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감찰부의 영향력 (3)
“그거 어렵지 않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난 곧장 무전기를 통해 장길수를 찾았다.
“아아, 팀장님. 워프 능력자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네, 고객님. 혹시,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까 봤던 분 아시죠? 중앙 협회 감찰부장.”
-네!
“이분들이 거사를 위해 협회로 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긴 지방이니 협회까진 너무 멀지 않습니까? 워프로 신속하고도 안전하게 모셔야 할 것 같네요.”
-혼자 간답니까? 부원들은 어떻게 하고요?
“부원들도 데리고 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10분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데리고 오겠습니다.
장길수 쪽도 일사천리로 시작됐다.
“아, 참. 미스터 윤.”
그러던 중 뭔가 내게 다급하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 듯한 로버트 윤이다.
“네.”
“방금 무전한 사람이 장길수 맞죠? 목소리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요?”
“장길수 그 사람도 이번 집행에 증인으로 참석할 수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증인……이요?”
집행이라는 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모르나, 장길수가 증인으로 참석하는 일이 필요한 듯했다.
난 강만식과 임동식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로버트 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는 후임 협회장 없으면 집행도 못한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렇게 의욕이 앞서요? 정말 할 생각인 거예요?”
“그럼 장난으로 그러겠습니까? 이런 걸 장난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눈치 있는 로버트 윤은 내게 답할 때도 귓속말로 답했다.
“아니, 왜 갑자기 태도가 그렇게 돌변한 거예요?”
“저 강만식이라는 사람 실제로 보니까 놔두면 위험하겠다란 생각이 들어서요. 사람도 죽인 놈 아닙니까. 저를 처음 보는데도 무조건 자신보다 밑의 사람이라고 여기는 그 태도 때문입니다.”
난 평소에 강만식의 성격 문제라고 여겼지만, 로버트 윤은 다른 무언가를 본 듯하다.
“자~ 그럼~”
이제 로버트 윤은 귓속말이 아닌 모두에게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나와 히로시를 가리켰다.
“두 분은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라고 했죠? 통성명이라도 하고 있으세요. 전 먼저 처리할 일이 있으니 두 분부터 먼저 친해지시죠. 그리고 미스터 윤.”
“네.”
“당신이 저 일본 헌터에게 저에 대한 것을 미리 설명해 주시죠. 그리고 당신에게 한 제안. 저 헌터에게도 적용되니 그것까지 전부 설명해 주시고요.”
로버트 윤은 먼저 협회로 가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할 테니, 내가 대신하여 모든 걸 설명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렇게 무리한 요청도 아니다.
어차피 나도 히로시라는 정령을 가진 헌터는 처음 본 사이며.
로버트 윤의 말대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당신들은 나 따라오고.”
로버트 윤이 직접 나서서 강만식과 임동식을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이제 내 부서 사무실에는 나와 히로시.
그리고 각자의 정령인 흑염룡과 오리가미만 남게 되었다.
“음~ 어색하네요?”
히로시가 먼저 말문을 텄다.
“그런데 아까 둘이 무슨 얘기를 했던 거예요? 중앙 협회 사람이라는 로버트 윤이랑이요.”
“아, 일단…… 어차피 나한테 형이라고 부른다고 했으니. 나도 말 편하게 해도 될까?”
“얼마든지요!”
이상하게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말을 편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얘기가 길어. 잘 들어.”
난 곧장 히로시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줬다.
일단 첫 번째로는 로버트 윤에게 우리 시오스와 크루즈의 관계를 설명했고.
그 설명을 들은 뒤, 그들은 게이트를 보존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따라서 일단은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진 아군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 뒤.
두 번째로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난 여태껏 홀로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그 과정에서 협회장과 전쟁을 벌이던 중이었단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국 협회장은 이미 감찰부의 감찰 대상이 될 정도로 비리가 심했던 인물.
로버트 윤이 나서서 그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뜻을 전했을 때였다.
“어쩐지!”
히로시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다.
“뭐야? 어쩐지라니? 알고 있었다는 거야?”
“아니요. 제가 한국에 막 왔을 때 어쩐지 이상하다고 느낀 게 있었어요. 협회 사람들이 정령의 주인인 형을 너무 적대한다는 태도들이었거든요.”
“……그래? 그런 것도 눈치챘어?”
“오리가미가 도와줬어요. 정령 오리가미는 인류의 모든 언어를 알고 있고, 강만식과 임동식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제게 몰래 알려줬거든요.”
그 말을 들은 직후, 난 흑염룡을 쳐다봤다.
상당히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뭐야? 그 시선은.]
“흑염룡. 뭔가 이상하지 않냐?”
[뭐가.]
“대정령이라는 너는 왜 다른 언어를 몰라?”
대표적으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 내가 미국 협회에 메일을 보내려고 했을 때 흑염룡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
그때 분명 영어 모른다고 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로버트 윤이 영어로 말할 때도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흑염룡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정령은 한국어로 말하는 임동식과 강만식의 대화를 곧장 알아들었는데, 정령의 지도자인 대정령 흑염룡에겐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부하보다 무능력한 지도자라고 해도 변명 없을 거다.
[아……! 그건 제가 설명 드릴까요?]
그런데 난 흑염룡에게 물었는데, 도리어 히로시의 정령인 오리가미가 먼저 나섰다.
마치, 흑염룡의 대변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난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름이 두 개라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오리가미란 이름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저 멍청한 주인 놈이 제 의견도 안 붙고 멋대로 붙인 거니까.]
정말 진심으로 오리가미란 이름에 깊은 혐오감을 표출했다.
