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감찰부의 영향력 (4)
[히로시. 앞으로 다가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정령 오리가미가 제 주인에게 말한 뒤.
히로시는 성큼성큼,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게이트로 다가가는 과정 속에서도 히로시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싶었지만, 금세 이해가 됐다.
다른 것도 아닌, 히로시의 경우엔 나와 달리 게이트를 만드는 과정이 처음이란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저렇게 어색한 반응일 거다.
히로시가 게이트 앞으로 다가간 뒤.
그의 정령인 오리가미는 히로시의 손에 어떠한 기운을 불어넣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실제로 히로시의 두 손엔 눈에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어떤 기운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 손으로 게이트 틀에 가까이 가져다 대 봐.]
오리가미가 알려준 뒤.
히로시는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자 나도 처음 보는 현상이 일어났다.
히로시의 손에 있는 어떠한 기운이 마치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게이트 틀이 일부 떨어져 나와, 히로시의 손에 안착된 것이다.
떨어진 게이트 틀은 약 1/5.
그로 인해 회색 벽돌처럼 생긴 게이트 틀엔 쥐가 파먹은 것처럼 작은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그 공백은 이윽고 자가 치유 능력이라도 가졌는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틈이 메꿔지는 중이다.
“오오! 오리가미! 이건 어떤 현상이야?”
히로시는 자신이 손으로 만드는 과정인데도 신비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처음 해 보는 일이라 그런 거다.
그의 정령 오리가미는 설명을 시작했다.
[난 무형의 게이트틀을 가졌다고 보면 돼. 그 게이트 틀에 실제 게이트 틀을 일부분 떼와, 채우고. 그걸로 온전한 게이트 하나를 만드는 셈이지.]
오호라, 상당히 흥미로운 오리가미의 능력이다.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흔히 우리가 어릴 때 많이 해 먹었던 군것질거리 중 ‘만들어 먹는 000’이란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초콜릿이지.
초콜릿 모양을 만드는 틀과 액체 상태의 초콜릿이 들어 있고, 그걸 들에 부은 뒤 얼려 먹는 식품.
오리가미의 능력이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가진 게이트 틀은 무형이란 것.
그 무형의 틀에 실제 게이트가 가진 틀을 일부 떼와 채워 넣으면, 하나의 게이트가 완성이란 뜻이었다.
[내가 말했지? 통상적으로 게이트 5개 정도 있어야 하나를 새로 만들 수 있다고. 그런 원리 때문에 가능한 거야. 그 능력을 네 손에 잠시 이전한 상태기에, 네 손으로 직접 게이트 틀을 만지라고 한 거고.]
실제로 내가 미리 만들어둔 게이트 틀은 5/1 정도만 사라졌던 상태.
그래서 게이트 5개당 1개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오리가미. 네 능력이라면서 왜 내 손에다가 잠시 이전한 거야?”
히로시가 물었다.
[그야 우리가 인간계로 넘어오면서 걸린 제약. 주인을 통해서만 게이트를 만든다는 조건 때문이지. 나 혼자서는 못해.]
흑염룡에게도 내가 필요한 것처럼, 오리가미에게도 히로시가 필요한 이유가 다 있었다.
아무리 정령의 능력이라고 해도.
인간계에 있는 한, 주인을 통해서 만들 수 없는 제약 때문에 그런 것이다.
“역시! 시오스의 세계란! 신기하고 흥미로워!”
신이 난 것 같은 히로시는 곧장 다음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에 했던 행동과 똑같이, 게이트 틀을 떼 오려고 하는 순간.
이변의 현상이 일어났다.
현재 오리가미가 가진 무형의 틀에는 5/1만 채워진 상태.
그런데 두 번째 게이트 틀을 수집하는 순간, 나머지 5/4가 전부 채워진 것이다.
“오리가미, 이건 왜 이래? 어째서 갑자기 전부 다 채워진 거야?”
[어…… 이런 경우는…….]
오리가미는 몹시 당황한 반응이다.
그러고는 그녀의 시선은 이제 흑염룡에게 향했다.
[린느 님. 이거 분명…….]
