸 받아들일까?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한국 협회는 다른 주장을 하겠지.”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최현민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최현민이 딴지를 걸 수 있는 결정적인 두 가지 사실.
첫째, 히로시가 게이트를 만든 장소가 한국이란 점.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전에 만국에서 통용된 상식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해당 국가가 보유한 던전은 해당 국가의 소유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규칙을 만든 곳은 중앙 협회.
그렇기에 모든 국가가 이 규칙을 따랐다.
그렇기에 최현민은 분명 히로시의 능력으로 게이트를 만든 건 알겠으나, 그 장소가 한국이기에 한국의 소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딴지를 걸 생각이었겠지.
게다가 결정적인 게 두 번째 이유에서다.
히로시가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이었던가?
실제 게이트가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있는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게이트를 가진 곳.
즉, 이 게이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히로시가 한국으로 올 생각도 못했을 것은 물론, 히로시의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 한국의 소유라고 주장할 게 뻔하다.
강만식을 내세워 나와 전쟁을 벌이고, 게이트 전부를 약탈하려고 했던 그이기에.
이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단, 일본 협회가 그렇다고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일본 협회는 세계적인 위상을 따지면, 한국 협회보다 미세하게 우위에 있다.
그런 국제적 불리함 속에서. 최현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진 않겠지만, 최현민은 여기까지 계산을 했을 거다.
그렇다면 남은 플랜 B로 넘어가겠지.
그 플랜 B의 정체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쉬운 문제다.
“한국에 있는 게이트 덕에 일본 헌터 히로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에게 이용료 개념으로 수수료는 내야 하는 게 타당한 것 아닌가?”라고.
내가 애써 만든 게이트를 마치 인심 쓰듯이, 자신이 멋대로 부리려는 생각이었다.
딱.
“그래, 이제야 이해가 되네.”
히로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최현민이 궁극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이 갔다.
“히로시. 혹시, 한국 협회에서 네 입국을 허가했을 때, 체류 기간이 어떻게 됐지?”
헌터가 아닌 일반인의 경우에도.
해외로 여행을 갈 때 마음대로 가던가?
아니다.
비자가 필요하고, 비자의 종류에 따라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진다.
“없어요. 무기한이었어요.”
“그럼, 그렇지.”
“일본 협회에서도 놀라더라고요. 이렇게 선뜻 무제한으로 허가해준 적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기한이면 과장 보태서, 시민권 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정말 히로시를 한국인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을 거다.
일본 협회가 눈 뜨고 코 베일 정도로 허술하지도 않고.
이 문제가 세계 뉴스 수면 위에 떠 오르면 한국 협회가 좋을 것 하나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무기한으로 줬을까?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한국 협회도 히로시란 헌터가 가진 능력을 처음 들었을 때, 이미 그가 정말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라고 짐작했을 거다.
왜냐, 이미 나라는 사람을 먼저 겪었으니까.
세상에는 게이트를 만드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게 오직 나 한 명만 있어야 한다는 법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 협회는 의도적으로 히로시를 오래 체류하도록 유도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게이트를 야금야금, 몰래 자신들이 빼돌리려는 속셈처럼 보였다.
“오리가미.”
내가 히로시의 정령을 불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알고 싶어서다.
[네.]
“결국엔 네가 만드는 게이트도. 장소를 벗어나서 할 순 없지?”
흑염룡의 경우, 내가 주로 오글거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여태까지 내가 만든 게이트는 흑염룡을 오글거리게 하고 난 그 장소에 생겼다.
태초에는 혼자 살던 좁은 원룸형 오피스텔.
그 뒤로는 이지은에게 잠시 빌려 받은 그녀의 건물.
그리고 마지막인 지금 이 순간에는.
신동원에게 받은 태강 디스플레이의 공장 부지.
전부 게이트가 생겨났던 곳이었다.
오리가미의 경우에도 그 공식을 그대로 따르냐는 질문이다.
[그렇죠? 단, 저 같은 경우엔 보셨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게이트의 조각을 모으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조각을 얻은 곳이. 네가 만드는 게이트가 생성되는 장소다, 이걸 말하고 싶은 거지?”
[얼굴도 잘생기신 분이 똑똑하시기까지 하네요.]
그런데 오리가미는 순간 내 정신이 아찔해지는 답을 했다.
[……비르야? 너 왜 유독 쟤랑 대화할 땐 깍듯하고 친절하니?]
흑염룡이 질투 같은 걸 느낄 리가 없고.
정말 순전히 궁금해서 물었다.
[그야. 제 스타일이니까요.]
[쟤 인간인데……?]
[어차피 정령과 인간 사이라서 이어질 수 없는 가련한 운명을 제가 몰라서 그런가요? 그냥 눈 호강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라고 해야죠?]
뭐…….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아이돌 좋아하는 마음과 같은 거다, 이런 뜻인가?
졸지에 내가 오리가미의 아이돌이 됐고, 오리가미는 단순히 그런 팬심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흑염룡은 더욱 의문이 깊어졌다.
[야. 쟤도 네 주인이랑 성향이 같잖아……? 그런데 왜 그래? 게이트 만드느라 힘들어서 정신도 살짝 놓은 거야? 그걸 그새 잊을 정도로 힘들었던 거야……?]
나와 히로시가 같은 성향인 것은 둘이 제일 싫어하는 사실.
덕후의 기질이 타고난 히로시.
그리고 중2병 만렙까지 도달해 본 적이 있는 나.
이렇게 같은 성향인데 어째서 나에게만 호의적인 차별을 벌이냐는 의문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잘 생겼으면 됐지.]
[……진짜 정신 놨구나. 언제부터 네가 인간 얼굴을 따졌다고.]
[오늘부터 그러기로 마음먹었어요.]
“오리가미 쨩……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난 주인인데……. 네가 직접 선택한 주인!”
히로시가 서운함을 표할 때.
[닥쳐. 내 생에서 가장 후회한 짓이니까. 왜 일본으로 갔을까~ 나도 한국에 있을걸.]
오리가미는 더욱 제 주인에게 상처를 주는 답을 뱉었다.
처음 이 둘의 관계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히로시와 정령 오리가미.
둘의 관계는 나와 흑염룡처럼 평소에는 수평 관계를 유지하다, 때때로 내가 권위적으로 변하는 것과 달리.
저 둘의 조합은 오히려 정령 오리가미가 주인으로 보일 정도다.
히로시가 착한 건지, 아니면 오리가미가 조금은 막무가내인지.
지금 상태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너무해…….”
히로시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서운함을 표했다.
난 그런 히로시의 등에 손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히로시는 내 손짓을 보고 위로를 받은 표정을 지었다.
“오해하지 마. 너 위로하려고 그런 거 아니야.”
“……형도 이젠 오리가미를 닮아가는 건가요.”
“그런 의도가 아니라. 너랑 오리가미 관계는 알아서 해결하고. 일단은 우리한테 처한 상황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 아니겠어?”
“……저희한테 처한 상황이라뇨?”
“지금 게이트를 둘러싸고 4명이나 연관되어 있잖아. 엄청 복잡하게. 마치…… 꽉 막힌 러쉬아워처럼.”
교통이 어지러운 상태다.
일본 협회장, 한국 협회장.
그리고 나와 히로시.
우리끼리 조율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어지러운 교통을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두 협회가 합의를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너희 나라에서는 그게 되겠지만, 한국에선 아니야. 다른 사람한테 교통정리를 맡겨야 해.”
“누구요?”
“누구긴. 못된 어린이 혼내주러 간 경찰 아저씨. 그 아저씨한테 이 건도 넘겨야지.”
이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닌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