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감찰부의 영향력 (1)
“네. 제가 무려 중앙 협회 소속 감찰부장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거짓말해 봤자 제 명에 못 살지.”
“우린 사람을 정말 죽이거나 하는 야만적인 곳이 아닙니다!”
“그냥 말이 그렇단 거예요. 어쨌든, 보호해줄 수 있습니까? 지금 한국엔 저 게이트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너무 많은데. 심지어 일본 헌터를 데리고 오는 헌터도. 저와 한바탕 했던 그놈입니다.”
“이름이……. 강만sick?”
“강만식이라고 했었죠.”
“발음이 어렵군요. 그 이름을 알고는 있었으나…… 관리부장이란 직급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요.”
“네. 협회장이 개인적으로 만든 부서란 것만 알고 있습니다.”
“흐음…… 그런 것도 위반했다라.”
그런데 갑자기 로버트 윤의 분위기가 변했다.
“처음부터 가볍게 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집행을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집행이요?”
“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원래 한국을 감찰하던 중이었다고요. 그것도 한국 협회장 최현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요.”
그래, 드디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구나.
거기에다가 내 고자질까지 추가가 됐으니, 절대 묵인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였다.
“저도 그 소문은 들었습니다. 현재 한국 협회장의 협회장 당선 과정에서 상당한 의문점들이 있었다고. 그래서 감찰을 시작한 거라고.”
“역시…… 한국은 소식이 빠르군요. 우리가 최대한 기밀을 유지했는데도, 그 사실이 어떻게 퍼졌답니까?”
“뭐, 한국만의 특별함이라고 해 두죠.”
나도 권다정에게서 들었을 뿐이기에, 정확히 누구로 인해 퍼진 소문인지는 모르니 말을 아꼈다.
그러던 중, 로버트 윤이 중얼거렸다.
“흐음…… 협회장의 독자적인 부서 설립은 물론, 운용까지. 이건 금기사항인데…….”
그러고 보니.
로버트 윤과 처음 내가 만났을 때.
내 직책을 소개할 때 그는 상당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저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부서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런 독자적인 부서가 있으면 안 됐던 것이다.
“그렇단 것은……. 저도 모르게 협회장 비리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런 뜻인가요?”
“알고 그랬겠습니까? 말 들어보니 저 게이트들을 지키기 위해서 내린 선택으로 보이는데.”
“맞습니다.”
이건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
거짓말 아니다.
“그러니 미스터 윤은 잘못 없죠.”
“그런데 궁금합니다. 독자적인 부서 설립, 운용이 금기 항이라는 것에 대해서요.”
“말 그대로입니다. 중앙 협회에서는 각국 협회의 부서 종류가 정해져 있어요. 만일, 해당 국가가 가진 특수성 때문에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중앙 협회에 허락을 받아야 하죠.”
중앙 협회가 그렇게 넓은 범위까지 관여하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최현민이 개인적으로 만들고, 운용한 부서는 총 두 개.
강만식의 관리부.
나의 양산부.
이 부서의 존재 자체를 중앙 협회에 보고도 하지 않고 멋대로 운영했다는 뜻이 됐다.
“게다가 아까 설명 중에. 헌터 교도소에 수감된 자를 멋대로 석방시키고, 범죄에 가담했다고도 하는데……. 사실입니까?”
정훈섭 얘기다.
로버트 윤은 내 게이트를 빼앗으려고 한 짓을 명백히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다.
“네. 사실입니다.”
“비리의 정도가…… 심각하군요. 우리도 그간 비리의 정황은 포착했지만, 그저 개인적인 일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완전한 오판이군요. 이렇게 되면…… 우리가 직접 관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직접 관여를 하겠단 뜻은?”
“어차피 당신을 51구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선 통보라도 해야 했는데. 이젠 통보를 넘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최현민 협회장을 제명시켜야 할 상황으로 보이거든요.”
오호라?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기쁜 표정을 지었던 것인가.
그는 내 표정을 지적했다.
“하지만 제명이라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닙니다. 엄연히 한 국가의 협회장을 중앙 협회가 직접 나서서 제명 시키는 일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죠.”
“반대로 얘기하면, 그 정도로 최현민 협회장 비리의 정도가 심한 것 아닙니까.”
“뭐, 그렇죠……. 이건 단순 비리가 아닌 부패라고 봐야 하니까.”
“어차피 혼자서 감당도 못할 잘못을 저질렀는데, 뭐가 간단하지 않단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최현민 협회장?
이대로 제명되길 나도 원한다.
그 협회장 때문에 내가 갖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게는 절대 도움이 되는 사람도 아니고, 나아가 한국 협회 이미지만 더더욱 실추시키는 인물이니 여러 요소를 따졌을 때.
무조건적으로 제명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긴요. 제가 알기로는 최현민 협회장을 당장 제명한다고 해도. 누굴 협회장으로 임명합니까? 그런 적임자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걸 중앙 협회가 직접 관여해야 한단 말입니까?”
“당연히 우리가 나서서 제명하게 되면, 적임자를 선별하는 것도 직접 해야죠? 공정하게.”
뭐가 공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앙 협회가 나서서 제명하게 될 경우 그 과정도 필요하단 뜻이다.
그러나 로버트 윤의 말이 맞다.
최현민 협회장을 제명해도. 후임 협회장 후보가 정해진 상태가 아니기에, 무턱대고 진행할 수 없단 뜻이 됐다.
게다가 중앙 협회가 직접 나서서 제명한 적도 없다고 하니, 로버트 윤도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듯했다.
“그래도.”
내가 물었다.