[맞네! 저 게이트 안에 든 초월석은 A급 이상이네!]
인간계에서 초월석의 등급을 알파벳으로 정의한다.
S급부터 E급까지.
그런데 이 현상 하나만 보고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번엔 내가 오리가미에게 물었다.
“초월석 등급에 따라 네가 가진 게이트 틀이 채워지는 양이 다르단 뜻인가?”
[맞아요. 기본적으로 5/1만 채워지지만, 등급에 따라 5/3이 될지, 아니면 5/5인 전부가 될지 모르죠. 이제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자신의 주인인 히로시에게 말했다.
[히로시. 게이트 틀은 전부 모았으니까 그대로 펼쳐 봐.]
“펼쳐? 어떻게 펼치라는 거야?”
[인간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있잖아. 자세히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땐 어떻게 하는데? 확대하지? 그것과 똑같이 하라고.]
“아하!”
히로시는 두 손을 포갰다.
본래 스마트폰은 손 하나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이니 확대할 때 손가락만 이용하지만, 히로시 손에 있는 무형의 틀은 달랐다.
두 손을 포갠 뒤.
확대하는 행동처럼 히로시가 손을 활짝 펼치자.
쿵.
쿵.
두 개의 게이트가 생겨났다.
마치, 두 개의 원터치 텐트를 펼친 것처럼.
복잡한 것 없이 아주 간단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생겨난 게이트가 두 개라는 게 의문이다.
“오리가미! 게이트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나 생겼는데?!”
[그렇다면 방금 네가 만진 게이트는 S급 초월석을 품고 있다는 뜻이군!]
오히려 답은 흑염룡이 했다.
“그렇군. S급이면 게이트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새로 생긴다, 이건가?”
내가 물었다.
아주 이해하기 쉬운 공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E급의 경우엔 5/1. D급은 5/2. 이렇게 단계식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능력의 주인, 오리가미가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히로시 덕분에 게이트에 직접 들어가, 초월석을 확인하지 않아도.
해당 초월석의 등급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내게 생겼다는 건 확실하다.
“오, 이거 좋은데?”
난 슬쩍 히로시 옆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그는 흠칫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 미안. 한국에선 이런 행동은 친근감의 표시인데. 혹시 일본인인 너에게 하는 건 무례한 행동인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그런데 친근감의 표시요?!”
“응. 친.근.감.의 표시.”
일부러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며 답했다.
“갑자……기요?”
“어차피 너도 정령을 가진 사람이잖아. 나도 정령이 있고. 심지어 내 정령은 대정령. 무슨 말인지 알지?”
“…….”
침묵은 모르겠다는 뜻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렇게 답하면 바로 알아차릴 줄 알았더니…….
하는 수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서로 같은 편이라는 거. 아니야?”
“아! 그렇죠! 같은 편!”
“그러니까. 나와 함께 일하는 거, 어때?”
“오오, 이거 밀짚모자에 빨간 민소매를 입은 만화 주인공이 말하는, ‘내 동료가 되어라!’ 이런 건가요?”
“밀짚모자에 빨간 민소매……?”
“네! 해적으로 나오는!”
“아아…….”
그렇게 답하니까 바로 이해가 됐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예전에 자주 했던 대사를 지금 현실에서 자신이 그대로 듣는 중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정령 오리가미도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똑같이 만들고, 이름도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니.
예상했던 대로 상당한 애니메이션광인 듯하다.
뭐, 그렇게 따지면 나도 비슷하긴 하니 거부감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할까?
“하하! 재밌네! 그래! 내 동료가 되는 거지!”
“오오! 좋아요, 좋습니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끼리 뭉친다. 얼마나 멋진 이야기입니까!”
녀석, 성향도 그렇고.
성격도 유쾌한 게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하아…… 윤도원 같은 놈이 하나 더 생기면 피곤할 거 같은데…….]
단, 흑염룡만은 걱정이 가득한 반응이었다.
[린느 님……. 제가 지금이라도 주인을 바꿀까요?]
오리가미도 같은 성향 둘이 뭉치는 건 절대 사양인 듯하다.
