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네바다주 (2)
“정령을 데리고 가겠다니요? 그건 허락할 수 없는데요?”
그러나 로버트 윤은 내 의견을 완전히 차단하는 답변을 했다.
자신의 상관인 중앙 협회 간부에게 허락을 받는 전화를 할 생각도 없었다.
“왜요?”
“정령이 게이트를 만든다면서요? 엄연히 51구역의 소유 정령인데. 그런 정령을 함부로 넘길 수 없죠.”
그래, 자신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정령을 다루고 있었다는 걸을 깨달으니 저런 반응도 절대 무리가 아니지만.
이들이 간과한 사실 하나가 있었다.
“저기요, 윤 부장님. 뭔가 하나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뭐죠?”
“정령은 물건이 아니에요. 내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새 잊었어요? 당신이 내 정령 가슴 찔러서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다시 생각하니까 열받네.]
“……그건 미안합니다. 실수였어요.”
어차피 사과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말한 것이다.
“정령은 순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주인을 택합니다. 그런데 51구역에 있는 그 정령. 온 지 몇 년이나 지났다면서요?”
“……예.”
“그렇다는 뜻은 그곳엔 정령이 주인으로 섬기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단 겁니다. 주인을 섬기지 않으면 게이트도 무슨 짓을 해도 만들지 않죠.”
“그 말은…… 우리 51구역 연구소에 있는 사람 중엔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네. 우리처럼 생각을 하고, 말도 하며 감정을 가졌다고요. AI 같은 게 아니에요. 우리 마음대로 다룰 수 없어요. 그러니 그거까지 약속하시죠. 저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건 허락할 테니, 정령은 제가 데리고 갑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정령은 주인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 정령이 당신을 주인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엔. 어떻게 할 겁니까?”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나도 덩달아 궁금해진 하나가 있었다.
‘흑염룡. 혹시 말야. 정령이 같은 주인을 섬길 수 없다거나, 이런 제약이 있나?’
난 이미 흑염룡의 주인인 상태.
정령이 있는데 새로운 정령이 나를 주인으로 섬기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딴 거 없는데? 그렇게 귀찮은 제약 따위 없어. 그리고 내가 이미 너한테 붙은 상태인데, 그 정령이 너를 주인으로 섬기기 싫겠어? 나 대정령이라니까?]
흑염룡의 명쾌한 답이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해당 정령이 내게 오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좋습니다, 정령이 저를 주인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깔끔하게 포기하지요.”
단, 이 사실은 로버트 윤에게 철저하게 숨겼다.
어차피 저쪽도 나를 이용할 생각인데, 그걸 알고도 고급 정보를 넙죽 가져다줄 생각은 없다.
내가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손해 볼 장사는 할 필요 없다.
“분명히. 미스터 윤, 당신이 동의를 한 일입니다.”
“적어도 한 입으로 두 말은 안 합니다.”
“그래요, 저도 좋습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알려주실까요?”
“뭘요?”
“저를 이용하겠다는 그 말. 어떻게 이용할 생각인지요.”
“……어차피, 이것도 허락받은 것이니. 잘 들으세요.”
그렇게 로버트 윤은 나를 이용하겠다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51구역에는 프로젝트 네이션이란 게 있습니다. 연구진이 만든 혁신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죠.”
헌터, 몬스터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됐다곤 했다.
그렇다면 내게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프로젝트 네이션이란 것도.
실제 성과를 보인 실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프로젝트 네이션이란 게. 뭘 하는 건데요?”
“쉽게 얘기하면. 헌터의 능력을 별도의 훈련과 같은 과정이 없어도, 레벨을 올리거나. 해당 헌터의 능력을 장치에 저장하는 겁니다. 초월석을 이용한 방법을 찾은 거죠.”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사기적인 장치로 보이지만.
[뭐야? 그거 그냥 초월석을 이용한 거잖아?]
흑염룡은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리고 로버트 윤의 답변 중 내게 가장 와닿은 것은 역시나.
능력을 저장하는 형태로도 사용할 수 있었단 거다.
그렇다면 결국, 그 기능을 이용해 내가 게이트를 만드는 그 능력을 저장하고, 저들이 사용하고 싶을 때 사용하겠단 뜻이 아닌가?
피식.
나도 모르게 상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왜…… 그렇게 웃으시죠?”
“아, 아니요. 그냥 신기해서요.”
로버트 윤에게 모든 걸 설명할 필요가 있던가.
역시 이것도 의도는 숨겼다.
‘흑염룡아. 결국 나를 이용하겠다는 게, 내가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을 저장해서 저들이 마음대로 쓰겠다는 거 아니야.’
[멍청하네……. 역시, 전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 네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거지.]
흑염룡도 나와 같은 반응이다.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
엄연히 말하면, 내가 가진 능력이 아니다.
정령인 흑염룡이 가진 능력이고.
난 단순히 그런 흑염룡의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도록 옆에서 거드는 입장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가진 능력이 아니기에, 능력을 저장하는 형태로 나를 이용하고 싶었겠지만, 어차피 적용되지 않는단 뜻이다.
‘그런데 궁금하네? 능력의 레벨을 장치를 이용해서 올리는 방식이나. 저장한다는 방식.’
[보나 마나 뻔해. ‘성장’ 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월석을 이용한 거고. 능력을 저장하는 형태는 ‘추출’ 능력의 다른 활용법이야. 원래부터 초월석 하나만 있어도 사용할 수 있었던 능력이라고.]