중앙 협회쯤이나 되는 거대한 기관이면.
아무리 경험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난색만 표하진 않을 거니까.
“메뉴얼이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이런 경우에는 누구를 적임자로 한다 등등이요.”
“본래엔 전임 협회장에게 재임을 시킵니다. 하지만 전임 협회장은 교도소에 수감 중.”
“그건…… 최현민 협회장이 의도한 거라고 하던데? 각종 오명을 씌워 보낸 거라고.”
“저희도 알고는 있죠. 하지만 그의 무고함을 입증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고, 그때까지 현 한국 협회장인 최현민을 제명시킬 수 없는 거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현민은 이런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전 협회장을 구속시켜 버린 것일까?
왜인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란 편견 때문이었다.
로버트 윤의 설명은 이어졌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협회장의 아들 이현수라는 헌터도 충분히 협회장이 될 수 있는 지지력을 가졌으나, 죽어 버렸지 않습니까?”
“왜 죽었는지는 모르고요?”
“알죠. 최현민 협회장이랑 강만식 그자가 저지른 일이라고요. 단, 우리는 강만식이 관리부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 몰랐을 뿐입니다.”
“아니……. 알고 있는데 왜 가만히 둔 거예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다 알면서 어떻게 묵인하고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말로는 정의로운 척하면서, 실제 속내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던전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보니 우리도 증거란 게 없고, 함부로 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역시, 최현민이 일부러 수를 쓴 것 같았다.
던전이란 곳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
CCTV란 게 있을 리 없으니, 아무리 중앙 협회라고 해도 그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는 거다.
“어쨌든, 후임 협회장만 정해지면. 당장 그 집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네. 최현민 협회장의 죄목은 상당히 많긴 하지만, 당신에게 저지른 일만으로도 제명하기엔 충분하니까요.”
게이트가 귀한 이 시대에.
오히려 게이트 능력자인 나를 무력을 이용해 살의를 갖고 대했다는 것.
게다가 그 과정에서 교도소 수감자까지 꺼내오는 만행이 결정적으로 보였다.
그간 그가 저지른 비리들은 그저 애교 수준이고, 진짜는 내게 저질렀던 위험한 행동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혹시 몰라서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런데 전임 협회장이 재임할 수 없는 상태라면. 당연히 최현민 협회장이 협회장 선거에 나섰을 당시, 경쟁 상대였던 자 중에서 새로운 협회장을 선출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게 상식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당시엔 후보가 겨우 2명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그 후보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지금은 일반인 신분을 지내고 있죠.”
“그래요, 그 사람이 궁금하더군요. 최현민 협회장과는 달리 전임 협회장이 지지할 정도로 꽤 명망 있던 사람이라고 하던데.”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데.
이건 또 왜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때.
“네. 당연히 모르죠. 우리 중앙 협회는 헌터 협회입니다. 대상이 이제 헌터가 아니라면 우리가 별도로 조사를 하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아요. 그것이 원칙이니까요.”
로버트 윤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 후보. 이미 본 적 있잖아요?”
“제가요?”
“네. 입구 검문소에서. 도깨비 소환했을 때 당신이 직접 없애 버렸으면서.”
“……그 사람이?”
“최현민 협회장이 후보로 나섰을 당시 경쟁 후보였던 장길수입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아니 멀쩡히 헌터 생활 계속하면 되는 걸, 왜 갑자기 은퇴하고 개인 경호원이 됐답니까?”
나도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을 해주려 할 때.
-치이이익.
-제1검문소. 강만식이 협회 외교부장 임동식과 일본인 헌터 1명과 동행했습니다. 듣기엔 이미 허가받았다는데, 사실입니까?
무전이 날아들었다.
이는 내게 보내는 무전이다.
난 곧장 무전기를 들고 답했다.
“네. 사실이니까 들여보내세요.”
-……정말 괜찮은 겁니까?
검문소에 있는 경호팀들도 강만식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네~ 든든한 방패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들여보내세요.”
내가 말한 든든한 방패란 로버트 윤이었으니까.
어쨌든 로버트 윤은 나를 당장 도와줄 사람인 건 확실하다.
-알겠습니다. 출입시키겠습니다.
무전은 그렇게 끝이 나고.
난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은퇴는 기본적으로 번복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정황상 장길수의 은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최현민과 후보 경쟁 중 돌연 은퇴였으니,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지요. 만약…….”
“만약?”
“저희가 정황을 전부 파악한 뒤에도 본인이 은퇴를 번복할 의지가 있다면. 중앙 협회가 나서서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오호, 이거 역시.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희망을 본 듯하다.
“그럼 그것도 생각하시면서. 일단은 일본 헌터를 기다리죠. 그동안 우리는 51구역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해 볼까요? 제가 말한 것도 잊지 마시고요.”
“말을 한 게 하도 많아서 그런데. 뭘 잊지 말라는 거죠?”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방법.”
“아~ 그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어려운 거 아니니까.”
저렇게 확신에 찬 답을 하니 나도 기대가 됐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
우리 부서로 3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강만식, 협회 외교부장 임동식.
마지막으로 문제의 그 일본 헌터.
일본 헌터가 들어선 순간.
[너 뭐야?! 누구야?! 이렇게 야하게 하고 다니는 녀석. 없었는데? 얼굴도 묘하게 낯이 익으면서도 낯선데……?]
흑염룡이 일본 헌터 옆에 있는 정령에게 물었다.
그런데 야하게?
그 말을 들은 직후, 나도 정령의 모습을 살폈다.
음……. 왜 저런 말을 한 것인지 잘 알겠다. 내가 봐도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부끄러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