[그걸 할 수만 있다면…… 얼른 그러라고 하고 싶은데.]
정말 흑염룡에겐 제약이란 게 없었으면, 당장 오리가미에게 그렇게 시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단, 자신들 마음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게 컸지만.
난 이제 오리가미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리가미. 네 능력의 조건 같은 건 없어?”
[당연히 있죠.]
“그 조건. 설명해 봐.”
[한 번 틀을 떼 온 게이트를 대상으로는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인, 재사용 대기 시간.
영어로 말하면 쿨 타임이 존재한단 뜻이다.
“얼마나? 그것도 등급별로 다른가?”
[네. 최하등급인 E급의 경우엔 12시간 정도만 지나면 되는데.]
여기에서부터 벌써 불길하다.
최하등급 쿨 타임이 12시간이라니.
그럼 최고 등급인 S급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최고 등급 S급의 경우엔 2주일은 지나야 합니다. A급은 1주일, B급은 5일. C급은 3일. D급은 하루 정도죠.]
S급이 2주일이라니…….
S급은 한 번에 두 개의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그 이점에 비해선 2주 쿨 타임이란 게 너무 길게 느껴졌다.
오히려 최하등급인 E급을 양산하고,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게 나았다.
“잠깐, 오리가미. 그럼 게이트틀 재료로 사용한 게이트가 S급이면, 네가 만드는 등급도 S급이거나, 그런 건 없어?”
[아쉽게도 전 린느 님처럼 대단한 정령이 아니기에, 재료로 삼은 게이트의 등급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무작위로 만들어지지만, B급이 한계죠.]
가성비가 별로 나오지 않는 제약이다.
하지만 흑염룡을 오글거리게 한다거나 하는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상태에서는 호신호나 다름이 없다.
“히힛, 새로운 게이트 만들어볼까?”
히로시가 세 번째 게이트로 다가가 오리가미의 능력을 그대로 이용했다.
이번에 무형의 틀에 채워진 양은 5/3.
C급 초월석을 가진 게이트란 뜻이었다.
그 뒤로 네 번째, 다섯 번째 게이트는 전부 최하급인 E급.
이번엔 새로운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3개의 게이트를 재료로 사용한 것이었다.
“이거 하면 할수록 재밌네?”
히로시도 처음 해 보는 능력에 흥미를 느낄 때.
어느덧 오리가미의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게 어디 아픈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입고 있는 드레스가 상당히 얇았기에, 점점 드레스가 땀에 젖어 피부에 착 달라붙는 중이었다.
[비르! 이제 쉬어!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린느가 그런 오리가미의 상태를 보고 말렸다.
“흑염룡. 혹시 말야…….”
오리가미의 능력을 오래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저런 안색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심지어 저런 안색.
난 전에 본 적이 있다.
오리가미가 아닌, 흑염룡도 저것과 비슷한 안색을 분명히 내게 보이지 않았던가?
[응, 왜?]
“오리가미의 능력을 사용할 때. 재료로 삼는 게이트의 등급에 따라 피로도가 다르거나…… 이런 게 있는 건가?”
재료로 삼은 게이트 등급에 영향을 받는 오리가미.
그런 정령이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진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S급 게이트를 재료로 삼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다.
[눈치가 빠르네? 맞아. 정령의 역량 따라 다룰 수 있는 등급의 초월석이 있는데, 비르가 만드는 게이트는 최대 B급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S급을 다뤄 버렸으니. 당연히 무리가 오지.]
이런…….
이래 가지곤 정말…….
S급 게이트를 사용하는 게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 아니잖아?
“뭐야, 그럼 오늘은 이 능력을 더 사용해선 안 된다는 거야? 오리가미?”
히로시가 묻자.
[손이나 내놔…….]
오리가미는 답도 하지 않고 히로시 손으로 잠시 이전시켰던 자신의 능력을 빼앗아 버렸다.
“잘됐네. 마침 형이랑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오리가미가 쉬면서 회복하는 동안 그 얘기 하면 되겠다.”
그때 히로시가 말했다.
여태껏 한없이 천진난만했지만, 지금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뭐야, 괜히 불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