“왜! 오리가미란 이름 예쁘지 않아?!”
히로시가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설명하려 했지만.
[응. 너한테만 예뻐. 나한테는 아니야.]
오리가미는 완강한 태도였다.
하는 수 없이, 그런 정령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내가 친절하게 물었다.
“……그럼 비르라고 부를까?”
[야! 윤도원! 그건 아니지! 너도 내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 흑염룡이라고 부르고 있잖아! 사람 차별하냐?!]
그러나 이번엔 흑염룡이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대정령인 자신에게 얄짤도 없는 모습 보였으면서, 왜 일반 정령인 오리가미에겐 인자한 태도를 보이냐는 지적이다.
“에휴, 무슨 내가 유치원 교사도 아니고.”
정령 하나 기분을 맞춰주려면 다른 정령이 딴지를 걸고.
완전히 유치원이 따로 없었다.
졸지에 내 부서가 정령 유치원이 된 것 같았다.
“그럼 그냥 오리가미라고 부르지.”
이런 논쟁은 오직 결단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난 선고하듯이 말했다.
[하아…….]
오리가미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오리가미. 설명해 준다는 게 뭐야?”
[제가 알기론 린느 님은 이 한국을 떠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그렇죠? 린느 님.]
[맞아! 인간들 시간으로 15년 전. 내가 저놈을 주인으로 점찍었으니 15년 내내 한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 되지. 가끔 던전에서 다른 정령들 만난 거 빼곤 한국을 벗어나질 않았단 거지~]
[정령이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하기 위해선 하나의 조건이 필요해요.]
“조건? 어떤 조건이지?”
[음……. 일종의 능력 같은 건데요. 해당 국가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선 정해진 시간 동안 해당 언어를 듣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 정령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죠.]
무조건 정령이라고 모든 언어를 습득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게다가 흑염룡의 경우엔 인간들의 시간으로 15년 동안이나 한국에 있었으니, 한국어만 할 줄 아는 것도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리가미 너는 세계를 비교적 자유롭게 떠돌아다녔다는 건가?”
[네. 전 린느 님과 달리 세계를 돌아다녔으니까요.]
[아! 맞아! 비르, 너 바다가 좋다고 호주로 갔잖아? 그런데 어떻게 일본에서 주인을 정한 거야?]
흑염룡의 질문에 오리가미는 침울한 표정으로 변했다.
[호주에 처음 도착해서 곧장 바다에 눌러앉았죠. 이런 식으로.]
오리가미는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는 아주 느긋하고 느린 속도로 흘러 다녔다.
아마도 이런 설명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것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
바닷물 표면에 떠 있는 채로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의 느낌을 온몸으로 만끽했다는 설명일 것이다.
[아무튼. 바다 느낌에 취한 뒤, 눈을 떠 보니까 호주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어요.]
[……설마, 호주에서 일본까지 그렇게 흘러갔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
[그랬습니다.]
정말 얼마나 바다 느낌이 좋으면 그 먼 거리를 이동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신기하면서도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가 문제였어요. 던전이 완전 정복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렇다면 히로시를 주인으로 섬기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흑염룡과 15년 만에 재회를 한 시점과 비슷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떡해요? 던전이 사라졌으니 저희가 모일 곳도 없어졌고. 일본에서 주인을 찾아 나섰고, 저놈을 섬기게 된 거죠.]
“잠깐만.”
설명 도중, 의문점이 들었기에 내가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듣기엔 네가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선 이미 만들어진 다른 게이트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요.]
“그런데…… 일본에서 히로시를 주인으로 섬겨도 게이트를 만들 수 없는 상태였잖아? 지금까지 설명을 들으면 마치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서 히로시를 주인으로 섬겼다는 것 같아서.”
[아니죠. 그게 오히려 제가 히로시를 주인으로 선택한 이유죠.]
“크큭, 오리가미가 말은 저렇게 해도 저랑 엄청 잘 맞아요! 제가 저렇게 직접 염색해줄 때도 말은 사납게 하면서 가만히 있었거든요!”
히로시가 천진난만하게 설명을 덧붙일 때.
[좀 닥쳐줄래? 내가 지금 설명하고 있잖아.]
“…….”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압적인 정령의 말투다.
보통 주인에겐 욕을 하는 경우가 없을 텐데…….
오리가미는 평소에도 저런 욕을 자주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 그래……. 궁금한데? 왜 그게 히로시를 주인으로 섬긴 이유인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오리가미에게 물었다.
[알고 계시다시피. 전 이미 만들어진 게이트가 없으면, 게이트를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정령은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 있죠. 어떨 때인지 잘 아시죠?]
“……미국 네바다주. 51구역에서 벌어진 사고처럼?”
[네. 그걸 기대하기 위해 히로시를 주인으로 섬긴 거예요. 저놈이라면. 제 이성이 끊길 정도로 만들 수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게이트를 만들었다면. 일본에서 먼저 사고가 터졌겠네?”
[맞아요. 그래서 저도 생각이 짧았단 것을 나중에 깨닫고 그 방법까진 사용하지 않을 것뿐이에요. 그땐 정황도 없고 절박하다 보니 그런 선택을 했던 거고요.]
자칫 잘못하면 세계의 모든 집중이 일본에 쏠렸을 상황이 벌어졌을 거다.
“그래, 대충 이해되네. 그럼……. 보여줄 수 있어?”
[보여주다니, 뭘요?]
“네 능력은 이미 있는 게이트를 이용하면, 수를 늘릴 수 있다고 했잖아. 그거 보여줄 수 있냐고.”
[간만에 힘 좀 쓰겠군요.]
오리가미는 자신만만한 답변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