그래도 혹시나 싶어, 로버트 윤에게 물었다.
“분명 그 네이션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초월석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능력을 저장하는 형태도. 초월석을 그 장치에 넣어서 이용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연히 제가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을 저장하겠단 소리로 들리는데.”
이번에는 답은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뭐, 좋아요. 그렇게 이용하는 거. 마음대로 하세요.”
어디 해 봐라.
제대로 작동될 리가 있나.
애초에 내가 가진 능력이 아닌데, 아무리 용을 써도 저들이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을 건 확실하다.
그리고 저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내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나 할까?
기계가 이상해진 거라고 우기면 된다.
어차피 저들은 진실을 모르니 정말 기계가 이상해진 거라고 여길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한테는 절대 손해를 볼 장사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 하나가 있죠?”
로버트 윤에게 말했다.
“어떤 문제요?”
“프로젝트 네이션인가 뭐시기인가. 그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선 초월석이 필요하다면서요? 51구역에는 초월석이 있나 보네요?”
“…….”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로버트 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그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향했다.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게이트.
실수로 흑염룡의 가슴을 찔러 버리면서 생겨난 그 게이트다.
“에이~ 설마~”
내가 일부러 비꼬듯이 말했다.
설마 저걸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 그런 말 할 거 아니잖아요? 그렇죠?
라는 노골적인 뜻을 담은 말이었지만.
“어차피 이거 제 덕이 만들게 된 거 아닌가요?”
“억지 부리지 마시죠. 엄연히 제 소유입니다.”
자, 이로써 확실해졌다.
51구역에는 초월석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
따라서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하기 위한 초월석을 내게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 프로젝트 네이션을 가동하기 위한 초월석이 필요한 상태다. 그것 역시, 저를 이용하겠다는 말에 포함이 되어 있는 거겠죠? 제게서 초월석을 얻을 생각을 했을 거니까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초월석을 선뜻 주겠다는 뜻입니까?”
정말 이 말을 그토록 기다렸다는 것인가?
웬일로 차분한 로버트 윤이 성급한 말을 먼저 뱉었다.
“아니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시죠.”
“말씀하시죠.”
“일본 헌터가 곧 이쪽으로 올 겁니다.”
“일본 헌터?”
“네. 그 헌터도 저와 같은 게이트 능력자라던데. 같이 보시겠어요? 일본 헌터가 저를 만나고 싶어 해서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던데.”
이제 곧 강만식이 데리고 올 의문의 일본 헌터.
게다가 일본 헌터도 정령을 데리고 있는 몸.
그것만 보더라도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란 건 확실하다.
그렇기에 일본 헌터도 51구역에 대한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침 중앙 협회 소속 감찰부장 로버트 윤이 와 있는 상태이니 온 김에 모든 걸 처리할 생각이다.
“궁금한데요? 그 일본 헌터도 게이트 능력자라면…….”
“네, 그 헌터에게도 정령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상지도 못한 새로운 인물이군요. 그런데 저와 같이 보자는 이유는?”
“그 일본 헌터. 저랑 얼굴도 본 적 없으며, 이름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 목적은 같죠. 게이트를 가능한 많이 만들고, 그것을 지키며 크루즈의 침범을 막는 일.”
“일본 헌터는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미스터 윤 당신과 만나려고 한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오늘 알게 된 사람이니까요.”
“아무튼, 제게 그 말을 한 이유는요?”
“중앙 협회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국적이 달라도 구애받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 없습니까?”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
헌터라는 신분은 특수하기에 제약이 많이 걸린다.
일단 일본 헌터와 나는 가진 능력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국적이 다르다.
우리가 만나기 위해 매번 양국의 협회에서 허가를 내주는 귀찮은 절차 없이.
아무런 제약 없이 같은 국적의 사람인 것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 없냐는 질문이었다.
그의 답변을 강조하기 위해 슬쩍 떠봤다.
“어차피 게이트 능력자가 둘이나 있으면 그쪽만 좋은 거 아닙니까? 프로젝트 네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둘로 늘어난 것이며, 게이트를 만드는 일에도 훨씬 수월하게 되는 건데.”
“그거야 그렇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중앙 협회가 나서서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보호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누군가에게 위협이라도 받고 있습니까?”
암요, 받고 있고 말고요.
아주 피곤해 죽겠다니까요?
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니, 이런 인류의 구원자를 위협하는 정신 나간 인간이 있다니. 도대체 누굽니까? 협회는? 이 사실을 압니까?”
“그 협회라는 곳이 저를 위협하는 자들인데요?”
“……예?”
로버트 윤은 정말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음, 졸지에 고자질을 하게 됐네. 그것도 한국 감찰부장님한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알 게 뭐야?
어차피 나도 최현민, 강만식 때문에 피곤해 죽겠는데.
이참에 잡초들을 싸그리 뽑아 버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잘 들어요. 제가 그동안 겪은 거 그대로 말씀드릴 테니까.”
난 그렇게 몸에 구멍이 났던 적, 그리고 최근에는 저 게이트를 강제로 약탈하려고 한 적이 있다는 것까지 전부 알렸다.
“한국 협회장이 전부 주도해서 한 게 사실입니까?”
아싸, 의도대로 됐다.
소위 말하는 갈라치기. 성공으로 보인다.